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곳과 때

분류없음 2013/11/11 12:24
2009년 4월, 한국을 떠났고 이듬해 4월 들렀다가 이 도시에 왔고, 공식적으로는 5월에 남쪽 국경을 통해 이 나라에 입국했다. 그 때 잠시 미국땅을 밟았으니 누군가 미국에 가봤냐고 하면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다고 할 수도 없는 곡절이랄까. 여느 사람들처럼 가방끈이 긴 사회지도층 인사도 아니고 돈은 더더욱 없으니 그야말로 남루한 이주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즉 권한과 책임을 누릴 수 있는 시민은 아니지만 세계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자존감은 날이 갈수록 도타워지고 있다. 아마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근원적 욕망 탓이리라. 한국에 있을 땐 -기껏해야 - 성차별과 소수파로서 겪는 따돌림 정도가 다였다면 인종차별, 성차별, 신분차별, 언어차별, 성정체성차별... 등을 겪고 특히 한국인들을 상대하면 그 차별과 불링-따돌림의 강도 올라간다. 아마도 지금쯤 한국은 - 한국의 이른바 운동권 집단은 더 많이 근사해졌을 것 같다. 나는 그저 한국을 떠난 2009년 4월, 거기에 딱 머물러 있다. /// 향수병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음식. 냄새. 소리. 사람들은, 글쎄... 강아지들, 한국형 강아지들이 보고 싶다. 발바리라고 해야 하나. 얼마 전 청국장을 사다가 끓여 먹었다. 진짜, 이른바 원조를 사다 끓였다면 누군가 경찰을 불렀을 거야. 아무튼 그걸 먹는데 콧구멍, 눈구멍, 목구멍, 귓구멍이 다 멍멍해서 한참 힘들었다. 하루면 물건이 오가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왜 그러느냐고, 특히 이민오신 지 십 년 넘으신 양반들이 들으면 등짝을 휘갈기시겠지만 청국장 그 냄새에, 발꼬랑내 그 냄새에 나도 모르게 그만. 훌쩍. /// 나를 기억하는 한국 영토 내에 있는 한국인들은, 우리 엄마 포함 2009년 4월 이전까지의 나를 기억하고 있겠지. 나는 거기에 그렇게 있겠구나.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 ---- 고향에 가고 싶다.
2013/11/11 12:24 2013/11/1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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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

분류없음 2013/11/07 14:02
어느 나라나 직업 정치인은 이른바 트러블메이커가 되지 않으면 장사를 잘 못하는 모양. 사는 도시의 시장님께서 연일 뉴스를 도배하고 계시니 머리가 아플 지경. 물론 보수당 출신. 한국으로 치면 한나라당이 아니고 새누리당. 이 양반은 전과도 화려하고 -이명박 만큼이나- 재임 요몇년 사이 구설수에 너무 많이 오르내리셔서 모르는 사람은 연예인으로 착각하지 않을까 싶은. 벌써 뉴욕타임스나, 비비씨 등 외신에서도 이 양반의 기행을 많이 다뤘음. 시장 출마 시 세금을 깍아준다, 고 공약하셔서 뭇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용자. 문제는 정말 많은 노동자계층이 이 양반을 지지했고, 중산층 이상의 이민자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다운타운 말고 외곽에 사는 화이트들도 꽤 많이 지지. 이 양반이 뭔 일을 저질렀나 그 리스트들이 에스엔에스에 돌아다니는데 정말 이 양반이 시장 맞아? 싶다는. 지난 여름 크랙코카인 (그 비싼 코카인 아님. 한 방에 이만 원) 흡입하고 마약딜러들과 어울리며 호모포빅하고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저지른 비디오가 있다는 폭로성 언론플레이(?)가 있었음. 몇주 전 그 비디오를 경찰이 입수하면서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 문제는, 정말 문제는 언론이며 사람들이며 죄다 시장이 크랙을 했냐, 안했냐 거기에만 몰두한다는 거. 이 남자는 많은 중하위층 사람들이 애용하는 크랙을 하고, 때론 음주운전도 하며, 거개의 화이트 캐나디언들이 그러하듯이 아이스하키와 미식축구를 즐기고, 때로는 폴란드 이민자 출신인 마누라를 패는 일도 서슴지 않고, 여성이나 이민자나 성소수자들 보기를 그야말로 돌같이 하는 정말정말정말 보편적인-평균적인 중년 남성임. 이른바 정신병자이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 루시드폴의 평범한 사람, 이 생각나는.
2013/11/07 14:02 2013/11/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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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나에게

분류없음 2013/11/05 04:15

#1.

