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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만 해도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공포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었고, 진보 사회운동에서 일종의 묵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덧 십 수년의 과정을 거쳐 '성 다원주의'라 할만 한 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동성애, 양성애 등을 포함하는 다원주의가 적어도 '진보' 진영 안에서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얼마전에 러시아에서 동성애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사석에서 이에 대해 전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동성애의 조장'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는 왕(汪) 선생을 반박한 바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왕(王) 선생과 <안티고네> 극본의 내용을 논의하면서 왕 선생의 '정치적 올바르지 않음'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동성애/이성애/양성애 등으로 단지 범주가 늘어나는 것이 모종의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다. 지난 해에 대만에서는 '공공 장소에서의 섹스 파티 사건'으로 떠들썩 한 적이 있다.
https://zh.wikipedia.org/wiki/%E5%8F%B0%E9%90%B5%E8%BB%8A%E5%BB%82%E6%80%A7%E6%B4%BE%E5%B0%8D%E4%BA%8B%E4%BB%B6
https://www.facebook.com/TrainPublicSex
기차의 한 칸을 전세 내어 진행된 이 파티는 일본의 성인 영화 <電車痴漢>을 모방하여, 이 파티에 자원한 17세 고교 중퇴생 여성과 18명의 남성의 섹스를 진행했다고 전한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법적 처벌이 진행되기도 했고, 이에 대해 2012년 9월 발간된 <대만사회연구계간> 88호에서는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대만사회연구계간이나 대만의 급진주의 운동가들은 "인민의 성적 결합 자유를 지키자"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왕 선생이 <안티고네>에서 다루려는 것은 이 차원을 넘어서는 것 같다. 왕 선생은 과연 이 섹스파티에 어떤 '미학'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안티고네가 상징하는 '법', '국가', '윤리' 등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지만, '아름다움'과 '무질서'를 구별한다. 일종의 '다원화'의 윤리학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왜 '동성애'가 어떤 측면에서 '범주'적 차원에서만 인식되었는가라는 문제를 던질 수 있다고 본다. 과연 '동성애'란 무엇일까. 왕 선생이 말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은 단순한 성적 결합을 넘어서는 것이다. 성적 결합 또는 모종의 '욕망'으로부터 찾아지는 이러한 동성애 및 다원주의의 소극적 의미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것이 거기에서 그치면서 성적 결합을 넘어서는 동성간 또는 이성간의 감성적 유대의 다양한 형식이 제약되는 측면이 있지 않은지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성'에 내재하는 원리로서의 '욕망'에 대한 억압 기제를 비판하는 측면에서 프로이드는 '내재적' 비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은 단지 '욕망'하는 존재일 뿐인가? 그 내재적 비판은 어떤 의미에서 역사에 외재적인 측면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와 같은 외재성은 '범주'적 차원에 머물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는 다시 지식의 차이를 선으로 하여 위로부터의 내려지는 '다원화'이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대중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미학'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종의 엘리트주의와도 연관되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잘은 모르겠으나, 프로이드의 현대성에 내재한 비판이 헤겔의 이성과 그에 따르는 종교 등이 이와 대비되기도 하고 또 상호보충적인 구도를 만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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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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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게 글을 써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제목처럼 '동성애 비판은 아니네'요. 그런데 왜 동성애 등 다양한 sexual orientation을 언급하셨을까. 왜 또 거기서 대만기차사건으로 jumped on하셨을까. 그 생각을 하게 되네요. 게다가 완전한 사랑을 구현하지 못하는 제약이라는 내용까지. 