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보드가야_02


 

미안하지만, '부처의 삶' 따윈 관심없어..
난 여기서 좀 쉬고 싶으니 그만 하고 가주렴.

고단한 표정의 소년은 이내 하품을 했다.
떠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 이 불편한 순간.
5루피, 10루피가 문제가 아니었다.

소년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가벼웠을지도 모를 불편함의 무게.



 

버스정류장 한 켠.
세 자매의 기예 공연이 한창이었다.

......


 

애들은 애들이다.


 

예쁜 방석들..
예쁘기도 하지.. ^^


 

소똥 뭉친 거.
단열재로 쓴다고 알고 있는데,
저 벽은 누구네 집도 아니다.
왜 붙혀놓은 걸까. 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불교도들의 성지_보드가야_01

 

엄청나게 많은 승려들이 모여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까르마파 존자의 법회가 있었던 모양.
동자승부터 노승까지 하루종일 경전 읽는 소리..

와, 대단하다, 언제쯤 끝날까 생각하던 중 5시 정도 됐으려나..
수업 마치기가 무섭게 어린 스님들은 보따리 싸서 달려 나오더라... ^^



 

말로만 듣던 그 '오체투지'의 현장 목도.
온몸을 내던지는 고행이다.
해탈에 이르려는 욕망이 그리도 간절할까.

이런 분위기에 고무되어 난생처음 108배를 해 봤다. 


 

전세계의 불교도가 다 모여든다.
황금빛 석가모니 부처.
근데 왜 꼭 금이어야 할까.


 

보리수.
이 아래에서 부처님이 해탈을 했다는...


 

CANKAMANA
부처님은 해탈한 다음 3주 째에 명상을 하며 이 곳에 머물렀는데,
둥글넙적한 원모양은 부처님이 머무른 걸음걸음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람살라_04


 

산행길에 만난 다람살라 아이들.
다른 곳에서는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들. 




 

학교다. 펀자비에 듀파타(목 주위에 두르는 긴 천).
하늘하늘한 걸음걸이까지 더해지면,
세상에 인도의 십대 여자애들만큼 이쁜 아이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쁘다.


 

다람살라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간판이다.
'영혼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니.. 멋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람살라_03


 

손수 튿어진 방석을 꿰매고 있는 티벳의 노승.



 

법당 안에는 기껏해야 2,300명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법당 주위에도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빽빽하게 방석이 놓여 있다.
달라이 라마의 법회에는 2,3000명의 신도들이 모여든단다.


 

다람살라의 '중심지' Mcleod Ganj의 어느 거리

 

다람살라의 거리 곳곳에서 고개만 돌리면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산꼭대기의 눈보라가 하늘로 번지는 광경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중국, 티벳에서 떠나라!
티벳 승려들은 티벳의 독립 운동에도 열심이다.
중국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 포스터는 다람살라에서 처음 본 이후,
뭄바이에서까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람살라_02

 

티벳인들에게 코라(KORA)는 생활의 일부다.

이 곳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의 궁을 중심으로 매일 여러차례 순례를 한다.





길가의 돌이나 바위에는 경구들이 새겨져 있고,

사람들은 마니차(손잡이 달린 경통, 경전이 들어 있어서 이것을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셈 친단다.)를 돌리며,

옴마니밧메훔(티벳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만트라-MANTRA,진언)을 되뇌이며,

일상의 수행을 하는 것이다.

 

나도 다람살라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의 코라를 행했다.

물론 옴마니밧메훔도 외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기 보다는,

자꾸만 혼곤한 내 속내로 빠져드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늘 가까운 동네_다람살라_01

 

 

다람살라는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곳이다.

해발 1200m 정도 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델리에서 버스로 약 15시간 쯤 북쪽이다.




우리와 무척 닮은 티벳 사람들.

붉은 승려복의 티벳 스님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아쉽게도 사진은 없지만, 젊은 티벳 스님들의 드러난 오른쪽 어깨는 정말 섹시했다!)


티벳 사람들은 참 잘 웃는다.

날선 여행자의 경계심마저 스르르 녹여버리는 그 웃음이

티벳으로의 여행을 자꾸만 꿈꾸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느린 여행_시작

 

 

인도여행의 기록.

블로그에 옮겨두기로 작정.

 

그 때 만들었던 홈페이지 첫화면이다.

그 즈음의 내 모든 것이 들어있는.



여행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익숙했던 것들과의 잠정적 결별.

그것은 한시적 자유.

 

나는 '(나의) 시간'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 곳에 도착한 거다.


2003년 12월 26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

오산수청동은 전쟁 중, 이라는 속보 끄트머리에..

