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미갱이 근황이래두~ 라고 말한 걸 슬쩍 타고서 이래저래 주절거리려구요. 웅얼거리는 말들 좀 끄집어내기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혹시 있다면 ^^; -한테 소식도 전하고요. 에, 뭐부터 이야기할까.



일요일에 반전행동 집회 끝날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렇잖아도 맨날 운동화 젖는 것 싫어서 살까말까 망설이던 차,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침 3천원이라며 팔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덥썩 샀죠. 이거 비올 때 디게 편해요. 근데 비 안 오고 덥기만 한 날에는 끈적끈적하기도 하고 별로거든요. 근데 요즘 계속 아침에 비오다가 낮부터 개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뿌듯해하면서 신고 나오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발도 아프고-신발이 좀 작은가봐요- 날씨탓을 해야 하는 건지, 신발 탓을 해야 하는 건지 대략 난감해요.

 

요즘-벌써 오래됐나? - 인권하루소식에 올리는 기사 옮기는 거 말고는 포스팅을 못해요. 못 견디게 쓰고 싶었던 얘기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서운해요. 점점 다른 블로그들을 들러보지 못하는 것도 아쉽구요. 그러다보니 포스팅도 뜸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또 안 돌아다니게 되고. 뭐 이런 것 같네요. 불로그의 매력은 서로 이야기 주고받는 데에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잘 못하겠는 거죠.

 

바쁜, 혹은 일이 많은, 이라기보다는 여유가 없는, 이 적당한 표현인 것 같아요. 그게 참 그런 게 매일 그러면 안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뭘 하고 있어요. 잠을 너무 적게 자고 있는 거 같아요. 일에 쫓기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그건 일이 쫓아다녀서 그런 거기도 하겠지만 적당한 때에 일을 내쫓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그게 잘 안 되서 그런가. 아, 뭐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모르겠다. 근데 쨌든 여유가 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랑방 들어온 후로 좋아요. ㅎㅎ 애매하기는 한데 저는 '내가 자라는 느낌' 같은 게 들어요. 그게 뭔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요. 근데 어떤 때 그런 생각이 드냐면, 음, 문득 그런 생각 들 때 있는데 내가 날 좀더 익숙하게 혹은 자주 헤아리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이유없이 짜증날 때라든가, 괜히 실실거리며 기분좋아질 때라든가 이게 예전에는 그냥 이유없이로 끝났는데 조금씩 보이는 거예요. 근데 그러니까,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막 짜증부리고 엄청 후회하고 괜히 들떠있다가 실수하거나 푹 꺼지거나 그러는 게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저 사람 얘기를 안 듣고 있구나, 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너무 없어서 저 사람 얘기를 안 듣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잔잔히 떠오르면 그 사람 얘기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 이런 거. 자라는 거 같은 거. 뭐, 그냥 인격수양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저도 예전에 '내가 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어요. 근데 그거랑은 다른 거 같아요.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또 그걸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저러한 경우들이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그러니까 무슨 갈등해결방법 이런 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말하거나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하고 토론할 때도 이전이랑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음, 매우 횡설양수설군하는군. 근데 어쨌든 저는 지금은 '내가 자라는 느낌'이라고 부르는 그런 느낌이 뭔지 헤아려보는 중이라고나 할까. 참, 저 '자라는 느낌'에는 물론 세상에 대해서, 운동에 대해서 배우는 이러저러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어요. 근데 솔직히 그런 부분들보다 저를 설레게 하는 건 주절거렸던, 앞에 얘기한 것들이예요.

