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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오키나와 노트, M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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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모타 이누히코 - 문체(文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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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오키나와 노트, MW

  • 등록일
    2014/10/04 20:11
  • 수정일
    2015/10/07 21:24
  • 분류

오키나와 가고 싶다<

 

혼 불어넣기
혼 불어넣기
메도루마 슌
도서출판 아시아, 2008

 

오키나와 출신 작가의 글을 읽는 건 기억하기로는 처음이다. 오키나와를 무대로 한 단편소설집이다. 

 

작품을 배치된 순서대로 읽어보면 왠지 이제 사라진 옛날의 오키나와가 그립다가 오키나와란 공간이 본토로부터 차별받고 있다고 해서 피해자로만 정체화할 수 있게 동질적이고 단일한, 그러므로 내부에서 평등한 집단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쉽게 여기든 저기든 다 똑같애, 뭐 그런 건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일본 만화를 통해 오키나와를 이국적인(이미 일본이 나에겐 이국인데-_-) 정취로,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미지하고 있는 자로서... 뭐 그렇다고 반드시 꼭 그랬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게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오키나와 투쟁에 대한 다큐도 옛날에 보고 그래서 꼭 그런 이미지만은 아니었다. 그냥 오키나와에 대해 모른다. 고 써 깔끔하게 -ㅅ-. 왜냐하면 나는 오키나와를 일본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오키나와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다 정말 모른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니, 나는 일본 만화와 특정 소설들을 엄청 좋아하면서도 한국, 심지어 내가 한국인의 정서랑 크게 맞닿아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한국과 일본의 정서가 엄청 다르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키나와는 정서가 비슷하구나.. 적어도 나의 정서와 비슷하구나 신기하다. 왜 일본은 신들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이 책에도 생활에 녹아있는 미신적인;;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데 그게 일본 신들같지 않고 내가 한국에서 미신 믿는 거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특히 표제작인 <혼 불어넣기>. 일본 만화를 통해 이미징해왔던 오키나와 섬의 무당들과 느낌이 달랐다. 더 몸을 옹송그리고 더욱 더 작게 더 작게... 내가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아무래도 역사적인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도 한국에서 자란 나의 추체험은 일본 '본토'보다 오키나와에 가까운 것이다. 그걸 이 소설을 읽으며 처음으로 느꼈다. 좋아하는 것이 내 정서랑 비슷하다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리고 오키나와에 가려면 오키나와 말을 배워야 하나 진지한 고민이 드는데.. 오키나와에 가서 한국인이 일본말로 떠드는 게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는 것이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도 그렇고 <혼 불어넣기>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눈물이 조용히 나왔다. 그리고 <혼 불어넣기>랑 <투계>의 격렬한 싸움 묘사도 음.. 뭔가 하나가 하나이기만 한 게 아니고 겹겹이 쌓이고 깊고 깊게 오랜 시간을 두고 ... 뭐라는 거임 ㅠㅠ 글이 전부 좋았다.

 

굳이 민중문학이라는 게 아니어도, 아니 오히려 어떤 패턴화된 글을 싫어하면서도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글은 또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안성맞춤..< 이었음. 아 나의 천박한 말로 더이상 책을 욕보이지마 그만 써 -_-

 

책 제목을 검색하니까 책이 안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찾아보니 2쇄(인지 재판인지) 찍으면서 표제작이 바뀐 듯 하다. 사실 일본에서 나올 때 원제가 <혼 불어넣기>였는데 왠지 한국에선 두번째 단편인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을 표제로 삼았다가 다시 원제를 제목으로 삼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바뀌면서 제목 디자인은 거의 안 한 듯한 느낌의;; 책 표지로 바뀌었다. 내가 가진 책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책을 선물해 준 무연에게 고맙심다. 찾아보니 메도루마 슌님의 다른 책도 두 권 더 나와있네 다 봐야긔.

 

오키나와 노트
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
삼천리, 2012

 

어차피 일본 문학을 많이 읽은 편도 아니긴 하지만 뜻밖에도 이 책이 내가 처음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글이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을 다 읽고나서 오키나와에 대한 게 더 읽고 싶어서 저번에 사뒀던 이 책을 펼쳤는데 아뿔싸.. 나는 르포르타쥬같은 건 줄 알고 샀는데 전혀 아니었다. 작가가 오키나와에 자주 왔다갔다 하며 글쓰는 시점의 문제들을 다루지만 70년대 초까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읽어야 재밌을, 작가의 생각을 적은 글이었다. 아주 기초적 배경만 갖고 있는 내가 읽기에 힘들었고, 문장 자체가 잘 안 읽혀서 읽은 문장을 거듭 읽어야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다시 읽어보면 어려운 문장도 아닌데. 전체적인 상이 안 잡혀서 그런 것 같은데.

