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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혹세무민

  • 등록일
    2011/01/04 18:08
  • 수정일
    2011/01/04 18:08

달리는 버스안 창문이 마치 한 폭의 스크린같다!

 

관람석에 살짝 기대어 핵전쟁 이후의 미래 세계를 다룬
SF 좀비영화를 덤덤하게 관람하듯 차창밖을 바라본다!

 

칙칙하고 삭막하기 만한것 같은 도시의 미장센들속엔
주의를 기울여 잘 찾아보면 또 다른 풍경들도 들어앉아있고

 

눈이 녹아 질퍽질퍽해진 이리저리 구부러진 철길들 보이고
빌딩 공사장 밖에 잠시나와 환히 웃으며 담배를 피워 물고있는 노가다 인생들 
주황생 귤과 빨간 방울 토마토가 수북히 쌓여 알록달록한 과일 가게
딱딱하게 얼어붙은 무심한 눈깔로 취객을 바라보고 있는 동태 대가리들
그리고 가지런히 켤레로 앉아 임자를 기다리고 있는
아직 세상을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신발들

 

수 많은 간판들과 이제 막 불빛을 내기 시작한 네온 사인들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처럼 흘러가고...
 

잠시 눈을 지긋이 감고 내 생의 조악한 화면들
끊어진 필름들을 억지로 이어붙이며 은밀하게 돌려 보고 있다.
그 중 태반이 혼자 싸고 뱉은 욕설이고, 19금 저질스러운 장면들은
가위질을 싹둑 싹둑 해보고 있다.

 

내게 지독해도 관람을 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 추레한 현실은
이젠 점차 멀티플렉스에 밀려 사라져가는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과 성용의 쾌찬차를 동시상영했던
허름한 삼류극장 재개봉관인듯도 싶고,

그 오래된 구식의 영사기 렌즈를 투과해 뿜어져나온
빛무리들이 만들어낸 허상들 중엔
막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처럼 연한 빛도 있었고,
아무도 밟지않은 새벽 길가의 흰 눈 같기도 하고,
손과 발이 얼어 곱아 터진 부랑자처럼 처절하기도 하고,
처진 나이 축 늘어진 중년의 뱃살처럼 비루하기도 하고,
때론 잘 여문 배추의 허연 속살을 들여다보듯 예민하기도 하다.

 

이어지는 관람 도중 불현듯
이 세계를 감독한 자의 연출에는 영원히 개입할 수도,
제대로 된 평론조차 할 수 없다는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망연자실 불혹인 아닌 미혹의 나날들에 대한 감상평,
궂이 한줄 평을 남기자면

 

디지털 혹세무민 중인듯 싶어

 

관람료로 스스로의 목숨을 지불해야할 관객이기도 한 나는, 경악하면서
궁핍한 생계속에서도 가까스로 주연과 연출을 도맡아하고 있는
삶이란 로드무비엔 대체 어떠한 역할로 출연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물음을 망나니에게 목이 잘릴 실패한 반역자의 심정으로
툭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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