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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 들녘에 서다

 

영상 출처 : 미디어참세상

 

지난 3월 5일 평택 팽성읍 캠프 험프리 주변 논두렁,
제이름을 부르자면 "황새울 들녘"에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제1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도두리가 고향이며 팽성대책위 고문이기도 한 가수 정태춘은,
아직 제목도 붙혀지지 않은 새 노래를 불렀다.

 

-*-

 

너희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거침없이 몰려올 때
우리는 삽과 낫 호미를 들고 스스로를 지킬 밖에
황새울은 농사꾼의 땅이요
대추리 도두리는 우리들의 전부라
탐욕과 전쟁의 불길을 막고
여기 평화의 농사를 지어야 하네

 

너희가 제국의 똘마니가 되어 제 백성을 몰아칠 때
우리는 우리의 목숨 그 하나로 스스로를 지킬 밖에
황새울은 농사꾼의 땅이요
대추리 도두리는 우리들의 전부라
전투기 미사일 죽음의 광풍을 막고
여기 평화의 자손을 낳아야 하네



1941년,
2차 세계대전 시작과 함께
일본은 평택에 군사 기지를 세웠다.
주민들은 살던 땅에서 가진 것 하나 없이 쫓겨났다.

 

그것이 첫번째 추방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고, 일본군 대신 미군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일본군 기지를 확장해 지금의 기지를 만들었다.

 

대추리, 안정리, 새경재, 뗏장거리, 두정리, 함정리, 내리, 동창리 사람들은,
막대기 토막 하나 겨우 가진 채로 또 쫓겨났다.

 

그것이 두번째 추방이었다.

 

그리고 2005년,

이제 6,70대 노인이 된 주민들은,
세 번째 추방에 맞서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을 하고 있다.

 

-*-

 

아흐. 실은 2분 차이로 기차를 놓치고, 한 시간 늦게 가는 바람에

출범식이니 뭐니 다 놓쳤다.

 

내가 도착했을 때 논두렁에는 연기가 자욱했는데

알고 보니 캠프 험프리 철망에 노란 리본 다는 걸 경찰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경찰을 방해하려고 불을 피운 모양이었다.

 

작년 8월 말, 주민 총궐기 대회에 갔었는데,

그 날 촛불집회 얘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벌써 180여일 진행했단다.

내가 서울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사이,

6, 70 먹은 노인네들은 매일같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저녁마다 촛불을 들고 있었던 거다.

 

이 날 주민들의 얼굴은 밝았다.

각계각층에서 연대 온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은 듯했다.

 

제국주의에 의한 제3세계 민중의 수탈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평택의 수난사는 세상이 뒤집어져야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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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고용직 노조, 기습시위

여성미디어운동 활동가들, 긴 대화를 시작하다.

여성미디어운동 활동가들, 긴 대화를 시작하다.

- 도로시 키드 교수와의 작은 간담회  (액트 18호)

 

 

이 날 간담회에 참석 못 한 게 너무너무 아쉽다.. ~.~

 

아. 유네스코에서 3.8 세계여성의날만큼은 여성들에게 뉴스 편집권을 주라고

일간지를 내는 모든 매체에 제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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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와 미디어 : 재난 상황에서의 미디어의 역할

쓰나미와 미디어 : 재난 상황에서의 미디어의 역할

(액트 18호, 김지현)

(방송국이 완전히 파괴된 현장 앞에 서 있는 반다 아체의 Radio Nikoya 방송국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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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과 독립다큐 : 미국사례



읽을꺼리 : 카피라이트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기 (액트 18호)

 

(작년 11월, 어메리칸 대학의 사회적 미디어를 위한 센터(the center for social media)와 워싱턴 법대의 지적재산권과 공익 프로그램(program on intellectual property and the public interest program : pippi)은 하나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제는 나눌 이야기 :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한 창조적 접근(untold stories : creative consequences of the rights clearance culture for documentary filmmakers)"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작품 제작에 있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상세히 정리하고 있으며, 현재 수준에서 대안이라 할 만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 이 보고서를 추린 글을 액트에 실었다. 보고서의 동영상 버전이 링크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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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미셸 공드리의 현란한 감각이나
찰리 카우프만의 놀라운 상상력.

 

뮤직비디오나 광고로 봤다면 매혹적이었겠지만..
100분짜리 장편영화를 채우기엔 한참 부족하다..

 

얼어붙은 찰스강 위에 나란히 누운 연인의 부감 샷,
푸른 폐허, 라는 머리색 이름,
최선을 다해서 기억해 달라는 대사,

 

아름다운 것들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을 뿐.