해마다 -이 도시에 온 뒤로- 추수감사절이나 부활절 휴가에 고향에 갈 수 없거나 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 길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데에 기부를 했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일고여덟 명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만큼. 올해부터 그 기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짝과 함께 성노동자를 후원하는 데에 같은 금액을 각각 후원하기로 했다. 개인수표를 각자 써서 보냈는데 그게 되돌아왔다. 사서함 주소를 폐쇄했는지, 폐쇄'당했는지' 알 도리가 없어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아직 없다. 꿀꿀하다.

 

#2.

'워커스액션센터'라는 데에 드디어 정식 가입을 했다. 지난 주 화요일, 밤근무가 잡혀 있어서 마음이 몹시 초조했지만 저녁 무렵 사무실에 들러 신입회원 교육 같은 것을 받았다. 함께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사람들은 만다린을 쓰는 두 명의 중국인. 그 가운데 한 명은 한국어를 '아주 잘' 한다고 하는데 곧 죽어도 한국어를 하지 않는다. 추측컨대 지린성 근방에서 오신 한인(韓人)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이른바 오리지널 한국인(중국인들이 가끔 너 오리지널이냐? 고 묻는데 이 의미는 South Korea에서 왔냐는 뜻이다)에게 갖은 모욕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짝의 영민함으로 두어 차례 캠페인 이벤트에 참가했던 탓에 담당자가 얼굴을 알아본다. 한국식으로 하면 불안정노동자후원센터, 같은 데라고 해야 하나. 이 나라에서 노동부 업무는 각 주별로 담당하기 때문에 연방법보다는 주의 노동법에 따라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받거나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로비 대상도 주정부. 물론 인권 측면에서 고등법-연방법에 호소해야 할 때에는 고등법원까지 갈 수 있기는 한데 그 절차가 참으로 참으로 노동자에게는 고약하다. 어쨌든 나도 이제 센터의 회원이 되었다. 재미난 것은 사무실을 비롯해 인건비와 사업비 등 주요 경비는 대부분 시의 후원으로 충당한다는 점. 연간보고서를 보니 한국돈으로 6억 원가량을 예산으로 집행하는데 그 가운데 80% 이상을 시에서 받고 있다. 따라서 회원은 회비를 내지 않아도 상관없고 다만, 몸으로 '때운다'. 가령 통역이나 데이터베이스 입력과 같은 자원활동, 혹은 이벤트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같은. 

 

#3.

동인련에서 받은 무지개 어쩌구 - 이름이 너무 길어서 외울 수가 없다 - 모금함을 조립해놓고 보니 정방형의 무지개 모양이다. 귀엽다. 천 원짜리, 혹은 이천 원짜리 동전만 모을 생각인데 저 통이 언제 다 찰까. 동전을 넣을 때마다 아련하긴 해도 마음이 그 속으로 숑숑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흐뭇하다. 한국에 있을 때 왜 이런 일을 못했을까. 아쉽지만 이제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나'에서 시작하는 일을 하자. 

 

2013/11/05 04:15 2013/11/0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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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분류없음 2013/11/04 08:54

몇 년 사이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그간 흠모하던 것들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

가령 레고피규어를 감상하고 참고 참다가 마침내 하나를 사는 일,

여기서 만난 주변 친구들에게서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레고블럭을 선물받는다든지,

친구들이 알려주는 레고정보를 따라 프로모션에 맞춰 회원가입을 했더니 레고클럽 멤버쉽을 공짜로 얻게 되었다든지- 그래서 다달이 레고클럽진을 받아본다든지,

인디고 서점 (교보문고 같은 데)에 가서 레고블럭이나 장난감을 하염없이 넋놓고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든지,

맥도날드 해피밀에 도전해서 포켓몬 카드나 스머프 인형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든지,

오타쿠들이 가는 샵에 들러 아톰 인형이랄지, 피카추피큐어 같은 것들과 부담없이 눈을 맞출 수 있다든지,

달라라마 (다이소 같은 데) 에 들러 스티커 구경을 원없이 한다든지,

강아지들을 원없이 볼 수 있다든지,

지나가는 강아지가 맘에 들면 "제가 댁의 강아지에게 애정을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묻고 쓰다듬을 수 있다든지...

