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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2015/5/11

아마도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하게 된 데는 주요하게 생각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던 상황이 핵심적인 원인으로 있었던 것 같다. 생각을 하지 못함은 어느정도는 불필요하게 말을 많이 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일의 과중 때문이라기 보다는 적절한 생활양식이 여전히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생활양식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소 착잡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기운을 내야지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 현재 상황을 정리하면서, 다시 다잡는 공간이 블로그이기도 했다. 늘 현실의 긴장을 감당하면서 일정한 맺고 끊음을 통해서 반복해서 무한히 미래를 다시 그리고 계획을 다시 세웠던 것처럼 한번 주변 정리가 필요해지는 시기인 듯 싶다.

 

시간이 너무 늦어져 과정의 축적이 수포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일정한 지향을 유지하면서 조금 늦게 실현되는 것은 괜찮다. 박사논문이 그러한데, 많이 늦었지만 6월 중에 돌아가 계획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7년 연한 가운데 6년차를 마칠 즈음 계획서를 낸다는게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로서는 참 준비를 많이 했다. 아쉽게도 계획서는 전혀 준비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객관적 약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그나마 양심에 거슬리지 않고 역사에 충실하면서 윤리적 실천의 일환으로 지식작업을 하는 연구자로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은 논문을 쓰기 위한 준비라기 보다는 어떤 삶을 위한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조정로 선생의 <민주수업>[民主課]의 한국어판 작업도 2교를 앞두고 있다. 기본적인 사항은 저자와 협의 하에 기본적으로 정리된 상태이다. 번역은 늘 그렇듯이 스승을 한 분 더 얻는 작업이다. 

 

수업 중에 만나는 학생들을 통해서 좁히기 어려운 거리를 좁히는 노력이 간단치 않음을 경험하지만, 반복되는 노력의 축적 속에서 조금씩 가능성과 한계의 지점들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강의 속에서도 나 자신에 대한 충실의 정도가 소통의 가능성을 좌우함을 확인한다.

 

한편, 박현채 선생의 사상이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 초래할 여러 현실적 곤경에 대한 조언들도 예상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현실의 조건을 다시 검토할 수 밖에 없다. 현실에의 개입은 그만큼의 물질성을 만들어내는 실력을 요구함을 명철하게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점검이 필요하다.

 

논문은 1부에서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 1부와 2부 전체를 번역하여 싣는다. 2부는 본래의 계획대로 세워두었다. 2부의 예상 목차는 다음과 같다.

 

第二部 朴玄埰思想의 當代意義—陳映真文學을 參照點으로[20151015수정]

 

제1장 緒論

1. 문제설정: 歷史의 우위와 권역적 參照 研究

2. 參照點으로서의 台灣:歷史中間物 陳映真(1937-)

3. 陳映真文學이 南韓에 주는 參照意義

4. 歷史적 中間物로서의 朴玄埰(1934-1995)

5. 研究課題:南韓思想史 속에서 朴玄埰思想의 意義

6. 論文構造

7. 研究資料

 

제2장 1980년대와 脫冷戰의 패러독스—‘社會性格論爭矛盾中心으로

1. 問題의 提起

1) 1980년 5.18 光州의 역사적 의의

2) ‘民衆’의 대두: ‘民族’ 및 ‘民主’와의 관계 속에서

3) 남한 민중 구성의 개별적 특수성: 하나의 상호참조적 과제인식

4) ‘탈냉전’의 지평과 사회성격논쟁

 

2. 陳映真의 南韓 콤플렉스와 대만사회성격논쟁

1) 진영진의 제3세계인식과 남한 콤플렉스

2) 진영진의 ‘워싱턴 빌딩 시리즈’와 사상적 인식

3) 논쟁으로부터 본 진영진의 대만사회성격론

4) 소결: 참조의 함의

 

3. 박현채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성격론

1) 1980년대 남한의 사상과제와 박현채의 위상

2) 사회구성체론: ‘의도된 논쟁/의외의 파장’

3) 박현채의 고독: 일시적 ‘개방’과 ‘단절’의 심화

4) 소결: 참조을 통한 성찰적 과제 인식

 

4. 결어: 知識倫理의 問題設定(민중주의의 모순/민족민중론의 함의)

