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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반유대주의에 맞선 싸움

안녕, 아누라드하? 이 좆 같은 반유대주의 검둥아. 나치 검둥이 원숭이 새끼들의 딸아. 나가 뒈질 때까지 잘 살아라, 이 아이스크림 창녀야.

유대인은 대체로 당신 같은 힌두인을 가장 비천한 인간종으로 여깁니다. 유대인은 엄격히 유일신을 믿지만 당신네 힌두인은 다신교에 코끼리 신 같은 온갖 기괴한 신들을 섬기니까요. 이렇게 역겨운 우상 숭배가 있을까!

(중략)
저는 인도인의 미국 이주를 멈추게 하라고 국회의원들에 편지를 써왔습니다. (중략) 당신 옆엔 자기를 혐오하는 소수의 유대인이 있지만, 유대인 대부분은 당신들 냄새나는 힌두인을 경멸한답니다.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세요, 추한 싸구려 창녀여!
- 뉴욕 브루클린에서, 랍비 슬로이메 도비드 루이스

2021년 7월 19일, 미국의 아이스크림 제조회사 벤앤제리스가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사업 철수를 발표하자 이사회장 아누라드하 미탈에게 이와 같은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비방 메시지가 쏟아졌다.미탈 개인 트위터 계정에 공개됐던 것으로 현재 해당 포스팅은 삭제됨. 벤앤제리스는 미국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아이스크림이 세계를 바꿀 수있다”라는 슬로건 하에 사회 정의 문제에 활발히 목소리를 내왔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미국 유대인 활동가들은 벤앤제리스에 이스라엘 사업 지속이 기업이 표방하는 가치와 맞지 않다고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결국 벤앤제리스는 이스라엘이 1967년 군사 점령한 이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동예루살렘에 건설·확장 중인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서 2022년부터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유대인 활동가들은 이스라엘 사업 전면 철수가 아닌 불법 정착촌에 국한된 철수이기 때문에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스라엘은 입장이 다르다. 벤앤제리스의 사업 철수 발표 후 이스라엘 및 서구의 시온주의 세력은 이것이 반유대주의적 행위라며 회사와 이사진, 협력사를 향해 비방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대인 창업자들에겐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유대인에게 늘 하듯 “자기 혐오적 유대인”이라 낙인찍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이라 규정했다. 이스라엘 언론은 이 결정이 이스라엘 국민의 “아이스크림권 침해”라며 관련 소식을 매일 같이 대서특필했다.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으레 겪듯 벤앤제리스 관련자들은 살해 협박마저 받고 있다.

우리가 반유대주의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에 반대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시온주의 세력은 반유대주의를 이스라엘 국가 및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등치시킨다. 잘못된 이 반유대주의 논란의 핵심에는 수년간 유럽과 북미에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양산해온 국제홀로코스트추모연맹의 ‘반유대주의 실용정의’가 있다.

IHRA의 “반유대주의 실용정의”

국제홀로코스트추모연맹(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Alliance, 이하 IHRA)은 1998년 홀로코스트 교육·연구·추모를 위해 스웨덴·영국·미국이 설립한 프로젝트팀에서 출발한 정부 간 조직이다. 현재 29개 유럽국가와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까지 총 34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있다.

IHRA의 2016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총회에서 당시 31개 회원국은 아래의 반유대주의 실용정의(Working Definition of Antisemitism)를 결의했다.

법적 구속력 없는 아래의 반유대주의 실용정의를 채택한다 :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향한 혐오 표현과 같이 유대인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의미한다. 수사적이든 물리적이든 반유대주의 표명은 유대인 혹은 비유대인 개인, 그리고/ 또는 유대 공동체 기관이나 종교 시설을 겨냥하는 것이다.”

해당 정의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정의 아래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예시들이다. 11개의 예시 중 7개가 현대 국가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이며, 특히 다음의 예시는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금지한다.

  • 유대인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는 것, 예컨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가 인종차별적 기획이라는 주장.
  • 다른 민주 국가에는 기대 혹은 요구되지 않는 행동을 이스라엘에만 요구함으로써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
  • 현재 이스라엘의 정책을 나치의 정책에 비유하는 것.

