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았던 60년대까지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목욕은 없었다. 여름철 목욕은 동네 뒷개울에 저녁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목욕을 했는데, 여자들은 위쪽에 남자들은 아래쪽으로 나뉘어서 목욕을 했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여자들도 자연스럽게 가슴 드러내고 애들에게 젖을 물렸으니까 여자들의 목욕이 궁금하거나 했던 것도 없었던거 같다.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깜깜한 밤에(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는데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개울이니까..) 여자들 목욕하는 곳에 가서 들여다 봐야 뭐 보일 것도 없었을 것이다.

 



동네 어른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버스를 타고 현풍읍내까지 가서 목욕을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목욕을 하고 왔다면 동네 사람들한테 좋은소리 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차비며 목욕비 쓸데가 어디 있다고...

산오리가 서울로 올 즈음에 동네 친척 형님 한 분이 집에다 목욕탕을 만들었다. 목욕탕이래야 커다란 드럼통 하나 올려놓고, 그아래 아궁이를 만들어 장작을 때면 드럼통 물이 데워지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집안에 욕실이란게 없으니까 부엌 옆 한데에 만들었으니 겨울에는 추워서 그 드럼통에 물 데우고 그안에 들어가 앉아서 때를 불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그럼 요즘으로 따지면 그럴듯한 노천욕 분위기가 났을라나... 어쨌든 그런 목욕시설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동네의 화제가 되었고, 당연히 구경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서울로 와서 칼산에 살게 되었는데, 칼산 빈민가에 목동으로는 논밭이 가득하고,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대중목욕탕이 있을리 없었다. 한 20분쯤 걸어서 고척동으로 가면 대중탕이 있었는데, 설날 전에 목욕하러 갔던 기억이 한두번 있다.

 

겨울에 목욕은 해야 하고, 대중탕에 갈 목욕비는 없었고, 학교에 가면 용의검사를 한다고 손발을 내밀고, 심지어 배까지 들어올려서 배꼽에 때 끼인거 까지 확인하고서는 선생들이 심하게 모욕을 주었으니 가끔은  목욕을 해 주긴 해야 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보일러공이었던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양남동의 어느 모직공장에서 일했는데, 그 당시 보일러공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자랑하곤 하셨다. 추울때 난방을 제대로 안넣어 준다든지 해서 떨게 만들면 누구나 아쉬운 소리하게 마련이라는 거였다. 이걸 아버지는 기름쟁이의 '곤조'라고 했는데, 그래서 가끔 화나면 아버지는 '파이프렌치 가져와!'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아버지는 당연히 보일러공이란 말을 하지 않았고, '기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공장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회사 직원들이 집에 가끔 오거나 하면 '기관장님!'이라고 불렀으니까 우리도 아버지가 기관장으로 굉장히 높은 분인줄 알수 밖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동생이 어느해 학교에 내는 생활 기록부에 아버지 직업을 '기관장'이라고 써서 냈다. 담임선생이 당연히 아버지 학교 좀 오시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그때 학교엘 갔는지 안갔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에 우리는 아버지 직업을 기관장으로 써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로 왔을때 아버지는 종암동에 있는 전신주 만드는  어느 공장에 '기관장'으로 계셨다. 그리고 토욜이나 일욜이면 목욕하러 종암동까지 갔다. 공장의 노동자들 탈의실이 있고, 옷을 갈아입기 전에 간단한 샤워를 할수 있는 목욕탕이 있었는데, 이걸 '기관장'이 아들들에게 목욕탕으로 '개방'해 주신 거다. 칼산에서 고척동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30번 버스(광명에서 성북역까지 가던 버스인데 오래도록 그번호 그대로 있었다)를 타고 종암동에 내려서 공장으로 들어갔다..

공장경비실에서 수위 아저씨한테 쭈삣쭈삣하면서 "기관장 아들인데요....." 하면, 수위 아저씨가 "어, 그래 들어가 봐라"하고선 문을 열어주었다. 어떨때는 높은 분들이 퇴근하지 않았거나, 다른 손님이 와 있을 때면,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문밖에 세워두기도 했다.

탈의실을 거쳐서 목욕탕에 들어가면 사람 너댓명 들어갈 정도의 사각형 탕이 하나 있는게, 그게 전부였다. 그 안에 네놈이 들어앉아서 장난 쳐가면서 푹 담갔다가, 밖에 나와서 때를 박박 밀고, 등을 서로 밀어주었다.

사실 우리 형제들만 이 목욕탕을 썼으니 맘대로 장난치고, 떠들고 난리를 쳐 가면서 목욕을 했으니, 대중탕 가는 거보다는 훨씬 행복한 목욕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야근하신 노동자 한두분이 목욕하고 옷 갈아 입으러 왔는데, 이럴때면 그저 조용조용 있어야 했다. 가끔 자주 봐서 아는 아저씨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너네는 누구냐?"라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대답하기도 난처하고, 대답하고 나서도 찝찜했다. 그래도 중고등학생이고 다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한참 늦은 밤이 되었지만, 그래도 목욕하고 때 벗겨서 개운함은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직장을 문래동의 어느 식품회사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기관장'이었다. 문래동은 칼산에서 가까워서 종암동 가는 거 보다는 훨 나았는데, 이때 안양천을 건너서 한시간 반 가까이 걸어가야 했으니까, 그 추운날 그것도 고역이긴 마찬가지 였다. 그때 쯤 칼산까지 버스가 들어오는게 있었는데, 109번 버스 종점에서 한대가 종점과 칼산을 왕래했고, 그러니 한 30분만에 한대꼴이나 되었나 모르겠다. 그 버스 기다려서 타고 109번 종점에 가서 다시 갈아타고, 양남동에 내려서 다시 문래동 공장까지 가야 하니까 차라리 걸어다니는게 낫겠다고 걸어 다녔다.

