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에 기차가 정차하는 것은 물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지 다른 이유는 거의 없다. 역이라고 해야 부근에 보이는 거라고는 집 두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라미요 역은 역사의 현장이다. 그곳에는 파타고니아 지방의 상흔을 간직한 시계가 있는데 그 시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똑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9시 28분.

 

1921년. 아니타 목장에서 소작농들과 인디오들의 마지막 투쟁이 시작된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안토니오 소토가 이끌던 4천여명의 소작농들이 단순하고 소박한 꿈에 젖은채 파타고니아 최초의 자유조합체<소비에트>를 결성하고 자율적인 별장 관리를 천명했지만, 지주들이 냉담하게 반응하며 폭력적을 제어하려 들자 하라미요 역과 목장을 점거한 것이다. 그러나 양쪽의 대치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일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소작농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강력한 진압군을 보냈던 것이다.

 

남자들은 하라미요 역을 사수하고, 여자들은 목장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무기가 늘 지니고 다니던 비수와 농장 관리인에게 탈취한 권총 두자루 외에 수렵용 돌멩이가 달린 곤봉과 채찍이 전부인 반면 진압군은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6월 18일 정오. 진압군의 지휘 장교인 바렐라 대위는 부하들에게 역을 포위하도록 지시한 후에 소작농들에게 밤 10시까지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면 목숨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약속 시간이 지켜지지 않고서 발포명령이 떨어졌는데, 그시간이 정확히 밤 9시 28분이었다.

 

정확한 기록과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단지 백여명의 남자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파놓은 구덩이 앞에서 총살당하고, 또 다른 백여 명이 불에 타 숨졌다는 사실외엔. 그날 그 일대의 팜파는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9시 28분. 진압군의 총알에 멈춰버린 시계. 그렇게 정지된 시간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고쳤죠.] 승무원이 말한다. [하지만 고치면 뭘합니까? 그때마다 누군가가 그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 걸요]   - 책 169~170쪽.

 

가슴 울리는 얘기가 많아서 다 생각 나지도 않지만,  얼피 책장 펼쳐서 한 곳을 옮겼다.

제목에서 말하는 특급열차는 이 장면 한 곳 밖에 없다.  사실과 허구가 혼합되어 있어서 어느게 사실인지, 어느게 허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동안에, 그리고 읽고 나서도, 파타고니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쪽 사람들의 파타고니아 사랑은 정말 대단했고, 지금도 대단할 것이라 믿는다.

칠레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오래된 비극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도 멋진 일이다.

<나에게 어떤 긍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곳의 인간 백정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잊지 않고 산다는 사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역사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도 정겨운데, 그걸 이처럼 풀어 쓸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게 더 부럽다. 이나라는 이런 사랑과 이런 걸 풀어 쓸수 있는 작가같은 작가도 제대로 없나..ㅠㅠ

 

 



 

볼리바르 항구는 에콰도르 산 바나나를 전 세계로 수출하는  곳이다. 그런데 대략 5킬로미터에 이르는 항구의 제방에 축구장만 한 크기에 깊이을 헤아리기 힘든 구덩이가 있다. 수출되지 못한 바나나를 그곳으로 파묻는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거대한 구덩이 속에 선적 날자가 지났거나, 이미 상해서 구더기가 들끓거나, 대농장의 주인이나 농산물 운반자가 일단의 마피아들에게 고정상납을 이행하지 못해 마지 못해 버리게 되는 과일과 야채등으로 가득 차있다.

 

<오야>. 사람들이 거대한 냄비라고 부르는 그곳은 수천 톤의 쓰레기들이 걸쭉한 수프처럼 썩는 바람에 메스꺼운 냄새를 풍기며 일년 내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그 흉측한 괴물의 거대한 몸통에는 쓰레기들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스 정치인의 정적들 역시 수십발의 총알이 박히거나 예리한 칼날에 난자당한 뒤에 그 곳게 쳐박혀 조용히 썩어간다. 이렇듯 <오야>는 쉬지않고 끓고 있으며, 그 악취에 콘도르조차 접근을 꺼릴 정도다

- 책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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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0 14:57 2008/05/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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