실용정의의 일부로 제출됐던 11개 예시는 스웨덴과 덴마크의 반대로 정식 규정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정식 규정 아래 부기됐고, 시온주의 세력은 본말을 전도해 11개 예시의 위상을 더 높이는 데 주력했다. 게다가 IHRA는 예시도 정식 규정으로 채택됐다고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IHRA는 홈페이지 반유대주의페이지에 “실용정의는 예시들을 포함해 2016년 5월 부쿠레슈티 총회 동안 만장일치로 검토되고 결정되었다”라고 거짓 서술하고 있다. 2021년 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IHRA와 공동 출판한 소책자에서도 같은 서술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 의회는 예시를 제외한 규정 부분의 지지만 결의했지만, IHRA는 이에 대한 반박 없이 환영함으로써 실용정의에 예시가 포함된다는 주장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냈다.

반유대주의에 맞선 투쟁에 필요한 원칙

내용적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2020년 11월, 누라 에라캇, 탈랄 아사드, 질베르 아슈카르 등 팔레스타인과 아랍 학자 122명은 반유대주의에 맞선 투쟁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불법화하는 전략으로 전용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며 7가지 투쟁 원칙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반유대주의에 맞선 투쟁은 국제법과 인권의 프레임 속에 전개돼야 한다. 이는 이슬람 혐오와 반-아랍, 반-팔레스타인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에 맞선 싸움의 일부여야 한다.

2. 억압당하는 소수자로서의 유대인이 반유대주의적 정권에 지목되는 것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서 배타적 팽창주의 국가라는 형태로 유대 인구의 자기 결정권을 실행하는 것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현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인종 청소하며 들어섰고, 원주민은 군사점령 하에서 혹은 이스라엘 내 2등 시민으로서 여전히 자기 결정권을 부정당하고 있다.

3. IHRA의 반유대주의 정의는 현재 많은 나라에서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하는 좌파·인권운동단체나 BDS(이스라엘 보이콧·투자철회·경제 제재) 운동을 격파하는 데 이용될 뿐 유럽과 미국의 우파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유대인에 가하는 진짜 위협을 부차화한다.

4. IHRA 회원국이 모두 인정하는바, 이스라엘은 반세기 넘게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하고 있다. 이를 비판해선 안 된다는 예시는 기이하며,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장래 이스라엘을 고취하는 반시온주의 관점을 반유대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5. 특정 인구집단이 수적 우위를 점하게 하기 위한 자기 결정권이란 없다. 대대로 팔레스타인 땅에 살아온 이들의 고향을 뺏고 추방하는 것이 자기 결정권일 수 없다. 이미 UN 총회 결의안 194로 보장된 고향으로 귀환할 권리를 반유대주의라며 부정해선 안 된다.

6. 이스라엘은 헌법 차원에서 인종차별을 공식화했는데, 이를 비판하는 것이 곧 반유대주의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절대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데 불과하다. 실제로 IHRA의 정의는 각국에서 인종·종교 차별적인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어떤 논의도 금지하는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7. 팔레스타인인의 자기 결정권(여기에는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지 철수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보장이 포함됨)을 전면 보장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IHRA의 정의는 유대인의 안전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유대인의 우월적 지위와 특권을 보장해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억압한다. 반유대주의에 맞선 투쟁은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존엄과 평등, 해방을 위한 투쟁과 함께 가야 한다.

반유대주의 실용정의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온건한 비판마저 반유대주의로 낙인찍는 근거로 사용된다. 애초 반유대주의 실용정의를 기초했던 반유대주의 전문가 케네스 스턴은 “우파 유대인들이 (이를) 무기로 삼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스턴은 스스로 시온주의자를 자임한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서 이스라엘 비판을 금지하며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은 애초의 취지와 다르다며, 특히 친이스라엘 세력이 반시온주의 유대인 학생들에게 ‘반역자’, ‘카포’(나치 부역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2021년 8월 현재 IHRA의 반유대주의 실용정의를 채택한 국가는 총 32개다. 그중 가장 최근에 채택한 국가로 알려진 게 한국이다.

