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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7
    한상균, 강성철, 고동민 동지 면회기 (1)
    자유인
  2. 2010/01/27
    김득중동지를 면회하고
    자유인
  3. 2010/01/23
    정주용동지를 면회하고(1)
    자유인
  4. 2010/01/22
    김남수동지 면회 기
    자유인
  5. 2010/01/22
    문기주동지를 면회하고 나서
    자유인

한상균, 강성철, 고동민 동지 면회기

한상균(지부장), 강성철(구노회), 고동민(문화부장) 동지 면회 후기 ( 1월 26일(화), 27일(수), 28일(목))

 

- 결론적으로 1월 28일 수원구치소에 있는 고동민 동지를 끝으로 면회는 이어지지 못하였다.

감옥에서 얻은 독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출소후 밖의 세상에서 전염된 오염원 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아뭏튼 더이상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넉다운되고 말았다. 이대로 몸을 방치한다면 죽을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병원을 안가고 아프다고 하는 나를 몹시 못마땅해 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행해왔던 나의 건강철학을 배신하고 낼롬병원으로 달려갈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짐을 싸들고 산속으로 들어가 단식으로 치유하기로 하였다. 현재 나는 2월 1일부터 5일까지 존경하는 선배님께 몸을 의탁한채 물맑고 공기좋은 산중에서 생수단식 5일을 마친 상태이다. 오늘로 복식2일차에 못다 쓴 면회 후기를 쓰고 있다. 기억은 오래가지 못하므로 간단히 기록한다.

 

-  한상균 동지는 몸이 많이 말라 있었다.

작년 8월경 잡혀왔을 때, 다량의 구속탄압에 항의단식 15일을 (?)한적이 있는데 그때 그상태라고 했다. 그렇다면 원래 체질이라고 봐야 한다. 내 건강상식으로는 좀 마르고 호리호리한게 나쁠리 없다.

'저렇게 염소수염을 기르는 것은 무슨이유 때문인가? 베트남의 호 아저씨를 닮으려 하는가?'

" 잘 지내요? 동상은 좀 ?"  

" 당분간은 책 넣지 말고 ! 재판중이니-------."  

지인들이 면회를 자주와서 이것저것을 듣게되고 이리저리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 갈뿐 몸이 움직일수 없는게 징역이니 어쩔 도리가 없이 체념하게 된다. 때문에 밖의 일은 구속되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다. 한 지부장의 눈빛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듯 보였고, 구속된 자신은 그곳에서 해야할 일을 찾고 있는듯 보였다.

 

- 강성철 동지를 면회하였다.

오다가다 집회현장에서 만나다가 철창을 사이에두고 마주대하니 동지에 대한 또다른 감회다.

내일 모레면 수원구치소로 이송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강동지는 나에게 평택 구치지소에서의 옥중 투쟁과 투쟁으로 인한 변화된 사항을 말해주었다. 

가장큰 변화는 면회시간을 8분에서 10분으로 쟁취한것이다.

'겨우2분?'

무심한 개인에게 2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수 있다. 하지만, 억울한 사연을 전달하고자 하는 수인에게 2분은 천금의 시간이 될 수도있다.

2분 곱하기100명, 2분 곱하기 100명 곱하기 한달 또는 일년을 상상해 보라!

강동지의 옥중민주화투쟁으로 접견시간2분 증가를 쟁취했다는 것은 소내의 전체 공안수들이 한 일주일넘게 단식투쟁을 하고도 단 1분의 증가도 시키지 못했던 과거 사례로 비추어 볼때 실로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수원구치소에서 딱뿌러지게 무엇하나 투쟁으로 쟁취한것이 없었던 나는 절로 머리가 숙연해 졌다.   

 

나는 강동지에게 수원구치소의 비인간적 대우에 대해 말해주었다.

운동장은 건물에 뭤같이 달려 있으며, 햇빛은 볼수없고, 특히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먼지투성이며, 1층에서 10층까지 낡은 마루바닥이라 소음문제도 심각하다고. 있는 동안 단 한번도 땅을 밟지 못했다고.