 

"참세상 동지들 오산수청동 취재와 주세요... 저희들은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화성경찰은 미친개 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잡혀간 것도 억울한데 개처럼 취급받고 폭력을 저지를 화성 경찰을 반드시 응징합시다.

5월 4일 11시 오산수청동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5월 4일 1시 화성경찰서 폭력만행 규탄 집회
꼭 참여해주세요. 그리고 취재해 주세요...."

 



몰라서 못 갔고.

알았더라도 못 갔을 거다.

 

...

 

1년쯤 전, 그러니까 참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두어 달쯤 흘렀을 때..

내 가장 큰 고민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한 현장에 밀착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다큐 감독이라면 모르겠으나,

여러 현장을 다녀야 하고 그리 긴 관계를 맺지 못 하는 작업패턴 속에서,

친밀한 관계는 어느 순간 죄스러움만 낳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꼭 오세요'라는 절박한 눈빛에도

나는 애매한 대답으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약해빠진 나란 인간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 속에 버려진 이들을 만나가며

오랫동안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참세상에 들어올 때,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주류 카메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를 낼래야 낼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할 때는, 고백컨대 미처 몰랐다.

이 정도로 강한 신념과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 줄을..

 

반복적인 속보 작업을 하다 보면, 속보에서 마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좀더 긴 호흡의 작업으로 좀더 깊이있게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다가도,

정말 끊임없이 여기저기 터지는 문제들과 혹독하게 유린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면할 때면, 다른 작업에 대한 욕구는 그야말로 욕심이 아닌가 싶어질 지경이다.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삐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나는....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때로는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영화를 봐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내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얼마간 타협은 할지언정...

 

이런 생각이 잘못 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도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정말이지 야만적인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이상,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집중할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수청동에도 다시 찾아가 봐야할텐데.

크게 다치셨다는 소사 철대위원장님도 뵈야 할텐데.

'경찰들이 방송차 끌어내면 저 뛰어내릴 거예요, 그 때 잘 찍으세요'라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던 인천 지역 철거민의 비장함을 너무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죄책감. 무기력함. 욕망. 피로. 내가 선택한 의무. 또다른 욕망.

 

모든 것이 뒤엉켜 나를 괴롭힌다.

 

p.s 다시 잘 울기 시작했다. 그래, 울자. 실컷 울고, 내 "소중한 삶의 밑천들"인 "눈물의 힘" 을 빌어 "겨자씨만큼이라도 그릇된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 지불"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일종의 대리체험이며 면죄의식"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디오 액티비즘 :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 suworld님의 [비정규직투쟁과 하이닉스 투쟁] 에 관련된 글.

 

액트 20호에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의 글이 실렸다.

 

"도둑놈 심보"에 대항하기

비디오 액티비즘 :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어딘가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메이데이 때 있었던 일대 전투도, 영상팀이 훌륭하게 담아냈으리라 생각한다.

조만간 정리되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쉬운대로, 지난 4.1 총파업 때 하이닉스 매그나칩 영상팀이 올렸던 속보를 링크해 둠.

 

 

+ 좀전에 올라온 이번 메이데이 속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러움이 알고 싶거든 나를 보라

* 이 글은 민중언론 참세상[서러움이 알고 싶거든 나를 보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화장실 지어달라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식당 지어달라고, 휴게실 지어달라고, 세면장 지어달라고,

그들은 고공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세 명은 서울 하늘에,

세 명은 울산 하늘에,

빈 속으로 둥둥 떠 있다.

 

울산플랜트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이 개같은 세상, 하고

맑은 하늘에 삿대질 해 본다.

 

4.30 문화제에 올해 나이 58세의 늙은 노동자가 기나긴 사연을 읽어내려갔다.

10분에 가까운 낭독을,

전혀 편집하지 않고 통째로 올렸다.

 

그의 음성 하나에라도 손을 대면,

그 울분이 상할까, 그 절박함에 누가 될까 걱정스러워서였다.

 

이 영상은,

음성만 들어보길 권한다.

귀를 열어두고,

눈으로는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그래 가슴이 먹먹한 게 고개를 떨구게 되더라...

 



천리길을 달려달려 이렇게 왔습니다
좁은 찻간에 다리도 못 펴고 마른 빵 입에 물고 그렇게 서울로 서울로
눈물을 머금고 왔습니다.

