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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이야기들입니다.

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7/28
    2010 여름 행사
    도끼
  2. 2010/07/28
    버마 노동자 모임
    도끼
  3. 2010/06/20
    버마 노동자 모임, 예비 모임
    도끼
  4. 2008/06/30
    이네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중국동무들①
    도끼
  5. 2008/06/11
    그곳은 사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다
    도끼
  6. 2008/03/14
    사장을 위한 나라는 없다
    도끼
  7. 2008/01/25
    상담의 풍경
    도끼
  8. 2007/12/20
    우리 모르게 그이가 겪은 일(2)
    도끼
  9. 2007/10/01
    이주노동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도끼
  10. 2007/03/14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
    도끼

2010 여름 행사

 

 

 

 

 

 

회비도 많이 받지,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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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노동자 모임

 

▲ 조리실에서 음식을 만드는 버마 노동자들

 

▲ 자원활동가들도 거들었다.

 

▲ 버마 글씨. 뭐라고 쓴 것이냐 물었더니 만들 음식을 적은 것이라 한다. 그림은 뭐냐고 했더니 그냥 웃는다.

 

▲ 상차림. 바나나와 참외. 그 오른쪽 위는 메기 튀김, 아래는 메기 찜. 그 오른쪽 위는 닭국(찜은 아니고... 거의 국 수준...) 아래는 대나무 순을 삶았는데 향신료가 엄청 강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 오른쪽은 이런저런 채소를 무쳤는데 역시 향신료가 엄청 강했다. 그리고 맨 오른쪽은 예전에 센베라고 부르던 과자인데(센베가 일본말 아닌가? 우리 말로는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동무들이 사온 거다. 이런 과자 좋아하는 줄 몰랐다.

 

▲ 먹기 시작.

 

▲ 이야기도 하고...

 

▲ 뭐... 이런 모임을 하면 모두 모여 사진 한 장은 찍어야 하니까.

 

모두 등록 노동자이고 이 나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동무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묻는 일상적인 질문(그래봐야 회사 생활에 관련한 것들인데)에 몹시 말을 아꼈다.

 

여느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다름 없이 자기 나라에서는 공부든 뭐든 한 가닥 했던 동무들이고, 자기 나라 돌아가는 형국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덧붙여.

나는 다른 나라 음식을 정말 잘 먹는다는 말을 듣는데... 대나무 순으로 만든 음식은 향신료 때문에 정말 먹기 힘들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마늘이나 청국장 냄새 때문에 '경악'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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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노동자 모임, 예비 모임

다음 주에 버마(미얀마) 노동자 모임을 한다.

 

지난 해에 몇 나라 했는데, 이어지지 못한 모임이다.

일요일 낮에 미리 모여 자기 나라 음식 재료 준비해서, 복지회관 조리실에서 음식을 한다. 준비 과정부터 우리 단체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다니고, 음식을 만들 때도 같이 한다.

음식을 만든 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상담도 하곤 한다.

 

작년에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등... 했는데, 자기들이 먹으려고 만든 음식이라 우리가 흔히 먹는 그네 나라 음식하고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과일 먹으면서 다음 주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의했는데... 그 이야기야 십 분도 걸리지 않았고.

회사 생활은 어떤지... 숙소는 편한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등등을 이야기했는데, 다들, 모두 좋다고 했다.

 

모두 등록 노동자이긴 하지만, 이네들 말처럼 실제로 모두 좋을리 없는데... 그런 답을 하는 이유는, 아직 우리와 아무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소한 고민이라도 이야기하려면 여러 번 만나서 어울려야 한다. 어울리다보면 어느 때부터 말문을 튼다. 당연!

이주노동자들은 비록 등록 노동자라 하더라도 신분상 많은 제약을 받고 지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말 한 마디마다 조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든... 서로를 알아 간다는 것은 길고 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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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중국동무들①

일 원짜리도 받아내는 독종?

사업주들을 만나서 이주 동무들 문제를 해결할라치면 중국동무들의 돈 개념에 대해 험담을 듣는 경우가 많다.
얘기인즉 지독하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받을 돈은 일원 한 장까지 다 쳐서 받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들이 얼마나 잘 해 줬는지... 그렇게 잘 해 줬는데 지독하게 군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어떻든 결론은 지독하다, 이다.