속으로 이런 주문을 한 것같다.'동지가 가서 좀 해결해 주세요!'  

 

- 평택구치소 동지들 전체를 보고 올라가려했으나 전 사무장이었던 한일동 동지는 이미 사전예약이 꽉찬상태라, 부질건히 다녀 1심 선고전에 수원 동지들을 모두 보기로 했다. 

1월 28일. 이날도 여전히 몸상태가 별로였다. 내 감으로는 병원에가서 진찰하면 반드시 암진단을 받을것 같았다. 

콧물나고, 간이 안좋은지 눈이 아프고, 목이 잠기고. 저녁이면 말도 못할 정도의 피로감이 밀려왔다.

 

- 오후 한시경 수원구치소의 고동민 동지를 면회하였다.

" 이정아 동지 되세요? 저는 김동수라고 하는데요? 고동민 동지 면회하려고 하는데요. 가능한지요?"

" 네. 찾으라는 영치금 액수가 달라서 찾지 못했다고 전해주세요."

" ---- 애기 기저귀 떨어졌다고 하던데! "

" 네? 아니요? 어디서 그런 소문이."

'허긴. 기저귀값은 얼마하지 않으니까.' 분명 누군가에게 들었으니, 내가 입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구속자든 해고자든 사정은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반갑게 맞이하는 고동민 동지!  

" 잘 지내지? "

" 최영호 동지와 같이 있어요. 적응해야죠 뭘 !"

면회를 할때 한번 본적이 있었다. 그때는 살이 통통했었는데. 좀 야위었다.

이날 수원구치소에서 서진철 동지가족, 서민식동지 가족, 그리고 이재진등 전 간부동지들을 만날수 있었다.

거리가 멀고 시설도 최악이고 갇힌 동지나 옥바라지하는 가족이나 고생이다.

다음날을 기약하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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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동지를 면회하고

김득중동지 (당시 조직실장) 면회 후기 (1월 25일)

 

- 김득중동지의 부인을 두번째 만난것은 1월 18일 22명에 대한 결심공판 때 였다.

 이날은 아들과 함께였다.

 " 몇학년이냐? "

 " 5학년이요!" 아빠를 닮아서인지 키도 크고 눈이 선하다. 긴 재판정이 지루한지 몸을 뒤척이고, 싱글벙글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다.

 

이날 재판정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들어 찼다. 

재판에 관여한 한사람 한사람의 발언을 들을려고 법원관계자가 주의를 주지않더라도 숨죽이며 조용.

재판에 관여한 사람이라니 ! 높은 좌석의 판사, 좌에 검사, 우에 변호사와 피고인, 등짝을 보이고 증인을 말한다. 

이 배석과 높낮이는 아마도 1910년 한일합방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4각형의 가운데 앉아서 토끼처럼 똥그랗게 뜨고 기록하는 서기는 100년 전에도 저런 초점없는 눈을 하고 있었을것이다. 자신이 타자기로 치고 있는 한자한자가 모두 억압과 저항의 역사적 기록임을 알고는 있는걸까?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관객(?)들의 맨 앞좌석에는 피고인들의 부모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앉아계신다. 

자식들의 뒷모습일망정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자식을 보고픈 욕심때문 이리라.

당신이 낳고 기른 자식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지금 저자리에 앉아 검사로부터 구형 5년을 받고 있단 말인가?

법없이도 잘 살았던 자식이 왜 감옥에 갇혀있는가?

 

동지들의 최후진술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울음소리 !    

늙은 어머니는 내새끼를 감옥에 가두어 놓은 죄로 울었고

부인은 남편을 품에서 빼앗겨 서러워 우는듯 보였다.

눈치빠른 어린 자식은 아빠의 소리를 듣고 우는 엄마를 따라 울었다.  

 

- 김득중 동지네는 특히 서럽게 울었다.