 

제3장 冷戰/分斷體制下 思想 繼承矛盾—‘知的 植民性認識中心으로

 

1. 문제의 제기

1) 1960년 4.19 혁명의 역사적 의의

2) ‘민주’의 대두: ‘민족’ 및 ‘민중’과의 관계에서

3) ‘민주’의 탈역사성: 하나의 상호참조적 과제인식

4) 민족경제론의 사상적 계승성과 주체성

 

2. 진영진 문학에서 ‘민주’의 형상—역사와 지식의 관계를 중심으로

1) 진영진 문학의 식민주의 지식 비판

2) 역사/지식과 ‘사랑’의 문제설정

3) ‘향토’와 ‘민주’: 진영진과 향토문학 논쟁

 

3. 박현채 민족경제론의 준비와 전개

1) 4.19와 1960년대 박현채의 경제이론: 신식민성의 인식

2) <후진국경제론>의 체계와 함의

3) <민족경제론>의 재독해: 중소기업론과 농업론을 중심으로

4) 민족경제론과 ‘민주’

 

4. 결어: 80년대 ‘민족민중론’의 이론적 준비

 

제4장 가상적 사상대화—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과 진영진의 ‘충효공원’ 시리즈

1. 언어문화의 현대성과 식민성

2. ‘충효공원’ 시리즈의 참조적 함의

3.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 독해의 방법과 실제

4.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의 사상사적 의의

5. 결어

 

◎ 보론: 논쟁사로 본 박현채의 사상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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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경제론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사실 알려진 것보다 역사가 깊다. <후진국경제론>이 차명저작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1972년에 이미 <민족경제연구서설>이라는 글이 차명으로 발표된 바 있었다. 이는 1973년에 한번 더 발표된다. 그러나 박현채는 '민족경제론' 자체에 대한 언급을 기피한다. <민족경제론: 박현채 평론선>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음에도 직접적으로 '민족경제론'에 대한 언급을 피하다가, 1987년 경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입으로 '민족경제론'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한길사에 수록된 <민족경제론의 구성과 기초이론I>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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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사태

창비의 입장 표명과 백낙청 선생님의 지지 발언으로 표절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인데, 이번에도 지켜보면서 논의의 수준이 더 깊어질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논란을 둘러싸고 내가 가진 관심은 오히려 표절이라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무엇인가였다. 내가 보기에 이번의 경우,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무엇인가 '타인'의 것을 훔쳐 베껴썼다는 문제제기가 동력을 얻는 데는 기본적으로 그것을 '진품'이자 '명품'으로 여겼던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전제된 것으로 보였다. 물론 동시에 그것을 문제 삼는 이른바 '문학계'는 '저작권'을 갖는 '창작자'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짝퉁이 늘어나면 진품도 위기를 겪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진 동업자적 상호 견제이다. 마치 자유 시장 경제의 기본 룰을 지키지 않는 플레이어에 대한 징계의 논의처럼 표절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상품으로서의 작품이 어떻게 대중을 소외시키면서 대중을 소비주체화하는지 잘 드러내준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다소 의외의 수확은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평론가의 역할이 새삼 두드러졌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그와 같은 평론가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 같다. 대중은 늘 피동적 소비주체이고, 작가는 숭고한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해온 사람들이 평론가들이었던 것 같다. 대중이라는 소비자는 '짝퉁'임을 발견했을 때에만 비로소 포퓰리즘적 주체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또한 기존 메커니즘을 더 잘 굴러가게 만들기 위한 피동원 주체에 불과하다. 그들의 요구는 '상품'으로서의 작품이 아닌 진정한 작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품'으로서의 상품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정로 선생님은 '부업 작가론'을 제시한 바 있다. 작가가 '전업'이 되면 대중의 생활 세계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묘사할 수도 없으며, 결국 '형식적 기교'만 늘게 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이러한 평범한 논리에서 오히려 나는 이 사태를 다시 보는 혜안을 빌리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나는 작금의 논의가 대중 독자, 평론가(사상과 이론), 작가의 관계설정 자체를 고민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우리 내부의 맥락 안에서 이를 살피려면 민족문학론을 우회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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