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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구점령을 보장하는 "아브라함 협정"

* 워커스 기고글. 링크 있는 버전..

“샬롬 알라이꿈”

2020년 8월 13일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의 국교 정상화가 발표된 후, 두바이 사람들이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고 한 기자가 전했다. 아랍어로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뜻을 가진 인삿말 ‘쌀람 알라이꿈’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쌀람’을 같은 뜻의 히브리어 ‘샬롬’으로 대체한 것이다. 장난스러운 인삿말이라곤 하지만 ‘정상화’에 대한 낙관이 느껴진다.

UAE와 이스라엘이 평화 협정을 맺었다.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1979년 이집트, 1994년 요르단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아랍 세계로부터 이전과 같은 반발은 없었다. 뒤이어 바레인도 가세했다. 9월 15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하에 4개국은 “아브라함 협정”을 공식 체결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4개국 대표가 서명한 총론격 문서 한 장과, 이스라엘-UAE 간 7장의 합의문(부속문서 3장 포함), 이스라엘-바레인 간 합의문 1장으로 이뤄져 있다.

트럼프를 비롯해 모두가 이것이 “역사적 평화협정”이라 말한다.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 민중의 반식민주의 투쟁사에 변곡점이 될 사건임은 분명하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인 것이다. 물론 예상된 일이었다. ‘반-이란 전선’ 구축을 명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을 비롯한 아랍국가들이 지난 수 년간 노골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조금씩 정상화해 왔기 때문이다. 아랍국가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전 어느 수위면 자국민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 조금씩 간을 봤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인도 뉴델리를 오가는 이스라엘의 민항기에 사우디 상공 경유를 허가하거나 바레인이 이스라엘로부터 코로나19 대응 지원을 받는 등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우디나 UAE 왕정이 자국의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이스라엘 기업의 해킹 기술을 쓴다는 것도 폭로됐다. 어느 정도 반발은 있었지만, 권력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때문에 지금일 줄 몰랐을 뿐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한다며 표면적이나마 팔레스타인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공식화한 것은 ‘팔레스타인이 독립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보이콧한다’는 이전의 오랜 입장을 명백히 뒤집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식민화를 영구적인 기정사실로 만든 것이다. 22개 아랍 국가로 이뤄진 ‘아랍 연맹’은 애초 영국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출범했지만 어쨌든 팔레스타인이라는 명분을 자신들의 주요 대의로 삼았다. UAE는 이번 평화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영토 병합을 막겠다며 여전히 그 대의에 봉사하는 척 팔레스타인을 관계 정상화의 구실로 삼았다. 하지만 협정문에는 영토 병합 철회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더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랍 연맹은 회원국의 일탈행위를 제재하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서안지구 영토병합 계획 철회?

올해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영토의 최대 30%를 이스라엘로 강제 병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논평자들은 염려했다. 이스라엘이 막나가는 만큼 국제사회의 요구도 더 후퇴할 거라고. 우려는 사실이 됐다. 이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두 개의 국가 건립을 지지했던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이스라엘에 군사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하라 70여년간 요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7월 1일부터 서안지구 영토를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후엔 제발 팔레스타인 영토만은 병합하지 말라로 요구안이 후퇴했다. UAE가 이스라엘에 군사점령 종식이 아닌 영토병합 철회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월 13일 양국 국교 정상화 발표일에 이스라엘이 영토병합을 ‘중단’한단 내용이 있었지만, 발표 불과 몇 시간 후, 네타냐후 총리는 이 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세기의 딜”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며 서안지구 영토병합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4반세기만에, 이집트·요르단 때와 달리 이스라엘의 양보와 후퇴에 기반하지 않은 평화를 만들어냈다.”

국제법을 정면 위반하는 이스라엘의 영토병합 계획이 이스라엘의 입지를 오히려 공고화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 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찬하듯 영토병합을 철회할 필요 없이,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할 필요도 없이, 이스라엘은 자국에 가장 유리한 ‘평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4개 국가의 셈법

이에 더해 뇌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부족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개인에게 이번 협상은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다.

코로나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다른 위정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협상은 모두에게 주요 치적으로 남아 정치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정치 환경에서 이스라엘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 트럼프는 11월에 있을 미 대선의 격전지로 꼽히는 위스콘신 유세장에서, 8월 17일, 그러니까 이스라엘-UAE 국교 정상화 발표 나흘 뒤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건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거였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유대인들보다도 더 기뻐했다니 굉장한 일이죠. 맞아요, 엄청난 일입니다.” 

