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로 이해는 용서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해하여 어디까지 용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해결되기 전에는 어디서부터 이해의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용서든 이해든, 그 둘은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고 구분하기 힘들다 생각되기에, 필요한 것만이 명확하고 그것이 어디까지 나아가야 할지 그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다. 상대주의가 이 시대의 미덕처럼 자리잡고 있지만 어디까지 우리가 상대주의로 이해해야 하는지. 범죄자 마저도 넓은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다른 예를 들자면 아랍 국가에서 비춰지는 성차별적 제도들을 상대주의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그럴 수 없는지.

 

누구나 정신적으로 무한히 자유롭겠지만 물리적 행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사념이 물리적 공간으로 현실화될 때,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라는 문제가 나에게 떠오른다. 이런 생각이, 안이하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떠오른다. 단순한 표현의 차원이라면 끝까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언변이든 활자화된 텍스트이든 혹은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든. 폭력적인 언변, 텍스트, 이미지의 포화 속에서 나 역시 그것들을 가끔씩 두려워 한다. 이 두려움이 표현에 한계를 설정하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표현하지 못하기에 받는 고통들을 생각한다면 이 두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추악한 것은 말로 표현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굴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도? 잠재적으로 추악한 것은 폭력이 될 수 있기에 말아야만 하는 것일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미치도록 외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