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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라크에서 무엇을 달성했는가?”

 

“미국은 이라크에서 무엇을 달성했는가?”


임마뉴엘 월러스틴


2004. 9. 15 논평 145

http://fbc.binghamton.edu/commentr.htm


세계 대부분은 미국의 이라크 정책이 정치적으로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다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부시 체제를 어지럽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시 체제는 그 정책을 커다란 성공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정발로 그렇게 믿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 상황을 검토해보자.


우선 미 행정부가 무엇을 성공으로 가장 크게 주장하는지 살펴보자. 사담 후세인은 축출되었고 죄수가 되어 어느 시점에 재판정에 서야할 운명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성공란에 다른 무엇이 놓일수 있는지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도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가능하거나 주장된 미국의 다른 8가지 목적을 수집했고 그 각각에 있어 의문점과 완전히 부정적인 결과를 찾았다.




(1) 첫째는 바트당과 미래 이라크에 있어서 바트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미 점령당국은 이라크 기관들에서 바트주의자들을 제거해갔다(군대는 해산되었고 경찰은 재조직되었다. 그리고 대학들, 행정부들). 그러나 몰아낼 수 없는 저항세력과 팔루자에서 직면했을 때, 미국은 휴전을 가져오고 미군 철수 이후에도 지역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전직 바트주의자 지도자들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전직 바트주의자들이 결국 미국 요원이라는 꼬리표가 지역 대중들에 의해 붙여진다는 것을 뉴욕타임즈에서 알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임하거나 현재 팔루자 뿐 아니라 이라크 서부 많은 수니파 지역을 통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 그룹에 대한 충성을 바꾸도록 강제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팔루자와 그 근교에서 전직 바트주의자 그룹의 몰락을 유감스러워하는 이상한 위치에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국은 1980년대에 비종교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축출하고 탈리반 정권을 세웠다. 그들은 실제로 훨씬 더 나빴다. 미국은 이라크 수니파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둘째는 세계 석유 공급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3년전보다 나은 상황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파이프라인에 대한 지속적인 게릴라 공격 때문에 이라크의 석유수출은 변덕스럽다. 정치적 상황이 해결되면 (이것은 오래 걸릴수 있지만) 미국은 이라크가 석유 카드를 써먹는 것에 있어 프랑스나 러시아보다 실제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3) 셋째는 미국에 대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공격능력이나 적대적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종종 얘기되곤 하는 모든 넌센스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전에 사담 후세인은 이러한 그룹들이 이라크를 기반으로 하여 작전을 펼치도록 하지 않았다. 지금 이 “테러리스트” 그룹들은 이라크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며 인질을 잡고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한다. 다른 곳에서 이에 관한 미국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든간에 (알-카에다의 자금줄을 끊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기지를 파괴하는 것) 이라크 침략이 미국의 목적을 상당히 진전시켰다고 말할 수 없다.


(4) 넷째는 이라크에서 안정적이고 친미적인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확실히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 현재의 알라위 임시정부 체제는 모든 면에서 허약하다 - 군사력과 경찰력, 정치적 통제력, 대중적 정당성 등. 무크타다 알-사드르와 그의 마흐디 민병대에 대항하여 알라위와 미군이 나자프에서 최근에 공격한 것은 알라위의 지위를 거의 높이지 못했다. 당장에 임시정부는 여전히 전적으로 미군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군사력을 급격히 증가시키거나(요원해 보이지만) 정당성을 증가시켜야 한다(이는 미국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알라위는 또 다른 사담 후세인이 되기를 열망할지 모르나 그렇게 되려면 한참 남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런 안정적인 정부가 진정으로 “친미적”인 것이 될까?


(5) 다섯째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끝내는 것이다. 그것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그러한 무기를 찾지 못했다는 것뿐 아니라 이라크 침공이 핵무기 비확산 프로그램의 마지막 조각마저 당연히 없앴다는 것이다. 이란과 북한은 노력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높였다. 남한도 그들의 발자국을 따르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금 발표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일본과 대만은 가만있을 수 있을까? 미국은 무엇을 할수 있을까? UN은? 해볼테면 해보라고 덤벼드는 것이 당연했다.


(6) 여섯째는 중동 지역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달성이 되었는지 나는 찾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제한없는 다당제 선거를 의미한다면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선거는 -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많은 나라들에서 - 지금의 체제보다 미국의 구미에 못미치는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정부는 이라크에서 그러한 선거를 최대속도로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발을 빼왔다. “민주주의”는 부시일파에 좋은 결과만 가져다줄 때 선호되는 것 같다. 그들은 불행히도 뒤틀린 사람들이다.


(7) 일곱째는 그 지역과 세계에 걸쳐 친구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시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조차도 그 정책이 정반대 효과를 낳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들은 “만들어지지 않은” 친구를 갖고 있고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소위 친구들은 부시일파로 하여금 이것이 중요하지 않고 미국은 그 정책을 명령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게 할만큼 [부시일파를] 쇠락시켰다. 