뭔가 아귀가 착착 안맞어 들어가는 글이라서 당황스럽습니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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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답지 않게 괜히 자극적으로 뽑았다는 후회를 합니다. '용감'하게 글을 쓴 것은 아니구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지만, 한번의 대화중에 떠오른 실마리들을 대강 얼기설기 모아 놓은 글이라 보시면 될 듯 싶어요.다원주의적 범주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시 말해 '인민의 자유로운 성적 결합'이라는 급진적 관점에서 보면, 이성애에 갇히지 않고 동성애/양성애를 포함하고, 더 나아가 일대일의 성적 결합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취향/방식을 포함하는 것은 '진보'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와 관련해 '미'적 내지 '윤리'적 가치가 논의될 수 있지 않은가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큰 틀에서 '욕망의 인간학'을 넘어서는 인간학적 측면(어쩌면 동성애가 일정하게 이성애의 대립면으로 머무는 측면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어떤 초월적 인간 내부의 정감적 교류의 방식)이 지식의 위계를 경계로 해서 역사 외재적으로 당대 현대 사회 안에서 일정하게 제약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하는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이는 기존의 틀에서 논의될 경우 반동성애적인 이성애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처음에 제목을 그렇게 뽑아본 것이었구요.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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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이 플라톤의 <향연>을 다시 읽게 하네요. 전에 무심코 지나갔던 소제가 시야에 들어오네요. "에로스와 윤리를 둘러싼 [문제에] 대하여". 님의 지적에 따라 읽어 내려가니까 새로운 점들이 보이네요. 뭔가를 정리할 만큼 정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동성애 ‘처리’관련 독일 상황이 시사하는 점이 있지 않나 합니다. 동성 파트너의 지위가 “등록된 생활파트너십”(eingetragene Lebenspartnerschaft)이란 준‘결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어 이런 모델에 전통적인 가족이 누리는 국가의 각종 혜택의 부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이걸 부정하는 법규가 최근 헌재소의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주제로 한 2013.6.12 ‘Anne Will'의 토크쇼가 재밌네요. 전통 가족모델 대변인으로 기민당내 강경보수 에리카 슈타인바흐와 최근 호응을 받으면서 전통 가족 지키기 운동을 하는 헤드비히 폰 베버푀르데자 자리하였고, '동성생활공동체’를 ‘전통 가족’과 똑 같이 다루자는 (입양의 문제가 남아있음) 신자유주의를 신념으로 하는 자유민주당 FDP의 미샤엘 카우흐와 전에 교황산하 ‘신앙교리청’ 강사로 있다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다비드 베르거가 자리했습니다. 이 배석 자체가 시사하는 점이 그냥 눈에 들어오네요.
‘성해방’이 그대로 ‘반자본’ 해방의 요소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대립구도는 님이 지적한데로 그렇지 않네요. 위 토크쇼 양측의 논점도 ‘전통적인 가족’ 담론안에서의 대립이구요. 슈타인바흐는 ‘가족은 이성에 기반한 것이다’를 주장하고, 베르거는 동성애자들이,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지금, 서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전통가족의 이념을 실현하는 거라고 맞서네요. 사실 기민당, 자민당내 동성애자,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났고요.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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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예상했던대로 답을 해주셨네여. 저는 (일대일)이성애 관계를 포함한 그 이상의 관계(들)에 대해서 인민의 자유로운 '성적'결합이라는 대전제에 회의하고 있는 터라 님의 생각을 이해하는 한편 (님이) 이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의 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 했던 것입니다. 인민(들)의 자유로운 결합은 그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든 그 인민들이 알아서해야 할 문제이니까요. 언급하신 기차 사건은 인민들의 자유로운 '성적' 결합으로 접근하는 한 모랄리티 그 이상을 논의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은 더 멀어집미다. 어쨋든 감사합니다. 확실히 말해 님의 이 글은 동성애 비판은 아니군요. 아니어야 하겠군요.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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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님.앞서 댓글에서의 '용감'이라던가, 지금 말씀하시는 '안타까움' 등의 표현은 토론에 불필요한 수사로 보입니다.
