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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主塚

...

 

새로 만든 그대 무덤에 갈대꽃을 뿌리고 돌아가며 누렇게 祭酒 몇 잔을 날린다

이제 그대는 파헤쳐졌던 그대 죽음을 거두고,

魂만 남아서 저 바람 속을 떠나리라.

떠나리라, 나는 無主塚移葬勞動者.

살아서 이 세상의 어둠 속을 방황하고

죽어서도 그대처럼 죽음 속을 헤매일 몸

그래 내 마음도 산마루에 無主塚 되어 남는다.



도서관엔 요절시인들의 시만 모아둔 시집이 있었다.

 

고 2 때였나..

수업시간에 졸릴 때마다 시를 베껴쓰곤 했었다.

 

이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시가..

 

황토맥질, 무주총, 위험한 가계 1969였다..

 

황토맥질은 찾을 수가 없고..

무주총은 일부만 볼 수 있었다.

무주총이장노동자, 세상에 다시 없는 쓸쓸한 업이리라,

이름 없는 죽음을 벗삼는 그 외로움에 나는 매료됐었다.

 

알맹이 하나 없는 소녀감성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시절이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또,

나의 상당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에 놀라곤 한다.

 

위험한 가계 1969는...

기형도의 시였다..

10년이 지나서야.. 아.. 하고,

뭔가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 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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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을까...

학생들은 여의도역에 내렸다.

전경이 이미 입구를 봉쇄하고 있어서 나갈 수는 없었다.

경찰 바로 밑에는 사수대가 구호를 외치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아래쪽으로 색색의 티셔츠를 입은 학생 단위들이 저마다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쳤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무척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쪽도 나를 아는 듯 했지만,

서로가 누군지 확실히 기억해 내지는 못 했다.

누구였을까..

 

누구였건...

잘 지내는 듯 보였으니,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115주년 메이데이 전야제, 잊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날.

눈이 마주쳤어도, 그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없었던 날.

 

어떤 열정이 순간이나마 서로를 인지하게 한 것이라면,

그 열정만큼은 변하지 말아라.

변하지 않는 한

우린 또 어딘가에서 마주칠 것이며,

 

서로를 기억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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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고 싶다.

부다페스트나 울란바토르,

내 생의 어느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지구상의 어떤 곳.

투바 같은.

 

아니면 그보다 더 생소한 곳으로.

 

천국보다 낯선 곳이 있다면,

그런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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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친한 친구와 선배]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 부분,

동감.

 

'그리움과 추억은 현재의 나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외로움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다가,

삶이 다 가버릴 것만 같다.

 

가슴 시원하게 울었으면 좋겠는데,

천하의 다시 없을 울보가

요즘은 통 그렇게 울지를 못 한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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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투덜

어쩌다 보니 지난 주부터 참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단은 몸이 좀 힘들고,

오늘은 경찰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더불어 두 가지쯤 심리적으로 지치는 일까지.

 

어젠 그나마 사람들이 있어 재밌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그런 날이다.

그리움은 대상을 잃어버리고,

무겁게 감겨오는 두 눈에 반짝, 하고 상이 맺히는.

 

매서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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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뼈 / 천운영

사실 남자에게 여자는 지긋지긋한 날벌레에 불과했다. 138

 

불거진 뼈를 가진 신체는 비애감마저 느끼게 한다. 비극적인 육체. 육체의 중심에 우뚝 선 등뼈. 그 마디마디가 처참히 드러난 여윈 등.

   그 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다.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다. 여자가 남자의 발길질을 견뎌낸 것은 남자에게 그 등이 주는 처참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등을 감싸주기를 원했는지도. 148

 

남자는 문득 여자를 떠올렸다. 아무리 거부해도 무작정 다가오는 법만 알던 여자. 여자가 남자에게 맹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향해 강한 인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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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

죽고 사는 일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 이르고 가나닛고...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옛시,

화재 참사로 숨진 성매매 여성들의 합동 장례식 현장을 편집하는 동안,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祭亡妹歌 앞구절이었다.

 

나는 간다, 말도 못 하고, 어찌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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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 고레다 히로카즈


 

아무도 모르는 사정,

아무도 모르는 표정,

아무도 모르는 감정.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알고 있거나 살고 있을까,

네 몫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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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을 사다

무진기행을 제대로 읽어보고도 싶었다.

지금 나에겐 안개가 전부이므로.

 

.

.

 

대신 기형도를 집어들었다.

(기형도는 안개다.)

지금쯤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게,

몇 해 전 이른 봄이었다.

 

세상이 흔들리듯 바람이 불었고,

드러난 목 언저리가 많이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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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폐한 채로

독을 품은 모습으로

 

요약될 것이고

기억될 것이다.

 

억울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되돌아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_ 또 오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나도 안다. 결코 무겁지 않았던 언어들의 의미.

_ 다만 내겐 칼이 필요했다. 기어코 무리한 의미를 부여해서라도, 단절시켜야 하는.

 

봄.

적당한 맑음과 밝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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