  김득중 동지가 서럽게 울었기 때문이다.

 

" 잊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동료의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있던 날 회사는 오필승 코리아를 계속 틀었습니다.

당신들이 10년 20년 함께 생활했던 동료로 왔다 라면 제발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그러던 저희들한테 폭도로 규정했습니다.

경찰과 수사대가 침투하기 시작했고 옥상에 있는 저에게 수많은 조합원들의 급한 무전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옥상위로 날아오는 볼트 너트를 피해서 조합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헬기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최루액을 피해서 뛰어다니는

조합원도 보았습니다. 물대포를 온몸으로 막는 조합원도 보았습니다. 밤마다 경찰들이 고성을 지르면서 잠을 못 재웠습니다.

며칠 밤을 못 잤는지 모릅니다.

단전 단수 가스 차단 주먹밥으로 한 달 가까이 끼니를 때웠습니다. 진물이 나고 발이 썩어 들어가는 조합원을 봐도 치료조차

못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비참한 현실에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정문 앞에 연두색 옷을 입은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당당한 아빠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저와 조합원들은 공장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짜 두렵고 무서웠지만 물러서지 않고 버텼습니다."

 

- 살이 오르고 건강한 모습이다.

" 편지해 !"

" 재판중이라서  ! 여기는 걱정말고 밖의 동지들이 잘 했으면 해요! " 

 

내가 알고있는 김득중 동지는 자신의 이해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자신의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상대말을 듣는 것을 중시했다. 

비관적이기보다는 부족한점을 메우려 했고, 매사에 웃는 얼굴 이었다.  

남들의 비판을 달게 받아들였으며, 자신의 부족한점에 대해서는 부끄러워 할줄 알았다.

결정된 일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방기하지 않았으며, 늘 자신이 앞장서서 성사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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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용동지를 면회하고

정주용 동지 (당시 선봉대장) 면회 후기 (1월 23일)

 

- 나도 '면회의 기술'이 늘어서 면회하면서 다음날 11시 30분에 예약을 한다.

그래야 의도하지 않게 '바람'을 맞지 않을수 있다.  

무턱대고 11시경에 평택구치소에 가서 한상균 면회를 신청해 보라 ! 춘삼월 날 풀릴 때까지 한상균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날 예약 면회는 무려 2시간을 기다려서야 성사가 되었다.

 

- 예약을 하고도 이렇게 만나기가 어렵다니! 이거야 원!

 이날, 정주용 동지는 전날 수원 구치소에서 출소한 김주중 동지와 면회를 하기로 다른동지들 인편으로 교감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김주중 동지는 22일 아침밥을 먹고 평택구치소에 도착 !

헌데, 누군가 예약을 해서 면회를 할수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는 예약한 당사자가 나타나기를  9시부터 11시까지 무려 두 시간넘게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으나 허사 ! 

함께온 부산과 평택의 동지와 함께 발길을 돌릴수 밖에 !

(부산에서 왔던 동지는 벌써 두번째 허탕걸음이라고 나중에 들었다. 차비만해도 20만원 깨졌을 듯! ) 

 

(속으로 이랬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여 !

정특위 에서도 모른다고 하고, 정동지 집에서도 모른다고 하고. 어떤 * 이여! 으이씨!)

   

- 정주용 동지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김주중은 누구인가? 

선봉대장 이었던 정주용 동지의 입장에서는 

당시 사측의 사정거리 족히 1키로짜리 강력 에어볼트총의 엄호아래 물대포를 앞세워 개떼처럼 달겨들던 전견들을 상대로

최선봉에 서서 육탄전을 함께 전개했던 사랑하고도 사랑했던 대원 아니었겠는가?

77일 옥쇄기간동안 사측과 공권력의 침탈이 빈번했고, 특히 7월 중순이후부터는 하루걸러 밀고 들어왔던 것은 세상이 다아는 바다.

