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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의 시대


 

35차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잠실 교통회관에 2시쯤 도착했다. 이미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측은 대회장에 진입하여 구호를 외치며 사회적 교섭 폐기를 요구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교통회관 쪽에서 교통정리를 위해 직원을 내보낸줄 알았다. 노란 완장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까지는. 여기 저기 많이 눈에 띄길래 유심히 봤더니 사진과 같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일까? 추측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하는 마음이었다.

덩치도 좋고 힘도 좋아보이는 '질서유지대'. 그 질서유지대라는 글자를 나는 이때껏 운동진영 행사나 집회를 하면서 본 기억이 없다. (작년 탄핵때 그 질식할 듯한 바둑판식 정렬을 유도하던 자원봉사자들을 제외하곤) 질서유지대라는 말은 집회신고서에나 나오는 말이었다.

집회신고하려면 관행적으로 집회참가자 스무명당 한명의 질서유지대 명단을 제출해야 하니깐(물론 몇명을 적어도 별 상관은 없다).

 

노란 바탕에 까만 글씨, 파란 무늬. 눈에 확 띄게 명도배치를 한 것도 참 고전적이거니와, 무슨 선도부나 선도주임 선생님을 떠올리게 하는 '완장'이라니. 그래서 난 얼핏봤을땐 무슨 '선도'같은 글씬줄 알았다.

들리는 말로는 민주노총 어느 연맹 쪽에서 만들어왔다는데, 도대체 저 마인드는 어떤 마인드일까 너무나 궁금하다. 민주적 절차나 상호 존중하는 토론, 핏대를 올리더라도 합리적인 근거를 서로 주장하는 것은 제쳐 놓고서라도, 입장이 부딪치고 구호가 울리고 여차하면 몸까지 맞대게 될 상황에서 저 '완장'으로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것일까.

완장의 권위(심지어 민주노총이라고 선명하게 박아놓지 않았나)가 그리 대단한 것이었나. 그러면 항의세력들은 민주노총이 아니고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들인가.

 

그 완장을 채워주고 질서를 강조했던 사람들이 그날 밤에는 전해투 회원들을 폭행했다는 사실에까지 이르면 아예 할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지도부의 권한으로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까지 보면 그 마인드가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민주주의는 운동이 바탕이 되고 대중의 의지가 압도하는 상황에서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제도로 드러나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라 할 것이다. 지금은 운동이나 대중의 의지 모두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어느때보다 운동주체들의 진지한 고민과 자세,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망각하게 되면 어떤 때는 절차적 다수결에만 집착하고 어떤 때는 정념에 휩싸여 폭력을 발산하게 된다.

 

내우외환의 시기일수록 노동'운동'의 본령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의 입장 유인물을 보자. 내용은 1)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은 비정규투쟁 주체로서 현시기 비정규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교섭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힌다. 2)4월 총파업 조직화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할 것이며, 대의원대회에서는 사회적 교섭방침을 즉각 폐기하고 민주노총 및 각급연맹과 단위노조 지도부가 일치단결하여 4월 총파업에 매진할 것을 촉구한다. 3) 2월 1일 대의원대회와 같은 물리적 충돌이 또다시 재현된다면 민주노조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수밖에 없으며 4월 총파업조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직시하자 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대의원대회가 열리던날 오후 4시부터 구로에서는 ' 최저임금 실현과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서울남부지역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구로공단 변모에 따른 지역노동자의 현실 토론회 - 최저임금과 불법파견을 중심으로'라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참석자의 말을 들어보니, 지난해 11월에 민주노총지구협을 비롯하여 지역단체들과 노조,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출범한 공대위가 사업을 중간 결속하는 자리였고 꽤나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논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묵묵히 밭을 일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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