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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도급가이드라인

‘사내하도급’이라는 치외법권 영역을 인정해 달라고?

불법파견 면죄부 주고 사내하청투쟁 막으려는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파견노동자보호등에관한법률’ ‘비정규직보호법’에 이어 한국 정부의 허울 좋은 ‘보호’ 시리즈가 하나 더 늘었다. 지난 5월 27일(금), 노사정위 산하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위원장 박영범)가 제7차 전체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것이다.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이 파견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비정규직 사용과 해고를 용인해 주었듯이,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 역시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에 사내하‘도급’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자본이 자유롭게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먼저 가이드라인은 ‘사내하도급’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하고 있다. “원사업주로부터 업무를 도급받거나 업무의 처리를 수탁한 사업주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원사업주의 사업장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것.” 원청 사업장 내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전반이 불법파견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원사업주(원청)의 사업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두고 사내하도급, 즉 불법파견이 아니라 ‘도급’이라는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를 비치고 있다.

또한 가이드라인은 기존에 사내하청·용역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이미 쟁취하고 있는 내용을 제시하며 ‘보호’라는 생색을 내고 있다. “하도급 관계가 종료되어 수급사업주가 교체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사업주는 신․구 수급사업주와 협의하여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원사업주의 귀책사유로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에는 원사업주는 수급사업주와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

식칼테러와 업체폐업이라는 가공할 원청 자본의 탄압에 맞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10년 가까이 이어진 결과, 업체가 교체될 경우 고용승계가 기본이 되어 있고 노조탄압을 위한 업체폐업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체불임금이 발생하면 집단적 투쟁을 통해 원청으로부터 직접 임금을 받아내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때로는 목숨을 걸고 수천 명이 해고와 구속을 당해가며 싸운 성과를 두고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내어놓는단 말인가!

게다가 “원사업주가 근로자를 신규채용하는 경우에는 해당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 및 채용규모 등 일자리 정보를 수급사업주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제공하여 사내하도급 근로자 중 적격자가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란다. 정규직 신규채용시 사내하청에서 40%를 선발하는 제도가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노조 탄압을 위해 사용되어왔고, 그래서 비정규직노조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가?

어디 그뿐인가. “원사업주가 직접 수행하던 업무를 사내하도급 관계로 전환하여 수급사업주에게 위탁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근로자대표 또는 노사협의회 등에 위탁 사유와 그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보호에 대해 상호 협력한다.”는 대목에서는, 노골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외주화·도급화·하청화하는 것을 장려하려는 의도조차 엿보인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도저히 도급이라고 보아줄 수 없는 항목조차 합리화시켜주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수급사업주와 협의하여 원사업주 소속 근로자와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대상으로 공동 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 “원사업주는 수급사업주의 인사노무관리 권한과 책임을 존중하고 이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다만,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는 수급사업주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진정한 도급이라면 교육·훈련과 인사노무관리를 도급업체가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필요한 경우’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라는 미명 하에 불법파견을 합법화시켜주려 하고 있다. 이는 기존 노동부·검찰의 지침이나 대법원 판례를 통해 불법파견의 요소로 인정된 것마저 ‘도급’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문구를 가장 좋아할 이들은, 바로 불법파견 범죄를 저질러온 현대기아차 자본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사내하청·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해하고 오히려 자유로운 사내하청 사용과 해고를 조장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가이드라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실효성이 있겠는가 하는 의문도 일고 있다. 법조항도 아니고 지침도 아닌 그저 ‘권고사항’에 불과하니 현실에서 힘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노리는 바는 실효성에 있지 않다. 2004년 12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1만명 전원 불법파견 판정을 전후로, 사내하청을 비롯한 간접고용이 ‘파견인가 도급인가’를 놓고 노동과 자본 사이에 거대한 전투가 벌어져왔다. 그런데 작년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을 파견노동으로 판단한 판결이 나오자, 이제 자본 측은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즉, “사내하청은 명확하게 파견으로 보기도, 진정한 도급으로 보기도 애매하니, 파견과 도급 사이에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영역을 새롭게 설정하여 규제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파견법·노동법을 지키고는 기업을 못하겠으니, 파견법의 규제는 다 없애고 파견법·노동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내하도급’이라는 치외법권 영역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사내하‘도급’ 즉 도급으로 인정해달라는 말이다.

