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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민주와 평등의 시도는 분열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시도가 계속해서 분열을 낳고, 조직의 파편화와 왜소화를 초래한다면, 나아가 분열 과정 속에서 소통불가능이 심화된다면, 그 시도는 민주와 평등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反민주적이고 反평등적이게 된다. 원인은 세계와 개체를 맞대면시키는 개인주의/자유주의적인 세계상世界像에서 진정한 민주와 평등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세계상에서 민주라는 주체성의 원리는 실현되지 않고, 평등이라는 관계성의 원리(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차이를 존재하게 하는 종축으로서의 역사성)도 불가능해진다. 민주와 평등은 다원적으로 정의된 '민족'적 지휘 체계하에서만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민주와 평등의 시도들이 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반윤리적인 실천이 된다. 그 원인은 물론 탈역사성에 있다.

 

지금과 같은 사상적 구심이 부재한 시대에는 '민족'적 지휘 체계가 분명히 드러난 사상적/운동적 실천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탈권위와 수평적 민주의 가치만으로 전선을 형성하고 세력을 결집시키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상 부재의 시대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적 계승성을 갖는 그 실천을 보아낼 것을 요청한다. 이른바 '면면히' 계승되는 민간의 민중적이고 역사적인 실천에서 다시 사상적 구심을 형성하는 방향성을 찾아야할 것이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은 어디에서 주어지는가? 윤리가 미(학)적 사유와 연결되는 것은 이 질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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