 

오키나와에 대한 다른 책들을 본 뒤에 다시 읽을 셈이다. 기본적으로 작가의 입장이 완전 수긍이 간다. 오키나와에 '연대'하는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작가가 얘기하듯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 쉽게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죄책감 따위는 오히려 독이다. 작가는 안주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오키나와로부터 거절당하고, 그 거절을 지지하며 곱씹고 괴로워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는 이런 것이다. 괴로워해 마땅할 상황인데 어떻게 괴로워하지 않고 나도 피해자입네 하면서 자기 치유나 하고 앉았나? 하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건강하지 못하다거나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한다거나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왜 괴로워하냐는 이딴 소리나 하고 앉았다. 실제로 이런 얘기를 꺼냈다가 이런 반응들을 받았었다. 이런 건 피학적인 것도 아니고 자존감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이런 얘길 할 자격은 없는 것 같으니 이쯤 하자 자격 있는 자가 이런 소릴 하는 걸 보니 참으로 반가운가봉가

 

여러모로 오에 겐자부로가 보여주는 '본토'의 반응은 끔찍한데 특히 오키나와에 연대하는 이들마저 '본토의 오키나와화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걸었다는 게, 정말 쓰레기같다. 전반적으로 그냥 읽다가 이 부분은 너무 화딱지가 났다. 이 말은 오키나와가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리고 오키나와는 그래도 되고 본토는 안 된다는 생각을 거짓없이 드러낸다. 진짜 추하다.

 

지지난 주에 베트남 반전 운동을 하며, 일본으로 와 탈영하는 미군들을 돕는 활동을 했던 JATEC의 활동가의 발표에 참가했따. 일하느라 대왕 늦어서 상황 파악 못 하고, 탈영 병사들 면접을 위해 베트남에 왔다갔다 사람을 파견했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는데 공중에 하이킥을 날리고 싶다 -_- 암튼 가기 전에 나는 그런 건 줄 알고, 우와 이런 운동이 있었는데 나만 몰랐어? 우와 이랬는데;; 아니었긔. 암튼 대부분의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있는 상황에서 오키나와랑은 어떤 연대가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이미 멍청한 질문을 해버려서-_- 질문을 못 했다. 그리고 다소 공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안 했다. 질문을 할 걸 그랬다. 이 책 읽으면서 그게 계속 궁금했다 반전 세력은 오키나와 문제에 어떤 입장으로 어떻게 운동했는지. 그리고 미국에 점령당했다 본토에 반환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당시에 도대체 오키나와에서는 그 운동을 어떻게 평가했을지도 상당히 궁금하다. 내가 공부를 많이 해서 직접 알아내자<

 

뮤 MW 1 뮤 MW 2 - 완결
뮤 MW 1
테츠카 오사무
에이케이(AK), 2009
뮤 MW 2 - 완결
테츠카 오사무
에이케이(AK), 2009

 

일본만화에서 오키나와를 주로 접했기 때문에 집구석에 만화를 뒤져보다가 불현듯 MW가 떠올라서 만사 제끼고 이것부터 다 읽었따;; 먼저 이 훌륭한 만화가 절판된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 너무 느므 아쉬워

 

테즈카 오사무 사마는 1969년 7월 8일에 있었던 미군의 카데나 탄약고의 독가스 유출 사건을 가져와 오키나와 어딘가의 가상의 섬(같다 검색해도 안 나옴) 오키노마후네(沖之船)섬의 주민 800명이 집단사한 것을 극화로 만들었다. 이때의 독가스가, 니네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본토로 이전해 왔다교!! 그래서 당시 오키노마후네 섬의 유이한 생존자 중 하나인 유키는 독가스 후유증으로 뇌의 어떤 부분이 망가져서 인간성을 잃고 순수하게 악마가 됐고, 살인, 섹스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독가스를 손에 넣고 인류를 절멸시키려 한다

 

이 바탕이 되는 사건에 대해 좀 알아보다가 일본어 읽기 싫어서 관뒀다. 작품에선 미국을 '어느 나라'라고만 하는 것도 재밌었다. 처음 읽었을 땐 몰랐는데, 작품에서 독가스를 본토로 이전시키는 게 굉장히 통쾌했다. 아무튼.. 이 만화 진짜 재밌는데 ㅠㅠ 다음에 실제 사건, 특히 고자(오키나와시의 이전 이름) 폭동에 대해서 좀 찾아보긔.