2018년 5월, 예루살렘으로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이전한 이유가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거였음을 직접 자신의 입으로 밝힌 것이다. 이번 협상 역시 재선을 위한 포석 중 하나다.

UAE는 어떤가? UAE는 무려 8년간 F-35 스텔스 전투기 구입 의사를 타진해 왔다. 한국도 8조원을 들여 올해 F-35 40대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미국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의 동맹국들에는 F-35를 판매하지 않았다. 인접 국가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제공권에 압도적 우위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미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합의된 사안이지만 이번 협상을 계기로 UAE는 더 적극적으로 구입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 의원들은 이번 협상안에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파는 데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UAE에게는 F-35를 비롯해 MQ-9 리퍼 드론, 보잉 EA-18G 그라울러 등 미국의 첨단 무기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바레인 왕정은 2011년 아랍혁명 초기에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위기에 처하자 사우디와 UAE에 군대 파견을 요청해 비무장 시위대를 사살하며 위기를 벗어났었다. 바레인은 사우디 없이는 스스로 국가를 통제할 능력이 없는 국가다. 사우디에 충성스런 바레인 왕정은 사우디 승인 하에 협정을 맺었을 것이고, 이후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를 맺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다. 물론 사우디가 아랍 전역에서 갖는 위상 때문에 당장은 이스라엘과 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바레인은 미 해군 제5함대의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과 맺은 협정은 교전 관계의 종식이 중요의제였고, 교역과 상호 투자, 관광 등은 제한적이었다. 딱히 이스라엘과 교전 관계에 있었던 것도 아닌 걸프 왕정들은 일정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나아가 내부의 정치적 불만을 다스리는 데 협정을 활용할 것이다. ‘반-이란 전선’ 구축이 명분인 만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공식적으로 첩보를 공유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군사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아브라함의 재소환

“아브라함 협정”이 이름을 따온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아랍인 공동의 선조로 여겨진다. 그래서 유일신을 섬기는 세 개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 뿌리로 불린다. 아랍어로는 이브라힘이라 불린다.

이번 협정은 기독교(미국)-유대교(이스라엘)-이슬람교(UAE와 바레인) 신자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아이들”이라며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가 소위 평화협정을 맺을 때마다 아브라함을 소환하더니 이번엔 아예 협정 명칭으로까지 갖다 쓴 것이다. 이집트 때는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오슬로 협정 때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요르단 때 요르단 왕이 아브라함을 들먹이며 화합을 강조했다. 엉뚱하게 협정에 종교적 외피를 둘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이 시온주의 제국주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종교적 충돌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세 종교간 공존 어쩌고 하는 내용은 아예 이스라엘-UAE 협정문에 내용으로 들어갔다.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조셉 마사드는 아브라함을 소환하는 이들의 목적을 이렇게 지적한다.

“아브라함을 들먹이는 목적은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그 땅을 유대인의 정착형 식민지(settler-colony)로 만들고자 했던 유럽의 유대 식민주의 운동 즉 시온주의가, 유럽의 식민지 탐사가 아니라 유대인의 종교적 탐사인 척 가장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여기서 우리는, 유럽의 유대인이 유럽인이 아니라 고대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이스라엘인의 직계 후손이며, 때문에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식민화하는 것은 “수복”에 다름아니고, 또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야말로 사실상 진짜 식민주의자였다는, 프로테스탄트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사상을 차용한 시온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에 새로울 게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최소 지난 20년 간 종교간 ‘대화’, ‘관용’을 후원해 온 아랍국가들이 시온주의의 식민주의 역사를 “종교 분쟁”으로 다시 쓰는 전략의 필수 구성요소였다고 지적한다.

아브라함의 땅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테러다. 아브라함의 유해를 모신 사원에서 극우 테러리스트가 학살을 벌였던 1994년의 직접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브라힘 사원이 위치한 알칼릴(헤브론)은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일상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강경 극우파들의 집결지다. 이 강경 극우파들이 이스라엘 정치를 좌우한지 이미 오래다.

