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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직을 섰다. 당직이 끝나면 당연히 보고를 하게 된다. 내 위로 있는 줄줄이 늘어선 상관들에게 그 전날 일어났던 상황들을 난 꼬치꼬치 보고해야 한다.
그들은 나에게 꼼꼼하게 되묻는다. "얘는 어디가 아프지? 그리고 어제 어떤 시설물을 어떻게 고친거야?" 내가 대답을 조금이라고 허술하게 한다치면 대번에 욕이 날아온다. 심지어 난 내가 근무하는 곳의 창문 개수까지도 세어가지고 들어간다.
난 오늘도 보고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을 해야하지?" 도대체 궁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니 간 밤에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하나? 그냥 제발 내버려두면 안되나?
혼자서 좀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마도 이건 상하관계로 구성된 조직의 특성일거라고.가장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시선 안에 그의 모든 조직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자기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임에도 조직을 책임지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로 엉켜진 끝없는 층층구조.
그러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나도 이런 구조에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모든 일을 내가 맡아서 직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고생만 직싸게 했었다. 이제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느덧 시키는 것이 더욱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난 이제 내 아래에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일을 떠맡기고
감시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정교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하지 않는 수많은 장부들을 만들어 떠 넘기고, 엑셀을 이용하여 그 결과들을 통합해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관리"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떠넘김에 맛을 들이고 말았다.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모임을 만들 때, 사람들은 그 전까지 익숙한 방식으로 모임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에게 익숙한 방식은 바로 이러한 방식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 학회나 자발적 모임에서 겪었던 경험들은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군대를 겪은 한국 남성들의 비슷한 경험이라는 극단적인 일반화까지도 머릿 속에 떠오른다.
언젠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를 읽었을 때의 기억이 난다. 자본주의에 대항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 했던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 자본주의보다 어쩌면 더 억압스러운 사회를 만들어 버렸냐는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그때 누군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소련 사회를 만들었던 주역 중의 한 사람이 임종할 때 했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그 당시 그것밖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 년에 걸친 전쟁끝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방식은 전시동원체제밖에 없었다고...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만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결국엔 익숙한 비극적 방식대로 삶을 꾸릴 수밖에 없는 상황.
도서관을 독서실로 착각하는 당신에게
도서관에서 여러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잘라 말해서 단 두 가지 일만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가지는 시험공부(여기서 시험공부는 고시준비, 취직준비를 모두 포함한다)이고, 또 한 가지는 레포트 쓸 때 베낄 책 찾기. 굳어버린 당신들의 머리는 이런 일들 외에 도서관의 다른 용도를 상상하기 어렵다. 아~~~ 좀 더 생각해보면 몇 가지 더 있기는 하다. 중도관 일층에서 복사를 할 때 가끔 필요하고(그건 복사집에서도 할 수 있다), 돈 찾으러 갈때도 가끔 필요하며, 스포츠 신문을 볼 때도 가끔 필요하다.
2백만권이라는 장서를 갖추고 있는 고대 도서관이 이런 역할만을 하고 있다면 그건 너무나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도서관은 본래 문화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인 것이다. 2백만권이나 되는 장서에 담겨있는 지식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이있다. 2만 고대생이 도서관을 사설 독서실로 만들고 있을 때, 학교 밖의 누군가는 그 지식을 갈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고대생에게 중도관은 여전히 시험공부를 위한 독서실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만 되면 도서관의 열람실은 자리가 없어서 난리가 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왜 거기서만 공부해야 하는가? 차라리 강의실을 열어달라고 하라!!! 거기서 공부하면 엉덩이에 가시가 돋히는가? 그리고 그냥 독서실도 아니라, 돈 내고 들어오는 사설 독서실이다. 내 돈 내고 독서실에 들어와 있으니, 돈 안낸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중도관 정문에는 출입통제기까지 설치되어 있고, 밖에서 누가 조금만 떠들면 시끄럽다고 난리다.
그들은 아침만 되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자리를 맡는다. 그리고는 거기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 물론 그 공부는 CPA준비나 고시 준비, 혹은 토익, 토플 책 등 각자 자기가 가져온 책을 놓고, 밑줄 쳐가며 하는 공부이다. 그런데 당신이 앉아있는 곳의 이름을 보라. 그곳은 "열람실"이다. 열람실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열람하는 곳이다. 하지만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열람실이 아니라, 독서실에서 할 법한 행동이다.
이에 우리는 '도서관의 제 모습 찾기'에 나서고자 한다. 앞서 대자보와 소자보를 통해 도서관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라고 요구했던 것도 '도서관 제 모습 찾기'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 놓여있다. 이번에 도서관이 전면 개가제로 바뀐다는 결정 또한 100% 지지한다. 도서관이 전면 개가제로 바뀌어 자기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불평하지말라!!! 그게 바로 도서관의 참모습이다. 정말 독서실이 필요하다면 각 단대마다 말 그대로 독서실을 만들어 달라고 하라!!! 문대에 있는 문도관(이걸 도서관으로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처럼 말이다.