 

오키나와 가야지 내년에. 가서 어딜 가고 누굴 만날지 벌써부터 대왕 기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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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타 이누히코 - 문체(文體)에 대하여

며칠 전에 바쁜 와중에 참지 못 하고 요모타 이누히코님의 <만화원론>을 다 읽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떠나기 며칠 전에, 이 책의 중고 등록 알림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물담배를 뻑뻑 피며 기쁨에 차 핸드폰으로 결제해대던 때가 생각난다. 한국에 와서 책을 받고 뛸 듯 기뻤지만 몇 장 읽고 또 읽지 못하기를 한참... 그러다 다시 읽었는데 역시 너무 좋아서. 너무 좋다 ㅇ<-<

 

이렇게 좋은데 일단 지금은 미래 첨단 사회니까 필사하지 말고 필타를 하여보자. 이 좋은 책 중 내가 테즈카 오사무 신을 좋아하게 된 만화를 예로 문체에 대해 글 쓰신 부분을 필타하겠다. 당시 다만 스토리의 구성 측면에서만 작품을 감상하고 테즈카 신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문체의 문제로 보니, 백 배로 흥미로와서이다.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자 홀빼 이셔도 다 생략하구 궈궈

 


<만화원론>, 1994 중 22. 문체(文體)에 대하여(1)

 

문체는 누가 보아도 분명히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만화평론이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침묵을 지켜온 요소였다. 유감스럽게도 작품의 이야기를 설명하거나 작가의 사상을 해설하는 데만 힘을 쏟아 극히 소수의 인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만화가가 고심 끝에 그은 한 개의 곡선의 묘미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재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한 사람의 만화가가 작품을 집필하는 데 채용하는 어떤 일정한 선의 상태, 텍스트의 촉감, 특징적인 과장법, 생략, 암시, 은유, 도치, 반복과 같은 문채(文彩 figual)의 개성적인 선택의 문제 등은 요컨대 그의 만화를 읽어 나갈 때 아로마(aroma 방향, 향기, 향내)처럼 피어오르는 어떤 독특한 분위기의 형태를 띈다. 이런 것 일체를 현재의 언어학을 모방하여 '문체(文體)'라고 이름 붙이고 싶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논의하기에는 만화평론의 언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본고에서는 시험적으로 데즈카 오사무가 1959년에 발표한 『낙반 落盤』을 소재로 만화의 문체가 작가의 개인적 선택과 장르의 일반적 규범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극화의 발흥기에 과감하게 대본잡지 『X』에 게재된 이 작품은 복수의 서로 다른 문체를 채용하여 문체와 그것이 체현하는 세계관의 대결·경쟁을 흥미로운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14페이지도 채 안 되는 이 단편을 먼저 도마 위에 올리기로 하자.

 

『낙반』은 어느 광산의 인기 없는 갱도로 두 사람의 인물이 들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은 광신장인 마에바시, 또 한 사람은 오무라라고 자칭하는 소년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캐릭터 시스템에 따르면 배역은 아세틸렌 램프와 『검은 협곡』의 챠니 착이다(데즈카는 기존의 만화주인공들을 마치 영화배우를 기용하듯이 다른 만화에 등장시키곤 했는데 여기에서는 아세틸렌 램프와 『검은 협곡』의 챠니 착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마에바시는 오무라를 향해 이십 년 전 그가 아직 젊은 갱부였던 시절의 추억담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두 사람의 동료와 갱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중 낙반 사고를 만났는데 자기는 운 좋게 살아났지만 다른 두 사람은 큰 부상을 당했다. 보다 부상이 심한 사람을 먼저 구출하고, 다시 현장에 되돌아와 보니 또 다른 한 사람(배역은 리키아리 다케시)은 이미 죽은 뒤였다(a). 그는 그 후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현재의 광산장의 지위에 올랐다고 감개무량하게 이야기한다.

 

그 말에 오무라는 마에바시가 십 년 전에 라디오에서 떠든 담화를 재생한다. 거기에서는 그가 갱목에 깔린 친구를 호자 힘으로는 구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남겨두고 떠났는데 사람을 데리고 되돌아와 보니 그가 이미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b)가 흘러나온다. 나아가 오무라는 사건 직후에 마에바시를 취재한 한 신문의 담화를 인용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마에바시는 부상한 나카무라를 등에 업고 열심히 이시이를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둘이서 탈출했다(c)고 적혀 있다.