실제는 어떠냐고? 사업주들 말이 맞다. 내가 봐도 지독하다.
그런데 지독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지독하다고 하면 안 되고 자기가 받을 돈에 철저하다고 봐야 한다.
중국동무들은 받아야 할 돈은 꼭 받는다. 받아야 할 돈이 사백삼십칠만 오천이백오십 원이면 오십 원까지 받아야 한다. 그래야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사백삼십칠만 원을 받고 넘어가지 않는다. 나한테 찾아와서 상담을 할 때도 오십 원까지 이야기한다. 자기가 받아야 할 돈이 대충 이렇다고 하지 않고, 그 오십 원까지 이야기한다. 그 돈이 어떤 계산으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사장'님'하고 계산할 때 내가 받을 돈이 이렇다고 했다고, 메모한 내용까지 보여주면서 예의 오십 원까지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든 사물, 사건이 그렇듯 보기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네들의 입장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따지고 보면 받을 돈이 그렇다는데 부모 자식 관계도 아니고 대충 이만큼 달라고 하겠는가?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나한테 바로 이 말을 한 사업주도 몇 있었는데, 내가 그랬다. 한국 사람들한테 당신 받을 돈이 이만저만한데 대충 이만큼만 주겠다, 그렇게 이야기 해 봤냐고. 그럼 한국 사람들은 그러자고 하냐고.

결국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면서 대충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지, 이런 수작일 뿐이다.
아, 물론 중국동무들이 조금 더 예민할 수도 있다. 내가 봐도 지독하다고 하지 않았나? 약간 더 하기도 하다.

그래도 쓸 때는 통 크게

지금은 덜 하지만,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받지 못한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아주면 고맙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단체는 처음 상담할 때 '취하서'까지 다 받아놓기 때문에 일이 꼬이지 않는 이상 다시 찾아올 일이 없는데 굳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인사'를 오면서 '봉투'를 준비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나라든 막론하고 찾아와서 수수료(이게 일상적인 낱말이 아닌데 거의 모든 이주동무들이 알고 있었다. 처음엔 얼마나 생뚱맞던지)가 얼마냐고 묻고, 그런 거 없다고 하면 굳이 봉투를 꺼내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거 얼마냐? 고 묻고 봉투를 열어 얼마인지 세어보곤 했다. 우리 단체 방침이 돈을 받으면 그 돈(사업주에게 받은 돈) 모두 받고 아니면 받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돌려주곤 했는데, 중국동무들은 좀 달랐다.
이주동무들 대부분이 수수료라는 말을 알고 있을 만큼 마땅히 줘야 하는 돈이라 생각하는 듯 했고, 그 액수는 거의 십 퍼센트 정도였는데, 중국동무들은 좀 달랐다.
대략 이백만 원 정도 체불된 임금을 받았다고 할 때, 여느 나라 동무들은 이십만 원 정도 가지고 온다. 그런데 중국동무들은 대부분 그보다 더 많이 준비해 온다. 언젠가 절반 가까이 되는 돈을 수수료라고 가지고 온 적도 있었다. 그네들 말은, 어차피 받지 못할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받을 돈을 받은 건데 무슨 말이냐고 하면, 그래도 그게 아니란다.
약간 실랑이 끝에 수수료 같은 거 없다고 예의 다 주던지 다 가지던지 하라고 하면 알았다면서 거듭 거듭 인사하고 간다.
그러고 나서 튀김 닭이나 양념 닭을 다섯 마리, 열 마리 씩 사가지고 온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건데 한두 마리 사가지고 와서 먹으라 하지 않는다. 정말 말 그대로 왕창 사가지고 온다.

한 번 동무면 영원한 동무

대충 눈치 챘는가? 중국동무들은 자기편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겐 정말 잘 한다. 대충 이 정도 하면 되겠지, 선에서 때우지 않고 정말 잘 한다.
우리가 '뙤놈', '짱깨'라고 부르며 업신여겨서 그렇지, 성실하게 대하면 성실하게 답한다.

하긴 이게 중국동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덧붙여

중국동무들 모두가 위와 같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나쁜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 고맙다는 인사(바란 적도 없지만)는커녕 연락을 끊어버리는(노동청에서 돈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노동자도 있었다. 며칠 뒤 어렵게 연락이 되자 대뜸 수수료 달라는 거냐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중국노동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서민식 |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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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30 00시06분  미디어충청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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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사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다

요즘 동무들을 만나면 이 질문을 많이 듣는다.
"대통령이 바뀌니 더 힘들지 않냐?"
왜 그렇게 묻는지 알지만 특별하게 더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뭐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어 보이니까.

나는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단히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세상을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다.



이 나라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적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한다. 당연하다. 이 나라 노동자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이주노동자들을 쓰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먹는 것부터 뭐 하나 까탈스럽지 않은 게 없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언젠가, 어떤 기자가 이주노동자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보기에도 그런 걸.

