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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Please를 그냥 쓰기로 한 이유

  • 등록일
    2006/09/26 03:57
  • 수정일
    2006/09/26 03:57

[희망사항] 에 관련된 글.

[ScanPlease의 기원, 의미 등등] 에 관련된 글.

로이

내가 블로그를 만들때, 왜 아는 사람들이 보면 다 알만한 'ScanPlease'라는 이름을

그냥 쓰면서 만들었는지 물어봤다.

그것에 대해 내가 블로그에서 포스팅으로 답하기로 약속했으므로 쓰는 글이다.

 

 

ScanPlease라는 이름은 내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아디에서 기원한 것이기 때문에,

이름 자체는 만든지 몇 년 된 것이다.

물론 배틀넷 아디는 여러개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녀석이 ScanPlease다.

한때 1년정도 스타크래프트 길드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다른 아디를 쓰다가

길드를 접게되던 시점부터 이 아디를 썼다.

내가 알고 지내는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아는 많은 사람들은

혹은 스타크래프트를 모르지만,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 배틀넷 아디가 ScanPlease인 것을 알 거라고 본다.

내 실명홈페이지의 제목도 당연히 ScanPlease였다.

실명홈페이지에는 아직도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공개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물론 블로그를 개설한 지 얼마 안되어서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

 

 

블로그를 개설하기로 마음먹고나서, 조금 생각하다가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냥 ScanPlease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여기에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거의 모든 개인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그것이 지켜지는 지 여부에 민감한 것이

나의 존재를 영원히 숨기기 위함은 아니다.

내가 노출되는 것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나를 아는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노출되면,

내가 없는 곳에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에 부치는 것이고, 우연이라도 여기를 발견해서 알만한 지인들에게는

조심하라고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구상했던 모델은

내가 속해있는 공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명씩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우연히 발견하겠지.

그때에는 나는 그 사람과 1:1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만 하고 싶다.

두명 이상의 (나의 성적 정체성을 모르는)지인과 함께 있는 곳에서

내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게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가 아무도 모를만한 이름으로 블로그를 만들면,

여기 들어와서 그게 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건 또 싫다.

그렇게 되면, 나는 누군가에게는 말해야겠는데...

그리고 조금씩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는데...

결국 내가 여러 사람들 있는 곳에서 한꺼번에 공개하게 되는

내가 끝내 피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딱 그런 점을 고려해서,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다 알만한 이름이지만, 실명은 아닌,

ScanPlease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의 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진보블로그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예전부터 말한 그 한 명만 빼고, 모든 지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고,

어느 날엔가 이런 사람에게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기도 했고,

며칠 전에 로이에게 발견당했다.ㅎㅎ

나에게는 이런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소중하다.

나의 부담은 최대한 줄이면서

소중한 사건들인만큼 진지할 수 있는

느린 속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입대하기 석 달 전에 과동기들 중에 그래도 친한 몇명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자리에서부터 나는 폭력적인 경험을 했다.

(이 친구들 한때는 다들 집회도 좀 다니고 그러던 녀석들이다. 학회도 같이 하고...

그러니 다른 과동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하다고 생각했으나...)

한 친구가 나에게 너무 말을 안한다고 공격을 한 것이다.

거기까지는 봐주겠는데, 그 다음에 옆에 있던 다른 몇몇 친구들도 그 친구에 동조했다.

순식간에 내가 코너로 몰린 것이다. 내가 멀 어쨌다고?

다들 내가 먼가 잘못하고 있다고 하니까, 진짜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면서 든 생각...

도대체 나보고 멀 말하라는 거야?

 

 

이 친구들은 좀더 노골적이었다. 분명히 나한테는 먼가가 있는데,

그 먼가에 대해서 통 말을 안하니,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말하라 이거다. 마치 진실게임을 하듯이...

그 자리 자체에서는 내가 그냥 귀찮다는 듯이 대해서 넘어갔다.

아마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짜증났겠지. 자기들이 원하는 건 한마디도 못 들었으니...

 

그 뒤에 이 친구들 중에 한 명이 내 실명홈페이지에서 나한테 짜증난다고 글을 썼다.

이때부터 한동안 내 실명홈페이지에서 이상한 게시판 논쟁을 해야 했고,

나는 그 뒤로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사람들 많은 데에 가기 싫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수적으로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피하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된 후의 입대하기 전까지의 석 달이 내게 얼마나 처참한 시간이었는지...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몇번 들었다. 죽는 것도 무서워서 못 죽었던 것 같다.

입대할 때쯤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때까지도

절대 (나를 포함해서) 세명이상 같이 있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누구라도 그렇다.

 

물론 그자리에 있었던 친구들과는 그 후로 진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복학한 후에도 가끔 학교에서 이 친구들을 보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저 만나면 빨리 헤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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