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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스물 다섯 한참 푸르렀던 나이때 이제는 15년이나 지난 일본에서의 불법 체류 시절 이야기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6/23
    참새...(1)
    처절한기타맨
  2. 2009/01/17
    또 다시 한살이다.(2)
    처절한기타맨
  3. 2008/02/02
    빠찡코 맨 가와사끼
    처절한기타맨
  4. 2008/01/21
    졸지에 삼촌이 된 나, 야쓰모도
    처절한기타맨
  5. 2008/01/21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처절한기타맨
  6. 2008/01/16
    나, 야쓰모도(프롤로그+에필로그)
    처절한기타맨

참새...

  • 등록일
    2010/06/23 18:33
  • 수정일
    2010/06/23 18:33

 

사무실로 가는 골목길 어귀

어린 참새 한마리가 연신 쫑쫑거리면서

길가에 내려앉아 부산스럽게 뛰어다닌다.

 

안녕하고 손을 내밀면 슬쩍 만질 수 있을것 같은 거리

 

올해 알에서 깨어난 녀석인듯...

이제 어미새의 품안에서 벗어나

홀로 독립을 한셈이리라.

 

사람을 그닥 무서워하지않지만,

근처에 가면 휘릭 지붕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길바닥으로 내려와서 종종거리며 뛰어다닌다.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경사진 길 한가운데 무언가가 피딱지가 져서

짓이겨 눌려져 있는데 무심히 쳐다보니 

역시 어린 참새 한마리...

 

파리떼가 온통 꼬여있더라.

 

아마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 먹이를 주워 먹으려다

차에 치인걸게다.

 

차에 대한 무서움을 두려움을 모르는...나이여서일까?

 

어린 맘

 

단 한번뿐인 생인데 그렇게 한철 겨우 살고 허망하게 갔다.

 

어릴때부터 이런 죽음에 대한 고민들을 참 많이 했었다.

 

그랬었지.

 

사무실 입구 앞 깻잎밭에 옮겨 뉘어주다.

 

또 며칠이 지나면 개미떼들이 신나서 해체해 놓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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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한살이다.

  • 등록일
    2009/01/17 01:46
  • 수정일
    2009/01/17 01:46

그래 한살이다. 이제 다시 한살이라고 생각할련다.

그간 살아온 날들을 까묵어 버리겠다는건 아니라,

해묵은 감정들, 해묵은 생각들, 닳고 닳은 생각들을

쌈 사먹듯 꿀꺽 삼켜 버리고...다시 시작해보자꾸낭.

삶을 괴롭히는 것들, 간지럽히는것들 참말 많지만,

일장 춘몽

그래도 마흔의 삶 동안 치열하게 꾸었던

꿈은 잊지 말고 챙겨 가자고.....


시흥역에서 1년을 한참 넘긴 공연이 이번주 수요일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이랜드 시흥분회 조합원 분들과의 따끈따근한 선전전.




























콧물 쥘쥘 흘리면서
노래 부르는 기쁨

추워 곱은 손가락으로
기타 치는 어려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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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찡코 맨 가와사끼

  • 등록일
    2008/02/02 23:04
  • 수정일
    2008/02/02 23:04
 

<  빠찡코 맨 가와사끼 >


한씨는 일본이름으로 가와사끼. 그는 이곳 고도부끼에서 빠찡코맨으로 통합니다. 항구도시 부산 출신으로 나이는 마흔 넷. 이곳에 온 지는 3년이 좀 넘었고 이 바닥에서 그를 가장 빠르게 만나고자 한다면 큰 길가에 있는 빠찡코 장으로 찾아가면 됩니다. 언제나 어김없이 일이 끝나면 일당을 받자마자 빠찡코 장으로 직행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저런 빠찡코에 미쳐도 저렇게 단단히 미친놈을 다 보았나.”손가락질, 험담을 해대지만, 그들 중의 여럿은 그에게 공짜 술을 얻어먹어 본적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한판 크게 터진 날에는 항도 부산 싸나이답게 아는 이들을 불러내 한잔 꼭 사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재수가 좋았는지 며칠치 일당을 벌었나봅니다. 골목 한가운데 술집에 자리잡고 한 잔 하는 중. 내일은 비 올 것 같다고 벌써 일할 생각은 집어 처넣어두고 어느 기계가 가능성 있는지 한잔하며 정보를 교환 중이군요.