공권력이 하루가 멀다하고 밀고 들어 왔다는 이야기는 당시 정문쪽  최전방에 있었던 선봉대 동지들에게는 

한시도 쉴틈을 허락치 않았다는 말이 된다.

주먹밥을 먹다가도 밀고 들어오면 어쩌겠는가? '그래, 나살고 너죽자 !' 하며, 육탄으로 나서야지.

 

또한 초 선봉의 선봉대 동지들은 

관리자와 용역이 쏜 강력에어볼트총에 부상당한 동지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뒷 모습을 연일 눈물로 배웅했다.

격렬한 몸싸움이 빈번했던 최전선이었던 만큼 그 진퇴를 둘러싸고 언성이 높았고,

때론 쇠 파이프를 내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던 동지들을 원망도 했다.

밤이 지나고 새벽에 눈을 떠,

변화를 기대했지만 바퀴벌레들의 철벽 울타리는 견고했다 ! 간밤에 줄어든것은 선봉대의 숫자뿐이었다.   

그렇게 선봉대 동지들은 쉰내나는 속옷을 입은채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공장을 지켜냈다.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며, 

헐떡거리는 숨을 채고르지 도 못한채,

인해전술로 달겨드는 적들을 향해 육탄으로 맞섰다. 누군가는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역할을 !  

   

- 그 살갑던 김주중 동지가 1심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6개월만에 출소하여

자신을 찾아온다니 아니 설레겠는가?

헌데, 집도 정특위도 모르는 언놈이 11시 30분 예약을 해놓고 기분을 잡치고 있으니 !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언놈'은 다른날 같으면 10시 반에 갈것을 이날 따라  시간맞춰 11시 30분에 도착 !

'왜 안나오지 ?'  

 

- 면회가 성사된 시각은 오후 13시 !

 " 아니, 쌍용사람들이 헛탕치고 난망하게 서성대믄 예약자한테 전화해서 취소케 해야지!

 이렇게 융통성이 없으니 ----- 시방 멫 사람이 애 먹는 겁니까? 예? "

정특 위방에 사전연락 하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붙힌 방도 무시한 잘못은 생각도 않고, 일단 내지르고 봤다.

(감옥은 일단 두들기 봐야 한다는 삶의 신조를 실천한 것인데........)     

 융통성 없는 교도행정 덕분으로 김주중 동지와도 반갑게 해후했다.

 법 없이도 살 좋은 얼굴이다. 김주중 동지는 !

(법 없이도 살 얼굴을 하니 여태 감옥에 있었지 ! 원래 세상이 그래 !)

 

- 정주용 동지를 아주 반갑게 마주했다.

 " 이심 전심이라고 ! 여기 들어와서는 쌍용투쟁했던 동지들 남같지가 않고 다 같이 정이 느껴져요.

 밖에서는 아웅다웅 조그만한것 가지고 등 돌리고 했는데,

 막상 감옥에서 만나니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라는 거를 알게되네요. 나말고 다른 동지들도 그런가 봐요.

 다, 건강하죠? 방금 나온 사람들 보니 기분좋네 ! "

 

두시간 기다림 끝에 만난 보람이 있구나.

기분좋은 만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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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동지 면회 기

김남수(당시 창원 지회장) 동지 면회 후기 (1월 22일)

 

- 1월 18일 22명 1심 결심재판 때 창원 동지들을 볼수 있었다.

눈으로 봐서는 누가 평택사람이고 누가 창원사람인지 쉽게 구분이 안된다.

8월 5일 당시는 많은 동지들이 머리를 빡빡으로 밀었고, 새까맣게 얼굴이 탓었다.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썻기 때문에 강렬한 눈빛과

서로 격려하는 말투가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이다.

헌데, 두툼한 잠바를 입고 더벅버리를 길럿으니 누가 누구인지 알수가 있나 ?

무작정 인사부터 하고 상대방의 처분만 기다려야지 ! 손을 꽉잡거나 껴앉는 등 적극적 의사타진을 해온다면 틀림없이 77일 농성자 중 한명일 것이다.

