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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凡人'이 지식인되기

지식의 생산이 사회적인 것이라 할 때, 나 개인의 뇌를 통해서 생산되는 지식, 그리고 그 과정도 사회적인 것일테다. 과연 나의 뇌가 어떤 지식을 생산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지 여전히 사회적 조건에 규정될 것이고, 특히 아마도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나의 지적 실천(자유)의 공간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실천성이 부재한 비생산적인 지적 노동에 머물 수도 있다. 아마 지적능력과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모두 그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과소평가는 매우 보수적인 지향을 낳을 것이고, 과대평가는 매우 초월관념적인 지향을 낳을 것이다.

 

예전에 어떤 분이 위인전을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지적 실천을 '천재적'으로 만드는 자신과 주변의 서술은 '범인'들의 지적실천의 희망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듯 하다. 여기에서 학문함에 있어서의 조급증이 생겨나고, '범인'들은 영원히 자신의 지식을 갖지 못하고 '천재'의 작업들을 조급하게 추종하는 지적노동에 갇히게 되는 것 같다. 지식의 문제, 소위 교육의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서 먼저 '천재'의 신화를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우리 사회 내의 엘리트, 특히 진보 학계의 엘리트들이 먼저 자신의 '천재성' 신화를 하나하나 해체하여, 그 '범속성'을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식의 대중화와 지적 불평등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한다면, 사실 지식인들이 자신의 '스타'적인 지위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지식의 목적이 콘서트와 같이 대중이 그들의 '지적 쇼'를 보고 즐기며 그 분할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튼, 논문을 어떻게 무엇을 쓸 지 고민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의 지적 실천능력과 조건, 한계, 이런 것들을 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나중에 다시 시작하는 수고를 덜지 않을가 싶어서 이다. 동시에 그 '훌륭한' 지식 위인들의 존재가 나같은 '범인'에게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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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전자

협상이 타결되어 정규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번 KTX승무원의 투쟁과 함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끈질긴 놈이 이긴다는 우리 나름의 희망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역사를 만들어 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그 싸움의 현장을 가보지 못했다. 그나마 2008년 대만의 독립영화제에서 이 싸움의 영상이 상영되는데 작은 도움을 준 것이 기륭 노동자들과 나의 작은 인연이지 않나 싶다. 이제 기륭에서 해냈으니 이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나아가 더 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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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想Reflexion16

http://www.linkingbooks.com.tw/basic/basic_cart_default.asp?ProductID=15708916

오늘 오랜만에 대북(타이페이) 서점에 갔다가 사온 책 중 한 권이다. 사상 16호... 사실 대만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며 보는 잡지 중 하나, 아니 거의 유일한 잡지(계간)이다. 이번 호에도 역시 민감한 문제인 '대만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편, 중국의 문화적 민족주의 및 국가주의의 부상에 대해 다루는 글도 보이는데, '사상' 지가 점차 대륙의 필자에게 일정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 중국 내부에서도 왕휘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선 간단히 편집자의 글을 옮겨 놓고, 시간을 내어 간단한 리뷰를 적어보고자 한다.

 

致讀者
  當前臺灣人文學術領域中,論本身的活力、論牽動的人力與資源、論對於社會的移風易俗影響,文化研究與臺灣史乃是最為搶眼的兩個學門。這兩個學科的發展,也與過去二十年來臺灣政治、社會的變動有最密切的關連。沒有解嚴與開禁,文化研究的存在很難想像;不經過本土化雷厲風行,臺灣史也恐怕只會繼續活在陰影之下。但是隨著這兩個新興學門力求學院化與體制化,它們與社會的有機連帶也隨之鬆弛變質。《思想》自許為學院與社會論述的中繼站,繼前一期推出「文化研究:游與疑」專輯之後,本期轉而呈現臺灣史研究的「自我形象」:我們邀請到幾位在臺灣史研究第一線的學者,面對專業之外的讀者,敘述臺灣史學的體制發展與學術成就,更表達他們個人的親身感受,從而呈現臺灣史這個領域的精神氛圍與知識態度。

  不無猶豫地,我們用「焦慮與自信」來形容臺灣史家的心路歷程,試圖捕捉這裡所謂的氛圍與態度。從局外人的角度觀察,臺灣史的從業者比起一般史學學者,似乎更在意自己的身份、自己的正當性、乃至於自己無論有意無意總難擺脫的政治意蘊,於是不免顯得急於辯解。但另一方面,臺灣史學家具有的使命感與承擔感,似乎也比史學其他領域更為濃重,其自負與抱負都很難以狹義的學術意義為界線。當然,歷史研究的意義本來就不會侷限在學院之內;不過,由於臺灣史的新生地位、由於臺灣本身的歷史之曲折、今日處境之曖昧,臺灣史所承載的負擔確實比較沈重。所可喜者殆為,在這種種張力的拉扯之間,高度的自我意識反而正可望帶來益形豐富的歷史智慧,即使必須以焦慮與自信來形容,也仍不失為健康而有益的。

  在台灣之外,本期發表高力克、成慶兩位先生的評論,以及許紀霖先生的訪談,多少都聚焦在當前中國大陸上文化民族主義和國家主義的強勁發展趨勢。與中國過去百年的激進、啟蒙思想主流對照,今天左中右各種思潮均匯流於保守價值觀與「中國模式」思路,的確是別開生面的新生事物,值得深入理解與公正的評價。當然,這些發展有其明確的客觀條件,也就是中國崛起這個巨大的歷史現象才是背後的主要動力,不過思想本身的轉折究竟受制於甚麼內在邏輯,也值得分析梳理。針對中國大陸在客觀形勢與思想潮流兩方面的動向,我們都會繼續邀請大陸的知識份子來為文討論,與臺灣的關心者對話、攻錯。

  八月間,美國的朱特與中國的謝韜兩位先生先後去世,本期特別邀請朱特的中譯者章樂天先生和謝韜的好友陳子明先生撰文紀念。朱、謝生前並無交集,經歷也沒有相似之處,相提並論似乎有些牽強。但是,晚年的謝韜在中共黨內呼籲恢復從馬克思、恩格斯到社會民主黨的正統,拒絕列寧主義來自「左邊」的篡奪;朱特於去年十月以癱瘓之軀發表最後一篇演講,呼籲大家珍惜社會民主在二十世紀的重大成就,戒慎面對「右翼」對於個人生活保障與社會公平所造成的破壞及其道德後果。東西兩位先生,所面對的問題雖然截然不同,卻都求助於一個共同的傳統。這種巧合,值得我們玩味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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