모든 토론은 일정한 전제와 범위가 있는데, 그 내부에서 논의를 전개하여 토론을 심화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전제와 범위를 비판하여 토론의 외연을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 비판이나 토론을 해주시면 됩니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질문해 하는 '욕망의 인간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전제'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명확히 하자면, 저는 그것을 반지성주의/무정부주의/폭력적으로 '인민들이 알아서해야 할 문제'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 모종의 '민주/자유'라는 전제에 대해 저 나름의 질문을 던지는 것... 바로 그것이 전제입니다. 그래서 미적/윤리적 가치라는 '자유'의 타자성을 제기해 본 것이구요.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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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의 덧글이 될 것 같은 불길함이…일단은 제가 과문하기도 하거니와 님이 다루시는 conception(s)들을 포괄하는 텍스트에 접근할 수 없어 이른바 ‘아카데미아’ 영역 밖의 것으로만 그러니까 제 개인적인 것으로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님이 쓰시는 다원주의는 일견 상pluralism인 것 같아 제 이해와 다른 결인 듯 싶습니다만 그것은 차치하고 말씀드릴께요.- 아무래도 성적 다양성sexual diversity에 대한 이야기를 ‘성(sex)’ 중심으로 전개하다 보니 (전문가가 아닌 인민의) 화법 상sexual diversity에 관한 주제들이 성(sex), 특히 성기(genitals) 중심의 담론으로 많이 제한되고 (인민의) 욕망을 구체화할 다양한 상상력-담론들도 덩달아 이에 갇히는 상황을 많이 봅니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이른바 이성애중심주의자들 (주로 호모포비아이거나 근본주의종교론자들 혹은 전통적인 생(번)식 중심의 가족주의자들이겠죠. 동시에 지배계급이기도 하고요.) 이 내거는 ‘사회에 대한 걱정’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 제한에서 시작하여 이 수준에만 머문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막말로 예의, 성이 문란해지고 사회가 어느 지경으로 갈지 모른다는 ‘덧없는’ 걱정 따위).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 이데올로기가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어요. 이 정도는 학문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 삶의 문제겠죠. 아무 것도 안하고 죽은 듯이 살아도 sexual minority란 이유만으로 얻어터지거나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지구에 ‘실재’하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오래전부터 좌파의 일부 혹은 상당수가 (본인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sexual diversity에 대해 이른바 “PC”하게 접근하려 애쓰는 게 이해못할 바도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일부 사람들은 이런 ‘덧없는’ 걱정을 할까요? 저는 이 맥락을 결국 인민의 ‘몸’(노동력)에 대한 걱정이자 통제로 보고 있어요. 저로서는 이런 접근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통제인 것 같아서 대단히 불편해요.
- 한편으로 ‘동성애/이성애/양성애 등으로 범주가 늘어나는 것’이 갖는 효과도 있어요. (사실 저는 이게 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기존에 있었던 담론/개념 외의 것으로 정체화(identifying)하기 시작했고 정체화할 언어를 얻었거든요. 예를 들면 주로 북미대륙에서 쓰는LGBTTIQQ2SA... (Lesbian, Gay, Bisexual, Transsexual, Transgender, Intersex, Queer, Questioning, 2-Spirited and Allies...) 개념으로 보면 한 개인을 하나의 개념(만)으로 define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인지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알 수 있죠. 결국 이 “LGBTTIQQ2SA...” 개념 아래서는 성적 정체성을 구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타자를 그 타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은 sex-positive environments를 조성하려는 노력 정도로만 오늘은 받아들여 주세요.
- 마지막으로 “인민(들)의 자유로운 결합은 그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든 그 인민들이 알아서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기존의 바운더리없는 자유주의자 개념으로만 받아들여시지 않으면 됩니다. ‘인민의 결합은 이러이러한 식이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에도 저는 별반 관심 없고 사실은 인민들이 결합하든말든 그들이 (그 개인이) 알아서 책임질 줄 아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보다 더 큰 관심거리이긴 합니다. 이성애자들이 낳았지만 책임지지 못하는 아이들을 키워보겠다는데, 확장된 가족 (extended families)이 등장해 개인이 개인을 지지보족하겠다는데 그 이성애자들과 정부, 사회가 왜 반대하거나 시시콜콜 참견하는지 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뭐죠, 그냥 각자 알아서 고군분투하라는 건가요. 뭐, 사실 그게 다스리기엔 쉬울지도 모르죠.
