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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시인들과 구르는 돌,같은 시인들...재능 문학의 밤 단상

  • 등록일
    2010/09/19 08:39
  • 수정일
    2010/12/09 02:45

 


아주 오래전 내가 과일나무였던 기억이란 시가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혹시라도 위 시의 단 한구절이라도 아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작자는 누구일까? 전혀 알려지지 않은, 혹은 알려지기 힘든

그런 무명 가수의 노래일까?  시일까?
어째든 위 제목의 시는 스물 여섯에 자살한

닉 드레이크의 Fruit Tree 란 노래와 관계가 깊다.


재능교육 1000일차 농성 투쟁, 그리고 시인들의 시 낭송 문학의 밤 행사.
재능교육의 사장은 우리 칼라TV 바지 사장이기도 한

박성훈 진보신당 양천 당원과 동명이인이다.
재늉교육의 CEO인 그는 타워 팰리스에 거주해 사는

명예 시인이시라 한다.
돈을 왕창 번 시인답게 시 낭송을 하는 행사를 1년에도 몇번씩 돈을 들여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과도 같은 큰 장소를 빌려서 하기도 한덴다.

그러면서 1000일이 넘도록 계속되는 노조의 투쟁에 맞선 싸움에

회사측 구사대 요원들이 투입되었을때 자잘한 실갱이가 계속되다보니

법적 공방들이 자꾸 생기고  다툼이 계속되어

구사대 요원들의 전과 기록 또한 늘어만 가니, 가진건 역시 돈 뿐이라고

용역깡패들을 고용해서 재능교육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악날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욕설과 특히 여성 노조활동가에 대한 성희롱은 기본이고...
얼마전 진보신당의 당대회 현장에 재정 사업을 나온

유명자 지부장과 인터뷰를 하다

무심코 반팔소매 위쪽의 팔뚝을 보게 되었는데

온통 시퍼런 멍투성이였었다.

촬영도중 현장 용역들의 짜증나는 채증에

입안에 붕어처럼 맴도는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다만,
뻑큐하고 손가락을 날려주긴 했지만,

현장 정보과 형사간부인 듯한 자는 배불뚝한 경찰에게 자리가 좁아
도로 1차선에서 춤을 추는 학생아이들을 몰아

인도로 올라가게 뒷전에서 지시를 한다.

시를 낭송하기 전 송경동 시인이 말했다. 우리 사회를 위해 1000일 기도를 한

봉은사 명진 스님의 예를 들어 고요하고 조용한 법당에서

주변의 보좌를 받으면서

1000일 기도, 뭍 생명들을 위한 기도를 하신걸로
스님은 시대의 스승이 되고 성자로 존경 받으시는것과 비교해,
차가운 길바닥에서 1000일 농성을 한 재능교육 비정규직 동지들 또한

그에 못하지 않다고
우리사회 860만 900만에 이르는 비정규노동자들,

우리 이웃들의 삶의 최소한의 권익을 위해서
여기에서 정의의 깃발이 되서 1000일 동안 나부낀 동지들이라고...

발언 후 송경동 시인의 산자여 따르자란 시낭송이 끝나자 마이크를 건네받은

대차고 당차기만 한 것 같았던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지부장이

말을 이어가다 순간 울컥했다.
그 순간 줸장 촬영 테입을 갈아야할 시간이 딱 되서 한 1분정도 놓치긴 했지만,
10년 이상 된 교사가 단돈 1만원 10만원 몇푼이 아니라

100만원이나 임금이 삭감되는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투쟁을 시작했다고...

힘들지만 10년동안 한번도 노조에서 투쟁을 시작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 5000의 교사를 대표한 순수한 목적이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소수의 노조 간부들이 불법 행위를 하기에 절대 대화 할 수 없다는게

재능 자본의 CEO라는 같잖은 명예시인 박성훈씨의 방침이란다.

여러 시인들의 시낭송들이 이어지고

문화연대 회원 노래패 참 좋다의 노래도 이어지고
젊은 대학생 친구들의 춤도 이어지고

김성만 선배의 노래로 행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뒷풀이자리가 이어지고...글의 제목으로 단 돈,시인들

그리고 돌,같은 시인들로 돌아가는

굳이 마무리로 풀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진보 시인 아니라고 날날이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사이 시인

처음에 이름을 잘못 들어 김사인 시인과 헷갈렸었다.

