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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용동지를 면회하고

정주용 동지 (당시 선봉대장) 면회 후기 (1월 23일)

 

- 나도 '면회의 기술'이 늘어서 면회하면서 다음날 11시 30분에 예약을 한다.

그래야 의도하지 않게 '바람'을 맞지 않을수 있다.  

무턱대고 11시경에 평택구치소에 가서 한상균 면회를 신청해 보라 ! 춘삼월 날 풀릴 때까지 한상균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날 예약 면회는 무려 2시간을 기다려서야 성사가 되었다.

 

- 예약을 하고도 이렇게 만나기가 어렵다니! 이거야 원!

 이날, 정주용 동지는 전날 수원 구치소에서 출소한 김주중 동지와 면회를 하기로 다른동지들 인편으로 교감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김주중 동지는 22일 아침밥을 먹고 평택구치소에 도착 !

헌데, 누군가 예약을 해서 면회를 할수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는 예약한 당사자가 나타나기를  9시부터 11시까지 무려 두 시간넘게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으나 허사 ! 

함께온 부산과 평택의 동지와 함께 발길을 돌릴수 밖에 !

(부산에서 왔던 동지는 벌써 두번째 허탕걸음이라고 나중에 들었다. 차비만해도 20만원 깨졌을 듯! ) 

 

(속으로 이랬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여 !

정특위 에서도 모른다고 하고, 정동지 집에서도 모른다고 하고. 어떤 * 이여! 으이씨!)

   

- 정주용 동지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김주중은 누구인가? 

선봉대장 이었던 정주용 동지의 입장에서는 

당시 사측의 사정거리 족히 1키로짜리 강력 에어볼트총의 엄호아래 물대포를 앞세워 개떼처럼 달겨들던 전견들을 상대로

최선봉에 서서 육탄전을 함께 전개했던 사랑하고도 사랑했던 대원 아니었겠는가?

77일 옥쇄기간동안 사측과 공권력의 침탈이 빈번했고, 특히 7월 중순이후부터는 하루걸러 밀고 들어왔던 것은 세상이 다아는 바다.

공권력이 하루가 멀다하고 밀고 들어 왔다는 이야기는 당시 정문쪽  최전방에 있었던 선봉대 동지들에게는 

한시도 쉴틈을 허락치 않았다는 말이 된다.

주먹밥을 먹다가도 밀고 들어오면 어쩌겠는가? '그래, 나살고 너죽자 !' 하며, 육탄으로 나서야지.

 

또한 초 선봉의 선봉대 동지들은 

관리자와 용역이 쏜 강력에어볼트총에 부상당한 동지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뒷 모습을 연일 눈물로 배웅했다.

격렬한 몸싸움이 빈번했던 최전선이었던 만큼 그 진퇴를 둘러싸고 언성이 높았고,

때론 쇠 파이프를 내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던 동지들을 원망도 했다.

밤이 지나고 새벽에 눈을 떠,

변화를 기대했지만 바퀴벌레들의 철벽 울타리는 견고했다 ! 간밤에 줄어든것은 선봉대의 숫자뿐이었다.   

그렇게 선봉대 동지들은 쉰내나는 속옷을 입은채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공장을 지켜냈다.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며, 

헐떡거리는 숨을 채고르지 도 못한채,

인해전술로 달겨드는 적들을 향해 육탄으로 맞섰다. 누군가는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역할을 !  

   

- 그 살갑던 김주중 동지가 1심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6개월만에 출소하여

자신을 찾아온다니 아니 설레겠는가?

헌데, 집도 정특위도 모르는 언놈이 11시 30분 예약을 해놓고 기분을 잡치고 있으니 !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언놈'은 다른날 같으면 10시 반에 갈것을 이날 따라  시간맞춰 11시 30분에 도착 !

'왜 안나오지 ?'  

 

- 면회가 성사된 시각은 오후 13시 !

 " 아니, 쌍용사람들이 헛탕치고 난망하게 서성대믄 예약자한테 전화해서 취소케 해야지!

 이렇게 융통성이 없으니 ----- 시방 멫 사람이 애 먹는 겁니까? 예? "

정특 위방에 사전연락 하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붙힌 방도 무시한 잘못은 생각도 않고, 일단 내지르고 봤다.

(감옥은 일단 두들기 봐야 한다는 삶의 신조를 실천한 것인데........)     

 융통성 없는 교도행정 덕분으로 김주중 동지와도 반갑게 해후했다.

 법 없이도 살 좋은 얼굴이다. 김주중 동지는 !

(법 없이도 살 얼굴을 하니 여태 감옥에 있었지 ! 원래 세상이 그래 !)

 

- 정주용 동지를 아주 반갑게 마주했다.

 " 이심 전심이라고 ! 여기 들어와서는 쌍용투쟁했던 동지들 남같지가 않고 다 같이 정이 느껴져요.

 밖에서는 아웅다웅 조그만한것 가지고 등 돌리고 했는데,

 막상 감옥에서 만나니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라는 거를 알게되네요. 나말고 다른 동지들도 그런가 봐요.

 다, 건강하죠? 방금 나온 사람들 보니 기분좋네 ! "

 

두시간 기다림 끝에 만난 보람이 있구나.

기분좋은 만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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