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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씨 고마워... 하고싶은 연애를 하게 해줘서..

내 남자친구의 이름은 둘리다. 처음 그를 본 순간, 난 그가 둘리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둘리를 닮았다. 혹자는 희동이를 닮았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눈 웃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둘리는 나보다 5살이 많다. 개월수로 따지자면, 75개월 정도 더 살았다고 보면 되겠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1월 즈음... 학생회장이 되어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였을 때였다. 물론 그는 나의 선배의 동기였고,  나의 선배의 동기로 본 우리 둘리는 그닥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였다. 둘리가 나를 본건 내가 대학 새내기였을 적, 난 매우 작디 작은 여자아이였다고 한다. 즉, 별 관심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건 작년 9월...

즉 서로를 알고 지내온 그 시간들 동안 우린 각자의 연애를 하며 성숙해나갔고, 잠시 쉬고자.. 다시 연애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라며 마음을 다지던 시기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난 그를 만나기 이전까지 여성주의적 연애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에 늘 의문을 품어왔다. 가장 단편적인 예로 수많은 남성 애인을 지닌 여성들이 성관계를 맺을 때 절대절대 콘돔을 쓰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남성들이 안하거나 준비를 안하기 때문에 혹은 아주 소수의 여성들이 착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인데.. 후자의 경우 매우 드문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경우에 덜컥 임신을 하야 몸과 마음을 다 상하고서도.. 정신 못차린 남성들로 인하여 다시 임신을 또 덜컥하고 유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미친 세상에서 더 미친 것은 이성애자들인 남성들이 자신의 여친에게 흔하게 범하는 실수인 바로 성폭력인 것이다. 여자친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우는 당연하거니와 한번 관계를 맺고 나면, 그 때는 지 영혼이 마치 여자친구의 영혼과 몸이 뒤바뀌어 지 몸인마냥 마구 주물려대며 여자친구가 매우 좋아할 꺼라 착각까지 하게 된다.

이뿐이던가...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볼 때는 이들은 갑자기 페미니스트로 돌변하야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여자친구들에 대해 욕을 실컷 퍼부어준다. 그러나, 평소에는 여친은 지켜줘야 할 대상이고 돌봐야 할 애완동물과도 같다. 어떨때는 끓어오르는 욕정의 출구와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매우 다른 데로 새어가려고 하고 있으나, 암튼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연애도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난 끊임없이 오해했었고, 상처받았었다. 음...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눈웃음이 주무기인 둘리를 만나고 나서 난 처음 연애를 하는 것만 같았다.모든게 설레이고 핸드폰은 항상 내손에서 둘리로부터 오는 문자 혹은 전화를 위하여 준비태세에 돌입해있고, 머릿속은 둘리의 눈웃음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를 한달여... 난 둘리와 헤어질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런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감당하기도 어려웠던 당시의 내 두려움도 있었거니와 그 두려움을 증폭시킨 둘리의 행동들은 내 가슴의 스크래치 이상의 스크래치를 남겼기 때문이다.. 난 헤어지자고 이야기했고.. 둘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난 둘리에게 있어 눈웃음이 다가 아니라, 내가 보지못했던 그의 무심함, 상대방에 대한 무배려;;;, 반여성주의적 말과 행동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 상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후 난 2주에 한번씩은 꼭 히스테리를 부렸고... 왜냐하면 2주의 한번은 둘리가 꼭 사고를 쳤기 땜시.. 그는 매번 용서를 빌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쳐갔다. 특히 난 너무나도 지쳐서 헤어지자는 말을 한 5번도 넘게 했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연애하는게... 아니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게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특별히 무심한 것도 문제지만, 오히려 그의 행동들은 보통?의 남자들이 하는 행동과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고 지쳐하면서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와있다...

우리의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면, 위에서처럼 늘 난 상처받았었고, 그 상처받은 맘 때메 둘리에게 상처를 주었고... 상처에 상처를 거듭하는 나날들이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사랑하게 되기까지 정말 우리에겐 각자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나의 경우... 그를 만나기 전 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로 사람들의 눈도 마주치기 힘들고, 앞에 나가서 말하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둘리의 눈을 마주치는 것은 처음부터 어렵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그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다시 웃음을 주었다. 지쳐가는 생활 속에.. 운동이라는 것을 재고민하던 그 시절에 그는 활력소처럼 늘 나에게 다가와 웃는 법,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의 경우.. 둘리는 대단한 마초였다. 빙하시대에 엄마 공룡과 일찍 헤어져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듯한 길동이와 살아서 그런지 모랄까 권위적이고 타인, 특히 여성에 대한 아니 여자친구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고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닥 많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암튼 둘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와 참 많은 싸움을 하였는데... 어느날이었던가. 자신의 스케줄을 저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서 집앞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자신의 운동에 대한 배신이 아님을 확신하는 그를 보았다.

 나에게 생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물어보고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또한 집안에 계신 어머니의 가사노동이 힘든 '노동'임을 인식하고 있는 그를 보았고, 몸이 아픈 사람을 배려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매일매일 전화를 하거나 혹은 문자를 보내며 안부를 묻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무심했던 둘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미소를 지닌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콘돔의 중요성을 매일같이 주창하고, 나에게 심지어 훈계까지 한다. 그리고 최지영님의 글쓰기를 보며 연서명을 한 그를 보며 난 놀랐고, 나에게 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귀기울여 듣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그를 보면서 난 그에게 '마시멜로우' 해 라고 말했다.

그 때 둘리의 모습은 사랑한다는 말로 부족했기 때문에 난 '마시멜로우'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들어 난 둘리와 만나면서 때로는 아직도 많이 싸우지만... 가슴의 상처가 아직도 나기도 하지만 둘리의 매력포인트 눈웃음 한번이면, 별안간 상처가 아문듯이 희미하게 웃고 있는 내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남자'를 만나면서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연애를 드디어 하게 된 느낌이다. 나를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그야말로 사랑으로 가득찬 연애.. 그것이 여성주의연애지 싶다...

그것도 아니면, 거북이와 둘리의 연애라고 할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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