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집 나와 있으면서, 유일하게 집에다, 아내에게 한 일은

아침 7시에 집으로 전화하는 거였다. 모닝콜인가 뭔가 하는 거다.

어쩌다 그걸 까먹게 되면, 당연히 애들은 밥도 못먹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학교로 갔단다.

그러면 아내는 '왜 전화 안했냐?'고 항의한다.

 



6시에 깨어서는 운동하러 나가기 귀찮아서 뒹굴다가

7시에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신호는 가는데, 안받는다.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다...

역시 신호는 가는데, 안받는다.

동희의 휴대폰으로 걸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집 전화로 거는데,여전히 신호음만 울릴 뿐 전화를 안받는다.

'이상하다, 아내가 못받더라도 동명이가 당장 받을텐데....'

아침에 아무도 전화를 안받으면 걱정과 함께 온갖 불길한 생각이 다 든다.

'이거 뭐야? 불난 거 아냐? 아침부터 다들 어디로 간거지?.......'

몇차례를 시도하다가, 씻고 밥먹기 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여전히 집 전화는 안받았고, 아내가 휴대폰을 받았다.

"아니, 도대체 전화 왜 안받는 거야?"

"어? 몇 시야? 벌써 7시 40분이네. 큰일났네... 동희야!!! 일어나!!"

"몇번이나 전화 했는데..."

"우리집 전화 고장이야, 거는 것도 받는 것도 안돼."

"그럼 휴대폰이라도 받아야지."

"휴대폰으로도 전화했어요?"

"몇 번 이나 했지. 그럼 전화 고쳐 달라고 해야지."

"오늘 10시나 되야 고치러 온다는데.."

"알았어..."

 

전화가 안되면 전화가 고장났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그놈의 기계를 맹신하는 못된 습관,

그리고 당장 확인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현대인의 병?....

아침에 전화하는 거만 빼면 우리는 하루가 가도 이틀이 가도 전화도 안하는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서...

 

글구 전화기가 여러개 울리지 않으면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

자기 휴대폰에다 알람을 해 놓고도 그냥 못듣고 일어나지 않는다,

같이 잠자다가 아침에는 여기저기 울리는 알람 때문에 나는 오히려 신경질을 내는데...

 

그전에 그렇지 않던 아내였는데,

돈 좀 벌어 보겠다고 집을 나선지 몇 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아내는

집에서는 시체가 되었다.

돈 벌어 먹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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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4 10:52 2004/12/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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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프 2004/12/14 11: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렇군요...정말 돈벌어 먹는건 무서운건가 봅니다. 아내가 집에선 '시체'가된다는 말에 가슴이 찡해오네요...우리는 내가 아무리 일찍 나가도 꿈쩍도 안하고 옆에선 코골고 자기 일쑤인데...그럴땐 정말 약오르죠..쩝~

  2. 정양 2004/12/14 12: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평소에는 하숙집여사님께서 깨워주셔서 그럭저럭 일어나는데.. 엄마(=하숙집여사님-_-)가 봉사활동을 가시는 월요일아침엔 제가 눈뜨기도 전에 나가시기 때문에.. 월요일은 늘 지각 T.T

  3. rivermi 2004/12/14 12: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 웃음이 나면서 한쪽 가슴이 찡해지는 글이예요.
    저의 엄마도 주말이면 꼭 전화를 하시는데 전화안받으면(집내선, 핸폰 모두) 새벽까지 꼭 확인을 하셔야지 안심이 놓이시는지..조금 늦으면 꼭 핸폰으로 확인하시고...(없는 걱정도 만들어 하시는 편이시죠...ㅋㅋ) 그게 가족에 대한 사랑인가보아요~~

  4. 자일리톨 2004/12/14 12: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밥벌어먹고 사는 건 정말 힘든가 봅니다. 왜 이렇게 되어가는건지...

  5. azrael 2004/12/14 13:0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리 가족들은 늦게 일어나건 지각을 하건. 아무도 신경 안써요. 네가 알아서 해라 주의지요.

  6. rmlist 2004/12/14 19: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희 집은 큰딸 하은이가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도무지 아침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하은이가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모두가 지각이지요. (모두가? 흠... 저랑 한별이는 집에 있지만 그래도 생활계획표라는 게 있기 때문에.. ^^)

  7. sanori 2004/12/14 21: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머프/ 꿈쩍도 않고 코골고 자는 건 머프님께서 아직도 '시체'가 안되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겠죠...
    정양 / 아직도 하숙집 여사님의 관심아래 사시다니...빨리 독립하세요
    rivermi / 글게요, 엄마가 해야 할 걱정을 요즘에는, 그리고 앞으로는 아빠가 맡아서 하는 경향이 있죠.ㅋㅋ

  8. sanori 2004/12/14 21: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자일리톨 / 밥벌어 먹는 걸 넘어서 애들 학원보내겠다고 굳이 나서서 그렇기도 하죠.
    azrael / 제 아내도 그래요... 근데, 애들 커가고 중고등학교 가니까 더 안달이 나서 '네맘대로 해라'고 못하더라구요, 애들 더크면 실감할걸요.
    rmlist / 우리집 동명이도 그랬어요, 초등학교 까지는... 중학교 들어가고 12시 넘어까지 학원 다니고 오더니 아침에도 일어나라고 깨우지 않으면 못일어나요. 중고등학교 가면 애들도 맨날 '시체'가 되더라구요..

  9. kanjang_gongjang 2004/12/14 21:2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전 잠잘때 내가 일어날 시간을 200번 이상 외우고 잠을 청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피곤해도 그 시간 10분전에 일어납니다.
    일상이 되어버린 시간 외우기... 단점은 시간외우기 안하면 잠이 도통 오지 않기에 매일 잠잘때 일일 행사로 진행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습니다.^^

  10. 푸른솔 2004/12/14 22:2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정말 실감나네요.
    저는 핸폰 알람을 오분 간격으로 몇개씩 맞춰놓고 자는데..
    소리에 깨기는 하지만 이불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 이게 또 만만치가 않아서리..

  11. 바다소녀 2004/12/14 23: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와 댓글이 내가 11번째네.
    난 꼭 쓸데 없는 말만 하고 가는 듯한 느낌이.. 죄송.. --;;;

  12. 감비 2004/12/15 01: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내년에는 7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은 걱정입니다.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아이들 깨워서 밥 먹으라고 챙겨야 할 판이니...

  13. rmlist 2004/12/15 15:3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타맨 200번이나 외우다니 너무 피곤해서 시체가 되어버릴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4. sanori 2004/12/15 18: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간장공장/불면증 그거 고통일텐데요...
    푸른솔/아직도 학생수준이군요..
    바다소녀/가끔은 쓸데 있는 말도 잘 하시던데..
    감비/할 말이 없습니다...죄송, 그리고..

  15. kanjang_gongjang 2004/12/15 20:0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전 불면증 아닌데요. 그런데 꼭 아침에 일어날 시간을 외우는게 버릇이 되서요.
    전 눈감으면 5분만에 잠이 든답니다. 그리고 코도 잘 골고요.
    산오리님... 겨울인데 눈구경하러 지리산 한번 가요.
    마천(동서울에서 마천까지 3시간 10분걸리더군요)에서 삼정리 가는 버스가 6시까지 있으니 삼정리에서 비포장도로를 걸어 벽소령까지 가면 얼추 2시간 안에 도착하고 세석산장까지는 3시간 걸리니 한 5시간 걸으면 촛대봉에 당도...
    세석산장에서 저녁먹고 천왕봉가면 무박이일 지리산 중간종주 할 수 있으니 참고하셔서 함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