FTA에 이어 또다시 친-이스라엘 행보를 걷는 “최초의 아시아 국가”

8월 4일 한국 외교부는 “정의용 외교장관은 8월 4일 야이르 라피드(Yair Lapid) 이스라엘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 관계 ▷코로나19 대응 ▷교역·투자 증진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반유대주의 실용정의에 관한 내용은 보도자료 말미에 등장한다.

“이스라엘 측의 국제홀로코스트추모연맹 반유대주의 실용정의 지지 요청에 대해, 정 장관은 인종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 정부도 이를 지지할 것임을 밝혔다.

- ‘반유대주의’란 유대인 혐오로 표현될 수 있는 특정한 인식으로, 예컨대 극단주의에 기반한 유대인 공격·살해, 유대인에 대한 악마화 등이 해당됨.”

보도자료만 봐서는 여러 의문점이 생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의회 결의를 통해 통과된 것을, 한국에선 외교장관 간의 전화 한 통화로 결정했단 걸까? 국회에서 논의됐다는 소식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지지’는 어떤 위상을 갖는 걸까? 지지의 범위도 알 수 없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예시 11개를 제외한 걸까? ‘반유대주의’에 덧붙인 설명을 보면 이스라엘을 언급한 예시 규정은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친 후 지지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미 지지를 결정했다는 건지도 모호하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정의를 채택하며 한국 정부는 과연 어떤 검토를 거쳤을까?

정 장관의 말처럼 “인종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건국 이래 유대인 시민과 자국 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정부가 부르는 명칭은 ‘아랍계’) 시민을 구분해 65개 이상 법규로 후자를 공식 차별하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정당화될 것인가? 심지어 2018년에는 헌법적 수준에서 “이스라엘은 유대민족 국가”라 규정하며 ‘아랍계’ 시민을 배제한 이스라엘을 말이다. 또 온건한 시온주의자조차 염려하듯 한국에서도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과연 검토했을까?


▲  이스라엘 국기 모양에 이스라엘의 상징인 '다윗의 별' 대신 나치 문양을 그려넣은 시위대가 국기 모양의 포스터를 태우고 있다. [출처: 미국유대인위원회(AJC)]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주한 이스라엘 대사 아키바 토르는 한국이 “혐오에 맞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첫 번째 아시아 국가!”라며 트위터에 찬양하는 포스팅을 남겼다. 보도자료 말미 몇 줄의 소식이 한국에서 화제성이 없었던 것과 달리 시온주의 세력들은 아시아 국가가 처음으로 채택했다며 널리 회람했다. 미국의 로비단체 미국유대인위원회(AJC)의 사이트에는 한국이 채택 국가로 바로 등재됐다. FTA 체결에 이어 또다시, 이스라엘과 시온주의 세력에 어필하는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된 것이다.

진짜 반유대주의와는 연합하는 이스라엘

이미 알려진바, 적어도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대대로 반유대주의에 관심이 없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정책을 지지해주기만 한다면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와 손잡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얼마 전 실각한 이스라엘의 최장 집권 총리 네타냐후는 특히 노골적이었다.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와 연합해 수십만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에서 죽게 만든 헝가리 정부를 찬양했다. 또 유대인 ‘조지 소로스’가 유럽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유대인이 세계를 조작한다는 전형적인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을 제기했지만, 네타냐후는 오히려 이에 동조했다. 네타냐후는 폴란드 총리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가 나치의 박해를 피할 수 있게 유대인들을 대피시켰다는 내용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 지도부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취약함을 이용해 시온주의 국가 건설에 활용한 전사를 생각할 때 어찌 보면 일관되기까지 하다.