“오늘 몇 군데에서 터졌지?” 

“다섯 군데였을걸. 첫 번째 줄은 두 번째, 일곱 번째. 뒷줄은 세 번째였고 마지막 줄 네 번째하고 열 번째였던가?”

“오늘 자네 엄청났어.” 

그 날 돈을 모두 기계에다 털린 다른 아저씨 무척 부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아마 개점하고 최고 기록이지 않을까? 

“우하하하하!” 


입이 찢어져라 기분 좋아 웃는 가와사끼상.     


“난 매일 한 5천엔씩만 건질 수 있다면 아예 여기 평생 눌러 붙어 살았으면 좋겠다니까! 술을 먹는다고 뭐라고 간섭하는 사람이 있나, 돈 떨어지면 며칠 일나가 끼니 때울 돈 벌고, 일 없는 날은 남은 돈으로 빠찡코 장에 죽치고 앉아 개기다보면, 운수 좋은날은 며칠 일당까지도 건지고, 그 기분에 술 한잔 걸치는 거고, 그나마 다 털려도 그 날 터진 사람하고 또 한잔하는 거고, 지상 천국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가 지상천국 아닌가 몰러.” 


부산 싸나이인 그는 뱃사람 출신. 팔뚝에 새겨진 해괴 망칙한 용가리 문신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배타고 다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가끔 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래된 과거일 따름입니다. 그가 이곳에 흘러 들어오게 된 계기는 그의 친동생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삼류소설 같은 인생이야기. 그에게 무척이나 이쁜 마누라가 있었다는데, 그가 외국에 배타고 나가 있을 때 어떤 다른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그가 꼬박꼬박 보내 저금해놓은 적금 마저 홀딱 다 들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딸애가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그가 알래스카인가 어딘가에 배타고 나가 있을 때 할머니 집에서 병으로 죽어버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나서 한 이년 폐인이 다 되다시피 술만 퍼먹었다는데 먼저 이곳 고도부끼에 와서 일을 시작한 동생이 그를 설득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맘 고쳐먹고 일도 착실히 하며, 돈도 고국에 계시는 홀어머니에게 꼬박꼬박 부쳤었는데, 작년인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나서 빠찡코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가끔 그는 빠찡코 없이는 정말 세상 못 살 것 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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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삼촌이 된 나, 야쓰모도

  • 등록일
    2008/01/21 08:58
  • 수정일
    2008/01/21 08:58
 

< 졸지에 삼촌이 된 나, 야쓰모도 >


이삼술씨는 일본식 이름으로는 이와모도라 불린다. 고도부끼에서 불법 체류하며 산지는 5년째. 동남아 출신의 역시 불법 체류자 신분인 여자와 현재 동거 생활중이다. 애도 하나 낳아 키우고 있다. 꼬마의 姓은 아버지 국적을 따라 한국 이름을 쓰고 있다. 그의 정식 아내는 아닌 동거녀는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제법 곱상하고, 몸매도 시원스레 잘빠진 편, 이곳 고도부끼의 한 식당에 허드렛일을 나가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동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고도부끼에는 여러 각국, 주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등으로부터 중국, 한국에까지 여러 국적의 불법 체류자들로 득시글댄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일본당국에서 모르고 있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여기에 있는 불체자들을 당장에 모두 추방시켜 버린다면 요코하마 일대의 부두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를 터이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윤택해진 일본인들 3D 업종에서 몸을 빼려고 하니 그 부족한 인력을 외국에서라도 수입해서라도 메꾸어야 하는 상황이니 그들로써는 값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쓰는 셈이니 사실 꿩 먹고 알 먹고 인 셈 일 것이다. 이 정도로 해서 일단 고도부끼에 대한 배경 설명은 넘어가기로 하고 이와모도 아저씨의 러브스토리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서른 일곱의 한국인 이삼술씨와 말레이지아 출신의 방년 스물 다섯의 여자-사실 그녀의 이름은 생소한 외국이름이라 까먹었다-가 맺어지게 된 전말은 이러하다.