(8) 여덟째는 미국의 모든 잠재적인 적과 방해자들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미 군사력의 신뢰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력 사용, 특히 압도적인 군사력은 부시행정부의 독특한  말인 “충격과 공포”로 끝날 경우에만 작동한다. 우리는 공포가 아니라 충격을 보았다. 거대한 미군이 이라크에서 날마다 커가는 대중 저항에 의해 저지될 때 그것은 공포라고 하기 어렵다. 미군이 부대원의 의미에서 극한까지 늘려져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그 숫자를 확장할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이 명백할 때 그것은 공포라고 하기 어렵다. 미국의 군사 및 정보 대원들의 그들의 민간이 상관들에게 신중함을 요구할 때 그것은 공포라고 하기 어렵다.


신뢰를 보여주는 것에 있어 문제는, 성공이 성공을 토대로 한다면 성공 결핍은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부시체제는 이 달갑지 않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것이 만약 학교 숙제라면 성적은 “훌륭한”이나 “매우 좋음”이 아니라 기껏해야 “가까스로 통과한”이고 최악으로는 철저한 실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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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갔다왔어요.


 - 헤즈볼라 깃발 사진

 

 

모든 점령과 침략에 맞서 저항하라 !
- 9. 17 ~ 19 베이루트 국제 반전 반세계화 전략회의 리포트

 


베이루트 국제회의가 열리기까지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전운동은 2003년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명을 거리로 불러내 이라크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성공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뉴욕타임즈에서도 미국과 다른 또하나의 ‘수퍼파워’라고 할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5월에는 자카르타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를 이끌어냈다.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는 ‘단결 선언’, ‘이라크에 대한 입장과 행동계획’,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행동계획’ 등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반전운동의 기본 입장과 운동계획이라고 할 만하다. 이는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의 반전운동 총회로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이라크 침략 1년이 되는 3월 20일 국제행동이 광범위하게 호소되고 합의되었다. 이번 베이루트 회의는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라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반전(반세계화)운동 회의를 열자는 문제의식 하에 개최되었다. 또한 제안문에서도 말하는 바, “중동 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밀착된 관계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련된 최근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운동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 회의의 주요 조직자인 ‘남반구 포커스’의 월든 벨로 교수는 발제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여기 베이루트에 모였다. 상황은 복합적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점점 더 깊숙이 베트남과 같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데, 2003년 3월 20일 침공 이후 미군 병사들의 사망 숫자는 9월 첫째주에 1000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직도 시오니스트 장벽[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이 하루에 1킬로미터 비율로 건설중이다...오늘, 기업주도 세계화의 최고 기구인 WTO는 지난달에 개도국에 대한 경제적 무장해제를 촉진시키도록 고안된 ‘제네바 기본골격’ 합의를 가지고 제 발로 다시 돌아왔다.”


 




40여개 국가 260여명이 2박 3일동안 토론

베이루트 국제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조직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MST(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캐나다자동차노조, 팔레스타인노조, 청년단체 등 풀뿌리 대중조직부터 각국의 반전단체들(영국, 호주, 그리스, 남아공 등의 반전연합, 미국의 정의평화연합),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들, 평화운동 단체들, 반세계화운동 단체들, 이태리공산주의재건당, 그리스녹색당, 레바논공산당, 헤즈볼라 등 정치조직들, 연구단체들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었고, 나라별로 보아도 태평양의 피지에서부터 동티모르, 남쪽의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노르웨이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무엇보다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등 현지 중동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가하였고 거의 과반수에 이르렀다. 아랍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처음으로 이렇게 국제적인 연대에 함께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등에서 참가하였다. 회의규모는 당초 예상을 훨씬 넘었는데 그만큼 국제적으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향후 방향 토론에 대해 관심이 깊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각 대륙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

회의 첫날 오전 레바논 조직위원회 단체들(헤즈볼라, 레바논공산당, 진보사회주의당, NGO네트워크, 알-레카클럽)의 환영사 이후 레바논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점령 반대투쟁 사례를 들었고 오후에는 각 대륙의 운동 상황 보고를 들었다. 다음은 각 보고자들의 간략한 보고내용이다. 남아공에서는 1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반전연합을 결성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 반대, 미제국주의 반대, 이라크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요 이슈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팔레스타인 같은 경우도 허다하다. 반전활동가들이 대부분 반세계화활동가로서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의 침략에 저항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플랜 콜롬비아’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문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다. 푸에르토리코 같은 곳에서는 승리하기도 했다. 또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군사주의가 문제다. 한편 독일에서의 Monday Demonstration과 같이 신자유주의의 복지삭감, 사유화, 탈규제 등에 반대하는 운동이 반전이슈와 연결되고 있다. 10월 14일부터는 유럽사회포럼이 개최된다. 미국의 경우 미 정부는 국가 안팎에서 전쟁과 세계화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의 정체성도 공화당과 비슷하다. 즉 사회복지 삭감, 예방공격 등이다. 또한 미국 내에는 6000여개 군사기지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120개 국가에 1000여개 기지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제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부시가 질 것이지만 전쟁과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운동과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10년 이상의 이라크 제재정책도 실패했다. 시오니즘과 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아랍 민중들은 저항하고 있다.