유대 민족은 서구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 속에 가공할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유대 민족만이 피해자의 위치를 특권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나치는 독일과 미국에서 유대인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는 음모론을 퍼뜨렸고(judeo-bolshevism),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는 동시에 탄압받았다. 유대인을 악마화했던 음모론은 이제 유대인 자리만 이슬람으로 바꿔 재생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이슬람-좌익’(islamo-leftism)은 서구 문명을 무너뜨리려는 좌파와 이슬람 연합이라는 음모론에 기반해 팔레스타인 연대 세력을 가리키는 신조어였다. 2021년 2월,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이슬람-좌익’ 사상을 프랑스 국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공범으로 지목, 이를 뿌리 뽑겠다며 대학 캠퍼스를 전수조사했다. 걷잡을 수 없는 인종주의와 혐오의 확산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하다. 반유대주의에, 이슬람 혐오에,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에 맞설 싸울 것. 이 싸움에 아파르트헤이트 식민국가 이스라엘이 낄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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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자 우선주의 - 해방운동의 목소리조차 갈취하는 점령자의 해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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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주의!" 195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흔히 설치된 표지판.

“요르단 강부터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유대인 지상주의는 아파르트헤이트다”

2021년 1월 이스라엘의 한 인권단체가 낸 보고서의 제목이다. 서구 언론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규정하는 것이 대단히 새로운 일인 양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민사회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로 규정한 지 이미 오래고, 남아공의 투쟁에서 배운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역시 같은 규정을 쓴 지 오래다. 여기서 새로운 점은 이 얘기를 한 게 이스라엘 단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해방운동의 주역이,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연대자가 같은 선언을 했을 때보다 서구 언론으로부터 훨씬 큰 주목을 받았다. 항상 그렇듯이.

점령자들의 평화운동

2017년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활동가들이 기획한 평화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다. 마침 같은 기간에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 예정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활동가가 오는 만큼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알리고 교류도 하면 좋겠다 싶었다. 또 팔레스타인에 가려면 이스라엘의 출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연대 운동가를 색출해 추방하려는 이스라엘의 심문 과정에서 미국 단체가 주최한 행사 초대장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란 계산도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스라엘 쪽 운동권과 그다지 접점이 없었다. 처음 이스라엘 활동가를 만난 건 십여 년 전 양측의 ‘테러’로 자식을 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부모 모임의 활동가 두 사람을 한국 단체에서 초빙해 만남을 주선해 줬을 때였다.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이스라엘 활동가가 자식을 잃은 똑같은 아픔을 얘기하는 동안 팔레스타인 활동가는 내내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군사점령의 맥락을 사상한 채 개인적 고통에 초점을 맞추는 활동에 공감할 수 없었고, 팔레스타인 활동가에게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토로했다. 그 활동가는 내 얘기에 수긍하면서도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또 한국에 온 저명한 이스라엘 활동가를 찾아가 만난 적도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가라면 누구나 미디어를 통해 접해봤을, 어쩌면 그 어떤 팔레스타인 활동가보다도 유명했던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택 철거 문제에 주로 대응하는 활동가였다. 내가 한국의 철거민을 향한 국가 폭력이 이스라엘과 닮았다고 말을 걸자 그는 그렇다면 팔레스타인보다 한국 문제에 집중하는 게 어떻겠냐고 반응했다. 해외 연대자들의 초대로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에 대해 발표하러 다니는 활동가가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그 외에도 평화행사 등의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연대자로서 이스라엘 활동가를 만나봤지만 몇 안 되는 경험에서 나는 항상 입장차로 환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매우 단편적인 만남이었고 그렇다고 또 팔레스타인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항상 유쾌하고 생산적이었던 것도 아닌지라 이 불편함을 일반화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제한된 역량을 팔레스타인 활동가와의 교류에 집중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정도였다.

아주 나중에서야 불편함의 원인을 깨달았다.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대의에서 팔레스타인 당사자보다 이스라엘인의 목소리가 더 부각된다는 점이 불편했던 것이다. 활동을 하면서 점점 나는 내가 접하는 많은 뉴스가 이스라엘 활동가들의 운동이고, 내가 참조하는 많은 기사나 보고서가 이스라엘 활동가들의 작업임을 깨달았다. 좌에서 우까지 이스라엘 국가 정책에 비판적인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영문으로 생산하는 콘텐츠 양이 훨씬 많고, 이스라엘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서구 언론에 더 보도된다. 많은 이들이 영어와 히브리어가 모국어인 이중 국적자들이고, 활동을 지원해 주는 서구의 기금도 많다. 목소리를 크게 낼 기회 자체가 더 많은 것이다.