 

예고편



난 너 없이도 잘 지내 / 나를 지워줄래? / 나, 당신을 알아요?

 

she was impulsive.. / that's what intimacy is...


 

 

clementine..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있네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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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nation / jonathan cauotte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 tarnation

 

"because it's not your fault, renee."

 

귀에 자꾸 맴돈다.

고통스런 타인의 삶, 그리고 지독한 관음증. 원하는 것은 무엇?

 

뒷얘기. 저작권 해결 비용을 따지니 218 달러의 예산이 40만 달러로 뛰었단다.

 

 



조너선 코엣의 <타네이션>

가정해보자. 아름답고 건강했던 당신의 어머니가 지붕에서 떨어진 뒤 정신이 이상해졌다면, 그래서 위탁시설을 전전하며 자라나야 했다면,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거지 같은 집구석에 살면서 당신 역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게 된다면,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가 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할머니는 죽고 할아버지는 알츠하이머로 망가지고 어머니는 리튬 과다로 위독한 상태에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삶이라면. 그것이 당신이 품고 가야 할 가족이라면. 이 버거운 삶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삶의 무게에 눌려 세상을 향해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묻겠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넌 왜 늘 그렇게 고통스러운 얼굴로 살아가는 거지?” 서른해를 그렇게 살아온 남자가. 이제 영화로 대답한다. 여기, 내 엿 같은 삶이 있어. 보라고. 들으라고. 하지만 나는 이 지옥을 사랑해.

2004년 미국 영화계는 <타네이션>이라는 200달러짜리 영화 앞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너선 코엣이라는 서른한살의 감독이 만든 이 자전적 다큐멘터리는 2004년 초 선댄스영화제를 거쳐 칸영화제에 소개되었고, LA영화제 최고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으며, 뉴욕영화제에 상영된 이후, 10월 초 뉴욕에서 개봉했다. 극장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한동안 <타네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게 오갔다. <뉴욕타임스>의 A. O. 스콧은 “올해 가장 이상하고, 가장 흥미로운 영화. 이제 <타네이션>의 영향을 받은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영화가 속속들이 출현할 것”이라며 이 영화의 영향력을 점쳤고,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비범하고, 직설적이고, 절박하고, 분노에 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이고 희망적인 영화”라고 평했다. 사실 <타네이션>이 선택한 ‘비디오다이어리’ 방식이나, 편집 스타일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한물간 유행이요, 지루한 MTV스타일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회상이나 재연이 아닌, 날것 그대로 포획된 끔찍한 삶의 장면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그 삶에서 나온 편집스타일은 스타일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자아분열적 증세에 시달리는 그에게 한장의 사진이 멀티숏으로 분할되고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화면은, 팝아트적인 표현방식이 아니라 바로 코엣의 머리 속에 펼쳐진 투명한 지옥도다. 또한 가족의 역사를 커다란 자막을 통해 대상화해 소개하는 방식은 그가 이 고통스러운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11살 때부터 이웃의 카메라를 빌려 찍은 160시간의 분량의 테이프와 200장이 넘는 스틸사진들, 전화기의 음성메시지, <악마의 씨> 같은 컬트영화 클립들을 컴퓨터로 편집한 <타네이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노력을 제한다면, 단돈 218달러 32센트라는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맨해튼 5애비뉴 보석가게의 도어맨으로 일하던 코엣은 어느 날 존 카메론 미첼(<헤드윅>)의 차기작인 <숏버스>의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러프하게 편집된 <타네이션>을 보게 된 미첼은 이 비상한 영화를 구스 반 산트에게 소개했다. 반 산트는 “글을 쓸 돈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 나는 늘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고 여기 그가 나타났다”며 <타네이션>의 출현을 반겼다. 결국 이 두 감독이 제작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브루클린의 어두운 방에서 썩어문드러졌을 이 불행한 남자의 일기장이 전세계 관객에게 펼쳐지게 된 것이다.

조너선 코엣은 “영화감독을 꿈꾸지 않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는” 태생형 필름메이커다. 그러나 그에게서 ‘영화찍기’는 천재성의 이른 발견이나, 단순히 취미생활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영화는 자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무기였다. 따뜻한 총이요, 부작용 없는 약물이었다. 영화의 제목 ‘Tarnation’(eternal+damnation)처럼 ‘영원히 저주받은’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때 그는 밥먹듯이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이 지옥을 껴안을지를 발견했다. 그것이 영화였다. 그렇게 그는 영화와 함께 살아남았다. 곪아터져서 진물이 나고 피가 흐르고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88분간의 기록, <타네이션>은 그 처절한 생존일지다.

