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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만세 - 차이밍량


 

"EBS 세계의 명화"에서 이번 주말 틀어주더라. 박찬욱 감독이 나와서 이 영화는 이러저러한 영화다라고 말해 주는데, 다분히 스포일러성이 짙다. 영화 다 끝난 다음에 나와서 "전 이 영화를 이런 이유로 재미있게 봤고, 저한테 이런 영향을 준 것 같아요."라고 인터뷰 한번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괜히 앞에 나와서 산통 다 깨 버렸다. 마치 식스센스보고 "주인공이 유령이래매!"라고 외치는 놈처럼 말이다.

 

현대인의 소외에 대한 감독 나름의 고찰이라고 하는데, 영화 내내 분위기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워서 ... 좋았다. 더위가 가신 늦여름밤에 어울릴만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딱 세번 웃었던 것 같은데 모두 극중 사강의 행동을 보고 그랬다. 사강이 혼자서 수박에다 키스를 할 때, 볼링공처럼 굴릴 때, 그리고 욕조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보고서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강생이라는 이 배우 우울하고 소심한 게이역을 참 충실히 소화해 낸 것 같다.

 

평소 현대인의 소외는 별로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피부로 느끼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가까운 문제이기에 단순히 관념적인 문제라거나 사회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속의 우울한 사강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이냐"라며 고개를 젓는 모습이 오버랩되더라. "머릿속에서 지향하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마치 경계인처럼 느껴졌다. 소외란 일상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인데 우연히 이런 영화를 통해서야 깨닫게 되다니... 일상을 통해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미쳐버릴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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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걸 - 까뜨린느 브레야


 

지난 여성영화제에서 "지옥의 해부"를 보려다 줄거리를 읽어보고 "아~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겠군(-_-;)"이라고 생각하고 브레야 감독의 영화는 못 보았었다.  이번에 팻걸이 개봉을 했길래 지나가다 이래저래 보기는 했는데 보고 난 후 굉장히 불편했다. 특히 마지막 5분은 너무 당혹스러웠다.

 

원제가 "내 자매에게"이고 한국개봉시 제목이 "팻걸"인 것처럼 감독은 팻걸 "아나이스"의 입을 통해 "내 자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 듯 한데, 나는 그저 줄거리만 쫓아갔을 뿐 주인공들의 감정의 상태에 전혀 동화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극장을 빠져나왔던 것 같다. 역시 나는 남성이기에, 그리고 삶의 경험이 일천하기에 절감할 수 밖에 없는 한계인 것 같다.

 

"여성"에 대해서 내 나름의 기준으로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 영화였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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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갔다

목요일에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입 속에서 왠 덩어리(?)가 느껴져서 뱉어보니 이빨의 일부분이다. 어릴 적 윗쪽 사랑니를 때운 적이 있었는데 일년 전쯤인가 아말감이 떨어져 나간 걸 가만히 두었더니 썩어서 부숴져 버렸나보다.

 

모든 병원에 가는 게 다 두려운 일이지만 내겐 치과 가는 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어렸을 때 너무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어서 치과하면 고통, 아픔 이런 단어가 연상 되더라. 일전에 치과의사가 주인공을 효과적으로(?) 고문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치과의사는 환자를 아프게 하려면 엄청 아프게 할 수 있는 무서운 사람들인 것 같다. 올드보이에서도 장도리로 이빨 뽑는 거 보면 살벌하쟎어...?-_-;;

 

근데 사랑니가 부숴져 떨어져 나간 부분이 예리해져서 자꾸 혀하고 부딪쳐서 아프길래 오늘 오전에 큰 맘 먹고 치과에 갔다. 그냥 집앞의 지하철역으로 가니 왠 치과가 그리도 많은지... 눈 앞에 보이는 것만 4군데더라. 야~ 이 많은 치과들이 다 영업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

 

규모나 업력이 중간쯤 되는 곳을 골라서 들어갔다. 중후한 분위기(?)의 대머리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신문을 보고 있다가 대뜸

 

-진료받을 거에요? 

=네

-여기 누워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사랑니가 부숴져서 떨어져 나갔고요, 충치도 있는 것 같아요.

-충치? 아.. 여기? 어차피 아래에 있는 사랑니는 잘 썩기도 하고 언젠가는 뽑아야 하니, 좀 더 두었다가 아프면 와요. 오늘은 위에 부숴진 것만 뽑으면 되겠네.

=아, 네~

 

마취주사를 놓고 한 10분 쯤 누워서 기다리다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이빨을 뽑는다. 끌같은 걸 입속에 넣더니 이빨과 이빨 사이에 넣고 누른다.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려와 흠칫 놀랐다. 내가 몸을 부르르 떠는 걸 느꼈는지 선생님이 묻는다.

