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그 한 마디'

어제 오전 '따뜻한 밥 한 끼 캠페인 기획단'이 준비한 기자간담회에 다녀왔다. '장미빛 인생'의 시사회에 이어 최근의 조사 자료들을 분석한 실태 발표가 있었고 청소노동자의 증언이 있었다.

 

그녀는 서울대병원에서 청소일을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조곤조곤했지만 목소리는 우렁찼다. 그녀는 "안 그래요? 그죠?"라는 말을 자주 붙였다. 마치 가르치는 사람의 말투 같다고 느껴지면서도 나는 그녀 앞에서 학생이기보다는 친구로 불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서 내 이야기가 동시에 맺혔다. 어쩌면 그게 정말 '가르침'이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장미빛 인생'에 대해 얘기했다. 거기 모든 이야기가 다 있다고. "그런데 나는, 뭐랄까, 입고 있던 옷이 하나씩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치. 그런 거. 자식들한테 청소일 한다는 얘기는 했지만, 어떤 조건에서 일한다는 얘기는 안해봤어요. 그걸 들었으면 말렸겠죠. 그런데 이런 게 영상으로 만들어져서 자식들이 내가 일하는 환경을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부끄러웠어요. ... ... 그런데 또, 내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고 현실을 알리면서 싸우는 게 자랑스럽기도 해요. 하하"

 

'수치'라는 단어에 나는 움찔했다. 얼마 전 나는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낙태에 대한 글을 써서 보냈다. '말하기 어려움, 또는 낙태에 대한 작은 말하기'. 지면에는 싣지만 인터넷에는 올리지 않기로 하고. 그 글을 쓰는 동안, 더 정확하게는 그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낙태'가 내 이야기임을 인정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감정에 나는 '수치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치심이 나를 얼마나 제압하는지, 이름을 붙인 후 깨달았다. 부끄럽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와 무관하게, 부끄러울 만한 일인가와 무관하게, 그것은 나를 제압했다. 하지만 결국 글을 써서 보내면서 나는 나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건 조금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은 일이다. 그녀의 민망한 듯하면서도 호탕한 웃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청소노동, 그것이 부끄러울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든, 그것을 부끄럽게 하는 자가 누구이든, 그녀의 웃음이 세상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그녀의 웃음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가,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번져나왔다. "한 달에 얼마 주면 그거 갖고 한 달 산다! 생각하지, 시급 따지고 시간 따지고 할 새가 어딨어? 그런 거 알지도 못했고."

 

'한 달 산다'라고 말할 때 그녀의 억양을 감히 생존에 대한 결의라고 읽어도 될까. 고단함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산' 뒤로 따라붙으며 삶을 장악하는 '다'. 2004년 고려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을 만났던 기억이 쫓아왔다. 인권위 집단진정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마다의 진정서를 썼다. 글을 못 쓰는 분들이 있어 대신 쓰기도 했다. 최저임금에 대한 진정이었다. 낮은 임금 때문에 팍팍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질문을 드렸다. "그러면 임금이 어느 정도 되면 적당할 것 같아요?" 이런,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모두들 막막해하셨다. "글쎄, 얼마면 좋겠다고는 생각을 안해봤네?" 머쓱한 침묵을 넘기느라 질문을 바꿨다. "한 십만 원쯤 임금이 오르면 뭐 하실 것 같아요?" 그제서야 한두 마디씩 던지신다. 그녀들도 모두 "한 달에 얼마 주면 그거 갖고 한달 산다!" 생각하셨을 게다. 아니, 그건 생각보다 앞서는 행동이다. 그래서, "십만 원쯤 오르면 친구들과 찜질방을 가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십만 원이 오른다면, 다시 "그거 갖고 한달 산다!"는 행동이 앞설 것이다. 그러니 빈곤에 대한 운동의 언어-담론은 얼마나 빈곤한가. '그거 갖고 한달을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라는 말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지 않나. 다들 살고 있는데. 운동은 빈곤의 문제를 생존을 넘어 삶에 대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걸 다시 생존의 문제로 환원해버리고 있는 거 아닐까. 생존, 그건 운동보다 운동 밖에서 결의와 기술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거 갖고 살아지든 못 살든 '내가 왜 그것만 받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을 던지는 운동이 필요한 것 아닐까. 결국 생존을 넘어 삶에 대한 문제로 말해야 한다는 고민은 여전히 옳다. 다만, 말할 줄 모르고 대화할 줄 모르고 '마음'을 모르는 게 지금의 운동인 건가.

 

시급 따지고 시간 따질 줄 몰랐던 그녀가 그걸 알게 된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명랑해졌다. "노동조합이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지. 하하." "노동조합은 부모 같은 거였어. 아플 때 얘기할 수 있잖아. 내가 뭐 이런 일 당했다고 고자질할 수 있는 거."