- 사족: 토론에 불필요한 수사법은 문자로 뭔가를 표현할 때 제 정서feelings를 드러내는 수사법이니 그냥 무시하셔도 상관없어요.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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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혹시 가능하시면, 이른바 그 '기차사건'에서 "이 파티에 자원한 17세 고교 중퇴생 여성과 18명의 남성의 섹스를 진행했다고 전한다"는 것 외에 다른 건 없는지 궁금하네요. 만다린을 못 읽고 팩트를 모르니 "이 파티에 자원한 17세 고교 중퇴생 여성과 18명의 남성의 섹스를 진행했다고 전한다"는 것만으로는 그래서 뭐? 라는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아울러, 이런 "파티"에 왜 '미학'이 있는가라고 묻는지도 궁금합니다. 뭐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 "무질서"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건지. 그리고 이 단락 뒤에 '동성애'를 언급하신 이유도 궁금해요, 주신 문장만으로 볼 땐, 18명의 남성들이 동성성교를 했다는 건가요? (섹스파티였다고 하니 동성애, 로 규정하기엔 좀 그렇고 동성간 성교로 읽히거든요.)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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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가 많이 다르니 논의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제 이야기가 정리된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 그렇겠습니다. 님이 제 말이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처럼 저도 님의 이야기 중에 여러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요. 암튼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레퍼런스가 다른 건 그렇다쳐도, 제가 보기엔 제 의도나 맥락을 거의 파악하지 않고 본인의 맥락에 제 낱말과 구절들을 무차별적으로 끼워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중적 논쟁에서는 아주 중요한 화법이자 기술이겠지요. 기본적으로 입장이 명확하신 것 같고, 대상에 대해 '정치'적인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런 '정치'적 논의를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런 '정치'적 입장에 관련해서는 저도 별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러한 '정치성'의 타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식'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역사'가 바탕을 이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정부주의, 엘리트주의, 포퓰리즘 등은 제가 보는 맥락에서는 한 가지 원인의 여러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그것의 폭력성도 마찬가지이구요. 저는 추상적 인간으로부터 도출되는 보편적 인간학이 주체의 형성, 변혁적 전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유'니, '평등'이니... 이런 추상적 가치들은 구체적 맥락이 없이는 아주 공허한 담론에 불과하지요. 매우 반 유물론적이구요.
아름다움과 윤리를 추구하는 맥락에서 그 자원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망각되고 억압된 것으로서의 역사적 개별성을 찾는다면, 저는 그것이 보편적인( 동시에 같은 형식을 공유하는 다원주의적인) 인간학으로부터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체는 서로 다른 '민족'적 역사를 갖는 사회 속의 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저는 사회의 변혁이 무에서 무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편주의의 폭력성이구요. 변혁의 동력 역시 '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변혁 이후의 세계 속에서도 '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형식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다원주의의 보편주의가 궁극적으로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글이 길어지는데, 조만간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군요.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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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지요. 서로 배웠거나 밥벌이하는 텍스트가 다르다는 것은 기왕지사인 것 같네요. 이것은 아무래도 당장에는 공명하기 어려운 지점인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중적 토론을 하려던 게 아니라 님과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만약 대중적 토론을 원했다면 저도 좀 더 준비를 해 다른 연단으로 이 주제를 갖고 갔겠지요. '정치'적 입장에 관련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는 님의 말씀에 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지만서도 달리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님과 한 짧은 토론은 제게 꽤 진전이 있었습니다. 감사드리면서 곧 올 포스팅을 기다리고 있을께요. 혹여 제가 감정을 상하게 한 지점이 있다면 널리 이해해주십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