 

아, 뭔가 너무 정신이 없네요. 다시 간단한 소식을 전하면, 저 어제 법원 다녀왔어요. 작년 겨울에 서울역 고가 위에서 파병연장 반대한다는 플랭카드를 내리고 구호 좀 외치다가 벌금형을 받았는데 기분나빠서 정식재판 청구했거든요. 사실, 좀 귀찮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냥 곱게 벌금 내려니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 재판이 어제였는데, 나름 널널한 기분으로 들어갔지만 또 들어가니 나름 긴장되더군요. 그래서 막 '왜 긴장하고 그래, 그까이 꺼 뭐' 속으로 그러면서 쨌든 판사 앞에서는 느긋하게 얘기하기는 했어요. 요지는, 당시 이라크전쟁의 피해가 극심해지고/전세계적인 전쟁반대 운동과 철군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유독 한국정부가 파병연장을 강행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우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결정한 집회였던 바/미리 신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집시법의 의의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자유를 법 안에 가두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므로/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게다가 교통방해 하나도 안했다/는 거였는데 그 자리에서 이런 얘기하는 게 어떤 의미일지는 잘 모르겠으면서 그냥 일단 말했어요. 근데 판사가 뻔한 얘기하는구나, 뭐 이런 표정인 것도 같고 검사는 비웃는 것도 같고 그래서 기분나빴어요. 쳇.

 

그 전날에는 '성노동자 운동, 가능한가' 토론회 다녀왔어요. 제목이 쬐끔 아쉽기는 했어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차라리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요. 쨌든. 토론회 발제 들으면서 이런저런 여러 생각들이 들었어요. 전체 토론 시간에 같이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서면으로 질의응답 형식의 토론이 진행돼서 '토론'이 활발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시간이나 뭐 진행상의 어려움도 있는 거니.

그래도 몇 가지라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끝날 때쯤 일어나서, 결국 말했어요. 나름 꼭 하고 싶은 거 몇가지 추려서. 근데 막상 얘기하고 나니까 아, 내가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싶었던 게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내가 '이론가'들이 고민할 문제들을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니까 '이론가'가 꼭 나쁘다는 게 절대 아니고. 뭉텅이로 던져진 현실을 어떤 단면으로, 어떤 방식으로 잘라서 보여줄 꺼냐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는데 다만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거죠. 근데 그런 게 한편으로는 뭔가 엄밀하고 들어맞고 명쾌하기를 기대하는 내 습성의 이면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니까 제가 한 얘기들은 "노동권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할 권리뿐만 아니라 일하기 싫을 때 일하지 않을 권리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자본주의-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용되는 노동을 사회화하는 전략에서 적절한 임금을 요구하더라도 임금노동을 넘어서기 위한 고민들을 계속 해야 한다", "성노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성노동이 지금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용되는 공간보다도 더 밀려난 곳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있는 거고 그 공간 전체가 매우 협소하고 폭력적이라는 걸 폭로해야 한다" 뭐 이런 것들이었어요. 얘기를 하고 나니까 이게 얼마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이야기들인지 보이는 거예요.

저는 발제 들으면서 여전히 성매매특별법을 적극 활용하면서 성매매여성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문제의식을 나누고 더욱 힘있는 운동을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물론 아직도 '성노동'이라는 말 자체를 못 본 척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죠. 하지만 정말 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차마 꺼려질 뿐이지, 고민이 안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탈성매매를 지원하는 동안 계속, 아니 당분간 성매매를 하겠다고 말하는 여성들을 만나면 지금 구조에서는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나 분명히 문제가 심각한 현장인데도 문제를 제기하려면 당장 생존권이 박탈된다고 호소하는 여성들을 만나 괴로웠던 경험은, 이렇게 말만 하는 나보다는 훨씬 절실한 고민일 꺼라고 믿거든요. 어떤 여성들에게는 희망이 되기도 하는 성매매특별법이 어떤 여성들에게는 억압이 되기도 하는 현실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이런 얘기들의 시작점이었으니까. 그래서 저도 성노동, 조심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성매매특별법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이번 법으로 각종 채무관계를 청산하는 데 훨씬 유리해진 게 사실인데 이런 거는 더욱 살려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고민이 자꾸 추상적인 수준에서 오가는 것 같고, 물론 그런 논의들도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절실한 것들이 어떻게 풀릴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막연한 것 같고, 근데 나는 추상적인 고민들에 머물러 있고, 그런 게 결국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채 어느새 이 현실을 함께 살아내기 위한 고민들이 아니라 그냥 내 머리 속에 갇힌 고민들이 되어버린 것 같고... 사실, 우연한 기회에 '성매매여성 의료지원모임' 이런 걸 같이 준비하기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벌써 모임을 못 나간 지 한참 됐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그럼 난 뭘 할 수 있을까, 말이라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은 건 아닐까, 그럼 블로그에다가 주절거리는 건 뭘까...