한 달에 팔십만 원, 구십만 원 받고 일요일에도 오후엔 꼬박꼬박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흔하다. 토요일? 그냥 일한다.
그렇게 일을 하는 데도 어느 때부터인가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는다. 아예 주지 않는 달이 늘어난다. 서너 달 버티다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사장을 찾아가 "돈 줘요"하면 그 날로 쫓겨난다. 돈? 돈은 받지도 못하고 나온다.
그렇게 받지 못한 돈이 이백만 원, 또는 삼백만 원 정도? 그 정도면 사장 집에 불을 지를만도 한데 그냥 곱게 나온다. 참 어이없다.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면서 예전 회사에 몇 번 전화를 한다. 찾아가기도 한다. 돈 달라고.
그러면 욕을 듣기도 하고, 언제까지 주겠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런다. 언제까지 주겠다고 하면 기다린다. 하긴 기다려야지 달리 방법이 있나? 준다는 날짜에 예전 회사를 찾아가면 십만 원, 이십만 원 이렇게 받아온다.
그 이후에 다시 전화를 하면 줄 돈 다 줬는데 뭘 또 달라고 하냐는 말을 듣는다. 이백만 원 아니냐고 하면 니가 회사에 끼친 손해가 얼마나 많은데 그딴 소리를 하냐고 한다. 다시 전화를 하면 경찰에 신고해서 당장 잡아가라고 하겠다고 협박도 한다.
이쯤 되면 월급을 떼이는 게 당연하다는 주변 동무들의 '조언'을 듣게 된다. '당연히' 떼이는 것이라는.

그러다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온다.
얼마나 일 했냐? 받지 못한 돈이 얼마냐? 회사를 그만 둔 다음에 돈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이런 내 질문에 이주노동자는 꼬박꼬박 사장님이, 사모님이, 부장님이, 이런다.
불을 지르진 못해도 욕이라도 할 만한데 꼬박꼬박 사장'님'이다.

항상 이랬다.
여기까지는 항상 이랬다.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런데.
문득, 얼마 전부터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엔 노동청에 진정을 내고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 사장이 돈을 입금했다. 쉽게 처리되진 않았지만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힘들어졌다.
사장이 노동청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냥 버틴다. 연락도 받지 않고 출석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사장이 노동청에 나오더라도 다짜고짜 욕이다. 그런 새끼들은 몽땅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한다.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예전엔 그렇게 욕하는 사장에게 은근히 협박도 했다. 사실 나야 제삼자 아닌가? 이주노동자가 강제출국을 당하든 말든 사장이 돈을 주든 말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수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해결한다고 해서 십 원짜리 하나 얻는 것도 없는데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할 계획인데, 그렇게 되면 당신도 속 깨나 썩을 거라고 협박을 하곤 했다. 그 돈 나하고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대신 그보다 더 손해 보게 하겠다고 협박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하면 먹혔다.

요즘은 아예 나오질 않는다.
나 혼자 노동청에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날이 늘었다.
간혹 나오더라도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배를 째라고 한다. 그런 사장이 늘었다.
세상이 바뀐 것일까?

이 나라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는 것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에게 백만 원은 참 큰돈이다. 이 나라에선 한 식구가 한 달을 지내기도 버거운 돈이지만 어떤 나라에선 한 식구가 서너 달을 살기도 한다. 반년을 지낼 수 있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굉장히 큰돈이다.
그렇게 큰돈을 그냥 안 주려고 하는,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째라는 배에서 나오는 것일까? 모르겠다.
세상이 바뀐 것일까?

십년 만에... 대통령이 바뀌니까... 그이가 사장'님'들 편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해서... 그래서 배짱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이런저런 문제가 있던 사람이라... 나라님도 거짓말을 일삼고 그 자리까지 갔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러냐? 뭐 이럴 수도 있겠다.
그런 건 모르겠다.
그냥 세상이 바뀐 것인가 싶다.
잘 모르겠다.

서민식 |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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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1 06시06분  미디어충청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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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을 위한 나라는 없다


대전지방노동청 처음

...

대전지방노동청 두 번째

...



