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하는 조제

앞에서 계단을 내려가던 한 소녀가 "아빠 아빠, 이거 봐라~"하면서 두 계단을 남겨놓고 폴짝 뛴다. 그 두 계단은 소녀의 키보다 두뼘 정도 낮은 높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다. 츠네오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지 않느냐고 했을 때 조제는 '의외로' 싫다고 말했다. 영화에 실망할 법도 하지만 끝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장을 보러가는 조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다이빙'-츠네오의 명명에 따르면-을 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동작이다. 7-8개월에 '철퍼덕' 앉고 12개월쯤에는 혼자서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언제쯤 되면 뛰어다닌다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에게서 확인되는 성장표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인간이 스스로 몸을 얼마나 가눌 수 있는가를 더이상 따지지는 않는다. 그때쯤, 뛰어내리는 동작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시험하는 잣대가 된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내릴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만용과 소심 사이에서 용기를 얻어가는 과정이 된다. 그렇게 선택된 높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우월함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우월할 만하다. 자신이 발딛고 서있는 곳에서 날아오르는 동작으로 시작되는 뛰어내리기 과정은 찰나이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비상의 욕망을 자극한다. 또한 중력의 속도를 좇아 하강하다 드디어 착지하는 동작은 완벽한 조화를 요구한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의 무게중심을 정확히 잡고-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 온몸의 근육들을 순간적으로 수축시켰다가 이완시키는 균형을 구사하지 못하면 넘어지거나 삐거나 둘 중의 하나다.

 

영화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의 하나. 다소 생뚱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조리대 앞에 놓인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조제를 보면서 그녀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고향 다녀오다 만난 한 소녀가 포스트를 열게 한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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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18:40 2005/02/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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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아 2005/02/15 23: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자신감...요즘 <빼앗긴 자들>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 자신감에 대한 대목이 나와요. 넘 동감이 되었어요. 저도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2. 미류 2005/02/16 09: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SF 소설은, 예전에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거 몇 개 읽어보고는 읽어본 적이 없네요. ^^;;
    저도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히나 요즘은...

  3. 슈아 2005/02/17 00: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