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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답답함과 서운함, 아쉬움이 좀 교차하는 듯 하다. 조건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내 능력의 문제다. 그래도 결국 나는 내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주어진 내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역전문가들의 경우 타자에 대한 균형적 인식이라는 일반적 접근이 요구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상당히 허구적이다. 이는 타자에 대한 인식의 주체적 측면에 '비주체적 불구성'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균형'에의 요구는 타자에 대한 '좌/우'의 인식 경향을 막론하고, 그 근거와 기준을 외부에서 적절히 수입할 수 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좌익'적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중국 민중의 운동이나 저항에 대한 인식 또한 그 '순진성'에도 불구하고 외재적 인식의 포퓰리즘적인 배합을 넘어서기는 어려워진다. 이를 인정하면 '중국'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진다. 이것이 걱정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누구의 걱정인가. 중국에 대해서 누가 누구에게 왜 어떻게 말하도록 하는가? 

 

작금 남한 현실에서 직접적인 '국제주의' 연대의 추동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는 국제주의라는 것이 과거 20세기 초반과 같이 역사지리적 '정세'하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현재는 권역적 차원에서 여러 차원의 단절이 쉽게 극복되기 어렵고 이를 위한 주체의 형성이 매우 저급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그러한 연대를 실천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문제의 해결에 그것이 종속되어야 하는데, 자기 문제의 인식이 운동적 차원에서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세가 도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낮은 차원에서라도 국제주의적 연대를 제기하는 것은 적어도 이론작업의 차원에서는 관념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참함을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참함을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참함에 대한 동정이나 그것의 극복에 대한 모종의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오히려 인식 조건의 결여 자체에 대한 이론책임의 알리바이처럼 구사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식 윤리의 입장에서 이는 '운동 추수주의'의 한 전형이다. 이는 국내의 운동과의 관계에서 지식인의 관계맺음에서도 동일하게 관철된다.

 

내가 보기에 이론의 '현장성'을 복원하자는 한 동학의 강조는 바로 이론의 '현장'과 대중의 '현장'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마치 대중의 현장을 자신의 현장으로 착각하면서 초래되는 이론의 '현장성' 부재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실상 '이론의 현장종속성'의 표현이자 '이론의 탈실천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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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灣과 南韓

최근 周子瑜라는 대만 출신 가수와 관련하여 대만 관련 담론들이 포퓰리즘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관련 연구자들은 '전문가' 답게 대중과 언론의 구미에 맞는 내용들을 편파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자기 성찰성 없는 타자 인식은 결국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귀결될 뿐이고, 그것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지적 주체성의 문제가 발본적으로 성찰되지 않는 한, '지역 전문가'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 연말 진행했던 강연 원고를 첨부해둔다.

 


 

[20151102 겨레 하나 연광석 강의안.pdf (566.02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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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분단체제론을 위해...

분단이라는 현실은 내부 모순이 외화된 것이라 말해지는데, 이 의미는 모순의 정상적 전개가 강압적으로 중단됨으로 인해 모순을 대중 주체적 차원에서 충분히 드러내고 참여를 이끌어 역사적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단 체제 작동의 '시초축적'은 역사적으로 종축을 갖는 모순의 구조를 횡축으로 환원하여 이른바 '외화'하는 '탈역사화'에 있다. '외화'의 최종적 결말이 형식적 국가간 대립으로 고착화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 상징적 사건이 유엔 동시 가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단 모순'을 최종 심급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형식 논리'에 의한 '외화'의 구체적 표현이다.

 

일부 '분단체제론'이 역사성을 탈각하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탈역사화'와 '형식논리'에의 매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인식대상으로만 설정하는 '탈역사'적 주체들, 특히 지식계급의 한계와 그 한계에 대한 성찰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역사적 단절'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만들어온 실천과 그 양식의 단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천양식의 단절을 전제할 수 밖에 없는 탈역사적인 '현대적' 지식 주체들은 지식을 '소유'와 '저작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성찰성을 갖기 어렵게 된다. '현대문학'의 성립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소유'의 논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식사상 또는 이론과 실천 및 운동을 분리하는 기제에 복무하는 방식으로만 지식생산을 하기 때문에,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거대한 공백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역사는 기록된 자만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기록되지 않은 자들, 즉 소유하지 않으면서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자들의 역사를 읽어내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까? 

 

민중적 입장을 지킨다는 것은 민중이 역사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약한 자의 집단이라는 가정된 의미에서이다. 역사기술에서 비과학적 방법은 역사를 마치 기록에 의한 역사만인 것처럼 다룬다. 그러나 역사는 자료로서 기록된 역사는 아니다. 역사에서 힘이 약한 피억압자로서의 민중은 기록을 남길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에서 비롯하여 기록을 남길 만큼 성공에 의한 여유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운동의 역사는 구전이 아니면 지배자의 자기편의에 의한 기록으로만 남는다. 이런 경우 기록에 의한 자료에의 매몰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민중운동사의 일차적 자료는 운동과정에서 노출되어 잡힌 자들의 법정기록이다. 수사기록이 원용되는 경우 그것은 역사를 크게 왜곡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강한 자만이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노출된 것만이 역사는 아니다. 그것은 큰 흐름의 노출된 빙산의 일각 이상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인식 또는 서술의 방법은 자료를 역사관에 따라 정리하고 재해석하여 재생산하는 데서 제시된다. 기본적으로 자료에서 해방되어 그것이 단순한 역사인식의 단서 이상의 것으로 되지 않을 때 그것은 민중적 입장에 서는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1]

이들 노동운동사 연구에서 전반적으로 제시되는 당위로부터의 이탈 또는 미급은 그간의 역사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오는 제약의 소산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이제 그런 것들은 타성으로까지 되고 있다는 데서 자기모순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자기망각의 과잉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2]

 

[1] 박현채, <해방후 노동운동사 연구현황과 방법론>, <<한국 근현대연구입문>>(박현채 등, 역사비평사, 1988), 155쪽.

[2] 같은 글,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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