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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으로 살펴본 신촌의 외식 문화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한지가 벌써 몇달이 지났다. 일단 집에서 밥먹는 횟수가 줄어든 탓도 있고 식 재료를 사놓았다가 상해서 몇 번 버린 이후로(김치 냉장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치 맛도 유지되고 야채랑 과일도 정말 오래 가던데..)는 기껏 해 먹어봐야 통조림 꽁치 조림, 카레, 김치찌게, 된장찌게 정도다. 레시피도 자꾸 까먹는것 같고 요리 실력도 줄어드는 듯 해서 속이 상한다.(요즘 사무실에선 엄청나게 요리하고 있지--;; 직책수당 신설하랏!)

 나는 음식 만드는것도 즐기고 맛있는 음식 찾아먹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회사 다닐 땐 나름대로 특기와 취미를 살렸는데 요즘은...ㅠ.ㅠ 맛난 음식 해먹는 것, 찾아서 사먹는 데 돈도 필요하긴 하지만 필수적인건 외려 부지런함이다.

 

이렇게 먹는 것에 예민한 나의 관점에서 볼때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신촌은 정말 맘에 안 드는 동네다. 이 동네 정말 먹을 것 없다.(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패스트 푸드점 같은 공장표 음식을 제외하곤) 명물거리에 몇군데 돈주고 사먹을 만한 메뉴와 맛을 갖춘 식당들이 있긴하지만...

 글쎄 내 생각엔 20대 여성의 비위 맞추는데 급급한 나머지 맛보다는 음식의 외형이나 인테리어, 화장실 시설에만 신경쓰는 집들이 다수 인 듯 하다. 그러나 어쩌랴 업주들은 여성의 지갑을 여는 것도 여성이요 남성의 지갑을 여는 것도 여성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니~

경상도 음식이 맛없다는건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설이지만 부경지역 음식 중엔 손에 꼽을 만한 것이 몇가지 있다. 특히 단품 식사류에 강점을 보인다. 예컨데 돼지국밥, 밀면, 경상도식 추어탕 등등이다. 그 중에서도 첫손을 꼽으라면 그건 지상 최고의 해장국인 복국일게다.

부산 본가(아 물론 삼년전에 이사가 지금은 아파트 촌에 살지만) 주위에 법원, 검찰청, 대학병원, 구 도청, 학교등이 산재해 있었기에 참 맛깔 난 음식점 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료릿집들도 많았지만 까다로운 공무원들 입맛을 맞추기 위한 재첩국, 복국, 추어탕 집들은 가격대 성능대비가 참으로 훌륭했고 지금도 그렇더라.

하여튼 요즘 복국이 정말 먹고 싶다. 신촌 이 동네도 복집들 몇군데가 있더라만 딱 보면 꽝이라는걸 안다. 새로 간판 올리는 주제에 무슨 무슨 전통의 복집 어쩌고 하는 과대포장을 하는 곳들, 객단가 높일 라고 무조건 복사시미나 복정식을 주메뉴로 떡하니 내미는 곳 하며 정말 맘에 안 든다.  일반 한식류 특히 단품 전문점 같은 경우엔 식당 겉모습과 주인장 인상만 봐도 맛있는 집인지 아닌지 바로 진단이 나온다. 물론 임대료나 권리금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객단가 높인다고 어디 매출이 뛰고 회전률이 높아지던가?

 

서린동 SK 본관 옆에 있는 식사 시간이면 대가리 터지는 모 식당의 경우 메뉴는 사시사철 5000원 짜리 대구탕 하나다. 강남권도 그렇다. 무등산 이나 삼원 가든 같은 곳도 물론 있지만 5500 혹은 6000짜리 설렁탕으로 저력을 자랑하는 식당들이야 말로 진정한 그 동네의 강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신촌의 음식문화는 너무나 저급하다. 이건 기본적인 퀄러티는 유지하되 양과 가격에서 강점을 보이는 대학가 공통의 장점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생겼다가 망하길 반복하고 한 해는 찜닭의 광풍 한해는 불닭의 광풍식의 지랄 용천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으니..이런 저급성은 업주들만의 탓이 아니라 지역 소비자들의 취향에 기인하는 바도 클거다.

 

그나마 신촌에서 저력을 자랑하는 식당(구월산이나 철대문집)은 서대문 지역 아저씨, 아줌마들과넥타이 부대가 주력군인 실정이다. 문화의 불모지 신림에도 순대볶음을 랜드마크로 내밀고 고대 앞은 아직도 제기시장이나 이모집이 건재한데 신촌은 뭘 랜드마크로 내밀 수 있겠나? 신계치나 신선 설농탕도 돈 좀 벌곤 공장이 되버렸다.

복국 이야기 하려다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는데 복국은 정말 훌륭한 음식이다. 일단 복국은 자격증 소지자들이 끓인다.(아 물론 식당 주방에서 메인 볼라면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개나 소나 다 따는 자격증이 아니라 독극물 관리사에 버금가는 조련과 경력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복조리사 자격증 소지자들이 끓이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집이던 일단 기본은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뛰어난 음식이 그렇듯 복국은 재료 자체의 맛을 충분히 끌어내는데 역점을 두는 음식이다. 들어가는 거라곤 복, 콩나물, 미나리, 다진 마늘 약간, 소금 약간이 전부다. 쫀득쫀득과 쫄깃쫄깃의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씹는 맛을 지닌 껍질 부터 흰살 생선 특유의 퍽퍽함과는 거리가 있는 담백함을 지닌 속살을 초간장에 찍어 먹는 맛은 말할 것도 없을 뿐더러 시원하면서도 위를 묵직하게 눌러주는 그 맑은 국물 맛에 비견될 만한 것은 없다. 잘 끓인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 정도가 비견될 만하다.

아 침이 키보드 위로 막 떨어지려고 하는구나. 특히 술 먹은 담날 사우나 후에 복국 한 그릇 떄리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는 그 맛이란~ 캬....

첨언: 이 글은 약 4개월전 싸이 미니 홈피에 쓴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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