 

무엇이 토론되었나

둘째날인 18일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주제는 1) 전쟁을 저지하지 못해서 운동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가? 2) 우리가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나? 3) 우리 행동, 정치, 조직의 한계는 무엇인가? 4) 각기 다른 운동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힘인가 한계인가? 5) 우리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6) 미 대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7) 체첸이나 콜롬비아, 다르푸르(수단) 같은 곳의 갈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었다. 나온 의견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우리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점령이 실패하고 있다. 2) 반전운동이 사회복지 삭감 항의 등 반신자유주의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독일의 먼데이 시위나 미국의 50만 시위)
3)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에 조건없이 지지 연대해야 한다.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이라크만의 것이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의 투쟁이다. 4) 운동의 다양성을 강점으로 확대해야 한다.(인종, 성적차이, 인권, 민주주의 등등) 보편성을 강화해야 한다. 5) 미디어의 역할을 고발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6) 부시가 이라크에서 패배해도 운동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는 미국 자본주의의 실패이므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7)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 확장되어야 한다. 8) 전쟁범죄에 대한 침묵을 폭로하면서 대중을 조직하자. 국제 이라크전범 법정을 확대시키자. 9) 국제 행동의 날에 집중하고 이라크 민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10) 아랍국가들 내에서 민주주의 투쟁도 중요하다. 아랍운동들간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11) 미0년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전쟁이 더 확대될 것이다. 부시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적 시위가 대선에 즈음해서 필요하다. 12)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2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12)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자.
한편 20-30명의 이라크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팔루자에서 온 셰이크(성직자) 아이만 모하메드가 “현재 이라크는 야만적인 공격을 받고 있고 종교시설마저 파괴되고 있다. 저항이 미군 등에 의해 테러리즘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이해에 해가 되면 테러리즘인 것이다. 안전은 그들만의 것이고 이라크인들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을 쫓아내지 못한다. 이라크 저항은 순수한 저항이다.”라고 하면서 이라크 저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라크 참가단의 주요 제안은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고 연대해달라는 것이고, 내년에 헌법제정회의시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자는 것이다. 또한 감옥에 갇힌 이라크 여성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팔레스타인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주로 분리장벽 철폐운동이 다뤄졌다. 역사적으로 점점 팔레스타인 지역은 축소되어 왔고 현재 가자, 라파, 예루살렘, 나블루스 등에서 장벽이 건설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또한 인접 국가들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도 가혹하다. 거의 생존조건 이하로 살고 있고 미숙련 하층 직업에만 종사해야 한다. 수자원을 비롯한 각종 자원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분리장벽을 철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해야 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

회의 3일째인 19일은 원래 오전에 선언문 초안을 논의하고 오후에 최종 선언문을 논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오전에는 브라질 활동가가 2005년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포럼 순서가 끝난 이후에는 1)이라크 점령 반대 2)팔레스타인 저항 3)경제적 군사적 세계화 등 세 그룹으로 나눠서 행동계획 논의를 하였다. 이라크 관련 행동제안은 점령감시센터 재개(Iraq Occupation Watch Center가 여러 문제로 인해 4월에 중단되었음), 10월 13-14일 일본에서 열리는 재건기금마련 회의 반대 성명서 조직, 전쟁기업 반대캠페인, 저항세력에게 식량과 의약품 지원, 이라크 전범 국제 민중법정, 외국용병 철수 캠페인, 10월 17일 국제행동, 국제적 이라크법률가위원회 구성, 내년 이라크의 헌법제정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 바그다드에서 개최 등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해서는 분리장벽 반대 캠페인, 이스라엘 보이콧, 국제방문단 조직, 11월 9-16일 국제행동,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춘 국제행동, 내년 5월 15일 국제행동 등이 제안되었다. 경제적 군사적 세계화에 대해서는 군사기지 반대 캠페인, 2005년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이를 위한 대중교육과 캠페인,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반대운동 등이 제안되었다.

이후 선언문 초안과 행동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 대표단, 헌법제정회의에 대응하는 바그다드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이번 회의에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에서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내년 헌법제정 회의시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열자'고 제안했고 월든 벨로 등등이 이를 지지했는데, 이에 대한 반대가 영국 등에서 제기된 것이다. 내용인즉슨 핵심은 지금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이 대표성이 없는 작은 집단이라는 것이고, 이라크 내에서 모종의 정치적 기획을 하여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라크 대표단을 조직한 것으로 보이는 활동가는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 모두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루자, 사마라, 쿠파, 바그다드 등에서 왔고 저항을 하고 있다.“면서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몇 번의 인신공격성 발언들도 오갔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광범위한 부분이 추진하여 요청하면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작은 부분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할 수 없다“는 제기도 이어졌다. 급기야 이라크 대표단들이 회의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라크에서 국제회의를 열자는 제안과 관련해서 문구가 3가지 제안되었는데 이것도 논란을 거듭하다가 '통과시키지 말고 선언문과 따로 분리하되 서명할 곳은 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에 동의하면서 논의를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만이 합의된 것으로 되었고 앞서 많이 제안된 행동계획은 합의되지 못한채 남게 되었고 향후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지지 연명을 받기로 하였다.


