방학이 되면 아내는 더 할일이 많다.

애들이 학교 가서 해결하던 점심을 집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2-3년 전까지 아내는 회사 갔다가 점심시간 즈음에 집에 돌아 와서는 애들 밥 챙겨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도 마다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들를 기회가 있으면 김밥이라도 사다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먹을 걸 많이 마련해 두거나, 때로는 중국집, 피자집에 전화해서 배달시켜 점심을 해결해 준단다.

아침에 재활용할 것들 다 치우고 베란다를 열어보니 쌀을 물에 담가두었다.

그거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가래떡 뽑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애들 점심때 먹게 하려고 한단다. (참으로 정성도 대단하다.... )

 

아침 밥상에는 무조건 애들을 깨워서 함께 밥을 먹는다.

새벽 2시까지 게임하고 놀다가 잠드는 놈들이 7시반에 밥상앞에 앉아야 밥맛이 있을 리 없다.



아내는 아침에도 된장찌게게 김치찌게, 두부조림, 김치 두세가지, 마른김, 생선튀김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차려서 내 놓는다.

깨작거리는 애들에게 아내는 생선 뼈까지 발라서 밥에다 얹어 준다.

근데, 이 놈들은 그것조차 별로 반겨하지 않는다. 억지로 깨워서 먹는 밥이니까 그저 밥 우걱우걱 떠 넣고 물 한잔 마시고 빨리 되돌아가서 잠자고 싶은 거다.

보다 못한 산오리는..

"당신 좀 그러지 마! 이제 고등학생이나 된 놈에게 그게 뭐야?"

"빨리 먹으라고 그러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이 아직도 그모양이지...애들 이것 저것 챙겨주지 말라고... 그냥 밥해서 밥통에 넣어놓고 자기들보고 챙겨 먹으라고 하라고...이것저것 사주니까 제손으로 하는게 없잖아.."

아침 밥상에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싫어진 큰놈이 뭐라 투덜댄다.

"그러게 엄마는 싫다는데 자꾸 먹으라고 올리고..."

"야! 새꺄! 싫기는 뭐가 싫어? 니네가 안하고 못하니까 그런거 아냐?

  엄마 아빠가 무슨 노예냐? 너네는 손도 꼼짝 안하고 부려먹으려고만 하고..."

"..................."

두 놈다 후다닥 밥을 긁어 입에다 쏟아 붓고는 후딱 사라졌다.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작은책 2월호를 봤다.

첫글이 어느 남자 고등학생이 쓴 글인데, 아픈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도시락 싸달라고 했더니 김치 하나만 넣어서 싸준 도시락 들고 가지 않았단다. 그랬더니 엄마가 수업하는 도중에 온갖것을 만들어서 도시락을 싸서 왔단다. 그런 엄마가 너무 사랑스럼고 고맙다는 그런 얘기다.

물론 고맙고 엄마 밖에 없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래서도 안되고 자식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엄마는 자식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도시락을 학교까지 배달해 주는 정성을보여주는 덕분에(?) 자식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점점 늦어진다. 요즘은 아예 나이 들어도 홀로 서기 안한다는 자식들도 많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글이, 이런 내용을 보고 무엇을 느끼라고, 무엇을 배우라고 떡하니 작은 책에다 실었는지 그것도 이해가 안간다. 엄마는 아픈 몸 이끌고 기꺼이 자식 도시락 반찬 많이 만들어서 학교까지 가야 하고, 그걸 본 아들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에 고마워해야 한다? 이렇게 읽으라는 것인가?

그런 아들이 커서 결혼을 한들 마마보이를 벗어날수 있으랴? 시쳇말로 '남녀평등'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을까?