이곳 고도부끼에서 처음으로 일을 했던 날, 이와모도 아저씨와 같은 조가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날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바람에 한 삼십분 정도 배에서 냉동 연어박스를 내리다 일은 중단되고, 아이고 지화자! 좋을시고 점심 도시락 나온 거 일찌감치 까먹고 봉고안은 포커판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나, 야쓰모도는 이와모도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 날 하루치의 일당은 다 받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입에서 지화자 소리가 나온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일단 차에 타서 일터에만 도착하면 그날 하루치의 일당은 무조건 나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날 그가 자기가 기거하는 여관으로 놀러오라고 해서 저녁에 한잔하기로 약속,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방문을 두드리고“저예요.” 하자 웬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자가 문을 열어주는 것 아닌가!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꾸벅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뜸 아저씨 계면쩍어하는 모습에 웃으며...

“미리 귀뜸 해주지 않아 미안. 내 아내일세 예쁘지!” 

방 한구석에는 세 네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애가 자고 있다. 이와모도 아저씨가 “손님 오셨으니까 인사해야지.” 하고  깨우니,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는 고개짓을 한다. 그 애를 끌어안으며 이와모도 아저씨 왈.

“이 녀석은 내 아들 영수, 그래도 순 한국식 이름지어 붙여주었다고.” 

“영수, 이영수. 귀엽지.” 

꼬마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주며 흡족한 표정으로 그의 아내를 쳐다본다. 여자의 활짝 웃고 있는 입이 함지박만하다. 그들 식구와 저녁을 같이 하고 술도 조금 마셨다. 이와모도 아저씨 술이 몇 잔 들어가자 근질근질 거렸던 나, 야쓰모도의 궁금증을 가볍게 긁어 해결해준다.

“저 여자는 오빠와 같이 이곳에 일하러 왔었지. 바로 내 옆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방문 앞 늘 보기 좋게 나란히 놓여있던 남녀 한 쌍의 신발 두 켤레 중 남자 신발 한 켤레가 보이지 않더라구. 한 일주일이 지나니까 슬슬 궁금해지더라구. 그래서 그 오빠라는 친구가 일하러 나가는 용역회사 십장한테 물어보았지. 들어본즉 그 친구 운전하다 사고를 내 제꺽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더라구. 그리고 어느날 인가부터 그 친구 동생인 여자가 며칠 일도 안나가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더라구. 그건 그 여자 신발이 하루 웬 종일 방문 앞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을 보고 알았지. 그때 일도 별로 없었던 때였어. 어느 날 나도 일을 못나가 그저 방에서 TV 보다 자다 시간 죽이고 있는데 변소조차 안가고 인기척도 거의 내지 않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지. 아니나 다를까 몸져 드러누워 있더라구. 몸이 영 말이 아니기에 며칠 먹을 것도 좀 챙겨주고, 병간호도 해주고 하다보니 정이 들더라구. 그러다가 자연스레 합치게 되었지. 오빠는 형기를 마치자마자 바로 본국으로 추방되었어. 저 TV위에 놓여진 사진, 저속에 친구 보이지 바로 저 친구가 내 처남일세. 참 잘 생겼지. 자네 자주 타고 나가는 똥차 운전사 다나까 마누라는 아마 한국 여자라고 하지? 그래도 내가 그 친구보다는 재주가 좋지. 처녀 장가 들었으니까.” 

운전사 다나까상의 아내는 고도부끼 한 모퉁이 술집에서 일하던 호스티스였었다고 들었다. 이와모도 아저씨가 애한테 말을 시킨다.


“자 얘야 이리 온. 이 아저씨는 이제부터, 니 삼촌이다. 자 삼촌이라고 불러봐.” 

꼬마가 조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앙증맞은 소리.

“삼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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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 등록일
    2008/01/21 08:57
  • 수정일
    2008/01/21 08:57
 

<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밀린 성욕을 해결하는 가장 깨끗하고도 값싼 방법 >


이 거리 고도부끼에서 혼자 기거하는 사내들, 밀린 성욕을 해결하는 가장 깨끗하고도 값싼 방법 하나를 공개한다.