나는 68년, 여수 호남 정유에서 조공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군대에도 가고 월남전에도 참전하여 72년 6월에 제대를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온몸의 살갗이 벗겨집니다.
오늘은 팔에서, 내일은 다리에서 내 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한여름에도 짧은 팔을 입을 수 없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고리 원자력 발전도 울진 원자력 발전도 공사해서 죽어라고 일만 했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 폭풍이 부는 이라크에서도 일을 했고
일본에도 가고 어디라도 달려가 일을 했습니다.
말그대로 산업 역군이었습니다.

일등 국민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어느 잡지에서 애국 애족 애사라고 합디다.
이 가운데서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을 산업역군이라 합디다.

그런데 나는 무엇입니까.
산업역군은 간데 없고 검사들과 경찰들은 나를 빨갱이라 합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입니까.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것뿐인데
끌려가고 구속되고 수배되고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나라의 윤리가 이렇지 않습니다.
자본이 썩었습니다.
정치가 썩었습니다.
경찰, 검사가 썩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정치가, 검사들이 이 정도까지 썩었는지 몰랐습니다.
정말로 몰랐습니다.

울산은 지금 전쟁 중입니다.
너무 억울한 전쟁입니다.
제가 참전한 월남전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이 전쟁에는 젖먹이를 들쳐업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태반이요,
얼마나 절박하면, 이 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면 이러겠습니까.
아이들한테, 아저씨들 잡아가는 나쁜 경찰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솔직히 나는 근로기준법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에만 있는 것이었지 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이해하고 국민 누구나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먹고 씻고 쉬고 일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 뿐입니다.
밥알보다 모래알을 더 씹어야 하는 점심 도시락도 그나마 비가 오면 빗물에 말아먹는 꼴이 됩니다.
공장 담벼락에 숨어서 도둑놈처럼 작업복을 갈아 입어야 됩니다.
누가 우리들의 이런 짐승같은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답게 생활하고 좀더 인간답게 일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30년 전에 전태일 열사가 외친 근로기준법을 우리가 외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얼마 전에 나는 알았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살아온 날을 이렇게 이야기하려니 눈물만 납니다.
서러움이 무엇인지 한 번 보고 싶다면 나를 보면 됩니다.
우리 동료들을 보면 됩니다.

파업하며 안 운 날이 없습니다.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이 납니다.
그야말로 피눈물이 납니다.

내 삶이 왜 이렇습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쇳가루 시멘트 가루 날리는 낙장에서 비가 쏟아져도 피할 곳이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이런 현실,
내 돈 주고 먹는 도시락 모랫바람 없이 한 번 먹어보자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화장실 한 번 당당하게 가 보자는 것입니다.
먼지 구덩이 쇳가루라도 털고 퇴근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쩔어도 손 씻을 세면장, 샤워장 하나 없는 게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오늘의 현실입니다.

국민 3대 의무가 교육의 의무,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안 지킨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노동자 기본권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입니다.
기본권이 원래 그런 겁니까?

성수대교가,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졌습니까.
그게 다 부실공사 아닙니까.
다단계 도급제 때문 아닙니까.
다단계 도급이 시공 관행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한단계만 없어도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지겠습니까.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들은 우리더러 폭력배라고 합니다.
우리더러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말이나 됩니까.
우리는 명예가 없습니까.
뻑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고발하는 사람들만 있지
우린 늘 당하고만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파업은 잘못된 시공 관행을 바로 잡아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파업은 우리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내 나이 내일 모레면 60을 보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하지만
앞으로도 공장에서 일하게 될 후배들에게 남길 유산이라고 생각하여 죽을 각오로 싸울 겁니다.

업체는 협상에 코빼기도 안 보이고
검사는 우리더러 사상이 불순하다며 빨갱이 타령에 정신이 없습니다.
경찰은 조합원이 모였다면 곤봉들고 방패들고 여차하면 다 쓸어버리겠다고 폭력배 타령을 합니다.
사장 좋을 짓만 알아서 합니다.
손발이 착착 맞습니다.
생판 듣도보도 못한 법으로 우릴 구속하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바로 법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린 진짜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많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여태까지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잘잘못을 알 겁니다.
검사들이 못 배워서 우릴 구속 시킵니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는 게 죄입니까.
나는 자식들한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없는 사람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참 나쁜 놈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발 좀 말 좀 해 주십시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하루 여덟시간 노동 준수하고
식당, 휴게실, 세면장 설치하고 주, 월차 수당 지급하고 유급휴일 보장하라.
건설산업법과 산업안전법을 지키고 안전장구를 지급하라.
무리한 잔업 중지하라.
노동조합 탄압 중지하라.
불법 대체인력 파견 마라.
간부조합원 폭력연행 중단하고 구속자 석방하라.
사용자는 단체교섭에 나오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라.

울산 SK 상경투쟁단 대표 오금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