다음은 누구인가

이 글이 나갈 쯤엔 얼마나 많은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 선언에 합류했을까? 트럼프는 5~6개의 아랍국가가 UAE와 바레인의 전철을 따를 것이라 했고, 오만, 수단, 모로코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오만은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고, 수단은 노골적으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왔고, 모로코는 이스라엘과 첩보를 공유한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이들 뿐 아니라 많은 친미 성향 아랍국가가 반-이란 전선에 합류한다며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다. 제라드 쿠슈너의 바램대로 사우디가 이 대열에 합류할 때 이스라엘의 완전한 정상국가화, 팔레스타인 영구점령의 기정사실화가 마무리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끝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가 발표된 뒤 바레인 민중은 “팔레스타인은 나의 문제”라며 당국의 결정이 바레인 민중의 의사에 반한다고 외치고 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과 연대해 온 수단 시민사회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랍의 위정자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내 민심 달래는 데에 이용해 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경제 개혁, 때로는 혁명적 전복을 요구하는 민중을 처참하게 탄압했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오래 전부터 점령만 아니라 부패한 팔레스타인 위정자들에 저항할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다른 아랍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지금 이 순간 다음 페이지를 새로 써내려가는 것은 바로 아랍 민중 자신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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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나크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영토 병합

*나크바: 대재앙이란 뜻의 아랍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팔레스타인 선주민 인종청소를 일컬음.

이스라엘이 최소 12%에서 최대 30%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땅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겠다고 한다. 병합의 범위와 방식은 미국과 논의 중이며 이에 따른 병합 안을 7월 1일에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전쟁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를 통해 국가를 건설한 1948년 이후, 규모면에서 최대의 영토병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군사점령한 뒤 1980년에 동예루살렘을, 1981년에는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병합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나머지 땅은 계속 군사점령한 채, 강제 추방 및 토지 몰수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땅을 조금씩-국제적 공분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병합해 왔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영토병합은 새로울 것 없는,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고 ‘유대 민족’만의 단일 국가를 세우겠다는 오랜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이 먼저 나서 영토 병합을 제안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 트럼프 정권은 2018과 2019년에 연이어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이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승인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말에는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의 대부분을 이스라엘 영토로 할당하며 ‘중동평화안’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영토 병합을 하기도 전에,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것이 “역사적 기회”라며 바로 병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자 독일과 같은 이스라엘의 오랜 지지국들마저 당황해했다. 국제사회의 강대국들이 정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라는 ‘2국가 안’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영원한 군사점령의 약속, 트럼프의 “세기의 딜”

트럼프 대통령은 교착상태에 있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면서, 임기 중에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는 중동이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아무 식견도, 경험도 없지만 이스라엘 위정자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자신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중동 평화’의 청사진을 내놓을 담당자로 앉혔다(쿠슈너는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자신이 중동 문제를 다룬 “25권의 책을 읽었다”며 전문성을 과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사진을 발표하겠다면서도 이를 여러 차례 미뤄왔다. 부패 스캔들로 핀치에 몰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선을 돕기 위해 노골적으로 이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네타냐후 총리를 전폭 지지한다면, 이것이 그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었다. 네타냐후는 당시 뇌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국 지난해 6월 말 바레인에서 청사진의 경제 분야가 공개됐고, 올 1월 말에는 정치 분야가 발표됐다. 연이은 연립 정부 구성의 실패로 작년 이후 세 번째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것이었다. 청사진의 공식 명칭은 ‘번영을 향한 평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의 삶을 향상시킬 비전’이다.

트럼프 스스로 “세기의 딜”이라 자찬하는 이 ‘번영’의 내용이란, 팔레스타인에 돈을 풀어서 경제적 곤궁을 달래줄 테니 대량의 땅과 주권을 이스라엘에 넘기라는 것이다.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물론, 요르단과 맞닿은 요르단 계곡조차 이스라엘의 영토가 된다. 이는 줄곧 이스라엘이 ‘안보’를 구실로 주장해 왔던 것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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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딜"이 제시하는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지하 터널을 통해 연결하고, 엉뚱하게 네게브 사막에 산업지대를 설치하라고 한다.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는 불법 정착촌으로 구멍이 숭숭 뚫리고, 유대인 전용 도로로 갈라지고 조각나 있다. 국제사회가 약속했던 수도는 ‘동예루살렘’이었지만, 트럼프는 동예루살렘 외곽의 작은 마을 ‘아부 디스’를 수도로 배정했다. ‘국가’라고 말은 하지만, 무장할 권리를 박탈하고 제공권, 국경 통제권을 모두 이스라엘에 부여했다. 대신 팔레스타인에는 향후 10년간 차관 등을 포함해 5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에 대한 지원까지 포함한 것으로,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할당된 액수는 278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 돈은 미국이 향후 10년간 이스라엘에 군사원조 명목으로 지원할 380억 달러의 73%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올해 5월 22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미국 역사상 최대 군사원조가 될 해당 지원 법안을 조용히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통과됐고, 앞서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임기 마지막에 사인했던 내용이라 상원에서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민주당 대선 주자 조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을 규탄하면서도, 영토 병합 중단을 군사원조의 조건으로 걸자는 제안은 명백히 거절한 바 있다.

