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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입장 표명과 백낙청 선생님의 지지 발언으로 표절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인데, 이번에도 지켜보면서 논의의 수준이 더 깊어질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논란을 둘러싸고 내가 가진 관심은 오히려 표절이라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무엇인가였다. 내가 보기에 이번의 경우,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무엇인가 '타인'의 것을 훔쳐 베껴썼다는 문제제기가 동력을 얻는 데는 기본적으로 그것을 '진품'이자 '명품'으로 여겼던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전제된 것으로 보였다. 물론 동시에 그것을 문제 삼는 이른바 '문학계'는 '저작권'을 갖는 '창작자'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짝퉁이 늘어나면 진품도 위기를 겪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진 동업자적 상호 견제이다. 마치 자유 시장 경제의 기본 룰을 지키지 않는 플레이어에 대한 징계의 논의처럼 표절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상품으로서의 작품이 어떻게 대중을 소외시키면서 대중을 소비주체화하는지 잘 드러내준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다소 의외의 수확은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평론가의 역할이 새삼 두드러졌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그와 같은 평론가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 같다. 대중은 늘 피동적 소비주체이고, 작가는 숭고한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해온 사람들이 평론가들이었던 것 같다. 대중이라는 소비자는 '짝퉁'임을 발견했을 때에만 비로소 포퓰리즘적 주체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또한 기존 메커니즘을 더 잘 굴러가게 만들기 위한 피동원 주체에 불과하다. 그들의 요구는 '상품'으로서의 작품이 아닌 진정한 작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품'으로서의 상품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정로 선생님은 '부업 작가론'을 제시한 바 있다. 작가가 '전업'이 되면 대중의 생활 세계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묘사할 수도 없으며, 결국 '형식적 기교'만 늘게 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이러한 평범한 논리에서 오히려 나는 이 사태를 다시 보는 혜안을 빌리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나는 작금의 논의가 대중 독자, 평론가(사상과 이론), 작가의 관계설정 자체를 고민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우리 내부의 맥락 안에서 이를 살피려면 민족문학론을 우회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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