돈 주지 않은 거 맞습니다.
예, 백이십만 원입니다. 한 달 치 맞습니다.
주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그렇게 적은 돈 아닙니다. 힘들다는 건 인정하죠. 아니~ 저도 그렇게 일합니다. 물론 야간을 뛰면 힘들죠. 예, 야간 했습니다. 저녁 여섯 시부터 다음 날 여섯 시까지 일합니다.
밤에 뭐... 야식 좀 먹고... 잠깐 잠깐 쉬죠. 어떻게 계속 일합니까? 예, 정해진 휴식 시간은 없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쉽니다. 아 글쎄 힘든 거 안다니까요. 그렇다고 백이십만 원이 적은 돈입니까? 한국 사람들도 그렇게 일하고 백오십만 원 가지고 가요. 우리 회사가 그렇다고요. 아니 그럼 한국 사람하고 똑같이 주라는 말씀이십니까? 똑같이 줄 거라면 왜 외국인을 씁니까? 같은 돈 줄 거라면 한국 사람한테 줘야지. 그렇지 않아요?
걔가 어떤 앤지 아세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애예요. 나도 처음엔 걔한테 잘 해주려고 했어요. 불쌍하니까. 남의 나라 와서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냐, 이런 생각했어요. 돈 벌러 왔지만 돈이 다가 아니니까 동생처럼 자식처럼 대하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뭐라더라? 응~ 밥이 맛이 없다나? 참내 어이가 없더라고요. 아니 애들도 아니고 무슨 밥투정을 합니까? 우리 회사 와서 식사 한 번 해 보세요. 몇 만 원짜리 한정식엔 비할 순 없지만 맛있습니다. 그런데 밥이 맛이 없다고. 그래도 남의 나라 와서 고생하는데... 먹는 거는 잘 해줘야지 해서 식당 아줌마한테 신경 좀 쓰라고 했습니다. 돼지고기 안 먹네, 뭐 안 먹네 그래서 반찬도 신경 많이 썼습니다. 다른 회사 가 보세요. 우리만큼 하는 데 있나.
아니 아니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옷도 사주고 그랬어요. 아 물어보세요. 내가 얼마나 잘 해줬나.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내가 틈틈이 내 사무실로 불러서 집에 전화 하라고, 내 전화로 국제전화도 하고 그랬어요. 걔가 그런 말은 안 합디까? 내가 얼마나 잘 해줬나... 내가 아주 나쁜 놈이랍디까?
지가 나간다고 했어요. 눈치를 보니 몇 푼 더 준다는 데가 있었나보더라고요. 얘네들은요, 의리고 예의고 없어요. 그냥 돈 더 준다고 하면 나가요. 그건 제가 알죠.
힘들기야 힘들었겠죠. 밤에 일하는 것이 쉽진 않으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 해줬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그런 건데 사람한테 잘 하고 뭐 그런 게 있어야지 이놈들은 그런 게 아예 없어요. 그냥 온리 머니예요.
올려주겠다고 했죠. 조금만 더 일하면 내가 올려주겠다, 그랬습니다.
예, 못 줍니다. 괘씸해서 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런데 걔는 왜 안 왔습니까? 지가 잘못한 게 없으면 와서 당당하게 돈 달라고 하면 되지 왜 안 왔답니까?
아니 못 줍니다. 오든 안 오든 줄 생각 없습니다.

대전지방검찰청

제가, 거 어디죠? 노동부? 노동청? 거기서 조사 받을 때도 이야기했지만 얘가 아주 싸가지 없는 앱니다. 돈 몇 푼 더 달라고 하다가 내가 안 된다고 하니까 그냥 나가버린 앤데 이런 애들한텐 그냥 돈 달라고 할 때 돈 주고 이러면 안 됩니다. 버릇을 고쳐줘야 합니다.
권리라는 것도 자기가 할 바를 한 다음에 주장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돈을 받으려면 그만한 일을 하고, 아 글쎄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니까요. 일을 제대로 하고 돈을 달라고 해야지... 짜르는 것도... 그게 그래요. 저는 걔를 동생처럼 생각했습니다.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어떻게 짜릅니까? 알고 있습니다. 근로자는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그만 두면 되고, 사장은 근로자가 마음에 안 들면 짜르면 되는 거 압니다. 그래도 내가 내 식구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냈는데 어떻게 짜릅니까?
아 글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아 글쎄 그랬는데 얘가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제가 얘를 동생처럼 여기고 전화도 시켜주고... 제가 제 사무실로 불러서 집에 전화도 하게하고 그랬습니다. 지 부모 목소리 듣고 싶을 거 아니에요. 걔 때문에 전화비 엄청 나왔습니다. 그렇게 전화도 시켜주고 옷도 사주고 그랬는데 얘가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사람이 좋으니까 그 마음을 이용해서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을 올려 달라 그러는 겁니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외국인 놈들한텐 잘 해줄 필요 없어요.
그 일을 걔 혼자서 했어요. 걔가 그걸 안거죠. 내가 나가면 회사가 안 돌아가겠구나. 나쁜 새끼지 나한테 그런 걸로 협박을 해?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나가라. 너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간다. 당장 나가라.
그런 새끼한테 무슨 돈을 줍니까?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 했는데, 정말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동생처럼 생각했는데. 내가 전화도 시켜주고 그랬는데... 전화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영수증 가지고 올까요? 제가 쓴 전화는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몽땅 다 그 놈이 쓴 거예요. 그랬는데 돈 몇 푼 더 준다고 다른 회사로 홀랑 가 버리고. 아주 이런 놈들은 버릇을 고쳐놔야 해요.
아, 저는 절대로 돈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벌금이 얼마가 나와도 좋고 재판까지 가도 좋습니다. 대법원에 가서 지더라도 돈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녹록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뭐 사장 한 명이 이렇게 설친다고 달라지겠느냐 그런 생각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대한민국 헌법을 고치더라도 이건 바로 잡을 생각입니다.
무슨 말씀을... 제가 무슨 국회의원까지... 그런 거 아니고요, 저는 대한민국의 법을 악용해서 사장들에게 협박이나 일삼는 이런 놈들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죠. 외국인근로자가 다 그런 건 아니죠. 열심히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도 많을 겁니다. 가족처럼 잘 지내는 회사도 많이 봤어요.
얘는 안 돼요. 얘는 사장의 약점을 파서 협박을 하는 애예요. 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거 알고... 아니 글쎄. 제가 이 말씀 안 드렸나요? 백이십만 원, 그거 적은 돈 아닙니다. 아니 글쎄. 예, 맞습니다. 야간 근무했습니다. 몇 달 했죠. 예, 거기에 적힌 게 맞습니다. 아니 글쎄. 저는, 걔가 힘든 거 안다니까요. 그래서 제가 동생처럼 여겼다는 거 아닙니까? 제가 걔를 보면 마음이 짠~ 하더라고요. 여기까지 와서 얼마나 힘들겠나, 얼마나 외롭겠나. 그래서 제가 얘를 볼 때마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전화라도 한 통화 더 하게 하고 그랬어요.
아니 글쎄. 그러니까 저는 걔가 더 괘씸한 거예요.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 기껏 한다는 짓이 협박이나 하고. 아니 그게 협박이죠. 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거 알고 돈 올려달라고 하는 게 협박 아닌가요? 아니 그게 협박이 아니면 뭐가 협박입니까?
줄만큼 줬다니까요. 백이십만원이 적습니까? 한국 놈들은 오지 않죠. 그 돈 받고 누가 밤에 그렇게 일합니까? 이백만 원을 줘도 안 합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과 외국인을 같이 보면 안 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한국 사람한테 주는 만큼 외국인한테도 줘야 하는지. 아마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럼요. 적지 않습니다. 많이 줬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절대 적은 돈 아닙니다.
예, 못 줍니다. 줄 생각 없습니다. 재판까지 가더라도 못 줍니다. 대법원에서 주라고 해도 못 줍니다.