역대 미국 정부와 보수적인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 국가를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2국가 안’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은 이 최소한의 합의조차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난민이 돌아올 수도 없고 군대를 가질 수도 없는 ‘국가’에서, 영구적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통제 속에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청사진에서 4년의 유예기간을 제시했다. 4년간 이스라엘은 불법 정착촌을 추가 건설하지 않고, 미국은 이 청사진으로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하고 설득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는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네타냐후는 트럼프 임기 중에 미국이 할당해 준 땅의 일부라도 병합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그래서 주요 불법 정착촌만 우선 합병하고 단계적으로 추가 합병하는 등 다양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의 제2여당 청백동맹당은 미국의 원안대로,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과 ‘협상’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며 당장의 병합에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경화하는 이스라엘 사회: 극우들의 민주주의

잠깐 올해 이스라엘 총선 결과를 살펴보자. 트럼프의 강력한 지원사격에도 네타냐후는 또다시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앞서 연정 구성의 기회가 있었던 ‘청백동맹당’의 ‘베니 간츠’ 역시 연정 구성에 실패한 상태였다. 대립하던 두 당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구실로 ‘비상 내각’을 함께 구성하는 극적인 합의를 타결했다. ‘교대 총리’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도입했다. 18개월간 네타냐후가 총리를 하는 기간엔 간츠가 교대 총리직을, 남은 18개월간 간츠가 총리를 하는 동안엔 네타냐후가 교대 총리직을 역임하기로 한 것이다. 군 참모총장 출신 간츠를 필두로 이스라엘 정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신생 청백동맹당은 네타냐후의 리쿠드 당과 얼마나 다를까? 우선 청백동맹당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요르단 계곡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일부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점령지 철수란, 영토병합을 마무리한 후의 철수일 뿐이다. 그들은 올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요르단 계곡의 불법 병합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자, 이는 자신의 주장인데 네타냐후가 훔쳤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안지구 불법 영토 병합을 둘러싼 이스라엘 내 프레임은 ‘일방적’으로 영토 병합을 할 것인가 vs 팔레스타인과의 ‘협상’ 속에 영토 병합을 할 것인가로 짜여 있다. 어느 쪽이든 영토 병합 자체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영토 병합의 정의 자체가 ‘일방성’과 ‘강제성’을 포함한 것이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공론장에서 영토 병합에 반대하는 이른바 좌파들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현재의 영토 병합 반대자들의 목소리란, 헤브론을 이스라엘로 할당하지 않았고 나아가 서안지구 나머지 70%의 땅도 모두 이스라엘 영토라는 주장들이다. 즉 미래에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불법 정착민과 극우의 주장일 뿐이지만, 이것이 마치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입장이라도 되는 양 토론되고 있다. 그들만의 ‘민주주의’는 더없이 노골화됐다. 서구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그간의 전략, 즉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민주 국가고, 자유와 인권 등 서구의 모든 가치를 공유하며, 자국의 안보를 위해 방어적 조치를 취할 뿐이라는 기존의 ‘이성적인 우파’의 프로파간다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랫동안 우경화해 왔고, 결국 우익과 극우의 각축장이 됐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시온주의 식민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을 찍어 재갈을 물린다. 한편에선 군사점령을 문제 삼지만 않는다면 반유대주의자들과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헝가리나 폴란드 등 유럽의 극단적 반유대주의 극우 정치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강제 징병 대상으로 취급하던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 네타냐후는 심지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생각까진 없었고, 팔레스타인 무프티의 제안에 따랐을 뿐이라는 망발을 한 전력도 있다. 미국에서, 특히 젊은 유대인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주류로 부상해 왔는데, 이스라엘의 선택적 반유대주의는 이를 설명해주는 이유 중 하나다.