 

증언의 모순을 지적 당해 깜짝 놀라는 마에바시를 향해 오무라는 고생 끝에 찾아낸 20년 전의 마에바시의 일기를 읽는다. 마에바시는 이시이에게 빌린 돈이 있어서 내심 그가 죽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에바시는 낙반 현장에서 갱목 아래 매몰되어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이시이를 외면하고 나카무라만을 구조해서 돌아갔던 것이다(d).

 

마지막으로 오무라는 빈사상태의 이시이가 소지하고 있던 휴지에 휘갈겨 쓴 유언을 읽는다. 거기에는 마에바시가 그를 살해할 의도로 갱도의 지주 한 개를 몰래 빼내 낙반사고를 유발했다고 하는 놀라운 진실(e)이 적혀 있다.

 

낭패를 당해 허둥대는 마에바시를 향해 오무라는 자기가 이시이의 유복자라고 소리친다. 그는 마에바시 몰래 마비약을 먹여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한 뒤 갱도에 폭약을 장치하여 아버지의 원수에게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려고 미리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략은 멋지게 성공했고 소년은 싸늘한 표정으로 갱도 밖으로 향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연민의 정에 눈을 뜬 오무라는 마에바시를 구출하러 달려간다.

 

『낙반』에서는 동일한 사건이 세부의 음영을 바꿔 다섯 번에 걸쳐 이야기되고 그 때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문체가 채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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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에서는 단순한 선을 중심으로 극히 과장된 만화적 기호가 다용(多用)되고 있다. 갱도 벽의 균열을 눈앞에 둔 마에바시의 경악은 그의 몸이 헬멧·머리·몸체·하반신으로 사등분됨으로써 강조되고 있다. 세 명의 갱부가 허둥대며 도망가는 장면에서는 인물의 동작은 단순하지만 과장되어 있고 어떤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급한 발을 나타내는 회전하는 발이나 모래먼지의 기호가 첨가되어 있다. 부상은 수많은 반창고로 표현되고 있다. 구도는 평면적이고, 원근법을 결한 마치 영화나 연극의 무대장치 같은 갱벽과 낙하하는 둥근 암석은 중량을 갖지 못한 채 강하게 양식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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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에서는 (a)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 경직되고 또한 질량감이 느껴지는 선이 채용되고 있다. 낙하하는 암석은 불규칙한 각을 갖기에 이르렀다. 전형적인 만화의 과장적 표현이나 기호는 자취를 감추고, 등장인물들은 보다 현실에 가까운 대사를 입에 담고 있다. 표정이나 몸짓에서도 좀더 세밀한 붓놀림을 느낄 수 있고, 부상의 정도는 반창고의 다용이 아니라 몸에 그려 넣은 사선의 존재에 의해 표상된다. 마에바시는 그 누구보다도 만화적으로 사방에 땀을 흩뿌리고 그의 손가락은 전후 만화의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네 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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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에서는 한층 세밀한 묘사가 제시된다. 낙하하는 암석은 확실하게 질량감을 갖고, 컷 아래쪽에 모래먼지 자국이 첨가됨으로써 위기적인 긴박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구도는 보다 대담하게 선택되고 등장인물들은 팔 근육의 상태나 상처까지도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a)에서는 3등신 정도였던 주인공이 여기에서는 6등신에 가깝게 변신하고 있다. 그의 갱부 동료에게 처음으로 성이 부여되어 이야기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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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d)로 진행되면 더욱 새로운 차원이 전개된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향해 사건의 표면적인 추이만을 이야기하고 있던 주인공의 감춰진 내면이 처음으로 드러난다. 이 때 클로즈업이 채용되고 있지만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램프의 얼굴은 (a)에서 (c)까지의 어느 것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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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최후로 (e)에서는 화면 전체에 어두운 음영이 강조되고, 등장인물들은 생각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현실성을 띠고 묘사되게 된다. 데즈카는 여기에서 당시 융성하기 시작했던 극화의 수법을 인용했던 것이다. 그가 장기로 삼아 왔던 캐릭터 시스템은 거의 포기되고, 마에바시와 이시이는 아세틸렌 램프나 리키아리 다케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하고 음울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e)의 전반에서 화면은 이시이의 시점을 빌려 마에바시의 범행을 둘러싸고 주도면밀한 클로즈업 컷이 겹쳐진다. (d)에서는 아직 네 개에 불과했던 등장인물의 손가락이 (e)에서는 완전히 다섯 개, 그것도 손톱이나 관절까지 정성껏 묘사되어 있는 점에서도 전체적인 리얼리스틱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다. 만화의 독자적인 기호가 가능한 한 배제되고 있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낙반』에서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다섯 가지 문체가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것은 극히 단순하고 양식화되어 있어 만화가 극도로 생략된 선과 다양한 기호로 구성된 슬랩스틱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회통념과 훌륭하게 대응하고 있다. 최후의 것에서는 그림의 상태도 이야기의 내용도 무서울 정도로 달라져 복잡한 인간심리의 굴절이 충분히 명암법을 강조한 컷의 몽타주를 통해 묘사되게 된다. (a)에서 (c)에 이르는 문체의 정밀화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기와 낙반사고 사이의 시간에 반비례하고 있다. (a)는 20년 후, (b)는 10년 후, (c)는 사건 직후, (e)는 사건 한가운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데즈카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세부의 기억이 애매해지고 이야기에 왜곡된 단순화가 이루어지게 된다고 하는 인간심리의 일반적 과정을 교묘하게 원용해서 서로 다른 문체를 동시에 사용하는 동기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를 노린 연출만이 『낙반』의 작가 의도였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데즈카 오사무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적인 구조를 가진 이 단편에서 진정으로 시도해 보고 싶었던 것은 네 칸 만화로부터 극화에 이르기까지 당시 존재하고 있던 모든 만화의 수법을 한데 모아 병렬적으로 대치함으로써 만화라고 하는 표상 장르가 본래 소유하고 있는 자유자재한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데 있었다.

