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라서 치료해줄 수 없다

HIV 감염인(HIV는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바이러스입니다) 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감염인의 의료접근권 실태가 어떤지를 들어보고 함께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보기 위해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가 만든 자리다. 그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누고 싶은 것들.



한번에 한쪽 눈밖에 수술할 수 없어 왼쪽 눈을 수술하고 한달 후 오른쪽 눈을 수술하기로 했다. 그 한달 사이에 이씨는 우연히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눈의 수술을 받기위해 다시 안과를 찾은 이씨는 솔직하게 감염사실을 밝혔다. 사실을 들은 의사는 이씨를 조용히 구석진 곳으로 불러내 돈이 든 봉투를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제발 이 병원에 왔다는 걸 소문내지 말아달라." 

 

박씨는 허리가 아파 한의원을 찾아갔다. 한의원에는 감염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의원에서는 이러저러한 치료를 시도했는데 보름 정도가 지나 피부가 짓무르고 헐어버렸다. 면역력이 떨어진 감염인들에게 피부손상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호락호락하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원래 다니던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이빨이 깨져 치과진료를 받아야 했다. 원래 다니던 병원의 감염내과에서 치과로 의뢰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보통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공간이 아닌, '무슨 창고 같은' 공간에서 따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게다가 붙었던 이빨은 두 번이나 떨어져, 결국 김씨는 동네의 치과를 방문했고 감염사실을 밝히지 않고 치료를 받았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빨은 튼튼하게 붙어있다.

오랜 중이염으로 이비인후과 진료도 받아야 했다. 자꾸 진물이 흐르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수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수술을 해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수술해주지 않았다. 자꾸 진물이 흘러 면봉으로 닦아주던 김씨는, 언젠가 면봉이 떨어져 이쑤시개에 휴지를 말아 진물을 닦아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휴지가 귀 속에 빠지고 말았다. 휴지를 빼달라고 방문한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는 귀를 보더니 왜 수술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물론 감염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이씨는 감염사실을 알리지 말아야 했던 걸까. 의사는 왜 이씨를 수술해주지 못하는 미안함보다 감염인의 수술 사실이 소문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걸까. 만약 박씨가 감염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면,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을 미리 염두에 둘 수 있었다면 외롭고 답답한 병원생활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감염사실을 알린 김씨는 왜 진료실이 아닌 공간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을까. 감염사실을 아는 의사와 모르는 의사의 제안은 왜 다를까.

 

많은 의료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한 자신을 거쳐갈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혹은 막연한 공포 때문에 감염인은 진료에 앞서 감염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염인이 자신의 감염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감염인에게도 자신의 감염사실을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의사는 환자의 몸에 대해서(마음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가질 수록 정확한 판단과 적절한 치료지침을 세울 수 있다. 박씨 역시 그렇게 말한다. "내가 감염사실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게 스스로 답답하고 불편하다. 게다가 의사가 감염사실을 모른 채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의심되기도 한다."

하지만 감염사실을 알린 이씨와 김씨의 경험을 보자. 감염사실을 알렸을 때 과연 감염인들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 호의적인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HIV 감염은 건강과 관련해 더욱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환자라서 치료해줄 수 없다는, 감염사실이 건강권을 침해하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전에 이주노동자와 에이즈에 대해 살펴보았듯이 공공의 건강 운운하며 건강권을 침해하는 현실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회권 규약이 선언하듯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차라리 사치다. 하지만 적어도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부당하다는 것이 분명하며 당장!!! 바꿔야 할 현실이다.

의료접근권의 침해를 의료인 개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에이즈에 대한 거대한 공포는 사회가 만들어온 것이며 의학적 지식에 충실해야 할 의료인이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의학적 판단을 넘어서는 편견에 대해 의료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의료인이 그것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구조다. 감염인을 수술해야 할 때 바닷가에 널린 모래알 중 하나 반 만큼의 확률이라도 다른 환자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의료인 개인에게만 물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전염의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을만큼의 장비와 인력과 의료환경을 갖추어야 할 의무는 국가(왜곡된 혹은 계급편향적 형태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공동체를 대표하는)가 져야 한다. 그것이 인권을 존중하고 실현할, 제3자의 인권침해로부터 인간의 권리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다.

 

이쯤에서 지난번 이주노동자와 에이즈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질병관리본부 홍과장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익명검사의 활성화를 주장하는 그에게, 현재의 익명검사 시스템은 검사를 시작할 때의 익명성만을 보장할 뿐 익명검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사결과에 대한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염인의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감염인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어차피 감염인 수가 많아지면 관리하려고 해도 못한다"며 쓸데없는 이야기라는 듯 웃어넘겼다.

제멋대로 지원한다며 감염인의 개인정보를 캐는 것이 인권침해인 줄도 모르고 기껏 한다는 말이 '해주고 싶어도 못한다'? 감염인들은 병원에서 건강보험증을 보여주면서도 혹시 감염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아파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 가지도 못한다. 당신들의 어설픈 동정은 감염인 지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감염인들은 선의를 구걸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당신들이 주면 감지덕지하고 못 주겠다면 그런가보다 하는 사람들도 아냐.

감염인에게 필요한 '지원'은 감염인들의 권리지 당신들의 시혜가 아니다. 그 '지원'이 감염인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제발...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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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8 01:07 2005/06/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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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ivermi 2005/06/21 19:5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필라델피아>를 최근 길거리에서 DVD로 싸게 구매해서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에이즈환자라는 소수자의 인권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던...

  2. febby 2005/06/22 00:5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전에 동성애자 한분이랑 이야기하다 들었는데, 달마다 호별방문을 해서는 집에 없다고 옆집에다가 이 사람 어디 갔냐고 물었다는군요. AIDS 환자라서 확인해야 된다고;;

  3. 미류 2005/06/25 10: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필라델피아... 오래전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주인공이 감염인이었다는 건 기억이 나는데... ^^

    febby, 그런 식으로 감염사실이 알려져 고립되는 감염인들이 꽤 되는 것 같아요. 아직은 몇몇 사례 정도가 알려졌는데 빨리 바꿔야 할 문제,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인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