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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소클럽''서 종횡무진''바퀴달린 사나이'' 박대운씨

간만에 훈훈한 내용

 

 

''폭소클럽''서 종횡무진''바퀴달린 사나이'' 박대운씨
KBS ‘폭소클럽’에서 ‘바퀴 달린 사나이’란 코너를 맡고 있는 박대운(34)씨. 그는 최초의 장애인 개그맨이라는 타이틀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지만, 단순히 ‘개그맨’ 혹은 ‘장애인’이라는 단어로 그를 정의하기는 힘들다. 장애인도 웃음과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지론으로 밝은 장애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그는 단지 휠체어를 타고 있을 뿐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장애를 가지고 누구보다 떳떳이 세상과 부딪치고 있는 박대운. 양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지만 “다리가 없는 게 아니라 숏다리”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그를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 ‘폭소클럽’ 녹화장에서 만났다.



‘폭소클럽’에서 그의 개그는 단순히 웃음으로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입담 앞에 우리는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는 웃음과 함께 ‘장애인에게 장애가 되는 사회’를 개그라는 창구를 통해 비틀어댄다.

4일 녹화에서 그는 장애인들이 화장실에서 겪는 일을 소재로 삼았다. “볼 일이 급한데 장애인 화장실이 없으면 당황스럽다. 하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청소도구로 가득 차 있으면 황당하다” “장애인 화장실 변기 옆에 있는 손잡이는 비장애인들이 힘줄 때 잡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식. 그는 이렇게 개그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방송에서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에 대해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설명하며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을 꼬집었다. “내 다리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을 혼동하듯이 장애를 틀렸다고 생각해요.” 박대운의 이런 개그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폭소클럽’ 게시판에는 그에게 힘을 보태는 내용의 글들이 빼곡하다.

“사람들의 응원이 고맙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으쓱해지거나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이런 반응 자체도 어쩌면 ‘다르다’는 것에 대한 방증일 수도 있으니깐요. 주위의 관심은 저에게 ‘플러스 알파’는 되지만 큰 의미는 없어요. 방송을 하면서 내적으로 많이 성숙해지는 것 같다는 데 스스로 만족하고 있어요.”

그가 ‘폭소클럽’에서 활동하게 된 데에는 개그맨 홍록기의 역할이 컸다. 홍록기는 강원래의 재활 트레이너 시절 알게 된 그에게 ‘폭소클럽’ 무대에 서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의 밝고 건강한 모습과 유머러스한 말투, 긍정적인 사고가 인상적이었던 것. 홍록기는 박씨의 녹화가 끝나면 단어나 표정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지적해준다.



그는 대학 시절 휠체어 유럽 횡단으로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성화 봉송자로 시작해 같은 해 한일 월드컵 성공 개최 기원 유럽 5개국 2002㎞ 휠체어 횡단, 99년 국토 종단 4000㎞ 휠체어 대장정까지 그는 쉼없이 바퀴를 굴렸다. 하루에 18시간을 달린 적도 있다. 유럽 횡단과 국토 종단 모두 자신이 기획하고 일정을 세우고 스폰서를 얻기 위해 직접 나섰다.

“누군가 차려놓은 잔치에 초대받아 참석한 거라면 저한테 별다른 의미를 남기지 못했을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뭔가 할 수 있다는 감동을 맛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뿌듯해요.”

그가 유럽 횡단을 계획한 것은 ‘할 수 있는 것은 해보자’라는 도전 정신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런 정신으로 2001년 에세이집 ‘내게 없는 것이 길이 된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어렵사리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학교 내 미비한 장애인 시설로 불편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어려움에도 당당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뻔뻔할 정도’다. 친구들은 이런 그에게 장애인은 장애인인데 절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불량 장애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이 별명에는 나를 불쌍한 장애인 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들의 마음이 배어 있다”고 말한다.

요즘 그의 또 다른 걱정은 결혼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 12일 결혼을 앞둔 그는 결혼식 전날에도 ‘폭소클럽’ 녹화를 해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청첩장도 7일에 돌렸고, 신혼여행지를 결정하고 티켓을 구입한 것도 불과 일주일 전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다음날 다시 ‘폭소클럽’ 녹화를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일정이지만 그는 6일 방송에서 방청객으로 온 예비 신부에게 깜짝 프러포즈를 하는 등 예비 신랑으로서의 애정을 과시했다.



그의 결혼 상대는 올해 31살의 최윤미씨. 1998년 박씨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명받았던 최씨는 2001년 또 다른 방송에서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무작정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은 4∼5개월 정도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2002년 첫 만남을 갖고 사랑이 싹텄다. 최씨는 현재 인천 부평에서 주얼리숍을 하고 있다. 박대운씨는 예비 신부에 대해 “자신이 외출할 때면 인터넷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상세지도를 출력해 챙겨주는 자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끊임없이 뭔가에 도전하고 성취해 온 그에게 결혼은 “무엇보다 설레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행복하고 온전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혼 후에는 다시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다. 7월쯤 닭갈비집을 열 예정인 그는 “2년전에 생과일전문점 실패를 맛봤기 때문에 이제는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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