 

한국에 있을 때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주변 사람들 눈치랄까, 엄마의 꾸중이랄까, 다 큰 어른이 웬 지랄이야, 이런 성화랄까, 그런그런 류의 시선과 오지랖 개입 탓에 할 수 없던 일들을 한다는 게 어쩌면 행복 가운데 행복. 물론 여기에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포켓몬 카드는 옛날에 국진이빵과 핑클빵이 나오던 시절, 핑클 스티커를 갖고 싶어 핑클빵을 사고 싶었으나 사지 못했던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피카추가 한 번만 나와주면 좋겠는데, 옥주현이나 효리가 한 번만 나와주면 좋겠는데. 초등학교 애들이 핑클빵을 사면 옆에서 가만히 쳐다보다가 오해사던 일도 많았는데...

포켓몬 프로모션 언제 다시 하나.

 

2013/11/04 08:54 2013/11/0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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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아버지

분류없음 2013/10/27 00:48

사는 도시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서북 방향으로 이사간 어떤 분이 "눈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겨울이야. 아, 몰라. 겨울이 와 버렸어.

 

해마다 10월이 되면 1917년(을 전후로 일어났을)의 그 일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수선하다. 처음 몇 년은 마음이 마구 벅차고 뭔가 나도 한 사람의 몫을 단단히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고 불의에 결연히 떨쳐 일어나는 청년이 되어야지, 그랬다가 고꾸라지기도 하고 그러면 다시 책을 읽고 정신을 부여잡고 아마도 몇 년은 그렇게 '멘붕'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와중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추위와 허기와 사람 사이에 일어나기 쉬운 반목과 대립, 그런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러다가는, 1917년, 그해를 등지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그 마음을 들여다볼 궁리를 해야지 그러다가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먼저 읽거나 듣거나 그러다가 아 문득,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는데 아니,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향을 등져 봇짐을 싸거나 그 와중에 변을 당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기록된" 것이 드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릴 적에, 육이오만 되면 선생들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전쟁통 이야기를 듣고 당신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들어오라고 해놓고선 그걸 또 발표를 시키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 쓰면 총알이 관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와, 뒷산 굴에 숨어지내던 엄마의 사촌오빠들 이야기를 해주셨고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 없으심"을 우리 나라의 "기록 없으심 혹은 드뭄"과 다르지 않은 변주로 읽는다. 아버지가 전쟁과 내란의 그 격변에서 잘 드시고 잘 자라셨을리는 만무하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은 뻔한 일인데 - 할머니에게도 들었고, 고모들에게도 가끔 들었다 - 아버지는 아무래도 그 일을 당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힘드신 것 같다.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건, 아무래도 그런 반영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건, 이해한다고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을 성 싶고, - 아무래도 용서하기 힘든 어떤 면들이 여전히 있어서 그렇다 - 아버지를 어떤 한 사람으로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지경까지는 온 것 같다. 아 뭐, 또 이러다가 어떤 일을 겪으면 또 고꾸라지겠지 뭐. 어쩔 수 없다. 거기까지는. 다만 받아들일 수 있는 (acceptance) 어떤 국면까지는 진전했다, 고 말할 수 있을까.

 

눈만 내리지 않을 따름이지 몹시 바람이 세다. 윙윙윙. 비까지 내리니 아마도 체감온도는 더하겠지. 짝과 일하는 스케줄이 완전히 달라 쓸쓸함이 더해가는 깊은 가을날이다.

 

 

 

 

 

 

2013/10/27 00:48 2013/10/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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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잡소리

분류없음 2013/10/21 01:21

쿨럭. 지난 밤에 쓴 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구나. 어디로 간 것이니.

 

*

한국에서 물건을 사거나 부탁으로 구입하면서 항상 '배편'으로 보내달라고 하는데 늘 EMS특송(항공편)으로 온다. 배송료가 두 배 이상 차이나는데 더구나 무거운 책은 그 값이 더 많이 나오는데 배송료를 본인들이 부담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EMS특송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내기 전에 물어보든가. 배송료 부담이 껑충 뛰는데 괜찮겠냐고. 이십 달러면 보름치 채소와 샐러드를 살 수 있는데... 이제는 조금 화가 난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계속 반복되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한국우체국 서비스가 이명박 정권 뒤로 너무 세련되게 변해서 '배로 보내는 방법' 이 없어진 건가요? 

 

*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것에 감사하고 좋을 때는,

한국어로 쓰인 괜찮은 책을 읽을 때와 컨셉을 잡기 어려운 용어를 누군가 한국어로 잘 정리해 놓은 것을 읽어서 그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때와, 누군가 한국어를 잘 쓰는 사람들이 근사한 글들을 당사자들의 블로그나, 매체에 실어 타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 놓았을 때 등이다.