남성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성이였나 하고 아리까리했었는데
뒷풀이 자리 우연히 옆자리에 합석을 하게 되어

주변의 시인들과 말을 주고 받는것을 듣게되니
바로 감 잡았다. 다른 이 라는것을...이름과 성별 모두가...

솔직히 난 시를 쓴다는 족속들에 대해

아니올시다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 지가 오래 되었다.
본인 또한 그런 족속에 포함이 되고 싶어 안달했던

문청 시절의 한심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서도 여태 시를 천편이나 썻다는,

어떤 지방 문학상에서 대상 수상을 경험 한 시인 왈
요사이 시집을 내기 위해 여기저기 10여군데 출판사에 시를 보냈는데

감감 소식이 없다고,
그래도 창비나 문지, 실천 문학사같은 유수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야지

본때가 서는데...연락이 없어서 그래서 우울증이 지독하덴다.

허접한 출판사에서 대충 시집을 내는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고...

그렇다고 시를 쓰는 일 고만 둘수도 없덴다.
시 쓰는 일이 무(巫)병같은 거라고, 밥상 위 젓가락이 말을 걸어 온다니깐요!

그걸 아시나고요! 온갖 만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니 미치겠다고...

병이라고 한다.

돈으로 명예 시인을 얻은 돈,시인도 있지만,

어떤 이의 경우는 시에 명예에 돈,시인 일게다.

뒷풀이 자리에서 어떤 선배 시인의 시가 상업 영화에 인용이 되어

돈 100을 받았느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그게 유명해지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그런 잡담들도 오가고

유명, 유명한 시인 그런 유명한 낱말들이

밥상위로 자꾸 씹다만 밥풀처럼 튀어 나오는 것들에 좀 불편했다.

제대 후 바로 창비라는 유력한 지면을 통해 문단에 데뷔해 시인이 된

군대 동기를 알게 된 덕에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시를 긁적거렸던

그러나 여전히 무명일뿐이기만 한 내겐

참으로 주워먹기 힘든 우울한 밥풀떼기들 이었다.

그러한 말들이 오가는 사이 어두컴컴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침묵하고 있었던

김사이 날날이 시인에게
디자인 회사의 과장이기도 한 후배 시인이

선배는 무조건 리얼 100 회원일거 같다고

생각들 한다고 말한다.

어째건 김사이 시인과 우연찮게 주고 받은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로 하고 끝낼가 싶다.
칼라TV 일에 대한 것들, 왜 보수도 얼마 받지 못하면서

그 일을 하고 있냐고 희망은 있냐고 물었다.

이 바닥을 아니깐요! 전태일이 왜 몸에 불을 질렀을까요?
빨치산들 사회주의만세를 외치면서 사형당했었는데...

어찌보면 개죽음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또 조세희 선생님 같은 분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에

아마 돌아 버리실거라고...
여튼 그게 머 연민같은거 자기 연민 같은거일수도 있고요...

그외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좀 더 하긴 했다.

진보신당에 관해서도...정치에 관해서도...

여튼 단 한번에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날날이라고 스스로를 칭한 김사이 시인은

고향보다 더 허름한 빈민촌인 구로동에서

그리고 가리봉동에서 15년을 노동자로 일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팩트들은 촬영한 영상을 캡쳐 받으면서

구글에게 뒷조사를 시켜서 알게 된 사실이다.
개인사까지도 몇가지 알게 됬지만

그런건 알아서 뒷조사를 해보시든지 말든지 개인이 알아서...)

그의 첫 시집 제목은 '반성하다 그만둔 날'이라고 한다.

조만간 사서 읽어 볼 작정이다.

문화 노동자 연영석의 첫 앨범 노래중에 하나인

"구르는 돌" 같은 시인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연영석씨의 노래와 가사 역시

스스로 검색해 찾아보는 버릇을 들이시기를...바라면서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앞에서 있었던

1000일 농성 투쟁 지원 문학의 밤 행사에 관한 이바구를 끝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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