베이루트 회의가 남긴 것들
전체적으로 대략 평가해 보자면 첫째, 아랍지역 조직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아랍의 운동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시리아 등에서 참여하여 운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인적 교류를 맺은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한다. 둘째, 이 연장선상에서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는 것에 동의했고 그들과 직접 토론함으로써 구체적인 과제들을 활발하게 제안할 수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는 과제와 행동계획이 잘 조직되어 제출되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 자체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하여 일정이 계속 변경되었고 지나치게 팔레스타인, 이라크 문제만 부각되어 전체적인 군사주의의 문제, WTO-세계화 문제는 미흡하게 다뤄졌다. 넷째, 이라크에서의 국제회의 문제에 대한 논란때문에 선언문만 합의되고 행동계획이 합의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대표성 문제와 국제회의 개최여부만 논쟁됨으로써 다른 행동계획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것이다.

노르웨이 ATTAC의 한 활동가는 이번 회의가 여러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 입장과 계획을 광범위하게 토론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그리스의 한 활동가는 바그다드 국제회의가 이라크 내에서 행동을 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텐데 이에 대해 개최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 크게 아쉽다고 말하였다. 이라크에서 온 한 사람도 그것이 결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이러한 평가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신자유주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 역시 그러한 국제적 운동의 일부로서 연대와 투쟁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범 민중재판 운동, FTA-WTO 반대투쟁 등 현실적인 투쟁을 강화하면서 그러한 계기를 살려나가자.


 

- 베이루트 회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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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 파병 연장 때려치우고 자이툰부대 철수시켜라!

 

즉각 철군해야 할 마당에 파병 연장 추진이 웬말인가
망국적 파병 연장 때려치우고 자이툰부대 철수시켜라!


1. 국방부에서 올해 말이면 끝나는 이라크 추가파병 시한을 연장하기 위한 국회 동의안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국민적인 여론과 제 시민사회 운동진영의 끈질긴 반대투쟁을 외면하고, 노무현정부가 8월 3일 선발대를 출발시키고 28일에 본진을 출발시킨 것에 대한 분노가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다. 그런데 파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연장 동의안을 추진한다니 국방부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인가. 이는 이라크 상황이나 자이툰 부대 활동 양상과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파병 연장 동의안이 미리 준비되고 있었던 것을 정부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2. 노무현정부의 철저한 보도통제로 인해 자이툰 부대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국민들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 연장 동의안을 추진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된다. 파병 연장을 해야할 이유는커녕 무엇을 하러 갔는지조차 납득이 안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근거로 '도둑 파병'에 '졸속 연장'까지 추진한단 말인가. 심지어 최근에는 이라크의 문장단체가 "한국인에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미국을 돕는 나라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비디오테잎까지 입수되었고, 정부가 자이툰부대에 테러경계령까지 내렸는데도 '묻지마'식 파병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3. 이라크는 미군과 그 꼭두각시인 임시정부가 이라크 저항세력과 연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지는 저항세력의 투쟁은 더 많은 군대로 진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4만명에 이르는 미군과 외국 점령군의 학살과 만행에 대해 이라크 민중들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점령군의 수렁이 되고 있는 이라크에 세계 3위 규모로 파병한 것도 모자라 연장까지 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재앙으로 빠져드는 꼴이 될 것이다. 심지어 미국 대선전에서도 이라크 전쟁이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파병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노무현정부가 나서서 확실한 전쟁참여를 독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히 규탄하고 분노한다.

4.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식의 연장이 병력 증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을 상기해보라. 태권도 교육지원으로부터 시작해서 30만이 넘는 병력을 파병하는 끔찍한 상황에 이르지 않았는가. 미군과 더불어 장기주둔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노무현정부는 도저히 용서될 수 없다. 파병정권, 전쟁참여정부는 역사와 민중앞에 무릎꿇고 사죄할 일만 남았을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망국적인 파병 연장 시도를 때려치우고 자이툰 부대를 철수시켜라.

2004년 9월 3일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

 

* 제가 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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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나자프

나자프 -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아니라 부시가 이 반란에 불을 붙였다

 

밀란 라이 (2004. 8. 13)

(원문은 http://www.zmag.org/CrisesCurEvts/Iraq/IraqCrisis.cfm) 참조

 

 

다수 시아파에 대한 습격

 

미국은 이라크인 다수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이 반란을 촉발한 것은 시아파 저항세력의 전투성이 아니라 완전한 지배를 위한 부시행정부의 욕망이다. 미국은 다수파인 시아파를 길들이려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군은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병력과 8일간 수백명을 사망하게 하는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나서 이라크 남부의 나자프에서 시아파의 최대 성지인 이맘 알리 사원을 포위하였다.