(2003.03.31 00:36)
좀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는 <귀여운 여인>이다.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행운이라고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세상에서 복권이나 하나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왕자건 공주건 누군가가 다가와 나에게 행복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사람들의 기분을 잠시나마 즐겁게 해준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나는 그 영화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또 싫어한다. 모든 사람에게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완강함을 에둘러서 무마시켜 버리는 영화의 술책이 얄밉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볼 때에도 <귀여운 여인>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뜻밖의 행운에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 나의 눈시울은 뜨끈해진다. '아!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도 함께한다. 그런데 말이다.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보고 난 뒤에 찝찝한 맛이 남는 것도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착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무슨 찝찝함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본다. 내가 나쁜 놈이라서 그런가?
일단은 내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러브하우스"의 혜택을 얻느냐를 생각해보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선택되는 집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집안 식구가 많거나, 장애우가 있거나 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기가 힘든 상황을 가진 가족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으로 힘들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동엽이 찾아가 복을 주게 된다. 물론 집의 구조가 형편없는 곳이 선택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전 집의 열악한 상황은 바뀐 집의 삐까뻔쩍함에 대비되어 그들에게 주어진 행복을 더욱 빛나게 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말이다. 한 마디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가족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기만 하면 복을 줄까? 과연 누가 줄까? "러브하우스"에 따르면 이 땅 수백만의 가족들 중에 이렇게 복을 받는 이들은 일주일에 하나다. 가족으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은 일주일에 한 번 보여지는 그들의 행복한 웃음 속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소년 소녀 가장들이 주로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 즉 불행한 사람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엮은 프로그램과 이 "러브하우스"를 비교해볼 때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볼 때 시청자들은 불행한 그들을 동정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휴∼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도 있구만' 하는 안도의 한숨이 배어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러브하우스"가 보여주는 행복한 웃음은 가족을 유지한 자들에 대한 행복한 보상으로, 소년, 소녀 가장들의 불행은 결여된 가족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로서로 잘 엮어져 있다.
내 생각이 이러하니 신동엽이 곱게 보일리 없다. 대마초 사건도 있고 해서 그런지 모른다. 대마초를 피웠으면 피웠지, 왜 이런 프로그램으로 이미지 쇄신을 하려하는지 짜증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 구속된 모 대학 미대교수처럼 당당히 대마초할 권리를 달라고 하면 안되나? 내가 신동엽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니가 무슨 권리로 행복을 주니? 응?"
(2003.03.31 00:35)
내가 근무하는 곳은 군인을 만드는 곳이다.
빨간 모자가 땀에 절을 때까지 뛰어다니고,
그 빨간 모자가 땀에 절었다고 욕을 먹는 곳에서 난 매일매일 근무하고 있다.
군대갔다 온 사람들은 잘 알거다. 빨간 모자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요즘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내무교육지침서"라는 책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 책을 난 농담삼아 "'감시와 처벌'의 부록"이라고 부른다.
그 책은 신체를 어떻게 규율해야하는가를 세세하게 잘 써놓은 책이다.
내무실에 들어와서부터 나갈때까지의 모든 행위를 센티미터까지 규정한 책.
그런 책을 매일 난 가르치고 있다. 시범까지 보여가면서...
거리를 자연스럽게 걷고 있을 때도
내 팔은 앞으로 45도, 뒤로 15도 이상 뻗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 몸은 규율되고 있다.
그렇게 많은 구박을 받고서 나도 이런걸 하나 만들었다.
진주라는 컴컴한 곰굴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보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한다.
매일매일 날 곰으로 만드는,
아니 곰보다 더 무서운 마귀로 만들어 가는 일과를 견디기 위해,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난 이 곰굴 속에서 웹 상의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씹어 삼키며
그 쓰디씀을 감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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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리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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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마당깊은 집" 아마 고두심도 나왔던 것 같은데... 아닌가?-_-a 저도 어린시절 상당히 재미나게 보았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 가족주의와 관련된 이런 글을 끄집어 내실 줄은 몰랐어요:)부가 정보
trash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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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고두심도 나왔었죠. 원래 김원일의 소설인데, 드라마로 만들었죠. 사실 저도 잘 기억은 안나요. 인상적인 부분들만 떠오를 뿐이죠 ㅋ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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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 끌리는 연기자 중 한 명이죠. ㅎㅎ저도 드라마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감이 가네요. 전쟁 전후 소설들의 그 전형적인 '어머니'와 '누이'의 형상화도 짜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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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문화에 비해 한국의 '가족주의'가 어떤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전쟁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공공'에 대한 인식도 매우 희박하죠.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사적'인 관계들을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건강보험이나 국가 책임을 대놓고 따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해요. 워낙 사회보장이 취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개의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이 박정희정권 당시 '국민통합' 혹은 통제, 관리의 성격을 띤 채로 자리잡힌 탓에 '공공'이 좋은 것으로만 인식되지 못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부가 정보
river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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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인데 달린 글은 4개나 되는걸...진보네를 불어야 겠군. 진보네~~요기 에러요 에러...ㅠ_ㅠ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 포스트를 자주 접할 수 있길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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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sh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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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자주 접할 수 있길 바래요. 그럴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