 

(a)에서 (e)까지의 문체는 각각에 대응하는 세계관을 체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a)에서는 인간은 내면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 행동은 자극반응설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과감히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도타바타(:크게 허풍을 떠는 소란스런 취향의 희극)을 기조로 한 데즈카 이전의 만화와 그 배후에 있는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b)와 (c)는 데즈카가 현실에서 채용하고 있는 문체와 가장 가깝고 그가 당시 소년잡지에 발표하고 있던 ㅏㅈㄱ품의 이데올로기, 즉 휴머니즘과 우정예찬을 체현하고 있다. (d)에 이르러 처음으로 인간의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이라는 주제가 얼굴을 내밀고, 그것은 (e)에서 최대한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낙반』이 발표된 1950년대 후반에 있어서도 소년잡지를 지향하는 만화가의 사정거리 밖에 있어서도 사토 마사아키나 가게마루 죠야와 같은 극화가만이 유일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에 가깝다.

 

데즈카는 종래 그가 즐겨 쓰던 만화의 문체로는 이러한 악의 문제를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론적 자각이 『낙반』에 있어서 극화적 문체의 채용을 초래한 것이고, 그것이 이후의 데즈카에게 커다란 표현의 영역의 확대를 선물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와 동시에 데즈카는 마지막에 반전을 두고 자기의 휴머니즘을 이용해서 성악설을 부정함으로써 신흥의 극화가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에 미리 자기 나름대로의 봉인을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낙반』의 바탕의 문체는 (c)에 가장 가깝다.

 

문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결국 장르의 문법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어떤 문체의 선택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의 선택과 동의어이고, 만화가는 이후 그 문체에 구속받게 된다. 문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한 만큼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1993.6에 써진 것 같음.

 


조으다 과연 조으다... 집에서 쓰느라고 스캐너가 없어서 이미지가 그지같아서 아쉽지만 아쉬운대로...< 이후로 문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척이 되었을까? 아 필타해 보니까 굉장히 좋구나 너무 좋다. 만화원론 일어본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냥 읽고 싶은 데부터 읽어야겠다 진도가 안 나가...; 여기부터 읽어야지. 그렇지 않아도 초반에 (b)라고 짚어주는 게 번역본에 빠져 있어서 원문을 찾아봤는데 원문도 재밌구나...< 일본어는 필사해볼까 생각 중이다. 요즘 영어 공부 하면서 필사를 왕왕 하는데 필사하니까 더 이해가 잘 돼. 읽기->번역->필사 순으로 이해가 잘 되는 것 같다. 물론 번역과 필사는 꼭 그렇다기보단... 여튼 그런 얘긴 나중에 하고;; 요모타님의 만화에 대한 책을 매우 읽어댈테다 으릉

 

아 필타는 일주일도 전에 하다가 오늘에야 이어서 완성했다. 맨첨에 며칠 전에 다 읽었다는 건 그니까 2주도 더 된 얘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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