이 곳에서 만난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들보다 가령, 영어나 타밀어나 포르투갈어나 스패니시나 우르드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들이 더 말이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처지가 비슷해서? 뭐 여러가지 층위를 따지면야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들과 대화하면, 혹은 SNS 등에서 문자로 의견을 나누면 말하지 않은 것도 들었다고 하고 쓰지 않은 글(의 맥락)도 읽었다고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가끔 녹음기를 들고 다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SNS는 증거가 남으니 이제 이 사람들이 SNS에 글을 잘 안 남기고 뒤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전화와 뒷담화 등 가십이나 불링(bullying)의 활성화. 가령, 꽃개는 결혼도 않고 (남자랑) 같이 산대.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한들 그게 어때서? 니들이 나를 알아?

뭐, 이 나라에서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유독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집단 혹은 개인과 이런 방식으로 부대끼는 일이 잦으니 늘 이성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 "저는 이 건으로 당신과 대화하지 않겠어요" 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해당 건에 대해서 당신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다른 건에 대해서는 대화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아직 결정한 바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 "i'm not interested in this conversation." 은 이 주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추후에도 관심이 없을지 생길지 그것은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 "재미있어요" 는 말그대로 재미가 있다, 는 뜻입니다. 빈정거린다거나 과도한 호감을 표현한다는가 등 글의 맥락에 숨겨져 있는(숨겨져 있다고 당신이 주장하시는) 감정을 읽어내는 당신의 능력은 대단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감정일 뿐입니다. 글에서 감정을 읽어내려 애쓰기보다 텍스트는 텍스트대로 읽고 거기에서 그치는 능력이 어쩌면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이 더 있으시면 전화를 하시거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세요. 오해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

용접, 납땜, 뻰치, 망치, 줄자, 전기회로, 전류테스터기, 드릴, 드릴들의 각 크기(인치 기준), 너트와 볼트, 나사못, 플랫헤드를 가진 드라이버, 등등등 새로 익혀야 할 영어 단어들. -> 어제 Repair Cafe 자원활동에서 느낀 점.

이 곳 생활을 처음 할 때에 빗이 필요해서 빗을 사러 가는데 빗이 영어로 뭐지. 사전을 찾아 그 단어를 외워서 갔는데 아뿔사 내가 사려던 빗은 그게 아니었어. 다른 단어였던 것이야. 사전을 믿지 마세요. 나중엔 도마를 사러 갔는데 갑자기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칼질하는 흉내를 냈더니 칼 코너로 안내. 아니야, 그게 아니야. 다시 흉내를 냈더니 직원이 짜증을 내더라. 흥.

일하는 데에서 초창기에 어떤 클라이언트가 청소 할테니 비를 달라고 말하는데 그걸 못 알아듣고 계속 되물었다. 갑자기 이 클라이언트,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마녀 흉내를 내 앞에서 내길래 이건 뭐야? 했다는. 가까스로 나중에 이해하고 거듭 사과했던 경험.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데에 필요한, 삶에 필요한 영어를 더 많이 배워야 한다.

2013/10/21 01:21 2013/10/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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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었다

분류없음 2013/10/04 00:06

오늘은 이 곳 기준으로 10월 3일이다. 한국 기준으로 개천절.

 

지긋지긋하게 고단했던 여름이 이렇게 가 버렸다. fall has arrived.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이번 여름처럼 고단했던, 고역같았던 여름이 또 있었을까 싶다. 아마 살다보면 또 있으리라.

 

