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이 아니라 230명, 2300명이 이유 없이 우리 곁을 떠나도 꿈쩍도 안하는 파렴치한 세상, 모진 시기를 견뎌왔습니다. 4년이 흘러 이명박 정권이 보따리를 쌀 시간이 됐습니다. 노동자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접을 수 없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달력에 소망을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7일 밤 경기도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송전탑 고공농성 현장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송전탑 아래에는 경찰 병력 100여명이 배치돼 있었다. 송전탑에는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송전탑 30미터 지점에서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7일로 18일째다. 송전탑에서는 쌍용차 평택공장이 내려다보인다. 농성 조합원들은 손전등을 흔들며 ‘나 여기 있소’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새벽 널빤지 두 장을 가지고 송전탑에 올랐다.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이 41일 동안 단식을 벌인 후 병원으로 이송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24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해고노동자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7일 밤 경기도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송전탑 고공농성 현장. ⓒ조현미 기자

이날 하루 전면파업을 벌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금속노조 확대간부들이 쌍용차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7일 현대차 → 쌍용차, 8일 유성기업으로 이어지는 1박2일 노숙농성 투쟁이다. 땅 위에 있는 해고노동자들은 아래서 올려 보내준 무선 마이크로 농성장을 찾은 다른 노동자들과 대화했다.

울산 현대차에서 올라온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세 분을 걱정하며 달려왔다”며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은 “세 명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점심 저녁 하루 두 끼 먹으며 소량소식하고 있다”고 철탑소식을 전했다.

“울산에서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웃으면서 지상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울산 현대차 인근 송전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불법파견 인정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이날로 52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송전탑에 있는 농성자들은 아침 저녁으로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이 18일차인데 15일차까지 합판 4장으로 버티고 있다가 연대동지들이 올려준 철빔과 합판으로 두 평 남짓한 천막을 지어서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영하 10도로 내려가지만 연대의 열기로 잘 견디고 있습니다.”(복기성 수석부지회장)

한 조합원은 문기주 정비지회장과 소주를 마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문 지회장은 “내려가면 소주 한 번 진하게 묵자”고 답했다.

   
▲ 금속노조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고공농성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 ⓒ조현미 기자

금속노조는 이날 밤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고공농성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 사업장에서 무려 2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죽었는데 잘못된 정리해고에 대해 어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41일 동안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하고, 세 동지가 15만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목숨 건 고공농성을 하는 요구는 딱 하나,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쌍용차 현장복직 그리고 노조 파괴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비상한 각오로 싸워야 한다”며 “1월에 총파업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내자”고 강조했다. 노조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내년 1월 총파업을 결의한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7일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서울역에서 19번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제를 열고 평택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를 시작했다. 세 차례 희망텐트, 네 차례 범국민대회,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4일 대선 후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앞둔 ‘선거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낼 때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8일 오전 쌍용차 해고노동자 3명이 송전탑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조현미 기자

농성을 마친 조합원들은 송전탑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방수침낭을 올려 보냈다. 침낭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로 30미터 송전탑으로 올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송전탑 농성장에 마련한 130여동의 천막에서 1박을 한 후 8일 오전 고공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충남 아산 유성기업으로 향했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지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올해 8월 5일 출소했다. 다음은 송전탑에서 농성 중인 한상균 전 지부장과의 전화통화 일문일답.

- 날씨가 많이 추운데 생활하는 것은 괜찮은가.
“추운데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만치는 않다.”

- 세 분의 건강상태는 어떤가.
“처음 올라올 때보다는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는데 지금 밑에 있는 동지들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약해질 수 없어서 정신 차리고 있다.”

- 얼마 전 새누리당에서 대선 후에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지부의 입장과 별 다르지 않다. 쌍용차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한 것 같지는 않고 민심의 동향도 있는 것이다. 연속적인 죽음 앞에 정치가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런 것에 대해 자기 반성이 좀 따라주는 결단이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하게 대선만 앞둔 하나의 이벤트로 한다면 정말 오히려 희망으로 고문하는 격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쌍용차지부는 4일 발표한 성명에서 새누리당에 △기자회견 내용이 박근혜 후보의 입장인지 명확히 밝히고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시기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며 △정리해고자에 대한 입장과 △책임자 처벌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할 뿐 아니라 △2009년 자행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입장과 함께 △중구청의 대한문 분향소 철거 예고에 대한 입장 등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지부는 “요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쌍용차 비극에 대한 새누리의당 해결 의지에 진정성이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든 정치권은 쌍용차 문제를 정쟁 구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 얼마 전 국민일보 보도(12월 5일자 <朴,쌍용차 노조 만남 철탑농성 해제 조건>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이 송전탑 농성 해제를 조건으로 만남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기사를) 못 봤다. 이후 언론을 통해 몇 번 접하기만 했지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국민이 함께 살자고 하는데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말하는 사람이 조건을 가지고 오겠나. 진정성이 있으면 오면 되는 것이다. 이런 투쟁까지도 거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금속노조 정리해고철회 공동투쟁단이 붙여놓은 현수막 뒤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송전탑이 보인다. ⓒ조현미 기자

- 18대 대선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지. 
“지금까지 정치가 희망으로 우리를 고문만 했던 5년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의 권력이 등장한다. 노동과 경영은 서로 균형이 맞아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데 지금 현재는 일방적이고 완전히 불공정하다. 자본은 현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고 있는데 노동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간의 영혼, 존엄성까지 짓밟히고 있다.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소박함을 나눌 수 있고, 노동자로 살다 죽어도 조금은 행복했다는 생각 가질 수 있는 국정철학을 가진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

-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쌍용차는 이미 노사관계의 폭을 넘어서 결국 정부 관련 기관들이 총체적으로 개입된 사건이다. 사회 상류층들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지 보여준 백화점이었다. 이런 것들이 많이 이슈화되고 보도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회사의 움직임을 언론에서 많이 다뤄져야 할 것 같다. 원죄가 있는 상하이차의 먹튀에 대해 잘못이 있는 경영진, 법정관리 잘못이 있는 경영진은 이해 당사자인 저희들의 문제를 정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다. 적극적으로 더 담을 쌓고 대화를 단절하고 그들의 잘못을 미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물량도 그렇고 회사가 고용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조건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탄압으로 일관하는 것은 스스로 이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범죄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를 지속적으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이런 스토리를 언론에서 풀어내지 못해 굉장히 안타깝다. 일부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기도 했는데 사실 언론에서 그 문제가 선을 넘기 쉽지 않나 보더라.”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이렇게까지 확장될지는 몰랐다. 그것을 염두해 놓고 외친 것은 아니었는데 아시다시피 현실화됐다. 외국에서도 수천 명, 수만 명이 해고되지만 이런 일은 없다. 우리나라도 언론 보도와 무관하게 상시적으로 해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쌍용차 정리해고는) 억울하고 잘못되고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정리 살인 해고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부분을 치유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또 다른 피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할 것이다. 계속 살얼음판이다. 생과 사의 문턱에서 왔다갔다하는 조합원들이 너무 많다.
그런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투쟁을 이끌었던 입장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조합원들을 고통에 빠지게 해서 너무나 죄송스럽다. 사회 문제로 이미 확장됐기 때문에 풀려야 한다. 조합원 동지들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뎌줬으면 좋겠다. 잘못된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길에 나서든지 아니면 이 나라가 양심과 정의의 가치가 있어서 그 잣대로 잘못을 단죄하든지 해야 한다. 노동자가 있을 곳은 철탑이 아니라 공장이다. 함께 웃으며 공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 때까지 잘 견뎌주길 매일 밤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