 

-아파요?

=아니요.

-근데, 왜 떨어요? 난 또 마취가 제대로 안 된 줄 알았네.

 

끌로 이 사이를 벌리는 것 같더니 조그만 뻰찌를 넣더니 이빨을 쑥 뽑는다. 대단한 기술이다. 역시 나이든 치과 선생님이 훨씬 믿을만 하다니깐...-_-;;

 

진료비는 칠천원이다. 약값까지 합치면 8천4백원이네. 난 또 대형사고 터질 줄 알았더니만, 이만해서 다행이다. 근데, 이빨 뽑고 2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왼쪽 볼에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게 영 이상하다.

 

오늘은 방에서 누워서 좀 쉬어야지. 못 보던 책도 좀 보고 영화도 좀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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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6-70년대 중남미문학의 황금기 이후 다소 침체되었던 중남미문학을 부흥시킨 소설가가 루이스 세풀베다란다. 형이 읽고서 추천해 주길래 퇴근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그의 문체는 이전의 중남미 소설의 특징인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쉽고 평이하며 남미의 지역적 색채를 잘 담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갖가지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소설의 마지막을 향하여 맹렬히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뜻 제목을 보고 "이거 또 번역한 놈이 책 팔아먹으려고 제목부터 고쳤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제도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그리고 책장을 몇장 넘기다 보니 왜 이런 제목을 붙일 수 밖에 없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연애소설", 그리고 그것을 "읽는 노인"이라... 대단한 은유다.

 

칠레의 군부쿠데타에 반대해 반체제운동을 벌이다 투옥당한 경험이 있고, 이후 망명길에 올라 환경운동, 민주화운동 등에 투신했던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친자연적인 원주민문화를 말살하며 전지구를 약탈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1세계중심의 세계체제를 비판하며 그는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길인지 되묻는다. 마르케스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사람들을 감동시킴으로써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세풀베다는 대단한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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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덩샤오핑 특집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지난 주 KBS일요스페셜에서 덩샤오핑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하더라. 부제는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였는데 보는 도중에 눈물이 조금 나기도 했고 뒤로는 짜증이 나기도 하고 쫌 그랬다.

KB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사회과학원의 연구원은 현재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개거품을 물고 말했지만, 그건 어불성설이고... 설사 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를 계승한다는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노선이 과연 그러한지 의구심이 들더라.

 

근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제도교육의 희생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지도자들 중 내가 가장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저우언라이다.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평생 그가 사랑한 중국인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야말로 중국의 혁명1세대중 가장 올바른 혁명가이자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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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혁명으로가는열차" - EBS세계명작드라마

저녁밥을 먹다가 EBS를 봤는데 우연히 아래와 같은 드라마를 해 줬다. 다음주에도 계속 해준단다. 마지막 부분 밖에는 못 봐서 아쉬웠다. EBS는 심심할 때 시간 때우기 좋은 채널이다. 수능방송만 빼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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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미국 / TV용
감독 : 데미아노 데미아니
주연 : 벤 킹슬리(레닌), 레슬리 캐론(나디아) 도미니크 산다(이네사) 티모시 웨스트(파르부스), 피터 휘트먼(라데크), 자비에르 엘로리아가(라데크)

봉인열차를 타고 취리히에서 페트로그라드로 가는 레닌의 짧은 여정을 그린 영화로, 1917년 혁명 전야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내용

때는 바야흐로 1917년. 1차 대전 중인 독일은 양쪽 전선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이 연합국 측에 동조해 참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자 독일은 점차 불안해진다. 독일 수뇌부에선 만일 러시아를 전쟁으로부터 몰아낼 수만 있다면 독일은 서부 전선에 집중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을 한다.

이런 시점에서 헬판트 박사가 독일 사령부에 작전 계획을 들고 나타난다. 만일 독일이 한 인물로 하여금 러시아에서의 혁명을 성공시키게끔 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약해질 거란 내용이었다. 그 인물이란 다른 아닌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일명 레닌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를 안전하게 고국 러시아로 돌려보내자는 계획이 드디어 시작된다.

파르부스란 별칭의 헬판트 박사는 망명한 러시아인으로, 레닌의 편에서 함께 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업 수완이 좋은 그는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레닌과 그의 추종자들은 파르부스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있다. 독일 수뇌부는 그의 계획에 열렬히 찬성하고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생활 중인 레닌에게 접촉하도록 한다.