인생에는,

일 때문이든, 사사로운 관계든 한 번 만났다가 헤어진 어떤 사람을 다시 조우하지 않는 그 상태로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은 그런 관계가 있다. 살다가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잊힌 채로 서로 살아가다 보면 으레 좋은 일만 기억하기 마련이고 홀연히 기억이 살아나더라도 그 좋은 기억으로 좋은 일로 지긋이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풍을 이끌기 직전이었나 아님 그 해였나, 서울을 훌쩍 떠난 어떤 이가 있다.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소식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진" 그 이 때문에 여럿이 "잠깐" 고통을 겪었다. 그 고통을 나눠 지느라 고생한 이들이 많았고 나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적게나마 내게 분담된 그 고통을, 아니 그 역할을 하느라 다소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어디 감정의 허망함을 겪은 이들에 비할소냐.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했지만 알게 모르게 디프레션을 겪던 나였기에 남의 감정까지 보살필 그럴 기운이 내게는 없었다. 그 뒤 몇 년이 흘렀고 대통령이 두 번 바뀌었다. 반도를 뒤집어 놓았던 노풍의 주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사람을, 훌쩍 서울을 떠난 그 사람을 이 도시에서 다시 만났다. 벌써 십 년도 넘게 지났다. 첫 만남 자리에서 나는 그이의 어떤 기억과 사고가 여전히 서울을 떠난 그 해에 머물러 있는 것을 감지했다. 당혹스러웠다. 그 때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났어야 했다. 나는 지난 십 년 동안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거듭 했고 더 잘 했어야 할 일들을 더 잘하지 못했고 적당히 했어야 할 일들을 분수넘게 한 일도 있지만 단 한순간도 어떤 자리에 머물지를 못했다. 둥지를 틀지 못했다. 팔자에 억세게 새겨진 그놈의 '역마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난 탓이 (born this way) 더 컸다. 그런데, 강산이 바뀌는 동안 그이는 여전히 거기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이에게는 그만의 '둥지'가 있었다. 그것은 당혹감을 넘어 어떤 '책임감'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간이 만남을 지속하면서 나는 내 가장 가까운 옆사람에게 '충고'와 '조언'을 들었다. '꽃개, 당신은 지금껏 내가 알던 당신과 너무 달라요.'

 

여름 끝무렵, 나는 십이 년 만에 조우한 그이와 다시금 관계를 정리했다. 그이는 그이만의 둥지에서 살 권리가 있고 나는 그이를 거기에서 끄집어낼 수 없다. 나는 그이가 만든, 만들었다는 둥지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그 둥지는 유통 기간이 훨씬 지난, 어쩌면 유효 날짜를 지우고 몰래 다시 쓴 '유통되어서는 안될' 어떤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데면데면하게 살아갈 것이다. 훌쩍 떠나고 다시 훌쩍 만나는 어떤 인연처럼,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아는 그런 관계처럼, 어떻게 지내셨어요, how have you been?, it's been quite awhile, 그런 인사를 나누는 이 곳의 친구들처럼 그렇게 지내게 되리라.

 

만나지 말았어야 해, 하는 후회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여름이 더 고역스럽다.

2013/10/04 00:06 2013/10/0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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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4, 2013

분류없음 2013/09/19 11:19

* 9월 14일 하루 동안 있었던 엑티비티를 잊지 않기 위해 남겨둔 메모를 살려 오늘 (Sept.18) 에서야 씀.

 

Repair Cafe Volunteering

 

주로 유럽과 북미대륙에서 두드러지는 이 활동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시작됐다. 이 도시에서 시작한 지는 몇 달 된 것 같은데 지난 번 직장에서 만난 한 친구가 자원활동을 하지 않겠냐고 의사를 물어와 본의 아니게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달에 처음 갔다. 대충 고치면 될라나, 집에서 하던대로 하면 될라나, 하고 시작했는데 맙소사, fixer들이 모두 전문가다. 덕분에 Apprentice Fixer 포지션을 받았다.

우리 나라에도 커뮤니티에 베이스를 둔 이런 활동들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못 찾았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길.

9월 14일에는 특별 행사로 야외에서 카페를 열었다. 옆에는 Farmers' Market이 성황 중이고 볕이 너무 강해 버티기 힘들 정도였지만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푸드 프로세서와 오디오 리시버, 토스터, 선풍기, 램프 등을 고쳤다. 나의 사부 (Master) 께서는 별의 별 연장을 다 가지고 오셔서 사람 기를 팍 죽인다. 하지만 덕택에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Action

 

오전에 자원활동을 마치고 끝나자마자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집회에 결합했다. 2011년에 동결된 최저임금을 적어도 14달러 이상으로 올리자는 커뮤니티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요구가 있고 자본 측은 14달러는 너무 높다, 그러면 고용시장이 얻어붙는다, 며 엄살을 떤다. 아무래도 큰 쇼핑몰에서 토요일에 열리는 탓에 어린이들도 재미나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 먹고 마실거리도 충분히 마련된 듯. 근사한 집회였다. 풍선터트리기에 참여했는데 어린이들보다 못했다. 너무 조심스럽게 했더니 한 개도 못 터트린 것. 젠장. 