 

창원동지들은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여전 사내들 여럿이 모여 싸움질 하는 말투다. 

" 언제 나왔는 교 ?  몸은 괘얀찮은 가예 ? "

" 예. 멀리서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어찌 힘들죠? "

" 멀 요? 재판 잘되야 한긴 데 " 

 

( 솔직히 경상도 말투는 억씬게 처음에 정붙이기 어렵다. 

 창원 사투리는 아마 안동쪽하고 대구쪽보다는 부산쪽에 가까워 좀 유한 편인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별로다. 어떻게 사람을 면전에다 놓고 저렇게 퉁명스럽게 말의 뒤끝을 올려치기 하며 내뱉을수가 있단 말인가 ? 뒤끝을 깨끗히 하느라고 말끝을 꺽는건가? 경기민요 꺽듯하네!

정감가고 착감기기는 전라도 말씨가 좋지 ! 검나게 좋지라! 연설할때는 문제여서 그렇지 !

' 우리으- 투쟁은 이제 전국 노동자들으------. 혀 구조상 '의'발음이 안되는가 보다)

 

- 현재 창원공장의 해고및 징계자, 무급자 합해서 100명 안쪽이라 한다.

이 추운날도 열심히 공장앞에서 지역의 연대동지들과 힘찬 출투를 전개중이다.

정비 동지들역시 구로 공장 앞에서 열심히 출투를 전개하고 있다.

사측은 지금까지 손배 가압류나 고소고발을 풀어 주는 조건으로  무급자나 해고자에 대해서 희망퇴직등을 강요하여왔다고 들었다.  

전체 정리해고, 징계해고자 합해서 200명 !

지금 당장 유관으로만 살펴봐도, 이들이 사측이 의도하는대로 복직 투쟁을 포기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복직 투쟁을 멈출수 없는 것인가?

험난한 길을 걸어온것은 두번째 이유 아닐까?  그까짓거 비처럼 퍼부어 대던 최루폭탄과 도장 공장 폭발의 위험도 감내했는데.

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생각할수록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며 응얼이져 도저히 멈출수 없게하는 그 무엇 때문에, 

그리고, 생애 처음 받은 엄청난 충격과 달리본 이 사회에 대한 시각 때문이 아닐까?

 

- 김남수 동지도 머리가 자라서 미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빡빡 밀어서는 불량끼 있게 보였었는데.

 머리도 밀어봤고, 원없이 투쟁도 해봤고 ! 곱게 죄수복을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 면회 많이 못오죠? "

" 면회 오지 말라고 했어요. 잘 지내는데요. 뭘. 동지들 곁에 있고 ! "  

 음!  해탈한듯!

 좀더 도를 닦으면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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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주동지를 면회하고 나서

문기주 동지 (다시 정비지회장)면회 후기 (1월 21일)

 

- 감옥에서 나온지 10흘째 !

 

왠놈의 콧물기침이 멈추러들지를 않는다. 청정구역에서나와 오염구역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인가?

그럴만도 하다.

이 지옥같은 대한민국 자본주의에서 영장류 인간개인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로 내몰리고 있단 말인가 ?

다른 포유류와는 달라서 인간사회가 서로공존하지 않는다면 먹고, 입고, 잠잘곳을 찾지 못해 요즈음같은 한겨울에는

얼어죽기 십상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공존 하고 배려하기 보다는 배제하고 탈락 시키는 구조' 인 이 지옥같은 자본주의 !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이 넘쳐나 멀쩡한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를 짜르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세상 !

한쪽에서는 그 부를 통제하지 못하여 파괴하고 땅속에 묻고 있음에도, 바로 그 옆에서는 굶어죽기를 밥먹듯이 하는 세상 !

하여, 생존과 평등과  민주주의의 요구를 국내적으로는 공권력의 군화발로 국제적으로는 전쟁이란 이름으로 살육하는 세상!