레닌과 아내인 나디아는 당시 취리히에서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러시아로 돌아갈 방법만 강구하고 있던 그들 앞에, 감자기 두 명의 스위스 사회주의자들이 독일 사령부의 놀라운 계획을 들고 나타난다. 힘든 협상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레닌은 독일이 마련한 특별 열차에 타고 스위스를 떠나 독일을 거쳐 스웨덴, 최종적으로 러시아의 페트로그라드로 향하는 여정에 오른다. 혼자 갈 경우, 체포되거나 반역자, 배신자로 몰릴 것을 염려한 레닌은 외국에 망명 중인 모든 러시아인들에게 함께 러시아로 돌아갈 것을 청한다. 그러나 멘셰비키측과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레닌과 정치적 동지 이상이라고 소문난 매력적이고 지적인 여성 혁명가 이네사 아르만트와 제네바에 망명 중인 유태인 그룹, 그리고 그루지야 출신의 젊은 혁명가 데이비드도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들의 출발을 앞두고 취리히의 기차역엔 멘셰비키와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이 이들을 비난하기 위해 모여든다. 비난의 함성을 뒤로 하고 기차는 마침내 출발하고 레닌의 옆에는 라데크와 지노비에프 등의 동지들이 함께 한다. 한편 독일에선 이들을 안전하게 호위할 두 명의 장교, 버링과 플라네츠가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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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포인트

 

오랫만에 극장가서 본 영화였다. 지난 주에 너무나 더운 날씨에 짜증이 나서 친구에게 푸념을 좀 했더니 친구가 "더위를 잊는 데에는 공포영화가 짱이지"라며 알포인트를 보러 가자 그랬던 거다. 근데 막상 오늘 날씨는 왜 이리 선선한지 공포영화를 봐야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예매를 했고 약속도 잡았는지라 그냥 봤다.-_-a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들었던 느낌은 한국의 오락용 공포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는거다. 공수창 감독의 전작이 미썸씽이어서 재미없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번 건 그럭저럭 괜찮았다. 99년 여름에 한국에서 시도된 최초의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포스터만 보고 텔미썸씽을 봤었는데 그땐 실망을 이만저만 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라인은 일본스릴러를 어설프게 따라한 티가 팍팍나고 감독의 연출력이 문제인지 영화는 긴장감없이 한없이 늘어지고, 게다가 심은하는 역시 분위기잡는 역할은 안 어울렸다. 심은하가 분위기를 잡으려면 입을 열면 안된다는 선례를 남긴영화였다.(심은하가 출연한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미술관옆동물원과 8월의크리스마스를 꼽겠다. 다른 건 정말 아니다.)

암튼, 이번 영화는 배경이나 소품 등등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나서 볼만했고 일본공포영화에서 따온 거겠지만 귀신의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시점샷도 좋았다.(소름이 돋더만=_=;;) 무리없는 오락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의 의도를 알겠기에 전쟁의 광기보다 초자연적인 힘에 영화의 무게가 실렸던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괜찮냐고 친구가 물어보면 그럭저럭 재밌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최태인 중위역을 맡았던 감우성의 연기도 꽤 괜찮았다. 오늘 영화가 시작하기 전 거미숲 예고편이 나왔는데 꼭 극장가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적이고 지적이면서 뭔가 상처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역에는 역시 감우성이 잘 어울린다.

근데 점점 우리나라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이 일본귀신을 닮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동북아 3국의 귀신을 비교해보면 중국귀신은 왠지 공포스러운 것보다는 코믹할 것 같고(강시?), 일본귀신이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우리나라는 그 중간쯤??? 우리나라의 귀신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코지를 한 인간에게 복수를 하거나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며 보통사람들에게 나타나 애원을 하는 수준이다. 애원하러 온 귀신을 보고 놀라서 사람이 죽는 걸 귀신보고 책임지랄 순 없다. 근데 일본의 귀신들은 어쩜 불특정다수를 타겟으로 삼고 사람들을 죽여대는지.. 이건 완전 도살 or 살육수준이다. 그리고 생긴 것하며... 난 작년여름에 링하고 주온을 본 다음날 아침에 머리감을 때 눈을 못 감았었다. 무서워서...-_-;;;

더운 날씨에는 역시 공포영화가 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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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만큼 짜증나는 요즘

오늘도 하루 수십통이 넘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회사에게 돈을 대출해 달라"는 부르주와들을 친절히(!) 상담하여 대출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을 내가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현실적으로 내 한몸 먹고 살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을까 싶다.-_-;;;

 

개자슥들... 오늘도 레파토리는 똑같다. 자기의 노고를 알아달란다. 아테네에서 금메달을 따기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운동선수들처럼 자기도 외화를 벌기 위해 노력하는 애국자(?)가 아닌가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공감하는 듯한 묘한 표정(이거 연습하느라 졸라 힘들었다. 이거 마스타한다고 대략 3개월 걸렸다.)을 지으며 그래도 내 선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득을 해야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빨리 꺼져. 이 부르주와 새끼야. 내가 왜 니가 돈지랄하는 일에 끼어들어 널 도와줘야 하는데? 그리고 난 애국자 졸라 싫어하고 올림픽도 안 봐"라고 뇌까렸다.