이는 사내하청·용역 노동자들이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이끌어낸 국가인권위 권고, 대법원 판결, 국제노동기구(ILO)의 수차례 권고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다. 인권위와 대법원, 국제노동기구가 한결같이 사내하청·용역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주는 원청 사용자이니 정당한 교섭 요구에 응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조합원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하는데, 공익위원이라는 자들이 불법파견 합법화 가이드라인을 만든단 말인가.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은 공익위원(안)이며, 앞으로 경총 등 사용자단체들과의 논의 속에서 그 내용이 훨씬 나빠질 것임에 틀림없다. 직장폐쇄 6일만에 전격적인 공권력 투입까지 이뤄지도록 유도한 막강한 현대기아차 자본이 직접 나설테니 말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사내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을 수 없다. 자본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법파견과 원청의 사용자성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이드라인은 “원사업주가 부득이 사내하도급 관계를 종료하게 되는 경우에는 늦어도 1개월 전에 그 사실을 수급사업주에게 알려주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차 원청은 사내하청(불법파견)업체와 매년 6월말과 12월말, 6개월마다 도급계약 갱신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어떤 업체와 재계약을 연장할 것인지 해지할 것인지는 결정되어 있다. 6월 말을 정확히 1개월 앞두고 있는 오늘(5월 31일),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에서 몇 개의 업체들이 폐업공고를 붙일 예정이다. 그런데 그 업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 다수가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곳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력·투쟁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만 골라서 폐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1개월 전에 계약해지 여부를 알려주었으니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했다고 포장해주자는 것인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자본의 비정규직 억압과 탄압을 합리화시켜주려는 가이드라인 공익위원(안)! ‘공익위원’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면 먼저 그대들의 연봉부터 공개해 보시라. 친절하게도 이번에 공익위원(안)을 발표할 때 노사정위는 공익위원들의 명단도 공개했는데, 대다수가 대학의 현직 교수들이다. 도대체 연봉 얼마를 받는 분들이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보호를 논의했는지 공개해보시라. 공개하는 김에 과외로 공익위원 일을 하며 받는 수당도 함께 공개하라. 사람 잡는 야간노동·심야노동 철폐하자는 노동자들을 공권력과 군홧발로 짓밟는 이명박 정부에게, 그대들은 평균 7년에 1년씩 ‘유급’으로 안식년 휴가를 가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하라. 넉 달째 목숨을 걸고 고공철탑에서 ‘원청사용자책임 인정하라’ ‘하청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라’며 싸우고 있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강병재 동지에게, 그대들은 과연 떳떳하게 사내하청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2011년 5월 31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첨부자료] 사내하청·간접고용 관련 국가인권위, 대법원, ILO 권고사항

 

 

▶ 국가인권위, 「사내하도급근로자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법령 및 정책 개선 권고」(2009. 9. 3)

 

노동부장관에게

1. 현행 노동관계법상의 사용자 정의규정을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포함 하는 개념으로 개정할 것,

2. 상시적인 업무에 대한 직접고용원칙을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간접고용의 남용을 억제할 것,

3. 사내하도급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및 이들의 차별시정 신청권을 법률로 명문화 할 것을 권고한다.

 

 

▶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현대중공업 사건)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보았고 현대중공업의 지배개입을 인정하였다. 대법원 판결은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도급관계라 해도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한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지는 사용자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부정했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불법파견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도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역설적으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른바 ‘진성도급’에 대하여도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일부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 등 탄압 건에 대해서 ILO는 지난 2008년 6월, 2009년 11월에 이미 권고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전 권고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따라서 지금까지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와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ILO는 더욱 강력한 어조로 이에 관한 세 번째 권고를 내렸다.

이번 권고에서 ILO는 “해고된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을 원직복직 시키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 만약 사법당국이 객관적이고 불가피한 이유로 조합원들의 복직이 가능하지 않다고 결정한다면 그동안 고통 받은 모든 손해를 구제하기 위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반노조적 차별행위를 단념시킬 수 있는 충분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향후 이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따라서 노조결성과 쟁의행위를 이유로 해고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즉각 복직시키고, 이에 응하지 않는 사용자에게 충분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온전히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는 현재 현대자동차 울산과 아산 공장에서 가해지고 있는 징계해고가 즉각 철회되도록 책임을 다하라!

ILO는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공장에서 집회 도중 발생한 조합원 폭행에 관해 독립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이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하고 조합원들의 피해를 보상할 것을 권고했다.

 

 

▶ 야3당·양대노총 노조법 개정 공동입법발의 기자회견(2011. 4. 29)

 

“긴박한 당면 노동문제를 고려하여 △노동자성 및 사용자성 확대 △노조 설립절차 개선 △복수노조 자율교섭 보장 △전임자 임금지급 노사자율 △단체협약 해지권 제약에 대하여 공동 입법발의를 할 것이다. 또한, △산별교섭 보장 △손배가압류 제한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축소 및 보완 등에 대해서도 5,6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기국회전까지 공동으로 입법발의를 추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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