 

 

국정원 대선 개입 반대 일인 시위

 

여기에서 만난 어떤 분이 국정원 대선 개입 반대, 박근혜 반대 일인 시위를 하신다. 토요일, 일요일 한가위 축제가 열리는 북쪽 마을 어느 광장에서 피켓을 앞뒤로 두르고 일인 시위를 하신다는데 며칠 전부터 걱정스러워 잠을 못 잤다. 여기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들은 - 다른 나라 이민자들도 그렇지만 - 대부분 보수적이다. 60년대에 오신 분들은 60년대 정서에 머물러 계시고 나라에서 그냥 하라는대로 하는 게 장땡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다. 90년대, 2000년대에 오신 분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많은 어르신들은 여전히 대부분 김일성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여기신다 - 죽은 지가 언젠데, 심지어 아들도 갔구먼 -

보수적인 정치 입장이야 그렇다치지만 사고의 체계 자체가 딱 박근혜 스타일인 분들이 많다. 한마디로 말이 안 통한다는 거지. 게다가 용감하셔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들이박는다. 작년엔 따돌림방지교육법-차별조례 같은 성격의 교육법이 통과되어 일선 학교에서 그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동성연애를 조장하는 법이라는 둥, 구강성교를 교육하는 법이라는 둥 괴벨스 같은 논리를 앞세워 종당에는 주의회 건물 마당에서 집회까지 했다는 거.

분명히 이러한 어르신들이 그 일인시위를 가만 두고 볼 것이 아니기에 정말 정말 걱정이 되어 최저임금 집회가 끝나기도 전에 일인 시위 장소로 몸을 옮겼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아뿔사, 내 예감이 맞았어. 벌써 한 쌍의 알흠다운 부부가 "미친 놈"이라고 욕을 하고 있는 것. 시위자는 경찰을 불러왔고 나는 그 부부에게 질문을 했다.

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부부: 아니 저 미친놈, 코리안이야, 캐나디언이야?

나: 코리언-캐나디언이겠죠.

부부: 아니, 한국말만 써놨으면 내가 말을 안해. 왜 영어로까지 써서 여기까지 와서 나라 망신이야.

나: 표현의 자유가 있는 거예요.

부부: 나도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미친놈이라고 했다, 왜!

나: 미친놈이라고 욕하시는 건 표현의 자유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말씀으로 하셔도 되는데요.

부부: 미친놈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는 게 뭐가 문제야!

경찰이 그 부부를 데리고 가서 이야기하는데 그 부부는 정말 대단해. 경찰한테 "He's crazy"라고 자기들이 뭔 잘못을 했는지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 사건 생략 ---

이 뒤로도 여러 건의 verbal aggressions이 있었으나 밀치거나 때리는 결정적인 일은 없었다. 사진기를 들고 기다려서 그랬나?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오셔서 베트남 전쟁과 자신의 이민의 역사, 박정희 대통령의 가르침, 북한이 왜 문제인지-이석기가 왜 문제인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가셨다.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은 당연히 있었고. 나중에 듣다듣다 귀딱지가 앉는 것 같아서 그냥 가시던 길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밥먹고 할 지랄이 없다고 하신다. 네 많이 잡수세요. 라고 보내드렸는데 성이 안 풀렸는지 다시 오길래, 왜 안가셨어요. 집에 가셔서 밥 많이 잡수세요. 라고 다시 보내드렸다.

생각할 꺼리들이 참 많다. 사람들의 분노조절장애, 개개인이 저마다 갖는 자신의 연민, 차이의 존중,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의견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 가치관, 등등

집에 돌아오니 몸이 천근만근 힘들다.

 

2013/09/19 11:19 2013/09/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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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투구판을 밟고 던지듯이

분류없음 2013/09/15 11:03

선발이든 불펜이든 마무리든

투수는 누구나 공을 던질 때 투구판을 밟고 던진다. 

발을 떼고 공을 던지면 그건 보크다. 

타자는 볼카운트를 얻고 주자는 진루의 권한을 누린다. 

아무리 오심이 판치는 야구라도 그건 깰 수 없는 진리다. 

대통령 각하 박근혜 선수, 투구판은 꼭 밟고 던지세요. 

9회말 투아웃 카운트를 잡기 전에는, 

야구는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2013/09/15 11:03 2013/09/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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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분류없음 2013/09/14 11:45

날씨가 대단히 괴상하다.

 

더웠다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천둥 번개 치고 소나기 내리고 다시 더웠다가 추웠다가

 

예고도 없어 천둥번개치면 온동네 친구들-강아지들이 다같이 떼로 짖는다.

 

괴상해 괴상해 괴상해

 

2013/09/14 11:45 2013/09/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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