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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6
    나, 야쓰모도(프롤로그+에필로그)
    처절한기타맨

나, 야쓰모도(프롤로그+에필로그)

  • 등록일
    2008/01/16 12:32
  • 수정일
    2008/01/16 12:32
 

< 나, 야쓰모도 - 프롤로그 >


요코하마에 주재한 출입국에 가서 불법 체류자인 나를 신고했다. 출입국에 신고를 해야 공항을 통과할 수 있는, 즉 딱 하루 기한의 출국 용도로 쓸 수 있는 비자를 내주기 때문이다. 출입국 대기실 복도에는 출국을 하기 위해 일본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신고를 하러 온 한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제법 많았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연유로 이곳에 와서 생계를 도모하기위해 일을 하고 이제 다시 고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제각기 다른 삶들이지만, 똑같은 절차의 신고를 하고 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갓난아이를 등에 들쳐업고 있던 한 젊은 여자, 생김새가 꼭 동남아출신의 여자 같아 모두들 그렇게 짐작하고 말을 붙이지 않고 슬핏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한국말이었다. 고도부끼에 일하는 남편에게 갓난 첫 아이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 일본에 관광비자로 입국해 같이 지내다 그만 보름이라는 체류기간을 훌쩍 넘겨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출입국에 와서 신고를 하고 이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었다. 다들 아기가 이쁘다고 덕담을 내뱉는다. 수줍어하면서도 내심 발그레한 웃음을 띠는 여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엿다.


탈옥했다 잡혀 들어온 죄수처럼 가슴에 한국인 누구누구란 이름이 크게 적힌 종이쪽지를 들고 벽 한쪽 구석에 섰다. 자동 카메라로 찰칵 사진을 찍는다. 일본에 온 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서류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오른손, 왼손 다섯 손가락의 지문을 서류의 한쪽에다 골고루 눌러 찍고 나서 불법 체류자를 담당하는 출입국 관리와 면담을 했다. 혹시 이곳 일본에서 불법 체류하며 불이익 받은 것이 있는지, 어느 곳에서 또 어떤 일을 얼마간 했는지, 보수는 얼마를 받았는지 대개 그러한 내용들이다. 일단 귀국 후 일년 동안은 이곳 일본으로 재입국할 수 없다고 내게 설명해준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가슴 한 켠에 느긋하게 밀려온다. 돈도 한 100만엔정도 벌어 집으로 부쳤다. 꼭 사려고 맘먹었던 전자 기타 한대와 클래식 기타 한대 그리고 기타 멀티 이펙터도 장만했다. 코끼리표 밥통은 아니지만 어머니한테 드릴 일제 전기밥통도 하나 사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간단하게나마 일상적인 일본어나마 읊조릴 수 있게 되었다.


요코하마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데 두 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창 밖을 스쳐 가는 이제 낯이 익을 데로 익은 일본의 거리, 도시 풍경들. 이제 야쓰모도가 아니고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쓰모도라는 이름은 가슴 속 한 귀퉁이 서랍을 열어 그 안에 집어넣고 단단히 잠궈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분명 어느날 야쓰모도라는 이름을 다시 끄집어내서 끄적거릴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을 떠나던 날도 비가 제법 오더니 다시 귀국하는 날에도 비가 은근히 뿌린다. 공항 검색대를 무사 통과했다. 아버지 친구가 이곳 공항에 있어 별다른 검색 없이 여권만 압수 당하고 입국대를 빠져 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보인다. 어머니가 나를 먼저 알아보시고는 반갑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신다.

“일안(日安)아!”


이제 나, 야쓰모도(安本) 나의 본래 이름을 일년만에 다시 찾았다.



  < 글시렁 구시렁 - 에필로그>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현대는 첨예한 경제 전쟁의 시대이다. 전 지구상 가장 강대국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경제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는 그 다음 갈 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한국이란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종속된 반식민지 상태이지 않을까?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은 식민지이면서도 착취자가 되어 한국의 초국적 자본은 남미나 동남아로 진출해 그곳의 노동자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한다. 서열이 매겨진 국가 간, 인종간의 관계들. 그리고 나, 야쓰모도라는 일본이름으로 경험한 일본이란 나라에서의 불법체류의 체험들. 이렇게 다시 글로나마 되살아나는 그때의 기억들.


전 지구적으로 조직화 되가는 거대 자본의 논리. 그 앞에서 속수무책인 개인의 삶들.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서열 매김들. 착취되는 노동들. 삶의 질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사회학적인 어떤 체험을 그때 몸으로 했었던 듯 하다. 공부나 이론을 통한 것이 아닌 몸으로 부대껴 얻은 일종의 의식화라고 말할 수 있을성 싶다. 모두들 남다르게, 남부끄럽지 않게 아니 남부럽게 살고 싶어한다. 보다 나은 의식주와 레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단순한 물음이 늘 내 머리와 가슴을 물어뜯는다. 한때 난 자본주의의 전장에서 최첨병인 셈인 이벤트 기획자의 생활을 했었다. 그러한 자본주의에 충실한 하지만 늘 쫓기는듯한 삶은 늘 허기가 진다. 그 기간 사실 한편의 시를 써내기도 힘들었엇다.


야쓰모도라는 이름으로 겪은 모든 경험들은 신기루일 따름이었던가. 자본을 비판해보았자 상업 자본주의 그 틀 안에서 허락되는 수준의 제스츄어로 그칠 뿐인 한계 상황들. 야쓰모도의 이름으로 경험한 모든 사람들. 그들 노동자들과 사실 깊이 가슴으로 연대하니 하는 이야기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다만 난 내가 야쓰모도란 이름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스케치하듯 덤덤하게 그려내 보이는 수밖에 없다.


가끔 길거리에서 동남아각국 여러 곳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과 얼굴을 마주치곤 한다. 그들은 그들끼리 몰려다니며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거리를 지나다닌다. 5호선 지하철 화곡역 한구석, 서로를 눈이 부신 듯 바라보고 있던 까무잡잡한 피부빛깔을 한 연인 한 쌍이 문득 떠오른다. 서로에게 폭 빠져있는, 나른하고 달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청춘 남녀들. 제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그들이 과연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 중 어느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들에게 짧게 목례를 하며 엷은 미소를 실어 보낸다. 내 미소의 의미를 그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스물 다섯살때의 나, 야쓰모도 또한 이주 노동자였다는, 그런 나의 미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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