이것이 지옥같은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한쪽에서는 내쫒고 법으로 압류하고 심지어 불태워 죽이고

한편에서는 꿀벅지로 소비를 유혹하고 'TV예능노예'들 바보짓거리로 위안 삼게하고

물 공기 땅 바람 햇빛마져도 돈내고 쓰라 한다. 죄다 오염되어 있고.

그러니, 온실같은 감옥안에서 있다가 나온 내가 배겨낼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완전히 단단히 몸살을 앓(알?)을수 밖에 -----.

얼마후에 나의 몸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어 면역성을 갖추든지, 아니면, 계속 감염에 저항하며 콧물질질 흘리던지 !

하여간, 나는 시방 무지하게 호된 사회신고식을 하는 중인것만은 분명하다.

이 사회가 범법자들을 포용하지 않는 것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심할 줄이야 ! 콧물이 엄청 쓰다 !  

 

- 그제 있었던 일이다.

" 한상균씨 책이 30권 이상이라 받을수가 없네요!"

" 아니, 그렁게 어딧어요? 수원은 무한정이었는데! "

" 규칙 바뀐지 얼마 안되요. 워낙 책이 통제가 안되어서!" 

" 뭔 소리요? 이젠, 몸땡이 구속도 모자라 정신머리까지 구속할라고 하나 ? 담배하고 막걸리를 넣어주지는 못할망정 책을 30권으로 묶어 놓다니, 당장 시정하시오! "

이런게 바로 대한민국 교도행정의 현주소다. 교도소나 구치소 정문에는 보통 이렇게 큼지막하니 적혀있다. ' 사람중심의 교토행정!'

헌데, 죄수들은 사람축에 끼지를 못하니 문제지 ! 

 

누구 때문에 교도소나 구치소의 직원들이 먹고사는데 ?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사, 경찰들이 누구덕에 먹고사는데 ?  바로 죄수들 때문이다.

좀더 본질적으로 나가서는, 대한민국이란 자본주의 사회는 감옥에 일정한 죄수들을 가두어 놓지 않고서는 유지될수 없는 사회이다.

때문에, 툭하면 '범죄와의 전쟁' 을 벌이고, ' 법과 원칙이 준수되는 사회 어쩌구 저쩌구' 를 노래부르듯 틀어대는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감옥에 죄수들이 부족하다 싶을 때, 또는 지배자들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 싶을때, 이때는 어김없이 전쟁을 선포하고

법을 부르짖는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범죄를 양산 하는가? 맞는 말이긴 한데, 달리 표현하고 싶다.  

국가권력을 움켜쥔 지배자들은 항상적으로 죄수들을 만들어 낸다. 부족하면 억지로도 채워 넣는다. 

감옥이 비는 일은 상상할수도, 실현되어서도 안되니까 ! .

왜 냐고?  곰곰히 생각해 보라!  감옥에 정치수와 죄수들이 없다면 그건 이미 자본주의가 아니다.

구형 합해서 92년을 두들겨 맞은 쌍용차 노조간부들을 보라 ! 

기업하기 좋은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감옥에 잡아가두어 놓은 이유가 무엇인가를 !

92년 짜리 맞춤형 죄수복을 입혀놓고 !

 

 - " 책은 사서 봐요 ! 여러 군데서 넣어주는 책은 딱딱한 것들이라! "

 " 아주 좋은 책읽기 버릇이요. 남들도 그리하라 하소. 감옥은 돈만 있으면 안되는게 없으니까! "

 

  문기주 동지도 얼굴이 좋다.

예전, 머리 빡빡깍고 수염길렀을 때 모습이 아니다. 그땐 눈에 독기가 잔뜩들어 그렇지 밀면 쓰러질듯 비쩍말랐었는데.

최후 진술할 때 보니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멀리서도 척 알아볼수 있다.

그 특유의 성깔있고 반항섞인 목소리 ! 

" ---- 우리가 소위 깍뚜기들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 20년 동안 정비 사업소를 지킨 댓가가

 ----- 정리해고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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