이라크 임시정부에 따르면 ‘미 공군은 시아파 도시인 쿠트를 폭격하여 72명을 죽게했고 약 150명을 부상당하게 했다’(BBC뉴스온라인, 8월 12일) ‘영국군은 아마라와 바스라에서 저항세력과 격렬하게 싸웠고...아마라 남쪽 거리에서는 시아파 군대를 10명 사살하면서 밤새 싸웠다고 민병대가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시민 4명도 사망했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목적은 아마라에 대한 통제를 재획득하는 것이었다’고 영국군 대변인인 스파이크 윌슨 대대장이 말했다. (‘영국군, 10명 사살’ 타임즈 8월 12일) 통제가 모든것이었던 것이다.

 

 

다음 차례 : 사드르 시티, 바그다드

 

‘이야드 알라위 총리에 대한 최대의 도전 가운데 하나는 수도에 대한 정부 권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바그다드 북동쪽의 시아파 거주지로 알려진 사드르 시티는 점점 1980년대의 베이루트와 닮아가기 시작했다. 미군 탱크와 전투기들이 반란을 공격함에 따라 지난 주에 수십명이 죽었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텔레그래프의 아드리안 블럼필드가 사드르 시티를 방문했다. ‘미군에 의해 시민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제 피가 흥건한 병원 수술실 바닥에서 의사들은 미군 탱크의 병사들이 쏜 총에 배를 맞은 6살난 알리 후세인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의사들은 말했다. ‘오늘 적어도 20명이 죽었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사드르 시티의 상인인 메흐디 누리는 말했다. ‘미국인들은 지금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미국인들은 평범한 이라크인들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싫어한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죽음과 더 많은 죽음만 목도할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미군이 나가기를 애원한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알라위는 워싱턴을 위해 봉사한다 이것은 나자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다. ‘이라크 정부군 역시 개입되어 있지만 그들의 참여는 주로 정치적인 이유때문이다 - 특히 이라크 임시정부의 총리를 완전히 뒷받침하는 작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조나단 마커스, 외교 통신원, BBC 뉴스온라인 8월 12일) ‘임시정부의 수상 이야드 알라위는 사드르의 메흐디 민병대를 완전히 파괴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의 신용을 경계선위에 놓았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그러나 ‘이라크의 두명의 부통령 가운데 한명이자 시아파 최대정당인 다와 당의 지도자인 이브라힘 알-자파리는 어제(8월 11일) 미군은 나자파 공격을 중단해야 하고 그 임무를 이라크 보안군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가디언, 8월 12일 3면)

 

자파리는 ‘올해 초 의견조사에서 이라크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 수위에 올랐다’ (파이낸셜타임즈, 8월 12일 7면)

 

 

사드르가 아니라 미국이 이 반란을 시작했다

 

‘바그다드의 한 외교 소식통은 어제 왜 성직자가 이 피비린내 나는 반란을 이끌고 있고 4개월동안 선동해왔는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영국군, 10명 살해’, 타임즈 8월 12일)

 

언론보도는 이 폭력의 기원을 모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간단한 진실은, 최초의 ‘사드르 반란’에 있어 폭력은 시아파 군대가 아니라 미국에 의해 ‘선동되었다’는 것이다. 시작점인 8월 2일로 돌아가보자. ‘미군은 바그다드에서 영향력있는 수니파 성직자를 체포하고 쿠파에 근거하고 있는 급진 시아파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자들과의 2개월간의 휴전을 깨면서 어제(8월 2일) 두 이슬람 정치세력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바그다드의 사드르 대변인 셰이크 마흐무드 알-수다니는 미군이 사드르의 집을 포위했다고 언론에 말했다. 로이터뉴스는 미군이 나자프 옆의 쿠파에서 사드르 집 근처까지 이동했고 메흐디 민병대와 교전하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말을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즈, 8월 3일 9면)

 

흥미로운 것은, 뒤에 부인되었지만 처음 보도에서는 사드르를 체포하는 것이 임무였다는 것이 명확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작년 나자프에서 라이벌 성직자 살해와 관련하여 사드르에 대해 체포영장이 청구되었다고 말한다’. 인디펜던트誌는 또한 ‘올해 초 휴전협상 당시 이라크 관리들이 사드르는 체포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 8월 3일 25면) 또다른 거짓말인 것이다.

며칠 후 알라위 정부의 고문인 사바 카딤은 사드르 체포가 최우선이라고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사드르가 체포될 것이냐고 물었을때, 카딤은 “우리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범죄자들과 싸울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세력이 큰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디언, 8월 7일 1면)

 

8월 2일의 공습이후 ‘성직자들의 고위 조력자들을 몇명 체포한 것에 대응하여 사드르의 지지자들이 이라크 경찰 18명을 붙잡고 있는 동안 긴장이 고조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자프에서의 본격적인 폭력은 8월 4일 시작되었다. (가디언, 8월 6일 2면)

 

8월 5일 이전에 ‘무크타다 알-사드르에 연계된 군대는 영국군에 대한 성전을 선포했다’. 8월 3일 영국군은 바스라에서 사드르 지지자 4명을 체포하였다. 전투는 8월 5일 ‘그들을 석방하라는 시점인 정오가 지나서’ 발발했다. (텔레그래프, 8월 6일 14면)

 