2017년 평화행사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헌신하는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기획한 것으로, 팔레스타인에 친화적인 미국 단체가 후원했다. 나 같은 일반 참가자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각국에서 유대인 정체성을 가지고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를 초빙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동참시키는 목적이 있었음을 참가 후에 알게 됐다. 팔레스타인 활동가 몇 명도 발표자로 초대됐다. 나는 좋은 행사구나 하고 별 생각 없이 참가했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금세 마음이 불편해졌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제로 서안지구에서 진행되는 행사인데 호스트가 이스라엘인이고 국제 활동가는 물론 팔레스타인 활동가도 게스트다.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대해 알게 됐다는 다른 활동가들은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설정해 둔 틀에 따라서, 그들이 제시하는 관점을 흡수하며 연대 운동을 시작한다. 가장 팔레스타인에 친화적인 행사에서조차 팔레스타인인은 주체성을 견지할 수 없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동등한 목소리

행사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활동가를 따로 만나 이 행사의 주객전도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얘기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는 공감을 표하며 더 오랜 문제의식을 나눠줬다. 강조하건대 나도 이 활동가도 이스라엘 내부의 비판의 목소리를 중시하고, 행사를 주관한 이스라엘 활동가들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부터 70여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이들을 점령자와 피점령자라는 억압의 구도가 아니라 서로 화해가 필요한 동등한 두 당사자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는 오히려 이스라엘인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이는 국가나 국제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국제 행사, 특히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우호적인 서구 단체에 발표자로 자주 초대받던 이 활동가가 말하길, 행사를 주관하거나 기금을 대는 서구 단체들은 팔레스타인 발표자만 있다면 행사가 편향적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 주최하는 행사더라도, 이스라엘 측 주관이 붙거나 이스라엘 발표자가 동등하게 배치되지 않으면 편향성을 이유로 기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

양측의 얘기를 공평하게 들어보자며 판관 노릇을 자처하는 사람들만 이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역시 여느 국가처럼 국가 정책이 시민의 비판적 입장을 대리할 수 없고, 이스라엘 역시 계급 사회인데, 그곳의 노동자나 활동가, 잠재적 해방운동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비슷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양자는 동등하지 않다. 이스라엘 사회 내 여러 모순에 저항하는 주체들은 그러나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선 점령자로 군림하거나, 최소한 적극적 방조자로서 혜택을 누린다. 해방의 가능성을 담지한 이스라엘 주체들은 오직 자신이 점령자로서 누리는 혜택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해방운동에 함께 할 수 있다. 물론 점령자라는 자신의 객관적 위치에 대해 성찰한 이스라엘 활동가들도 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 권력 관계는 개인들의 선의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팔레스타인 활동가와 대화 후 십여 년 전 한국에 왔던 피해자 부모 모임의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떠올랐다. 나는 그때, 당신도 나처럼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따른 체계적 폭력에서 ‘테러’만 떼어내 그 피해를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부정하는 이스라엘 활동가랑 왜 같이 활동하느냐고 물었다. 대답 없이 난감한 표정으로 웃던 그가 답해 주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었다.

벳첼렘의 아파르트헤이트 선언

서두에 언급한 이스라엘 인권단체가 낸 보고서의 제목 중 “요르단 강부터 지중해에 이르기까지”란 요르단 강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을 일컫는다. 이 문구는 “요르단 강부터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라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구호에서 따온 것이다. 이 문구를 쓰기만 해도 시온주의 세력에게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PLO는 인종과 종교에 무관하게 팔레스타인 땅의 모든 이들이 동등하게 살 수 있는 해방된 세속 국가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시온주의 세력은 이것이 유대인을 말살하겠다는 뜻이라고 호도했다. 정작 팔레스타인인을 말살하고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 이상은 2018년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로 규정하는 헌법적 위상의 ‘유대민족국가법’의 제정으로 실현되었다. 이스라엘의 노골적 인종주의에 비판적인 이스라엘 활동가들과 여타 유대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은 무차별적인 반유대주의 낙인찍기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의 입장이나 구호를 준용하곤 한다.