대전이주노동자연대

사실 제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잘 한다고 했고, 동생처럼 여기고 참 신경 많이 썼는데... 예, 다 아시는 내용이시죠. 다만 저는 정말 걔한테 잘 해줬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고... 예...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돈만 드리면... 아, 예, 입금하면 된다고 해서... 예, 지금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잠깐만... (휴대전화로 백이십만 원 폰뱅킹 입금) 통장 확인해 보시고... 아, 예, 그럼 제가 통장을 복사해서 팩스로 보내 드릴 테니까... 아, 예,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바로 복사해서 보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 예, 감사합니다.
저... 그럼 다 마친 건가요? 아, 예,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걔한테 정말 잘 해줬는데... 아, 예.
그리고... 서류들은... 지금 주시면 제가 제출해도... 아, 예,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거 뭐라도 사왔어야 하는데... 나중에 좋은 자리에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민식 |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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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17시03분  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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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의 풍경


상담의 풍경


이번이 두 번째예요. 한국에 온 게.
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럼요.
산업연수생? 그거로 왔다가 삼년 일하고 집에 갔다가 다시 왔어요. 지금은 산업연수생이라고 하지 않던데... 하여간 다시 온지 사 개월 정도 됐어요.



그건 모르겠어요.
집에서 올 때 이제는 세 번 회사를 옮길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예. 그땐 안 됐죠. 한 회사에서 계속 일해야 했으니까요. 지금은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세 번까지 옮길 수 있대요.
그래요? 사장님이 싸인해야 옮길 수 있다구요? 그건 몰랐어요. 그런 말은 안 하던데요. 그러면 내 마음대로 회사를 옮길 수 있는 게 아니고 사장님이 허락해 줘야 옮길 수 있나요?
아~ 예~. 근데 그건 좀 이상하네요.

예. 저도 지금 회사에서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욕 들어요. 씨발놈아 그래요.
아뇨. 뭐. 내 생각에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장님, 사모님은 항상 욕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땐 그게 미스터인줄 알았어요. 부를 때마다 씨발놈이라고 해서요.
뜻은 몰라요. 그냥 욕인 건 알아요.
맞는 건 없어요. 때리는 시늉은 하는데 아직 맞지는 않았어요.

내가, 일을 잘 해요. 모르겠어요.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볼 때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열심히 해요.
왜 때리겠어요? 잘 하는데.
욕은 몰라요.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잘 쓰는 말인가 보죠.

