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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중요하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다.
세월이 수상할수록 뭐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길게 보든 짧게 보든 뭐라도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된 시작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만 헤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뭘 어떻게 해야 "이뤄낼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때는 내가 바라는 게 뭔지, 그것도 헷갈릴 때가 있다.



난 거의 참석하지 못했는데 작년엔 이십 년째라고 꼭 오라고, 얼굴이나 한 번 봐야하지 않겠냐고 채근해서, 갔다 왔다.
근사한 음식점에 모여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라며 상투적인 인사를 주고받고, "지원 나갔을 때... 거 롯데 앞에서...", "신세계 쪽에 고가 있잖아. 그때 그 위에서 난리친 게 우리 조 아니었냐. 양쪽으로 포위되면 끝장인데 어떻게 거기서 그럴 용기가 났는지..." 운운하며 추억도 씹고 고기도 씹고 그랬다.
그러다가 누군가 이랬다.
우리들... 그때... 병을 던지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했나?
글쎄... 내 기억만 되살리자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저 허공에 발길질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냈겠나.
잠시 고민을 하는데, 다른 동무가 "최소한 파쇼는 끝장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라고 답을 했다.
그 말에 모두들 웃었다.
그랬던가? 소주병에 담긴 신나와 휘발유가 파쇼를 홀라당 태워버릴 것이라 생각했던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내 견해는, 어떻든 그 당시 "우리"의 "병"이 파쇼를 태운 게 아니다.
태우긴 커녕 노 아무개가 나와 한 마디 하니까 바로 조용해졌다.
그때 우리가 원했던 게 직선제였나?
"최소"한 "끝장"내는 것은 그저 기억에만 있는 목표였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선량한" 시민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 잠깐 기억을 되살리자면, 그때 지하철 칸칸에 뿌려진 "피"에 죽으나 사나 "직선제 쟁취"라고 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네들 내부 문서엔 "군부독재세력은 절대로 직선제를 받을 수 없고(그네들 판단으로는 직선제를 받으면 군부독재세력이 지니까) 그러므로 지금 외치는 "직선제 쟁취"는 "혁명적인 구호"가 된다"는 식으로 쓰여 있기도 했다.
되도 않는 것에 "혁명"을 갖다 붙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소로운데, 예의 노 아무개의 한 마디 이후 차로 가득 찬 명동 도로를 보면서 "링겔족이 이야기하는 혁명 이후는 이런 것이구나"라고 쓰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따지고 보면 이것저것 다 문제였던 거 같다. 몽땅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뭔지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겠지만, 하여간 내 보기엔 몽땅 다 문제였던 거 같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뭘 고민하겠는가?
뉴타운 허가는 나지 않는다고, 안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그 사람 대한민국 최고 부자니까 영 안 되면 자기 돈이라도 써서 뉴타운 하지 않겠어요?"라고 되묻는 사람이 뭘 고민하겠는가?

이런 사람들 말고... 어떻든 어떻게든 세상이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십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 책 제목 : 무엇을 할 것인가
- 글쓴이 : 레닌
- 옮긴 이 : 최호정
- 펴낸 곳 : 박종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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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대전광역시당(준) 소식지에 '서평'을 '고정적'으로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① 서평 형식이 아니어서 싫어할 듯.
   ② 고정적으로 쓸 자신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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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이게 무슨 서평이냐는 '점잖은 항의'가 있었고, 특정 정파를 비난하는 내용은 삭제하면 어떻겠냐는 '은근한 제안'이 있었다.
어떻든... 실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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