보고서를 낸 이스라엘의 인권단체 벳첼렘B’Tselem은 신뢰도 높은 연구와 활동으로 명망이 높다. 나 역시 많은 데이터와 근거의 1차 출처로 벳첼렘을 자주 인용한다. 벳첼렘은 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직접 경험한 물리적 폭력을 기록할 수 있도록 장비를 제공하고 교육한다. 그리고 이들의 원소스에 기반해 각종 데이터와 보고서를 생산한다. 점령지 현지와의 굳건한 연결점이야말로 신뢰성의 근간이다.

그리고 그 연결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을 전후해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학살했지만 모든 원주민을 인종청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현대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는 팔레스타인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혹은 "아랍계"로 분류된다. 팔레스타인에선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대재앙(아랍어로 ‘나크바’)를 기억하며 이들을 ‘48년 팔레스타인인’이라 부른다. 이에 대비해 1967년 점령당한 서안·가자지구의 주민들은 ‘67년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부른다.

48년 팔레스타인인은 67년 팔레스타인인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스라엘 건국 후 18년간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과 달리 군사정부의 통치를 받았지만, 어쨌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이들이 이스라엘 정부 구성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비록 시온주의 이스라엘군에 복무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시민권자에게 직업선택의 자유가 현저히 제한적이지만, 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대민족국가법”이 있는 나라에서 법·제도적으로 2등 시민 취급받는 48년 팔레스타인인은 또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장기화된 군사점령은 48년-67년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위계를 만들어냈다. 이 위계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일부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 활동하는 이스라엘 인권단체는 체제 비판적이면서도 그 체제를 답습한다. 팔레스타인 연구자 및 활동가 하닌 마이키와 라나 타투르에 따르면 많은 이스라엘 인권단체는 유대인, 특히 유럽 출신 아슈케나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조직 구성도를 보면 인종 간 위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스라엘 유대인과, 48년 팔레스타인인, 67년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단체에서 상층부, 즉 단체 대표, 대변인, 국제 코디네이터, 정책 보고서 집필자 등 공식적인 역할을 맡은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그 중에서도 얼굴이 하얀 아슈케나지다. 아랍어와 히브리어를 할 수 있는 48년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 상층부와 67년 팔레스타인인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부여받는다. 벳첼렘 대표는 2016년 가진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인의 목소리와 주체성을 활동에 어떻게 담보하느냐는 질문에 그 점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며 “서안지구의 자원활동가 200여 명에게 비디오 카메라를 줘서 점령 하의 일상을 기록할 수 있게 해 주고, 원본 영상은 물론 팔레스타인인이 찍은 그대로 공개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마이키와 타투르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 질문 자체가 이스라엘 인권단체의 해악을 보여준다. 인권단체들은 팔레스타인인의 경험에 대한 조정자, 즉 주체성과 목소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중략) 답변은 팔레스타인 원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현실을 기록하는 것뿐임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인권운동 영역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지식 생산자의 역할이나 직접 경험하는 현실을 해석할 권능을 주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란 파워를 빼앗은 자유주의적 임파워먼트의 전형으로, 백인 구원자라는 사고방식에 걸맞는다. 이러한 착취적이고 인종화된 관계에서 중요한 한 가지 양상은 이들 단체의 존속에 필수적인 정보와 증언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주도한다”

벳첼렘보다 훨씬 진보적인 그룹들도 마이키와 타투르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조차 연대 운동의 기본 원칙인 "팔레스타인 민중이 주도한다(Palestinian-led)"를 따르지 않는다. 의도와 무관하게 언론에 훨씬 더 노출되며 해방운동의 대변자로 역할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국제 연대자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현재 팔레스타인 인권 문제에 대해 각 사안 별로 국제사회에서 대표성을 갖는 것은 이스라엘 단체들이다.

한때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었던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는 1974년 유엔에서 가진 유명한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유대교 신자, 기독교 신자, 이슬람 신자 들이 평등하게, 인종·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같은 권리를 누리고 같은 의무를 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투쟁하고 있다.” 요르단 강부터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이스라엘 연대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 워커스 78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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