센터에 와서 "Migrants Freedom, Now!"라는 글을 보고 놀랐어요.
저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내가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지내는데... 감옥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그래요. 맞아요. 사장님이 싸인해야 회사를 바꿀 수 있다니 그럴 수도 있네요.
그것도 맞아요. 아무데나 가서 지낼 수 없어요.
그러고 보니 자유롭지 못하긴 하네요.

예. 대학 나왔어요.
마을에선 공부 잘했어요. 우리 마을에서 대학 간 사람이 몇 안 돼요.
결혼은 아직 안 했어요. 돈 많이 벌어서 아빠, 엄마가 잘 살아야 해요. 결혼은 아빠, 엄마가 정한 여자랑 해요.
사진이 와요. 얼굴도 보긴 하지만 아빠, 엄마가 좋다고 하면 그냥 결혼해요.
아니에요. 생각 없어요. 삼년 지나서 집에 가서 결혼할 생각이에요.

불법 있어요. 합법이 두 명, 불법이 두 명. 월급은 같아요. 일도 같아요.
그래도 합법이 좋아요. 불법은 겁나잖아요. 잡혀갈 수도 있고.
요즘엔 일자리가 없어요. 불법은 일자리 구하는 것도 어려워요. 합법은 그렇지 않아요. 일자리 구하기 쉬워요.

집에서 올 때 돈을 많이 주고 와요. 그래서 삼년 일하고 그냥 집에 가면 안 돼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렇죠. 돈을 더 벌어야죠.
나는 돈 안 주고 왔어요. 그래서 삼년 일하면 돼요.
돈 주고 오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전화 많이 해요. 엄마한테.
옛날엔 보고 싶다는 말 많이 했는데 이젠 안 해요. 엄마가 힘들대요. 그래서 그냥 잘 있다고만 해요.

내가 일하면서 싫잖아요. 그럼 다른 회사 갔으면 좋겠어요.
욕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말해도 되는데 꼭 욕을 해요.
옛날에 왔을 때는 맞았어요.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지금은 안 맞아요. 그래도 욕하는 거 싫어요.

얘기하다 보니까 정말 자유가 없네요.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해야 하고, 사장님, 사모님이 욕해도 참아야 하고, 사장님이 정해준 집에서 지내야 하고 그러네요.

그건 모르겠어요. 예. 겁나요.
노동조합 같은 건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런 말 나중에 해요. 나 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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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16시01분  미디어충청에 실린 칼럼

처음 원고를 보낼 때 '상담의 예'라고 제목을 정해 보냈다. 편집장께서 '상담의 풍경' 어떻겠냐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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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르게 그이가 겪은 일


제목 : 우리 모르게 그이가 겪은 일
글쓴이 : 서민식 |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어떤 노동자가 어떤 회사를 다녔다.

그 노동자 이름을... 김철수라 하자. 김철수 씨가 뼈 빠지게 일을 했는지, 빈둥빈둥 놀았는지 그건 김철수 씨와 사장의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일을 했다.
그 회사는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점심시간엔 점심 먹고, 드문드문 회식도 있었다. 회식 자리도 별 다를 바 없어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광란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사장도 다른 회사 사장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는 항상 ‘근로자’들에게 잘 해 준다고 생각하는 듯 했고 근무 시간에 마주쳤을 때 고개 숙여 인사라도 하면 인자한 얼굴로 “응~ 철수, 요즘 잘 지내지?”라며 하나마나한 인사말을 건네곤 했다.



사장이 김철수 씨를 불러서 생뚱맞은 이야기를 했다.
“김철수 씨(김철수 씨는 사장이 이렇게 씨를 붙여 말하면 더 긴장이 됐다),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말이야... 지금 김철수 씨 월급... 한 달에 백오십만 원이지? 그 중에서 매달 이십만 원씩을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김철수 씨 퇴사할 때 몰아서 줄게.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사실 김철수 씨가 적금을 들겠어 뭐 하겠어? 그거 다 받으면 술이나 마시면서 써 버릴 거 아냐. 그러니까 매달 이십만 원씩 적금 들었다 치고 그렇게 합시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김철수 씨는 월급을 받아 술 마시며 쓰지 않았다. 물론 가끔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사장이 말하는 대로 술이나 마시며 쓰진 않았다. 김철수 씨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매달 백만 원 정도 보내드리고 있는데, 이십만 원을 덜 받으면 시골에 보내는 돈을 줄여야 할지, 자기 생활비를 줄여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고민은 고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사장에게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 일 이후 마음이 떴는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생활도 힘겨워졌다.
시골에 보내는 돈을 줄일 수 없어서 자기 생활비를 줄였고, 예전에 비해 먹을 것도 줄이고 술도 덜 마시는 데 항상 돈이 부족했다. 이십만 원이 생각보다 큰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서너 달 지내다가 다른 회사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는 일이 비슷하고 월급도 비슷하다 했다.
계속 마음에 걸리던 게 있어 그 회사 사람에게 ‘보증금’에 대해 물었다. 그 회사 사람은 피식 웃더니 뭐 그런 게 있냐고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보증금’만 없다면야... 김철수 씨는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사장에게 그만 두겠다고 했더니 선선히 그러라고 한다. 웬 일이람? 의외였다.
이야기 끝에 월급하고 ‘보증금’을 달라고 했더니 사장이 갑자기 화를 낸다.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돈도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나왔다.

