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해야 하나?

from 나홀로 가족 2005/04/18 18:50

* 이 글은 산오리님의 [푸닥거리...]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시간이 보통 7시 50분을 약간 넘어서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지상에서 좀 기다리면 두 새끼가 어거정 어거정 걸어와서 차를 탄다. 그때가 8시쯤 된다. 잠간 가서 작은놈을 먼저 내려주고, 네거리 하나 지나서 큰 놈을 내려주고는 회사로 간다. 일산으로 온 이후 아침에 애들을 태워주는 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어쩌다 차 없는날 아침에 집 앞에서 마을 버스를 타 보니까 예전의 콩나물버스가 생각나서 애들 태워주는 게 낫다 싶어서 집에 있으면 별 불만 없이 태워다 준다. 아내는 극성이어서 저녁에 '야자'끝나거나 학원에서 늦게 끝나는 동희를 태워올  때도 있지만, 나는 그거까지는 싫다.

 

큰 놈의 등교시간은 8시 10분, 신호등을 2개 지나야 하니까, 조금 늦으면 10분 안에 학교앞에 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신호등에 걸리지 않으면 5분 정도면 도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새끼들은 아침에 별로 바쁜게 없다. 7시 30분에 깨워서 밥 먹여 놓으면 단 몇분이라도 여유가 있을듯하면 다시 가서 드러눕는다. 그리고 그 몇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씻는 것은 또 어지간히 깔끔을 떤다. 대충 물한번 뿌리고 나오면 될 것을 그 바쁜 아침에 때빼고 광내는지 나올 생각을 안한다. 저녁에 열심히 딲고 아침에는 대충 하라 해도 들어먹지 않는다. 그러니 8시 전에 나오기는 거의 어렵고, 8시 넘어서 나오기가 태반이다. 나만 급한 마음에 마구 달려서 어떻게 해서라도 지각을 면해 주려고 조마조마한다.

 

8시10분이 넘어서 학교앞에 내려줘도 이 자식은 뛰어가는 법도 없다. 다시 양호주머니에 손넣고 고개 숙이고 어거정어거정 걸어간다. 

'으이그..........'

 



어느날 아침밥상에서 동명이가 부탁(?)을 했다. 학교에 8시까지 데려달라는 거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묻지 말아 달란다. 무슨 잘못을 해서 주번인가 당번인가를 하는 거냐고 되물었는데, 대답하지 않겠단다.  그래서 좀 일찍 챙겨서 나오라고 했는데, 동명이는 자기 일이니까 일찍 나왔고, 동희는 평소보다 10분이나 일찍 나와야 하니까 당연히 안나왔다. 그 놈 기다리고 있다가는 동명이가 늦을 거 같아서 그냥 출발했다. 동명이는 그날 8시까지 가지 않으면 며칠동안 더 일찍 가야 한다며 우는 소리를 하기에 그냥 갔다.

(동희 이 자식이 좀 미운 것도 있다. 자기 일 아닌 동생 일이라고 아예 개기는 것도 있으니까...)

출발하자 마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고, 동명이보다 동희가 급한데 동희 태우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쩌냐고 아우성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이미 떠났고 어쩌랴? 

 

며칠이 지났는데, 아내가 그랬다.

"동희는 아직도 아빠가 그날 자기 버리고 갔다고 삐져 있다."고

그러그나 말거나지, 좀 급하다고 하면 좀 일찍 나올 것이지..

어제 밤에 동희한테 한마디 붙여 보려다가 포기 했다. 대가리가 커서 뭐라고 쉽게 얘기하기도 어려운 느낌이 팍 들기도 한데다, 이자식도 별로 아빠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 하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밥상에서 다시 얘기했다.

"아빠는 너네들 차 태워서 등교 시키려고 아침에 30분은 먼저 일어나서 화장실에서도 부닥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너네는 그 2-3분도 일찍 못움직여서 맨날 그모양이냐? 오늘부터는  정각 8시가 되면 무조건 출발할테니까 너네가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라디오에서 8시를 알리자 마자 출발했다. 한놈도 나오지 못했다.

출발하자마자 아내로부터 전화.

"동희 좀 태워 가야지 그냥가면 어떻게 해요?"(아내는 그 와중에도 동희 걱정뿐이다.)

"8시까지 나오라는데, 안나오니까 그냥 갈수 밖에..."

"#$%&%######!!!"(엄청 화난 목소리)

".......끊어."

(한편으로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 또 열받았다.)

 

지난 번에 푸닥거리 한번 하고 화해 했냐고 물었는데, 안했다.

근데, 화해 할까 생각하다가도 새끼들 하는 꼴을 보면 딱 밉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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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8 18:50 2005/04/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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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i 2005/04/18 21: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____________________^

  2. 자일리톨 2005/04/18 22:5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때로 아드님들이 마음에 안 드시기도 하겠지만, 저도 그 나이때에는 부모님 속 엄청 쏙였답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듯 한데요, 뭘..^^

  3. kuffs 2005/04/18 22: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런데 동희가 혹시 산오리님 닮지 않았나요?

  4. jseayoung 2005/04/19 00: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저 세상 살아가기도 만만치 않은데... 자식까지 싸우고, 눈치보고, 힘겨루고 해야하는 상대로군요. 아직 어린 제 딸도 곧 그렇게 되겠지요. 후~~~

  5. rivermi 2005/04/19 00: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뻐꾸기님말이 갑자기 팍 와닿았아요^^
    동희동명이 입장에서는 산오리님이 속섞히는걸로 느껴질 듯..ㅎ_-;

  6. gribeun 2005/04/19 09: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요즘 아빠랑 사이가 별로에요.. -_-; 나는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드네요. 화해하세요..^^

  7. 꿈꾸는 애벌레 2005/04/19 14:0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갑자기 어린시절 생각이 마구마구 나네요.. 특히 중학교때.. 매일매일 늦잠자다가 스쿨버스 놓치고 아빠가 거의 3년 내내 학교에 태워주셨던...고등학교때는 아예 그냥 포기하고 지각하고 말아버렸지만서두..지금 이글을 보니..ㅋ 몹시 찔리네여..아이들도 언젠가는 아빠맘을 이해하게 될날이 오겠죠...저처럼 몹시 많은 시간이 흐른후에 알게 될지도...

  8. sanori 2005/04/19 23:4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행인/^__^
    자일리톨/근데, 진짜로 자식이 미운거 있죠..
    뻐꾸기/말도 안돼요, 산오리 얼마나 범생이었는데요,그기다 아버지 말씀이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절대복종이었죠. 나이서른 넘어서 결혼하고 난 후에 겨우 아버지한테 대든적 있는 걸요.
    jseayoung/아내와 투쟁하느라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자식과 투쟁이네요, 정말로 '삶은 곧 투쟁'이 맞아요.ㅎㅎ

  9. sanori 2005/04/19 23: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미갱/산오리 같은 아빠는 그래도 80점은 넘을 거 같은데요..
    gribeun/결혼해 보세요, 그럼 결혼한 딸과 아버지는 사이가 저절로 좋아지던데요, 우리 누나와 여동생을 보니까..ㅎㅎ
    애벌레/이해 못해도 좋은데, 뭔가 좀 지키거나 끊고 맺는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애들이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