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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7/12/08 09:05
  • 수정일
    2007/12/08 09:05
  • 분류
    마우스일기
지난 정권은 내가 잘 몰라서 패스
이번 정권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권이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들이 별로 화제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시위에서 사람들이 한, 두명씩 조금조금씩 죽으면 시위 탄압에 대한 여론이 형성이 안 된다. 오히려 시위대가 과격한 폭동 분자라든가. 죽창으로 선공했다든가. 의경이 참 힘들다던가-_-. 기타등등 비난 여론이 거세더라. 양측의 비난여론 중 뭐가 더 센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형식적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선출된 정권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여론이었음이 분명하다. 선거를 앞두고 공방전이 벌어져도 이런 얘긴 아무도 안 하기도 하고.

최소한 한 시위에서 10명 정도 죽었다면 외신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몇 개의 시위에서 합쳐서 10명이 죽어도 조용히 묻힌다. 다친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한국인들도 버마 이름 정도는 안다. 올해 있었던 그 대규모 탄압때문에. 사람들은 눈에 띄는, 확실한 폭압을 원하는 걸까? 정권이 한, 두명이 죽을 정도로의 강도로 시위를 탄압한 것은 적확한 판단이다.

올해는 기억하는 한 시위 중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맞다면 더더욱 여론이 형성될리가 없겠다.

분신하는 노동자의 죽음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비중을 안 뒀지. 빨갱이라고 기타등등. 87년엔 시민=시위대였지만 지금은 시민과 시위대는 완전 다른 지위? 계급? 계층? 뭐든 간에 완전 다른 존재라고 자기 스스로 시민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일단 너는 바보라고 말해주겠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10명 안쪽으로 거의 매일 죽인다. 분쟁 지역에서의 살인과 죽음에 대해서는 좀더 그럴 수 있다고 인식되어서, 규모도 적으니까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키기엔 부족하다.

매일 죽는 것은 다른 사람인데도 반복적인 뉴스로 인식된다. 또 죽었어. 맨날 죽어. 그리고 결국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린다. 한국인에게, 팔레스타인인이 매일 죽는 게 일상화된다. 물론 팔레스타인을 알고 뉴스를 보는 한국인에 한해야겠지만.

사람들은 나치 히틀러만큼은 정말 나쁘다고 정말 비민주적이라고 그래서 비유로 많이 사용하지만 그런 비유 참 우습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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