속은 쓰리지만 잊고 지냈다. 일 년 정도 지났나? 누가 그런다. 노동부에 진정을 하면 받을 수 있다고.
도움을 받아 진정을 냈다.

노동청에서 사장을 만났는데 대뜸 “싸가지 없는 새끼”란다. 자기가 얼마나 잘해줬는지 아냐고 한다. 회식도 시켜줬단다. 항상 따뜻하게 대했는데 뒤통수친다고 막 욕을 한다.
김철수 씨는 정말 어이가 없다.
‘보증금’으로 묶였던 돈과 회사 나올 때 받지 못한 월급을 달라는 데 그게 싸가지랑 무슨 상관인가? 화가 났다.
도움을 줬던 사람 말이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게 노동자의 권리란다.
퇴직금까지 다 계산해서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화가 난다.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더 화가 난다. 화가 아주 많이 난다.

실제 이야기입니다.
다만 김철수 씨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고 이주노동자입니다.
여러 경우를 섞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고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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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9 03시12분  미디어충청에 올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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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울산대학교 교지 「문수」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8월 초에 글을 보냈는데, 얼마 전 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목 : 이주노동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글쓴이 : 서민식 |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이웃?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주노동자'라고 할 때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저와 만나는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만, "이웃"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살던 곳을 떠나 고생하고 있으니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당연히 "참으로 좋은 일을 하신다"는 말이 뒤따릅니다.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에서 지내는 상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집 떠나 고생'일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각종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내용들을 보더라도 여러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합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저임금입니다. 이주노동자들과 상담을 해 보면 대부분 법정 최저임금에서 약간 웃도는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그렇게 적게 받으면서도 노동 강도는 센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네들이 일상적으로 지내는 환경이 대단히 열악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공장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네들의 숙소는 쉬는 곳이 아니고 그냥 잠만 자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재래식 화장실에, 방 천장엔 백열전구 하나 달랑 달려있고, 기름때에 절은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 하나로 모든 반찬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개인적으로 얻어서 지내는 방이 이런 환경이라면 더 괜찮은 방을 얻으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가 이런 환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 "거저 줘도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방을 기숙사라고 제공하곤, 밖에서 다른 방을 얻으면 월세 이십만 원을 줘야 하네, 삼십만 원을 줘야 하네, 하면서 월세를 받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세 번째, 몸이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질 못합니다. 이 나라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일하는 기계로 보는지 몸이 아프다고 해도 제때 병원에 보내주질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이 육체노동을 하면서 지내는데, 몸 어디가 아프다고 해도 "일 하다보면 다 그렇다", "꾀병 부리지 마라"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이네들이 참다못해 우리 단체까지 연락을 하고(회사에서 병원에 데려다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병원에 갈 시간도 주지 않으니), 자원활동가들이 회사에 항의하고 이주노동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면 의사들은"이렇게 되도록 왜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합니다.
   네 번째,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새
끼, 저 새끼 하는 욕은 물론이려니와 뒤통수 한 대 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이 년쯤 전에 우리 단체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관리자나 한국노동자들에게 맞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십팔 퍼센트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맞은 적이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빗자루로 맞고 발길질을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네들이 한국에 와 일을 시작할 때 얼마나 욕을 듣는지 "새끼"가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알고 있는 이주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렇듯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에서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네들은 그 나라에서 꽤 고급스러운 처지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많이 다르진 않지만 박정희 정권 때 아메리카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 갔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길거리에서 좌판 벌려놓고 나물 팔던 집에서 이민 가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꼴찌를 다투던 동무가 유학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도시락에 달걀 반찬이라도 싸오던 집(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반 동무들 육십 명 중에 도시락을 싸 온 동무는 다섯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달걀이라니), 이른바 스카이에 들어갔던 동무들이 지금 아메리카에 있습니다. 아메리카에선 세탁소를 하는 사람들도 다 서울대학교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잖습니까?
   이주노동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서 최고로 뽑혔고, 본인이 돈을 벌어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거나, 더 많은 일을 배워 조국에 봉사하고자 온 사람들입니다. 이네들이 원래 고국에서 괜찮은 환경에서 지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나은 대우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네들의 '수준'이, 우리가 욕하고 때리고 무시할 만하지 않다는 겁니다.
   하긴 누군들 욕먹고 맞을 만합니까? 집이 가난하면 욕먹어도 되고 공부를 못하면 맞아도 됩니까?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에서 받는 처우가 안 됐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관련된 많은 단체들이 이주노동자 사업을 하면서 "돕는 일"에 집중합니다. 이른바 '복지'와 관련된 사업들인데, 이를테면 특정한 날을 잡아 에버랜드 같은 놀이동산에 다녀온다든지 바닷가에 갔다 온다든지 합니다. 무료진료소를 만들어 이주노동자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해 타국에서 지내는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합니다. 우리 단체도 이런 사업들을 진행합니다.