 

이 회사에 아버지는 정년퇴직할때까지 다니셨는데, 이 회사 직원들을 대충 얼굴을 많이 익혔다. 이즈음에는 목욕할 식구들이 더 늘어 났는데, 이종사촌 한명이 서울로 유학와서 우리 집에 있었고,  직장다니는 외삼촌, 재수한다는 시골의 7촌 조카까지 있었다. 그러니 대여섯명이 모여서 목욕하러 공장으로 몰려 갔고, 신나게 목욕은 했다. 매주 갈 수는 없었으니까 2주에 한번 정도 갔다.

 

나이가 좀 들면서 친구들과의 약속도 생기고, 또 그 먼곳까지 가기도 싫고, 더구나 머리 커지면서 아무리 아버지가 '기관장'이라고는 하지만, 공장의 이사람 저사람 눈치 보이는데 목욕하러 가기가 싫어지는 거였다. 평일은 불가했고, 공장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퇴근한 일요일 저녁에 가야 했는데,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었을까.

그래도 대중탕 갈 목욕비는 감당이 안되는 처지였고, 할수 없이 싫어도 귀찮아도 갈수 밖에 없었다.

 

대학다닐때도 목욕하러 형제가 몰려서 갔었는데, 언제부터 가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 목욕비 몇천원이면 아무때나 맘대로 목욕탕 갈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그래서 일주일에 두번이고 세번이고 목욕탕에 가곤 했고, 회사에서 몇명이서 사우나패거리를 만들 정도였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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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14:44 2007/01/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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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 겨울에는 어디론가 바다 건너로 좀 나가 보겠다고 친구들한테 놀러가자고 하는데,

   마땅하지 않았다. 계획을 잡는 거며, 날자를 잡는 거며.... 산오리가 극도의 귀차니즘과 단순함으로 지내다보니, 여행계획을 세우거나 어디 알아보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친구가 날잡고 가자 하면 따라가겠노라고 했는데, 그게 친구도 마찬가지겠지 싶다.

그러다가 복돌아빠와 중국이나 가는 걸로 결정을 했고, 산오리는 복돌아빠한테 다 미뤄놓고 있었더니, 그가 여러가지 자료를 수집하고 해서, 1월 말에 출발하는 걸로 정했다.

그래서 복돌아빠의 여권을 받아 오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산오리의 여권도 어디 쑤셔박아 놓은 걸 찾아서 펼쳐 봤더니....

 

여권 유효기간 만료일이 06년 12월 28일이다.

 

지난해 물건너 가 보지 않았으니 여권유효기간이 끝났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있었던거다. 회사의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여권 새로 만들려면 2주일 걸린단다. 구청 홈피에 들어가서 보니, 번호표 받아서 기다려 접수하고, 어쩌고 해서 만드는 기간이 휴일빼고 8일 걸린다고 나와 있다. 복돌아빠가 알려준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는데(비자 만들게 여권 사본 보내라고...), 그기다 물어봤더니 같은 대답이다.   1월말은 커녕 2월 초도 포기......

복돌아빠한테 전화했다. 설이나 지내고 가자고.....

 

 

 



2. 저녁시간이 좀 한가해져서 저녁에 운동하러 가는날이 많아졌다. 어느날은 운동하러 가서 좁은 길 옆에 차를 세우는데, 뒤로 가는데 뭔가 걸렸다. 그게 차도와 인도의 턱이려니 하고 다시 앞으로 갔다가 뒤로 빼서 차를 세우는데,이번에는 뭔가 덜거덕 거리면서 닿는 소리가 난다. 이상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차를 주차하고서 내려 봤더니, 보도 아래 두조각의 경계석 조각이 있는데, 조각마다 철근이 삐죽이 나와 있고, 그게 뒷바퀴에 걸려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던거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퀴옆구리에 철근이 찢고간 흔적이 두어군데 나 있었다.

 

밝은날 자세히 보니까 한쪽의 흔적은 제법 깊어 보였다. 이걸 그냥 타고 다니나 마나.... 주말에 타이어가게에 갔더니 "꽤 깊은 거같은데, 액땜한 셈 치고 바꾸시죠..."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거로 예상했지만, 그래도 타이어 바꾼지 세달도 안된 새 타이어를 또 바꾸니 짜증이 왕창 날수밖에...ㅠㅠ

 

3.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회를 조금 사서 집으로 갔다.

애들보고 먹으라고 했는데, 잘 먹는다.  동명이한테 '술도 마시려면 마셔라'고 했더니,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고, 소주를 한병 찾아 줬더니 잘도 마신다. 애비는 두잔 마시고 나머지는 동명이가 마셨고, 그것도 모자라 먹다 남은 양주를 내 와서는 콜라에 타서 그게 맛있다고 잘 마신다.

"학원 끝나고 어디가서 놀다 왔냐?"

"노래방..."

"아빠가 부를 노래도 하나 찾아 주라."

"아빠는 뽕짝 좋아하지 않나?"

"뽕짝 별로인데..."

"그럼 뭐 잘불러?"

"자우림의 일탈... 마구 소리 지르지.."

"아빠 모습이랑 잘 어울린다.."

"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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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13:43 2007/01/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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