지난 주인가, 지지난 주인가 최저임금투쟁 어떻게 할 꺼냐 토론회가 있어서 발제를 맡았거든요. 토론회 하는 날까지도 이런 발제를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사라지지를 않았는데 비슷한 거예요. 최저임금투쟁을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고 정말 평소에 열심히 고민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나름 애써서 어떻게 하면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는데 머리만 굴리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거...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는 게 답인지. 그냥 복잡해요.

 

음, 뻘쭘하게 끝나네요.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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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3 14:46 2005/07/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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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뎡야 2005/07/02 12: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바쁘시네요 무척 바쁘고 수영도 하시고 참 성실...

  2. 미류 2005/07/03 14: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뎡야, ^^;;

    미갱, 거시기해서 닫은 건 아니구 한참 쓰다가 다 못 써서 잠깐... ^^;; (글구 걷다는 트랙백, 덧글 안 쓰고 있던 건데 제가 실수로 열어놓았던 거라 닫았습니다. 죄송)

  3. 슈아 2005/07/04 17: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젤리슈즈 내도 사고 싶어요. ^^
    여성행진에서 미류를 보고 반가웠어요. 항상 아쉬워요. 찔끔...찔끔...보고..

  4. 무위 2005/07/05 11: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여기 오면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였는데 오늘은 그리 무겁지 않네요. (가볍지도 않지만)
    호기심 많을 나이도 아닌데 젤리슈즈가 어케 생긴 건지 궁금해서 찾아봤다는 ^^ (남자 신발은 왜 다 거기서 거기지? 재미없게시리)

  5. 미류 2005/07/05 12: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슈아, 강추~ ^^

    무위, 그런가요? 요즘은 기사밖에 못 올려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무위 말 듣고 생각해보니 늘 무거웠던 것도 같네요. ㅡ.ㅡ; 그래도 안 그런 글들 많아요, 라기보다는 꽤 있어요~ ^^;

  6. 감비 2005/07/06 02:3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느티도 젤리슈즈 샀어요-^.^

  7. 그리븐. 2005/07/06 11: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요..^^

  8. 미류 2005/07/06 17: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감비, 느티도 선택한 젤리슈즈라고 하니 더욱 뿌듯하네요~ ^^

    그리븐, 그냥 이렇게~ ^^

  9. 붉은사랑 2005/07/07 21: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도 토론회 제목이 아쉬웠다. 더 아쉬운건 왜?! 질의가 끝나고 토론시간을 가지 않았는지가 더욱더 아쉬웠지만...이제보니, 사회자에게 규탄을 안했네? 으흐

  10. 슈아 2005/07/08 23: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얼렁 젤리 슈즈 사러 가야지...휘리릭~~

  11. 미류 2005/07/08 23: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붉은사랑, 그러게. 근데 뭔가 필요한 토론이 안되는 것 같은 게 제일 갑갑해. 그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막막하구. 쩝.

    슈아, ㅎㅎ 마침 비오네요. ^^

  12. 붉은사랑 2005/07/10 16: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난 말야. 성노동자운동과 관련한 논쟁에서 많은 것을 보게돼...특히 이중규범의 내면화 문제, 어찌보면 지식인, 활동가들의 오만함을 포함하여...여성주의적 관점이라는 것의 다양함...

    근데, 젤리슈즈 정말 좋아? 3000냥인데..하나 사둘까?

  13. 미류 2005/07/12 09:5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렇구나. 붉은사랑이 보는 것들을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난 문득문득 반성이 될 때가 있어. 이중규범의 내면화는, 글쎄, 나름 좀 벗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오만함, 네가 말한 의미와 같을 지 모르겠지만, 은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것도 같아. ... 어렵네.

    젤리슈즈 요즘은 2000냥에 파는 데도 있다더라. 하나 사시오. 담배 한 갑보다 싸대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