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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989년6.4천안문 사건의 학생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왕초화의 특강이 열렸다. 이 특강은 우리 연구소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인데, 한 학기 동안 학위 과정의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지도와 더불어 각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초화의 특강 제목은'지식사상 공공화의 곤경'이었고, 부제목은'중국사회 장기역사발전에 대한 지식사상의 인식과 개입'이었다.
왕초화는 먼저 지난7월 세상을 뜬 미조구치 유우조(溝口雄三)의 문제의식에 대한 소개로 강연을 시작하였고, 특히,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어 왕휘, 감양 등의 글을 검토하면서 왕휘, 감양과 미조구치, 다케우치 사이의 관련성을 지적한다. 한편, 최근 뉴레프트리뷰에서 논쟁이 된, Joel Andreas와Huang Yasheng의 논쟁도 소개되었다. 마지막으로 팍스콘 노동자 자살의 케이스를 통해 중국 농촌의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고, 앞서 제시한 왕휘, 감양 등의 오류를 확인한다.
강연과 약간의 오차가 있겠지만, 필기에 따라 요점만 정리하면,
감양은 중국의 사상적 자원으로 유가, 모택동, 개혁개방을 제시하고, 이는 親情人情, 正義平等, 自由權利라는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시킬 뿐,等差秩序, 大躍進/文革, 市場化등의 문제에 대해서 맹목적인 문제가 있다. 왕휘는 국가와 정당의 문제에서 독립주권성격을 강조하고, 농민과 관련해서 토지혁명과 인민공사의 연관성,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침투 하의 농촌경제의 의존성 증가의 문제를 지적한다. 종합하면, 감양과 왕휘는 지방분권적인 전통사회의 특성과 중국혁명을 통한 농촌포위도시 전략, 토지혁명, 인민공사 등이 농업자본주의(향진기업) 낳음을 긍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개혁개방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농촌자주모델이 도시의존적 농촌으로 변화했음도 지적된다.
이러한 분석에서 공통적인 것은 ‘중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왕초화는 이를 미조구치 유우조 및 다케우치 요시미 등과 관련 짓는다. 이 부분은 내가 개인적으로 고민해온 주제와 매우 흡사하다. 나는 여기에 진광흥(陳光興, 천꽝씽)을 추가하고 싶고, 어제는 문득 한국의 김지하도 떠올랐다. 물론 고민이 아직 충분하진 못하다. 왕초화는 팍스콘 문제를 제기하면서 어쩌면 아주 상식적인 ‘국가’와 ‘자본’의 공모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적 비판이 왕휘와 감양에게서 나올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중국 지식사상의 곤경으로 보는 듯 하다. 왕초화는 스스로 연구 중인 주제라는 한계 속에서 일정한 유형적 상동성을 정리한다. 사실 이 부분은 강연 장소에 있던 손가(孫歌, 쑨거), 진광흥(陳光興) 등에 의해 토론시간에 반박되기도 하였다. 왕초화의 정리는 다음과 같다.
* ‘자본주의’의 개념적 해석력 부정: 미조구치, 감양
* 반서방중심(1): 미조구치, 왕휘(농촌)
* 방법으로서의 중국: 미조구치, 다케우치
* 반서방중심(2): 다케우치, 왕휘(정치)
참고로 손가(孫歌)는 미조구치의 다케우치 비판은 말기에 그가 다시 다케우치에게로 돌아간 점을 통해 다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과 당시 미조구치의 비판의 대상도 다케우치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는 점을 부연해주었다. 한편, 진광흥(陳光興)의 반박은 좀 더 적극적이었는데, 그가 미조구치의 ‘적자’임을 드러내는 듯 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왕초화가 미조구치의 절반만을 이야기하였고, 나머지는 생략하였다면서, 외부/내부, 서방/반서방 등의 대립의 사이의 복잡성을 생략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방법으로서의 중국’에서 그치는 미조구치가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세계’까지 함께 이야기해야 미조구치의 사상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왕휘, 감양 등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서, 다른 교수들과도 토론이 있었는데, 진광흥(陳光興)은 왕휘 비판 자체가 그다지 의미 없다는 입장을 제기하였고, 오히려 미조구치의 관점에 따른다면,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장’을 배제한 ‘분석’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왕초화는 마지막으로 비판이론의 성장, 전화의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를 망각하는 측면을2010년 정세적으로 제기하고 싶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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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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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블로그 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저의 경우 전공자들의 담론구조에 머물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 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오' 님과 같은 분들과의 의견교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블로그의 글들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 학습진도와 사유의 진전, 퇴보, 확장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전문적 내용들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그 전문성을 일반적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위 '학제간'이라는 유행어와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좀더 화학적 결합을 중시하고, 이론 전체의 구조적 틀 속에서 문제를 사고하고자 하는 것이지요.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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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 가설적인 상태이긴 하지만, 아래에서 '왕휘'의 문제성을 보는 나름의 각도로서 그의 노신연구와 중국현대성 연구의 상관성을 제기한 바 있다. '反抗絕望반항절망'이라는 제목을 갖는 그의 박사논문에서 드러나는 노신연구의 실존철학적 기원성(물론 현재로서는 매우 가설적이다)이 오히려 왕휘의 '변화'를 '지속성'의 효과 아래에 종속시킬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물론 다케우치 요시미의 매개가 갖는 의미도 매우 징후적이다. 나는 여기에서 '拒絕遺忘'(망각에 대한 거부)이라는 인식론적 과제를 제기하는 전리군(錢理群, 첸리췬) 선생의 작업이 갖는 대비성(對比性)을 주목하고, '공백' 또는 '망각'을 통해 주체화의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 관념적이고 초월적인 반서구적(또는 전통적) 가치를 발굴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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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슈티르너, 니체, 하이데거, 포스트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물음이 관건이었던 것 같다. 존재로서의 어떤 '본질'(주체, 기원, 목적)을 찾는 것은 결국 특수주의(비교불가능성)로 귀결되고, 개념, 논리, 이성을 부정한다. 이성에 근거한 판단의 유효성 자체를 버리지 않으려면 모종의 '비존재론'이 필요한 것 같고, 이는 알튀세르가 찾아 정식화 하려고 했던 마르크스를 위한 철학으로서 '유물론'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발리바르가 개념화한 'transindividuality'는 존재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비존재론'인 듯 하다. 결국 비존재론의 내용으로서의 '관계'는 사실 '구조'인데, 여기서 '구조'는 비목적론적 변증법의 원리를 내재한 대상에 대한 개념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