 

일단 일을 마친 저녁, 더러워진 몸을 씻으러 코인 샤워장으로 비누와 수건, 그리고 목욕 요금으로 백엔 짜리 동전을 두 개 준비해간다. 이것만 있으면 충분히 밀린 때와 밀린 성욕까지 깨끗이 처리할 수가 있다. 오입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거나, AIDS가 무서운 사람들을 위해 한가지 방법을 공개한다. 물론 방안에서 TV켜놓고 야한 광고를 보면서, 혹은 잡지에서 오려낸 미와자와 리에 등의 일본 톱스타 여배우들 아슬아슬한 반라의 사진을 보면서 수음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방바닥 청소를 깨끗이 해 놓아야 하고, 휴지를 눈에 띄지 않게 잘 치워 놓아야하는 수고스러움, 이런 귀찮은 경우가 있으니 가장 청결하고, 깨끗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일석이조, 목욕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또한 부록으로 끼워 소개한다.

일단 코인 샤워장안으로 들어가 동전을 하나 넣으면 5분간 따뜻한 물이 샤워기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그럼 일단 몸에 물을 축이고 머리를 2분내지 3분 사이에 후딱 감고 나머지 2분 동안은 물을 조금 더 뜨겁게 해서 몸의 때를 불린다. 그리고 물이 끊기면 그때부터는 몸의 때를 밀기 시작한다. 대강 때가 다 밀리면 툭툭 몸의 때를 손으로 털어 내고 비누를 온몸에 골고루 칠한다. 그리고 더불어 밀린 욕망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다. 여기 부분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줄 빈칸으로 처리.






그리고 나서 다시 백엔짜리 동전 하나를 추가로 집어 넣고 5분간 물이 공급되는 동안 깨끗하게 몸을 헹궈내면 일석이조의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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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야쓰모도(프롤로그+에필로그)

  • 등록일
    2008/01/16 12:32
  • 수정일
    2008/01/16 12:32
 

< 나, 야쓰모도 - 프롤로그 >


요코하마에 주재한 출입국에 가서 불법 체류자인 나를 신고했다. 출입국에 신고를 해야 공항을 통과할 수 있는, 즉 딱 하루 기한의 출국 용도로 쓸 수 있는 비자를 내주기 때문이다. 출입국 대기실 복도에는 출국을 하기 위해 일본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신고를 하러 온 한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제법 많았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연유로 이곳에 와서 생계를 도모하기위해 일을 하고 이제 다시 고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제각기 다른 삶들이지만, 똑같은 절차의 신고를 하고 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갓난아이를 등에 들쳐업고 있던 한 젊은 여자, 생김새가 꼭 동남아출신의 여자 같아 모두들 그렇게 짐작하고 말을 붙이지 않고 슬핏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한국말이었다. 고도부끼에 일하는 남편에게 갓난 첫 아이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 일본에 관광비자로 입국해 같이 지내다 그만 보름이라는 체류기간을 훌쩍 넘겨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출입국에 와서 신고를 하고 이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었다. 다들 아기가 이쁘다고 덕담을 내뱉는다. 수줍어하면서도 내심 발그레한 웃음을 띠는 여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엿다.


탈옥했다 잡혀 들어온 죄수처럼 가슴에 한국인 누구누구란 이름이 크게 적힌 종이쪽지를 들고 벽 한쪽 구석에 섰다. 자동 카메라로 찰칵 사진을 찍는다. 일본에 온 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서류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오른손, 왼손 다섯 손가락의 지문을 서류의 한쪽에다 골고루 눌러 찍고 나서 불법 체류자를 담당하는 출입국 관리와 면담을 했다. 혹시 이곳 일본에서 불법 체류하며 불이익 받은 것이 있는지, 어느 곳에서 또 어떤 일을 얼마간 했는지, 보수는 얼마를 받았는지 대개 그러한 내용들이다. 일단 귀국 후 일년 동안은 이곳 일본으로 재입국할 수 없다고 내게 설명해준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가슴 한 켠에 느긋하게 밀려온다. 돈도 한 100만엔정도 벌어 집으로 부쳤다. 꼭 사려고 맘먹었던 전자 기타 한대와 클래식 기타 한대 그리고 기타 멀티 이펙터도 장만했다. 코끼리표 밥통은 아니지만 어머니한테 드릴 일제 전기밥통도 하나 사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간단하게나마 일상적인 일본어나마 읊조릴 수 있게 되었다.