 

"저희가 그 문제는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사무실로 곧잘 걸려오는 전화들에, 이제는 능숙하게 말한다. 그건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것. 실제로 걸려오는 전화들은 매우 다양하고, 설령 조금이라도 함께 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여력을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치 매뉴얼처럼 저 얘기를 한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도움'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린 것은 나였다. 물론 낯설기만 한 단체로 전화를 걸어 자기 사정을 말할 때는 당연히 도움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건 아닐까. 부모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저 들어줄 수 있을 뿐. 아프다고 얘기하고, 억울하다고 고자질하고, 이럴 때 기대하는 것은 해결 이전에 듣기 그 자체이고 그것은 말하기 그 자체다. 말 할 권리-right to be heard. 그/녀들의 말할 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내가 정말 듣는다면, 굳이 공감을 표하는 '기법'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전화기 너머로 토닥거림과 응원이 전해지지 않을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분회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노동조건이 나아지고 있지만 부모처럼 들어주는 노동조합 밖에서는 여전히 말할 권리가 가로막혀 있다. 그녀는 '유령'에 갇혀있다. "젊은 사람이 공부 열심히 하고 잘 배워서 의사, 간호사 할 텐데, '아, 수고하시네요', '같이 드실래요?' 뭐 이런 말, 그 한 마디를 못할까." 그 한 마디. 그 '한' 마디의 말이 없었다는 사실에 서러움 반 분노 반을 섞어 어느 때보다도 격앙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1년을 그 병원에서 일했다. 직능별 위계가 견고한 병원에서 인사는 위계를 확인하고 위계를 만들어내는 행위였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절대로 다른 직능의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다른 직능의 사람들은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이건 간호사복이나 다른 직능을 확인할 수 있는 복장들을 경계로 반복되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 역시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스탭 등의 위계를 눈치껏 알아내면서 인사로 위계를 확인한다. 나는 가운의 가장 낮은 지위인 인턴이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의사 가운들에게 인사하는 게 싫어, 대충 피했다. 넌 누구니, 라는 표정으로 똘망똘망 쳐다보는 건 못하고, 그냥 못 본 척, 바쁜 척, 지나쳐다녔다. 그런 위계의 유치함이 싫기도 했지만, 사실 워낙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하는 건 잘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아는 사람, 즉 같은 병동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의사든 간호사든 청소하는 분이든, 인사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고하시네요"라는 말은 한 번도 못 꺼내봤지만, 목례는 챙겨서 했다고 속으로 변명하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한번도 청소노동자들의 얼굴을 기억해본 적이 없던 것이다. 한 달을 한 병동에서 일하니 청소노동자들과, 다른 직능보다는 덜 마주치더라도, 하루에 두세 번, 한 달에 백 번쯤은 마주쳤을 텐데, 얼굴을 기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지금까지 기억을 못한다는 게 아니라, 당시에 기억에 얼굴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 얼굴을 기억하지도 않는 그 목례는 얼마나 가식적이었나. 나 역시 청소노동자들을 유령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 그녀가 아쉬워했던 '그 한 마디'는 그 말 한 마디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말이 말을 얻는, 그녀의 얼굴이 얼굴을 얻는, 그런 세상에 대한 바람이 '그 한 마디'에 있다. 그러니 '그 한 마디'에 대한 꿈은 세상을 바꾸는 꿈일 테다. 그 설레임을 나눠준 그녀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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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4 15:35 2010/06/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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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앙겔부처 2010/06/24 16: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노동조합이 부모같다니...에구 너무 감동적 ㅜㅜㅜㅜㅜㅜㅜㅜ 이 글은 정말 너무 감동적이긔 꺄오

  2. mong 2010/06/24 16: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ㅠㅠ

  3. moya 2010/06/25 00: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하지만 만약 십만 원이 오른다면, 다시 "그거 갖고 한달 산다!"는 행동이 앞설 것이다. 그러니 빈곤에 대한 운동의 언어-담론은 얼마나 빈곤한가. '그거 갖고 한달을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라는 말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지 않나. 다들 살고 있는데. 운동은 빈곤의 문제를 생존을 넘어 삶에 대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걸 다시 생존의 문제로 환원해버리고 있는 거 아닐까. 생존, 그건 운동보다 운동 밖에서 결의와 기술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거 갖고 살아지든 못 살든 '내가 왜 그것만 받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을 던지는 운동이 필요한 것 아닐까."

    블로그에 뭔가 하이라이트하는 기능이 있어도 좋을 듯ㅋ

    내일 빈집에서 파티하는데 시간되면 놀러와요. 우리는 다들 미류를 기다리고 있다구.

  4. 미류 2010/06/25 17: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빈집 파티 생각하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어용. ㅜ,ㅜ 저녁에 일정이 있는 데다가, 엄마가 환갑이라고 서울 올라오셔서... 나도 빈집 가고 싶다, 힝.

  5. daybreak_ 2010/06/26 22: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뭔가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글이네요. 저도 수없이 많은 목례를 했지만 아무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군요.

    • 미류 2010/06/27 19:39 고유주소 고치기

      저도, 그때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와요. 나 역시 너무 자연스럽게 그 사회에 물들어있었다는 게... 그대는 이제부터 기억할 수 있잖아요! ^^

  6. 나루 2010/06/27 10: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아. 이런 글 읽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 밖에는.

  7. 과객 2010/07/05 19: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저는 지방의 병원봉직의입니다) 그래요, 기억되지 않는 이들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