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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씨 방문 - 송전탑 내려와라- 4일

쌍용차 찾은 이한구, 사측엔 "죄송" 노동자엔 "엎지른 물"

[현장]여야 원내대표, '쌍용차 국정조사' 두고 극과 극 행보

서어리 기자(=평택)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4 오후 5:15:08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4일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46일째 송전탑 고공농성장 중인 해고 노동자들을 '깜짝 방문'했다. 해고 노동자 복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평택쌍용차 공장 현장 조사 차 들른 것. 이 대표는 그러나 농성자들과의 만남에서 국정조사 문제를 놓고 시각 차이만 확인한 채 발걸음을 뒤로 했다.

이한구, "위험하니 내려와라" 무한 반복

이 원내대표의 이날 쌍용차 현장 방문에 정치권은 일제히 주목했다. 1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이 원내대표가 쌍용차 현장 조사에 나선 것은 야당이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국정조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 때문. 더욱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지난달 말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쌍용차 국조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수용 여부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던 터였다.

그러나 이 원내대표는 이날 송전탑 아래 천막에 모인 농성자들 앞에서 단호하게 '국정조사 반대' 입장을 폈다.

▲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송전탑 앞에서 해고자들의 고공농성 중인 현장을 방문해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실장 등 대책위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대선 전에 새누리당에서도 쌍차 국정조사 얘기가 나왔다'는 한 농성자의 말에 그는 "환노위원들이 그리 했지만 저는 아직도 회의적"이라며 "(국정조사가) 여러분들의 문제를 푸는 방법인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얘기해서 최종적인 문제는 여러분의 문제를 푸는 것이지 않느냐"며 되레 물었다.

이에 다른 농성자가 "(국정조사는) 지난 날의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라고 받아치자 이 원내대표는 "(쌍용차를) 중국에 넘겼을 때는 민주당 정권 때다. 그때 잘못한 것은 그대로 놓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이미 엎질러진 일 갖고 방법이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원내대표는 철탑 농성자들을 향해 "저렇게 극단적으로 해서 사고 나면 어떻게 하나, 얼마나 위험해"라는 등 "위험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농성자가 "극한의 방법은 저희도 원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우리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음 막으려고 그런 노력하겠느냐"고 대답했지만, 이 원내대표는 농성자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손목시계를 검지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원내대표가 농성장을 나가며 혼잣말로 "위험한 것 좀 해결이 됐으면 좋겠네, 설득을 좀 해서"라고 말하자, 어느 농성자는 "대표님, 설득할 내용을 갖고 오시죠"라고 일침을 놓았다.

사측엔 "부담될까 죄송" 해고 노동자에겐 "이미 엎질러진 일"

송전탑 농성자들과 사측을 모두 만난 이 원내대표의 태도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사측과의 면담 자리에선 "갑자기 찾아와 경영에 부담될까봐 죄송하다"며 "우리나라가 어려운데 열심히 일해주셔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 저도 기업체에 있어봐서 힘든 것 안다"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해고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것(해고자 복직)을 해결하기 위해 저렇게까지 위험하게 해야하나", "극단적으로 하면 어떻게 하나",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거(조치)라고 하면, 해고자 복직 말고 더 뭐 있느냐"는 등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전날 새누리당 관계자가 밝힌 "박 당선인의 100% 대통합을 위한 포용 행보의 첫 단추로 쌍용자동차 현장 방문 계획을 세웠다"던 취지가 무색한 태도였다.

사측과의 만남에선 한 시간여 면담 시간을 가진 데 비해 해고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불과 15분밖에 되지 않았다. 일정 자체도 그야말로 예고 없는 '깜짝 방문'이었다. 농성장을 찾기 전 불과 30분 전까지도 방문단 측은 "사측과 노조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왜 농성자들을 만나지 않느냐'는 여론이 조성되자 방문단 측은 일정을 '급조'했다.

이날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을 맞은 농성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 "이럴 거면 농성장에 왜 왔느냐"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와 면담한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이 대표나 지역구 의원이나 국정조사를 원래 반대하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전향적인 자세가 아니었다"며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정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은 "새누리당이 대선 전에 하겠다고 했는데도 이 대표는 환노위 차원에서 한 거라고 폄하했다"며 "새누리당 자체가 일개 사조직도 아니고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는 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만일 국조를 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이야기한 모든 것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대국민 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조합원은 특히 이 원내대표가 국정조사를 '복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데 대해 격분했다. 그는 "한 기업에서 회계조작이 일어났고 23명이 죽고 4년째 이러면, 우리가 얘기 안 해도 정부와 국회가 진실 규명 차원에서 해결을 했어야 하는 건데, 제1당의 원내대표가 복직 수단으로 보는 건 황당하다"고 말했다.

천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수원·용인·화성지부장은 "정부 여당인 집권당의 대표가 '민주당이 집권할 때 했던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며 "그런 얘길 할 거면, 대체 방문 취지가 뭐냐"고 물었다. 천 지부장은 "새누리당이 대통합을 얘기하고 대통합 속엔 계층, 노사 간 등 여러 통합의 의미가 있는데, 농성에 장와서 죽음을 각오한 노동자에게 '위험하니 내려와라' 그 얘기를 하러 온 건 노동자들이 봤을 땐 인사치레 수준도 아니"라며 이 원내대표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기춘 "2013년 국회 첫 업무는 쌍용차 국정조사"

한편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4일 쌍용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의지를 거듭 밝혔다.

▲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방문해 헌화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평택 쌍용차 철탑 고공농성장을 방문한 것과 비슷한 시각,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은 서울 덕수궁 앞 쌍용차 해고 노동자 분향소를 찾았다.

박 원내대표는 "2013년도에 우리 국회의 첫 번째 업무는 쌍용자동차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라고 말하고, 방명록에도 이 같은 내용을 남겼다.

그는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 윤관석 원내대변인 등과 함께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등을 만나 "최선을 다해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서 여러분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철저하게 목숨을 담보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가슴 속 깊이 새기겠다"며 "국정조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보진 않는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각오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이날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정조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 실망과 절망만 안겨주고 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희망스러운 결과를 낳지 못해서 많은 분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처절하게 반성하고 혁신하고 평가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강의 기회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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