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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치어리더의 세계

앗! 중간에 내 얘기... 찔린다.

 

 

cheer up! 치어리더의 세계
승리, 그 두 글자를 위해
젊음, 그라운드에 바치다
몸매는 ‘쭉쭉빵빵’이고 춤은 화려하다. 프로야구 등 전국의 경기장을 달구는 치어리더, 그들은 누구인가. 슈퍼모델 같은 늘씬한 팔등신 몸매, 미스코리아 부럽잖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이효리도 무시 못할 화려한 춤솜씨, 개그맨도 울고 가는 철철 넘치는 끼와 재치. 치어리더는 이 같은 모든 조건을 갖춘 미녀들이다.

약동하는 에너지의 상징이자 젊음의 표상인 치어리더는 경기장의 감초이기를 거부한다. 없어서는 안 될 당당한 주역이자 만능 엔터테이너. 드높은 푸른 하늘에 눈부신 햇살, 탁 트인 녹색 그라운드를 배경 삼아 경쾌한 음악에 현란한 댄스로 선수의 투지와 관중의 흥을 돋우는 제2의 플레이메이커이다. 여름에는 야구장에서, 겨울엔 농구장에서 선수·관중과 함께 울고 웃는다.

1982년 국내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시작한 한국 치어리더 23년사.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장대하리라! 찬사와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꿈을 키워온 치어리더가 이젠 당당한 전문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시합을 보기 위해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어리더를 응원하려고 경기장을 찾는 열혈 팬도 적지 않다. 치어리더에게서 받은 기를 되돌려준다나.

무더위에 맥 빠지는 하루하루. 경기장을 찾아 치어리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내 인생 치어 업(Cheer Up)!

글 김청중·황계식·박진우,

사진 허정호,

그래픽 손동주 기자

‘그라운드의 여신’을 만나러 잠실야구장과 가까운 서울 송파구 삼전동 지하연습실을 찾았다. 늘씬한 미녀들이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흔들며 한창 춤에 빠져 있다. “더 힘차게”라는 다그침에 율동은 더욱 격렬해진다. 프로야구단 LG 트윈스의 치어리더인

오혜진(27), 강헌주(24), 김정임(22)씨. 모두 굵은 땀방울을 훔쳐낸다.

◇왼쪽부터 강헌주, 김정임, 오혜진씨.

# 섹시 걸? 편견을 버리세요

꿀맛 같은 휴식시간에 이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땀에 젖은 까무잡잡한 피부가 더욱 탄력 있어 보인다. 연습은 얼마나 할까. 정임씨는 “1주일에 하루는 쉬고 야구 경기나 다른 행사가 없는 날을 이용해 주로 연습한다”며 “한번에 4∼5시간은 기본이고 새 안무를 맞출 때면 종일 연습실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며 숨을 고른다.

공수가 바뀌거나 투수가 교체될 때 응원단상에 오르는 치어리더는 경기당 20개가 넘는 율동을 소화한다. 유행을 따라 새 안무를 배워야 하니 몸에 익혀야 하는 춤은 훨씬 많다. 올 시즌엔 50개에 가까운 율동을 선보여왔다.

그래서 치어리더는 재즈댄스를 바탕으로 벨리댄스, 스포츠댄스, 라틴댄스, 인기가수의 안무를 섭렵해야 한다. 1996년 고교 2학년 때 치어리더의 문에 들어선 혜진씨는 학교 축제 때 장기자랑에 나갈 정도의 춤 실력이 있었다. 고된 단련 후 이듬해부터 치어리더로 뛴 그는 “연습 때는 힘들어 울기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고 ‘춤꾼’만이 치어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치어리더는 태어나기보다는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귀여운 용모의 정임씨는 99년 주위의 ‘강권’에 떼밀리다시피 공개 채용에 응모했다가 합격한 경우다. 그는 “나처럼 춤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배우면 다 하게 된다”며 너스레를 떤다.

치어리더가 되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 중에서도 ‘다리 찢기’는 악명 높다. 발을 좌우로 쫙 벌려 일직선을 만든 뒤 엉덩이와 발 전체가 바닥에 닿도록 하는 동작이다. 정임씨는 “‘욕이 안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 안 아프나 보다’ 면서 어깨를 더욱 심하게 눌러 다리를 벌리게 하던 독한 언니들 때문에 혼났다”고 회상한다.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헌주씨는 치어리더가 좋아 제 발로 연습실을 찾았고, 2003년 꿈을 이뤘다. 치어리더는 대개 오디션이나 스카우트를 통해 선발된다. 요즘은 헌주씨처럼 사무실을 찾아오는 여성이 많다. 그런 만큼 오래 버틴다고 한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끼가 없으면 탈락이다. 연예계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다.

