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장화 신은 슬픔

 

 

성미정

 

 

  그녀의 이름은 장화 신은 슬픔이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울먹였다 슬픈 나라 백성이었다 슬픔만큼 무거운 장화 속에 슬픔만큼 창백한 발을 감추고 슬프게 걸었다 슬픈 나라의 모든 길은 떨어진 눈물로 늘 젖어 있었다 발이 빠져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탈출을 감행했다 며칠 밤과 며칠 낮을 달려야 기쁜 나라이리라 추측했다 뜻밖에도 한 발자국 돌아서니 기쁜 나라 국경이었다 그러나 기쁜 나라를 코앞에 두고 입국을 저지당했다 장화 때문이었다 슬픔은 전염성이 강해 한 켤레의 장화도 들여놓을 수 없다고 했다. 장화를 벗어 국경 감시병에게 건네주었다 감시병은 장화를 국경에 세워놓았다 장화는 국경선의 일부가 되었고 그녀는 기쁜 나라 백성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미소지었다 이름도 장화 벗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기쁨만큼 가벼운 맨발로 기쁘게 걷기 시작했다 장화 속에 숨어 살던 맨발은 부드럽기만 했다 기쁜 나라의 잘 닦인 길에서도 자주 미끄러지고 피흘렸다 그런 날이면 장화 벗은 기쁨은 국경에 세워진 장화를 신고 발이 빠지는 슬픔 속으로 도망치는 꿈을 꾸곤 했다 깨어나면 그녀는 자신 있는 곳이 기쁜 나라인지 슬픈 나라인지 혼란 속에서 다시 걸었다

 

- 성미정, <대머리와의 사랑> 에서



시집을 읽어보고 싶다. 우연히 알게 된 시. 괜히 맴돈다. 리우스의 <독하게 살자>를 읽으면서도 문득 생각나 옮겨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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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6 19:47 2006/05/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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