 

[출처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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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두 병

딱 두 병 마시고 취했다.

 

"나에겐 자유가 부족하다.

타인을 의식에서 배제시키는 그 자유가

몹시도 부족하다."

 

누군가가 끄적여 놓은 문장에 마음이 움직인다.

나에겐 그저 자유가 필요할 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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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 Rios Profundos

 

이 영상은 볼리비아의 퓨전 그룹 Parafonista 의 “Los Rios Profundos" ("The Deep Waters") 뮤직비디오로, 천연가스를 해외에 팔아넘기려 하는 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난 2003년 민중 봉기 당시의 모습과, 대규모의 대중 시위가 벌어졌던 La Paz의 El Alto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from. 인터내셔널 미디어 (미디어 참세상)

원본출처 : http://www.salonchingon.com/cinema/rios_profundos.php

 

-*-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거리에 나선 인디오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업로드했다.
작년 11월에 나온 뮤직비디오.



2003년 볼리비아에서는, 대통령이 민중의 공공자산인 천연가스를 다국적 기업에 매각하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거대한 봉기가 일어났다. 그들은 “다국적 기업도, 칠레인들도, 볼리비아 민중의 부를 탈취하여 이득을 볼 수 없다”고 외치며 “우리는 우리의 천연자원을 되찾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윽고 몇몇 민중단체의 지도자들이 “천연가스는 매각의 대상이 아니”라며 단식투쟁에 나섰고, Central Obrera Bolivia(COB) 등 노동조합이 전국 각지에서 총파업과 대규모 행진을 조직했다.


곤잘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은 시위대의 폭력진압에 나섰고, 희생자가 생기면서 민중의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0월, 대학살이 벌어졌고, 라 파즈의 엘 알토에 모인 사람들은 막대기와 돌을 들고 최루탄과 총탄에 저항했다. 그리고 총파업으로 코차밤바, 오루로, 포토시 등을 마비시켰다. 2만 5천명이 거리를 점거했고, 볼리비아 서부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항의에 가담했다. 그들은 산프란시스코 광장을 점거하고 “the gringo"의 추방을 요구했다. (gringo는 외국인 특히 북미인을 폄하하는 표현으로, 여기서는 북미에서 자라 북미 액센트로 스페인어를 구사했던 로사다 대통령을 칭한다.) 대통령은 천연가스 매각에 대한 구속력 없는 국민투표를 제안하지만, 민중의 분노를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가 암살자와 대화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대통령의 사임을 강하게 요구했다.



학자와 예술가, 언론인 등 중상계급도 민중의 편에 섰다. 전 국방위원장인 아나 마리아 로메로는 단식 투쟁을 하며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고, 곧이어 6명의 학자, 인권활동가, 카톨릭 사제가 단식에 참가했다. 불과 10시간 후, 단식 참가자는 400명으로 늘었으며 그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볼리비아 민중은 행진을 하며 소리높여 외쳤다. 일부가 “언제? (대통령이 사임해야 하는가)”라고 외치면, 다른 일부가 “지금!”이라고 받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들의 외침은 현실이 되었다. 80명이 죽고 400명 이상이 부상당하고 400명이 단식을 시작한 후에, 산체스 데 로사다는 그의 주소를 마이애미로 옮겼고, 2003년 10월 17일 결국 의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만다. 그 날 볼리비아는 두 가지 승리를 축하했다. 하나는 걸프 석유회사의 국영화며, 다른 하나는 로사다 정권의 패배였다. 볼리비아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21년) 동안, 20만 명이 모여 행진하고, 함께 자국의 미래를 논하는 대규모 집회란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로사다의 사임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카를로스 메사 현 대통령은 2004년 7월 천연가스 수출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04년 7월 26일자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정부가 내놓은 5개항이 모두 가결되었는데, 투표 문항은 “어느 한 쪽이 승리를 주장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절충안”이었다고 한다. 개발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가스산업 100% 민영화도, 인디오 및 좌파단체들이 주장하는 100% 재국영화도 투표 문항에서 빼는 대신, 국영석유회사를 재출범시켜 일정 지분을 확보한 뒤, 다국적 기업과 민간자본을 참여시킨다는 계획이 통과되는 식으로 민중의 저항과 희망을 애매하게 봉합하고 만 것이다.

 

민중 봉기의 ABC, 혹은 그들은 어떻게 볼리비아의 독재자를 제거했나 (영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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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 신현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 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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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기말 블루스>의 첫 번째 시, 마지막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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