요코하마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데 두 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창 밖을 스쳐 가는 이제 낯이 익을 데로 익은 일본의 거리, 도시 풍경들. 이제 야쓰모도가 아니고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쓰모도라는 이름은 가슴 속 한 귀퉁이 서랍을 열어 그 안에 집어넣고 단단히 잠궈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분명 어느날 야쓰모도라는 이름을 다시 끄집어내서 끄적거릴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을 떠나던 날도 비가 제법 오더니 다시 귀국하는 날에도 비가 은근히 뿌린다. 공항 검색대를 무사 통과했다. 아버지 친구가 이곳 공항에 있어 별다른 검색 없이 여권만 압수 당하고 입국대를 빠져 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보인다. 어머니가 나를 먼저 알아보시고는 반갑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신다.

“일안(日安)아!”


이제 나, 야쓰모도(安本) 나의 본래 이름을 일년만에 다시 찾았다.



  < 글시렁 구시렁 - 에필로그>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현대는 첨예한 경제 전쟁의 시대이다. 전 지구상 가장 강대국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경제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는 그 다음 갈 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한국이란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종속된 반식민지 상태이지 않을까?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은 식민지이면서도 착취자가 되어 한국의 초국적 자본은 남미나 동남아로 진출해 그곳의 노동자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한다. 서열이 매겨진 국가 간, 인종간의 관계들. 그리고 나, 야쓰모도라는 일본이름으로 경험한 일본이란 나라에서의 불법체류의 체험들. 이렇게 다시 글로나마 되살아나는 그때의 기억들.


전 지구적으로 조직화 되가는 거대 자본의 논리. 그 앞에서 속수무책인 개인의 삶들.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서열 매김들. 착취되는 노동들. 삶의 질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사회학적인 어떤 체험을 그때 몸으로 했었던 듯 하다. 공부나 이론을 통한 것이 아닌 몸으로 부대껴 얻은 일종의 의식화라고 말할 수 있을성 싶다. 모두들 남다르게, 남부끄럽지 않게 아니 남부럽게 살고 싶어한다. 보다 나은 의식주와 레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단순한 물음이 늘 내 머리와 가슴을 물어뜯는다. 한때 난 자본주의의 전장에서 최첨병인 셈인 이벤트 기획자의 생활을 했었다. 그러한 자본주의에 충실한 하지만 늘 쫓기는듯한 삶은 늘 허기가 진다. 그 기간 사실 한편의 시를 써내기도 힘들었엇다.


야쓰모도라는 이름으로 겪은 모든 경험들은 신기루일 따름이었던가. 자본을 비판해보았자 상업 자본주의 그 틀 안에서 허락되는 수준의 제스츄어로 그칠 뿐인 한계 상황들. 야쓰모도의 이름으로 경험한 모든 사람들. 그들 노동자들과 사실 깊이 가슴으로 연대하니 하는 이야기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다만 난 내가 야쓰모도란 이름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스케치하듯 덤덤하게 그려내 보이는 수밖에 없다.


가끔 길거리에서 동남아각국 여러 곳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과 얼굴을 마주치곤 한다. 그들은 그들끼리 몰려다니며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거리를 지나다닌다. 5호선 지하철 화곡역 한구석, 서로를 눈이 부신 듯 바라보고 있던 까무잡잡한 피부빛깔을 한 연인 한 쌍이 문득 떠오른다. 서로에게 폭 빠져있는, 나른하고 달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청춘 남녀들. 제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그들이 과연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 중 어느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들에게 짧게 목례를 하며 엷은 미소를 실어 보낸다. 내 미소의 의미를 그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스물 다섯살때의 나, 야쓰모도 또한 이주 노동자였다는, 그런 나의 미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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