이 모든 것은 올 봄의 ‘사드르 반란’의 시작과 매우 유사하다. 그것은 ‘미 점령당국이 그의 신문을 폐쇄하고 핵심 조력자를 체포하고 온건 시아파 지도자 살해혐의로 그의 체포를 요구한 이후’ 발발했다. (BBC 뉴스온라인, 6월 16일)

 

8월 5일 아마라의 사드르 대변인은 이러한 최근의 폭력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언급했다. ‘점령군의 행위로 인해 휴전은 끝났다’. (텔레그래프, 8월 6일 14면) 사드르는 휴전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사드르의 대변인은 사드르 군대와 미군 사이에서 6월에 합의된 휴전의 회복을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즈, 8월 6일 5면)

 

나자프의 주지사인 아드난 알-주루피는 이러한 요청에 대해 ‘또다른 휴전을 위한 타협이나 여지는 없다’고 대응했다.’ (타임즈, 8월 7일 18면) 어느 미 외교관은 ‘이것은 우리가 정말 이길수 있다고 느끼는 전투다’라고 말했다. (텔레그래프, 8월 7일 12면)

 

 

더 이상의 휴전은 없다

 

사드르가 휴전을 원했던 이유는 정치 과정의 일부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첫 휴전협정의 일부로서, ‘사드르는 나자프 출신이 아닌 그의 지지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다하고 집으로 갈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내년 선거에 출마하게 위해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드르가 민병대에게 나자프를 떠나라고 명령하다’, BBC 뉴스온라인, 6월 16일)

 

바그다드에 있는 BBC의 두메타 루스라는 비거주 전투원들은 나자프를 떠나라는 명령은 ‘미래 이라크 정부에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시험적인 조치’일 수 있다고 여겼다. 사다르는 ‘지지자들에게 이라크 보안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고 최근에 형성된 임시정부는 “통일된 이라크를 건설”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사드르가 민병대에게 나자프를 떠나라고 명령하다’, BBC 뉴스온라인, 6월 16일)

 

사드르는 더 이상 임시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군사적인 동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라위 정부와 부시 정부가 두려워하고 파괴하기를 원하는 것은 정확히 다수 시아파의 정치적 힘이다. 그것이 그들이 사드르를 사로잡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 이유다. 그것이 그들이 나자프를 공격하고 수백명을 죽이는 이유다. 그것이 그들이 이라크 전역에서 시아파 지역사회를 공격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지배에 대한 위협은 사드르의 총이 아니라 득표력이다. 선거(국민의회 선거라도)는 (정치적) 반대가 함께 뽑히거나 분쇄될 때까지 치러질 수 없다. 8월 9일 바스라의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 ‘리 오캘러헌’은 다음주에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다. 그의 이모이 마가렛 에반스는 ‘토니 블레어에 대한 내 메시지는 우리가 거기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라크에 있는가? 내 메시지는 남아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텔레그래프, 8월 11일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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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이라크

폭발하는 이라크
부시와 블레어는 이 나라가 폭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 로버트 피스크 (인디펜던트 誌, 2004. 8. 3)

 

 

바그다드 : 이 전쟁은 사기다.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담후세인과 알카에다간의 연관성 없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에 이르게 한 다른 모든 거짓말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새로운 거짓말들을 말하고자 한다.

전쟁 이전에 우리 정부들이 존재하지 않는 위협에 대해 경고했던 것과 똑같이 그들은 지금 존재하는 위협들을 숨기고 있다. 이라크의 대부분 지역은 바그다드에 있는 미국의 꼭두각시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으나 우리는 이를 듣지 못한다. 그리고 매달 미군에 대해 수백차례의 공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미군이 죽지 않으면 우리는 듣지 못한다. 이번달[7월인 듯함] 바그다드에서만 해도 이라크인 사망자는 700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침략전쟁 종결이후 최악의 수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듣지 못했다.

 

이러한 재앙의 무대 관리는 사담 후세인의 “재판”에서 너무나 명백했다. 미군이 사건의 테잎을 검열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다른 11명의 피고인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삭제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미군이 후세인으로 하여금 - 그가 법정에 들어설때까지 - 자기가 처형당하러 간다고 믿게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법정에 들어섰을 때 그는 판사가 사형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결국 이것은 사담 자신이 국가 안보 법정을 운영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그가 “어리둥절”해 보였던 것은 틀림없다 - CNN의 유용한 묘사 - 왜냐하면 물론 그가 그렇게 보이기를 의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했다. 그것이 사담이 주히 판사에게 “당신은 변호사인가?... 이것은 재판인가?”라고 물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첫재판 - 그의 교수형을 위한 예비 행위가 아니라 - 임을 신속히 알아차리자 그는 빠르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사담의 이후 법정 출현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기소된 사기꾼 아흐메드 찰라비의 동생[조카라고도 보도됨]이자 재판과 관련하여 미군의 신뢰를 받고 있는 살렘 찰라비는 2주전 이라크 언론에서 모든 언론이 재판으로부터 배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알수 있다. 왜냐하면 사담이 밀로세비치처럼 행동한다면, 그는 실제 그의 체제가 맺고 있던 정보 군사 커넥션 - 우선적으로 미국과 맺고 있었던 -에 대해 말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주간 이라크에서의 삶은 위험할뿐 아니라 섬뜩한 경험이다. 나는 나자프로 차를 몰아 갔다. 8번 고속도로는 이라크에서 가장 안좋은 도로가운데 하나이다. 외국인들이 거기에서 살해된다. 불탄 경찰차와 미군 트럭이 널려 있다. 70마일에 걸쳐 모든 경찰 검문소가 버려져 있다. 몇시간 후에 나는 바그다드 내 방에서 TV를 본다. 블레어가 하원에서 마치 자기가 학교 토론대회의 승자인양 ‘버틀러 보고서’[이라크전쟁 정보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히죽거리고 있다.