 

모두들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 특히 더러운 이익을 숨기기 위해서 국가를 내세운다. 특히 남한에선 부르주와까지도 국가, 민족 지랄 옘병이다. 어젠 TV를 켜니 축구보다 눈물을 흘리는 아해들을 보여줬다. 니네들... 왜 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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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이 책을 읽고나서 "퍼슨웹"과 이성형씨가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봤다. 이성형씨는  우리가 남미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포퓰리즘, 군사쿠데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자원부국임에도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린, 피해가야 할 모델로서의 남미가 하나의 시선이라면,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사과정과 강렬한 문화적 색채의 남미가 또 하나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미를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마한 파편에 불과할 뿐 남미 전체를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밖의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마치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머릿속의 기억을 왜곡하여 자신들만의 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교  때 "칠레전투"를 보고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서는 남미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남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중남미는 실제의 그곳과는 많이 틀릴 것이다. 그것을 지적해 준 위의 이성형씨의 말은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글을 읽다가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이 책 "배를 타고..."를 읽을 때도 그랬다. 이 책은 중남미 4개국, 그러니까 쿠바, 페루, 칠레, 멕시코를 다루고 있지만, 재미있게 읽혔던 부분은 쿠바, 칠레 부분이었다. 인디오들의 전통과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많은 페루는 읽는 내내 지루했고 잘 와닿지도 않았다. 마지막 부분인 멕시코도 그랬다. 멕시코 혁명기 벽화운동을 다룬 장을 제외하고 마야문명이니 떼오띠우아깐이니 하는 부분들은 내내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대신 칠레의 쿠데타, 광산지대의 노동운동이 칠레 현실정치에 미친 역사적 영향,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의 현상황 등은 너무나 재미있게 다가왔다.

 

어차피 중남미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그들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집단적인 경험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 구미에 맞는 이미지와 정보만으로 그들을 재단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억울해 할까. 자신들만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는 멕시코 치아빠스주의 반군을 유럽의 좌파지식인들이 자신들 나름의 (실패한 68혁명에 대한 향수어린)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나도 동일한 오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성형씨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다. 앞으로도 정치경제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문학 등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박식함이 우리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데 기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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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요즘 들어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요즘 들어 내가 하는 일은 중소기업들에게 돈 빌려주는 일이다. 그들은 나한테와 돈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업체의 사업성에 대해 얘기하다가 얘기가 쉬 풀리지 않으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종착지는 여기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수출하는 건 애국하는 것 아니냐? 난 애국자다. 그런데 왜 나한테 대출을 안 해주려고 하느냐..." 이 국가주의, 애국주의의의 광기라니. 도대체 나의 업무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내 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내 자신에게 이익이 될까?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 비인간적인 공장에서 열심히 미싱을 돌리며 착취를 받고 있을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걸까? 미국을 비롯한 1세계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옷을 입을 수 있게끔 해주니까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일인걸까?

 

김영삼이 세계화를 부르짖은지 10년 정도가 흐른 것 같다. 국내의 저부가가치의 생산시설은 동남아,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국제적인 분업체계(1.5세계인 한국은 1세계시장의 고객들이 편안히 싼값으로 소비할 수 있게끔 제3세계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국제적인 "마름"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도 공고히 다져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했다. 그동안 외환위기가 터졌고 확실히 내 주변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는데, 어째 이들은 자신들이 돌리는 쳇바퀴를 더욱 빨리 밟아대려고만 한다(어렸을 적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서 7시면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TV를 보시다 잠이 들었지만, 지금 내 주변에서 그런 생활을 하는 아버지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다).

 

이 책은 이러한 세계화시대의 기업에 포커스를 맞춰 다룬다. 즉 이 책의 주제는 초국적기업의 정체와 폐해, 국민국가와의 관계 설정, 있는 자들의 대변인인 초국적기구, 그 저항과 대안이다. 이 책은 초국적 자본이 활개를 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대안에 대한 부분은 빈약하다. 물론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며, 지금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이 책은 세계화와 초국적기업에 대한 알찬 개론서임에는 틀림없다.초국적기업은 그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사람들 머릿속에 박아놓은 이미지처럼 깨끗하고 정다운 이웃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노동착취를 전세계적으로 행하는 약탈자라는 이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또다른 숙제이다.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고본 같은 이런 책들이 훨씬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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