오슬로 패러다임의 종식

국내 정치가 노골적으로 극우 편향된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만이 아닌 서구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네타냐후는 영토 병합 계획에 대한 서구 사회의 경악에도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쿠드 당 의원들이 6월 21일, 미국 안이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를 승인하는 것이라며 반발하자 네타냐후는 그들을 달래기 위해 문서를 회람했다. 즉, 유대와 사마리아(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부르는 명칭)에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칠 것이며, 45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정착민을 쫓아내는 것은 “인종 청소”라며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확인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론 “영토 병합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영토를 강제로 획득하는 것인데 서안지구에 대한 유효한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영토 병합이 아니”라며 영토 병합에 대한 서구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특히 이번 영토 병합이 서구 사회가 제시한 2국가 안을 위태롭게 하기는커녕 팔레스타인에도 좋다고까지 주장했다. 앞서 주미 이스라엘 대사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이번 영토 병합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을 깨주고 진정한 2국가 안에 동의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이스라엘의 노력에도 서구 사회가 이번 영토 병합에 침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UN의 인권 전문가 47명은 6월 16일 UN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점령한 영토의 병합은 UN헌장과 제네바 협약의 심각한 위반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가 전쟁이나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을 금지하는 근본 규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때 서구 사회가 취한 태도와의 일관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구사회는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을 학살할 때마다 이를 규탄만 할 뿐,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를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특히 유럽 사회는 이스라엘을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등치시키며, 아무리 국제법을 위반해도 그저 달래고 보상해줘야 할 대상으로 대해왔다. ‘제발 서안지구에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그만 지으라’던 서구 사회의 요청은 ‘제발 서안지구를 병합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로 후퇴했다. 여전히 서구사회는 오슬로 ‘평화’ 협정에서 약속했던 2국가 안을 고수하고 있다. 정작 2국가 안은 이스라엘이 원하지 않아 태생부터 파산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사실 2국가 안에서 얘기하는 이스라엘이란 유대인만의 국가를 의미한다. 2국가 안은 이스라엘에 인종청소당하고 추방당한 채 인접 국가의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700만 난민의 귀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또 이스라엘 내에서 공식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팔레스타인계 시민권자의 지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애초부터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

이스라엘의 영토병합으로 2국가 안으로 대변되는 오슬로 패러다임이 종식되는 것 아니냐고 한탄하는 논평자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정립된 보편적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원칙의 붕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탄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UN의 각종 기구에서 수없이 결의한 대로 각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 무기금수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작년 이스라엘과 FTA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 정부는 타결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UN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이스라엘이 ‘67년 이후 점령한 지역에 대해서는 특혜관세 등 동 FTA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유대인 정착촌은 불법이며,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땅을 병합하는 것은 더욱더 반대하는 것이 일관된 태도다. 그를 위해 아직 서명 전인 FTA의 무효화라는 카드로 이스라엘을 강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1월 30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의 ‘노력을 평가’한다며 UN 결의안에 따른 2국가 안을 지지하던 입장에서 오히려 후퇴했음을 암시한 바 있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게 압박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일 테다.


※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영토병합 지역의 지도가 다 그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획 발표를 지연시키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7월 1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후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실 그걸로는 부족하다. 누차 강조하듯 영토병합 지역이 예정보다 줄어든대서, 심지어 안 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아지는 게 아니다. 이번에 안 하면 이걸 기반으로 이후 무조건 한다. 이미 이스라엘애소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안이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서 기본 밑그림이 될 거라며 극우들 달래고 자빠졌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지 전면 철수가 선행되지 않고는 어떤 논의도 불가능하며 영토병합, 학살, 뭘 자행해도 예정된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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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즌2] 키워드: 서안지구-①편 : 7월 1일,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빼앗으려 합니다. - 전반적 설명
  2. [시즌2] 키워드:서안지구-② 편: 서울에서 먼저, 분노의 날이 밝았습니다. - 기자회견 발언문
  3. [시즌2] 키워드:서안지구-③편: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육성으로 전합니다. - 제목 그대로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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