 

실제로 바그다드에서 요즈음 서방의 TV 프로를 보는 것은 화성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 같다. 블레어는 이라크가 안으로 파열하려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부시는 이를 알지 못하는가? 미국이 임명한 ‘정부’는 바드다드 지역만을 통제한다 - 그리고 거기에서도 장관들과 공무원들은 차량폭탄과 암살로 죽는다. 바쿠바, 사마라, 쿠트, 마흐무디야, 힐라, 팔루자, 라마디 등 모든 곳이 정부 통치 밖이다. ‘수상’ 이야드 알라위는 바그다드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블레어는 ‘일부 언론인들은 이라크에 재앙이 있기를 항상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재앙은 지금 존재한다.

 

자살폭탄대가 경찰서 바깥에 [줄을 서] 있는 수백명의 지원자들을 향해 차량을 부딪혔을 때, 도대체 누가 내년 1월에 선거를 개최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선거를 관장할 사람들을 임명하는 국민회의(National Conference)도 두차례나 연기되었다. 그리고 내 노트북에서 지난 5주동안의 기록을 보면, 내가 얘기한 이라크인, 미군, 용병 - 그가 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남아공인이든간에 - 누구 하나도 내년 1월에 선거가 열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 때까지 이라크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리고 또한 그들 대부분은 왜 우리 언론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나 바그다드에서 나는 TV를 켜고 부시가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이라크가 개선되고 있고 이라크인들이 ‘연합[군]’을 지지하고 미국이 제조한 새로운 정부를 지지하며, ‘테러와의 전쟁’이 승리하고 있고 미국인들은 더 안전해졌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는 인터넷 사이트로 가서 두건쓴 두명이 리야드(사우디)에서 미국인의 머리를 쳐내는 것과 이라크에서 칼로 미국인의 척추를 찢는 것을 본다. 매일 이곳 신문들은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또다른 건설회사들의 리스트를 싣는다. 그리고 나는 바그다드 시체안치소의 친절하고 비극적으로 슬픈 그 직원을 방문하러 간다. 매일 거기에는 우리가 아마도 해방시키러 온 이라크인 수십명이 그들 어깨위의 싸구려 관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어나르면서 울부짖고 울고 저주한다.

 

나는 토니 블레어의 진술을 계속 다시 읽는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옳았다고 나는 계속 확신한다. 그것은 내 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끔찍한 결정일 것이다. 챔벌레인[히틀러에 협조한 영국총리]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챔벌레인은 그것이 어려운 결정이라고 보지 않았다. 왜나하면 나찌의 폴란드 침공 이후 그것은 옳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바그다드 거리를 운전하여 지나면서 겁에 질린 미국 순찰대를 보고, 새벽에 창문과 방문을 흔드는 천둥소리같은 폭발을 들으면서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하는 것, 작년에 이라크를 침략한 것은 블레어가 해야만 했던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 정확하게 - 이것이 잘못된 결정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블레어가 바스라에서 영국군에게 했던 주장을 기억한다. 그것은 영국군의 희생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진짜 살점과 피’라는 것이다. 맞다. 그것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도 없이 뿌려진 진짜 살점과 피였다.

 

"살상 권한 있음(Deadly force is authorized)"이라고 바그다드 전역 검문소마다 씌어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한 권한인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다. 또한 바그다드 바깥의 고속도로에서 미군 병사들은 운전자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지르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총을 발사한다. 어느 기갑부대 하사관은 나에게 말했다. “어느날 우리 검문소에 해병대 몇이 내렸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저쪽에 있는 집에서 우리를 향해 총격을 가한다고 했다. 그들중 하나가 물었다. 저 집? 우리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 SUV 3대와 티타늄으로 만든 많은 무기들을 가지고 그 집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뒤 돌아와서 ‘우리가 그 집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아무런 총격도 받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군은 현재 나자프를 포위한 것을 자랑한다. 37사단 1연대의 대령 게리 비숍은 그것이 ‘이상적인’ 전투(그가 미군에 대항해 싸우는 ‘메흐디 민병대’를 이끄는 무크타다 알 사드를 살해하거나 사로잡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였다고 믿는다. 미군이 이맘 알리, 후세인 사원을 손상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이상적’이었다고 비숍은 설명했다. 이라크인들은 이것을 어떻게 여길까? 만약 무슬림 군대가 켄트[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와 폭격당한 캔터베리[영국 Kent 주의 도시, 영국 국교 총본산의 소재지]를 점령하고 나서 그들이 캔터베리 대성당을 손상시키지 않았다고 자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감사해야 할까?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에 의해 환타지가 되어버린 전쟁에 대해서 실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생명의 위협 때문에 이라크로부터 외국 노동자들이 쏟아져나오자 미 국무방관 콜린 파월은 인질을 잡아두는 것은 이라크 재건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한다. 영향이라니! 석유 파이프라인 폭발은 지금 정전만큼 일상적이다. 바그다드 지역에서는 하루에 전기가 4시간만 들어오고 거리는 외국 용병들이 우글거린다. 창문에서는 총구가 나와 있고 길을 비키지 않는 이라크인들에게는 사납게 욕설을 외친다. 이것이 블레어가 얼마전에 자랑하던 ‘더 안전해진’ 이라크다. 영국정부는 도대체 어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인가?