# 힘들어도 화가 나도 아파도 마냥 웃어야

치어리더는 보통 여름엔 야구장, 겨울엔 농구장이나 배구장을 전전한다. 틈틈이 대학축제, 공연, 기업체 체육대회까지 빠짐없이 뛰어야 그나마 돈벌이가 된다. 힘들어도, 화가 나도, 아파도 마냥 웃어야 하는 일이기에 육체적 피로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다. 특히 야구는 경기시간이 길고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흐르는 땀에 화장이 지워져 곤혹스럽게 한다. 더구나 카메라가 늘 비추고 있기에 화장 고칠 시간도 없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야구 시즌이 끝나면 많게는 5㎏ 넘게 몸무게가 빠진다고 한다.

정임씨는 “대신할 사람이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나섰다가 공연을 망치는 바람에 꾸지람을 받은 적도 있다”며 “친구들도 자주 바람을 맞힌다고 연락을 끊고 산다”며 한숨을 쉰다. 야간경기 때는 오후 11시가 넘어야 귀가할 수 있으니 열혈 팬과도 고작 인터넷 미니홈페이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정도다. 혜진씨도 “친구 결혼은 물론이고 집안 행사도 챙기지 못해 미안할 때가 많다”고 토로한다. 그만큼 가족의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탓에 크고 작은 부상도 항상 달고 산다. 혜진씨는 “관절염에 발 냄새가 얼마나 심한지 모른다”며 부끄러운 듯 웃는다. 높은 굽의 신발은 날씬해 보이게 하지만 자주 발목을 접질리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공에 맞거나 선수와 부딪치는 것도 다반사다.

정임씨는 “원래 예쁜 다리였는데 허벅지와 종아리에 근육이 생겨 두꺼워졌다”고 울상을 짓자 두 살 많은 헌주씨가 “하체가 튼튼해야 건강하다”고 언니답게 다독거린다. 그러면서도 “형편없이 까맣게 타버린 피부를 보면 가슴이 아리다”며 안타까워한다.

# 짜릿한 한판 승부… 승리를 먹고 산다

“솔직히 이겨야 응원할 맛이 난다. 진다는 생각이 들면 맥빠진다.”(정임씨).

치어리더 역시 선수 못지않게 늘 승리에 굶주려 있다. 3번이나 응원하던 팀이 챔피언을 차지했다는 헌주씨는 “우승이 확정되던 때 정말 실컷 울었다”고 자랑한다. 라이벌 팀 팬과 말싸움도 서슴지 않는다는 혜진씨는 “어이없이 역전당하면 화도 나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고 열을 낸다.

이기고픈 마음이 지나치면 실수도 나온다. 광적으로 흔들다 단상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속옷이 흘러내려도 모른 채 응원을 멈추지 않을 때도 있다. 안무 순서를 잊어 따로 논 일은 약과다. 팬티를 가리는 속바지를 깜빡하고 입지 않은 사실을 나중에 알고 창피함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내려오는 치마를 꼭 잡고 춤췄던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지금은 야구광인 혜진씨는 처음엔 스리아웃에 공수를 교대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정도의 ‘야맹’이었다. 그래서 풋내기 치어리더일 땐 “운동장에 있는 선수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무조건 일어나서 단상에 올라라”는 교육을 받고 응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6년차인 정임씨는 “치어리더 첫해 이후 우승과 인연이 없었는데 꼭 챔피언 팀을 거치고 은퇴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치어리더의 수명은 짧다. 결혼과 함께 자의반 타의반 은퇴한다. 보통 20대 후반이 되면 힘에 부치고, 유부녀는 인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구단이 싫어하기 때문.

혜진씨와 헌주씨는 은퇴 후 선배들처럼 치어리더팀을 꾸리는 것이 희망이라고 한다. 막내인 정임씨의 꿈은 당차다. “나이 들어 결혼한 뒤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왜냐고요?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죠.”

글 황계식 cult, 사진 허정호 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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