 

엄마들이 애들을 망치고 있고, 남자들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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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9 08:56 2005/01/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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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나는 내가 무섭다

    Tracked from 2005/01/24 00:20  delete

    * 이 글은 산오리님의 [여전히 엄마가 문제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결혼 전 명절 때 둘째언니랑 싸운 적이 있었다. 밥상을 놓는데 언니네 아들(그러니까 내 조카)가 그때의 내가 생각하기론

  2. Subject: 슬픈 아빠

    Tracked from 2005/01/24 22:53  delete

    * 이 글은 산오리님의 [여전히 엄마가 문제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 이 글은 알엠님의 [나는 내가 무섭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 글들을 보다가 갑자기, 왜 아이한테 화를 내면 안

  1. gribeun 2005/01/19 09: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전 어렸을 때, 하두 그렇게 생선 발라주니까 '나중에 생선 발라주는 남자랑 결혼해야지..'
    그런 생각까지 했답니다. ㅡ.ㅡ
    역시, 별로 좋지 않아요! ^^

  2. tree 2005/01/19 09: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동감!!

  3. 자일리톨 2005/01/19 11: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리 부모님 같았으면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말씀하시고, 밥숟가락을 싸악 뺏어가셨을 것 같은데... 우리집은 어렸을 때부터 먹을 것이 그리 넉넉하질 못해서 자기가 안 찾아먹으면 그걸로 끝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저하고 형들은 알아서(?) 챙겨먹어요.

  4. 머푸 2005/01/19 11: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도 희연이에게 그러지 말야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산오리 와이프처럼 되가려고 해요. 그래서 지금 반성 중이예요..ㅡㅡ
    고생을 왜 사서 하나 싶기도 하궁...
    근데, 작은책 2월호는 저도 어제 받았는데 아직 그글을 못봤거든요..근데 산오리 말마따나 약간의 '문제성'은 있네요. 그걸 보고 남자 아이들이 무얼 배울까 말입니다. 쩝...

  5. sanori 2005/01/19 13:5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gribeun / 생선발라주는 부부는 그래도 좀 덜 징그러울 거 같은데...아직 그런 남자 못찾았어요?
    tree / ^.^
    자일리톨 / 작은 놈은 무슨 말만 하면 "아빠는 그런 편견을 버려!"라고 하는데, 역시 세대차이죠. 왜 먹을 게 없었는지 이해를 못하니까요....
    머푸 / 작은책 바로 처음인가 두번째 글인데... 하튼 다른사람도 생각하는 애들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6. 바다소녀 2005/01/19 14: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음.. 아침에 진수 성찬 차려주는 남자 있었음 좋겠네요..

  7. rivermi 2005/01/19 22:4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여성의 모성본능에 일정정도 기대어 한국사회가 성장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왠지 억척스런 엄마만 문제있다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힘들듯해요. 독립심강한 자식으로 키우는건 엄마만의 몫이 아니기도하니...쩝...
    산오리님도 인정하시겠지만...제가 보기에는 사모님은 대단한 분인 것같은뎅...

  8. sanori 2005/01/20 08:3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바다소녀 / 그냥 혼자 사세요..ㅋㅋ
    rivermi / 엄마만의 문제는 아니죠...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제 아내와 비슷한 거 같은데요..

  9. rivermi 2005/01/20 23: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렇다면 제목은 "여전히 부모가 문제다"로 바뀌어야 하는건 아닐런지..어떠세요? 산오리님~~
    글고 영화는 같이 보시는거죠? 무조건 예매되었으니 오셔야 되요^^

  10. sanori 2005/01/21 08: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rivermi / 제가 잘못했어요....흑흑...(스스로 종아리 맞고 있음). 결혼식 2시....어떻게 빨리 도망가죠?

  11. rivermi 2005/01/21 15: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ㅋㅋㅋ
    도망은

    자~알

    ^^;;

  12. 사슴벌레 2005/01/24 00: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얼마전에 외국의 한 부부가 집안일을 돕기는 커녕 일만 만드는 아이들을 상대로 파업(?)을 했다는 기사를 봤었죠. 마당에 피켓을 꽂았는데 그 문구가 대충 "부모는 자식의 노예가 아니다"쯤 이었던 것 같아요.

  13. sanori 2005/01/24 18:2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슴벌레 / 갈수록 부모는 자식의 노예가 되어 가는 거 같아요.. 그리고 자식이 한둘밖에 없으니까 부모들도 그걸 바라는 거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