사담 재판을 보자. 모든 아랍 언론 - 바그다드의 신문들을 포함하여 - 들은 판사의 이름을 싣는다. 실제로 그 판사는 무크타다 알 사드르에 대항하는 살인 지시[혐의]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그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내가 인디펜던트 誌에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 나는 영국정부 대변인에 의해 엄중하게 비난당했다. 살렘 찰라비[그 판사]는 나를 기소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 옳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법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했다. 우리는 11,000명에 이르는 이라크인을 살해했다. 그리고 미국에 의해 임명된 찰라비는 내가 '살인선동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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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한 많은 것들

민주주의를 위한 그토록 많은 것들
So much for democracy
 
로버트 피스크 (Robert Fisk; UK Independent; July 08, 2004)

* 원문은 Z-NET(www.zmag.org)에 실려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겠다고 약속한 미국과 영국의 침략 17개월 이후, 미국이 승인한 총리 이야드 알라위는 어제 이라크 당국이 계엄령, 통행금지, 시위금지, 이동제한, 전화도청, 우편검열, 계좌동결을 강제할 수 있는 법률을 제출했다.
군부가 이라크 통치분야에 임명될 수도 있다.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형조치의 일시적인 복원도 또한 가능하다. 따라서 이라크는 이미 다른 아랍국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법률이 봉쇄하고자 하는 저항은 법률[도입]이 발표되자 마자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총성과 함께 폭발했다.

믿을수 없게도 전투는 무장세력이 이라크 경찰과 군대를 공격하면서 티그리스 강 옆의 번화가 가운데 하나인 하이파 거리에서 발생했다.
지붕꼭대기 높이에서 미군 무장헬기가 화염에 쌓인 건물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 보였다. 총알은 티그리스강을 가로질러 적어도 세명의 병사들에게 날아갔고 이라크 병사들로 여겨지는 그들은 강둑 근처에서 죽었다.
어제 수도에서 일어난 그 폭력사태는 피할수 없었다. 그것은 미의 보호하에 정부 관리들이 살고 있는 차단된 지역에 대한 박격포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박격포 가운데 하나는 알라위 집 가까이 떨어졌고 다른 하나는 그의 당사 근처 병원옆에서 폭발하였다. 폭발은 도시 전체에 울려퍼졌다.

유산탄과 포탄으로 쌓여져서 밴 안에 있던 폭탄은 아침에 정부 본건물 근처에서 해체되었다. 오전 11시에 바그다드 바깥으로 운전하면서 나는 미군 호송차량 옆에서 화염과 파편을 날리는 또다른 거대한 폭발을 목격했다. 미군은 서부로부터 바그다드로 들어오는 길다란 트럭과 그 지역의 모든 고속도로 다리를 봉쇄했다. 150도(화씨) 폭염속에서 바그다드를 가로질러 교통정체는 수마일 이어졌다.

많은 이라크인들이 처음에 그 법률을 환영할지도 모른다. 미군이 지난해 침략후 수천명의 약탈자들로 하여금 바그다드를 뒤질수 있도록 한 이래 치안 - 혹은 치안부재 -은 그들은 가장 커다란 공포가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사담 치하에서 20년 이상 가혹한 “치안”법 아래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법률은 알라위의 ‘새’ 이라크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이라크의 넒은 지역들이 - 적어도 4대 도시를 포함하여 - 저항세력의 수중에 있다. 수백명의 무장병력이 바그다드 북쪽의 사마라를 통제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팔루자와 라마디-화요일에 4명 이상의 미해병대가 살해된-는 현재 실제로 자치공화국이다.

이라크의 새로운 ‘법무 인권장관’-세계 어느곳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역할 조합- 바키탸르 아민은 계엄법률 발표를 위해 선택되었다. 그는 “이라크인들의 생명이 사악한 세력, 폭력단과 테러리스트로부터의 위험에 처해있다”, “우리는 이 법이 자유를 일정부분 제한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수많은 보장도 있다. 우리는 정의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법률은 “정부 고용인들이 그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막고 외국 노동자들이 이라크 재건을 돕기위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총 선거를 탈선시키려는” 반란세력들과 싸우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결국 이라크는 어제 역사의 또다른 파멸적인 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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