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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메모(Perry Anderson, 2010/10/19)

http://www.soc.nthu.edu.tw/news/index.php?act=detail&nid=737

 

옆 학교인 (대만) 청화대학 사회학과에서 주최한 페리 앤더슨 초청강연에 가 보았다. 작은 강의실에 30-40여명 정도 좀 좁게 앉아서 들었는데,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래의 메모는 매우 자의적으로 이해된 내용들이다.

 

특강의 제목은 '중국혁명: 역사로부터 개혁까지'(中國革命:從歷史到改革)였다. 영어 제목은 달지 않았는데, '중국혁명: 역사로부터 개혁으로'라는 번역도 후보에 올릴 수 있다.

 

먼저, 앤더슨은 중국혁명을 비롯하여 그 후 개혁개방의 성공과 현재의 지위 등 중국과 관련한 '내재적 본질' 또는 'unique China'에 근거한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사실 지난번 왕초화의 문제제기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보인다. 다시 말해, 간접적으로 왕휘, 감양 등을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다. 이와 다른 관점으로 제시된 것은 '비교'의 관점이다. 즉, 비교를 불허하는 특수주의에 대항하여 '역사적 비교'의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비교는 역사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1. 볼세키비와 중국공산당

2. 내전과 혁명

3. 숙청과 집단화

4. 페레스트로이카와 개혁개방

이에 더해, 당의 정치적 리더쉽의 문제, 사회주체, 국제적 관계, 계급혁명/민족혁명 등을 추가로 분석한다.

 

중국적 측면에서 정리해보자면, 혁명주체에서는 농민이 포섭되었으며, 국공내전은 경제력의 파괴가 크지 않은채 혁명에 도움이 되었고, 혁명 후의 집단화와 숙청은 사실상 '실패한 재난'(러시아의 '성공한 재난'에 비해)이었으며, 이는 오히려 모택동 사후 관료계급의 지속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나아가, 이는 개혁개방에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였다. 사회적 측면에서 농민사회는 집단화 과정에서도 일정하게 유지되었으며,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가진다. 국제적 관계에서 볼 때, 미국 등 자유주의 진영은 '소련'을 주적으로 삼았으며, 중소분쟁은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소련에서 경제개혁의 출구가 없었던 반면, 중국은 '미국'이라는 출구와 원시축적의 역할을 한 화교자본이라는 출구가 있었다. 소련이 국내적 계급투쟁의 성격이 강한 반면(나치즘과 관련한 부분은 에피소드에 불과), 중국은 반외세적인 민족혁명의 성격이 강했다.

 

마지막으로 많이 알아듣지 못한 부분인데, 아시아 속의 중국과 유럽 속의 러시아의 역사경험의 차이도 현재의 중국을 설명하는데 분석이 필요한 것 같다. 아마도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는 듯 했다. 한편, 중국의 '성공'은 자본축적과 글로벌패권의 측면에서 볼 때 '성공'일 뿐이지, 혁명의 본래적 의미에서, 특히 '평등'이라는 가치에서 볼 때 전혀 '성공'이 아니라는 입장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페리 앤더슨 스스로도 아마 정리된 내용은 아닌 것 같고, 막 펜으로 작성한 글을 가지고 발표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좀 더 연구가 진행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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