   사슴과 돼지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무엇이 있다고 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할 것 없이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이십 년쯤 전에 이야기할 땐 그 약자들이 여성, 어린이, 장애자였습니다. 이젠 그 세 부류에 이주노동자를 더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들이 왜 약자인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다만 이 점은 분명하게 짚어야 하겠습니다. 흔히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동일한 분량의 짐을 지우는 것, 동일한 분량의 혜택을 주는 것을 평등이라 하는데, 기계적인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폭력적인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상식적으로 초등학교 일학년인 어린이와 이십대 청년이 같은 시간에 같은 분량의 벽돌을 나를 수 없으며,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빠르기로 걷거나 뛸 수 없습니다. 어린이에겐 더 많은 시간과 더 적은 벽돌을 줘야 하고 장애인에겐 더 많은 시간을 주던지 전동휠체어 등 별도의 장비 - 곧 혜택 - 를 줘야 그나마 비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다른 조건을 부여하는 것, 이게 평등의 첫걸음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 이주노동자와 우리가 서로 평등할 수 없는, 어떤 노래에 나오는 가사처럼 "마치 사슴과 돼지들"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나라 근로기준법 제5조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임금이나 노동 조건 등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이 나라 법이 이러하고, 국제노동기구(ILO)가 고용 및 직업 차별에 대한 협약(제111호 협약)을 정해 국적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데도 사업주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22일, 중소기업경영자총연합회에선 "외국인근로자들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답니다.
   최저임금을 주며 이른바 쓰리디 업종의 일에 이주노동자들을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그 돈도 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그 당연한 권리
   "이주노동자들도 이 나라 노동자들과, 보다 넓게 이주민들도 이 나라 사람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게 우리 단체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주노동자를 이야기할 때, 우리의 주장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압축됩니다. 일상적으로 지내는 환경이야 이 나라 사람들도 천차만별인데 똑같은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자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하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주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또, 이주노동자 문제가 이 나라의 모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극명한 지점은 아니더라도 이 나라 모순의 한 축인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 문제, 장애인 문제, 어린이 문제 등과 맞물려 그냥 놔두면, 별도의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든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때 이들이 우리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그런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할 때, 여러분이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한 회사의 노동조합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오히려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길 바랍니다.
   지금은 사업주들이 "최저임금도 못 주겠다"고 떠들어대지만 최저임금 뿐 아니라 이 나라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토끼
   토끼를 키우긴 고사하고 가까운 사람 중에 토끼를 키우는 사람도 없으니 토끼의 속성이나 능력에 대해 모를 일이지만, 예전엔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고 합니다. 예전 잠수함은 지금같이 괜찮은 장비를 갖추고 물 속을 헤집고 다니지 않았을 터, 여러 위험이 닥칠 수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함 내에 있는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충분하게 있어야 했습니다. 잠수함 타고 바다 속으로 다니는 것이 목욕탕에서 잠깐 물 속에 머리 담그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느끼기에 공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이미 늦은 것, 숨 쉬기 힘들기 전에 빨리 알아차리고 부상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알아내느냐는 것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고, 굳이 토끼여야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토끼는 사람보다 빨리 알아차린다고 하니 예전엔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녔답니다.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린 C.V.게오르규는 다른 대상을 두고 말했지만, 저는 '잠수함의 토끼'를 다소 넓게 특정한 사회 - 또는 조직 - 에서 그 사회의 부패,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 등을 바로잡는 계기로 이해합니다.

   모든 차별과 억압에 예민해지자
   작업 중 손가락이 잘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이주노동자에게 치료비 줄 테니 빨리 귀국하라고 하는 사업주가 있습니다. 그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일 경우,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한다고 협박하며 내쫓기도 합니다. 물론 이 나라 노동자들도 그런 일을 겪습니다.
   일 년 남짓 일을 시키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그 다음날 쫓아내기도 합니다. "원래 너네는 퇴직금 같은 거 없다"고 큰소리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나라 노동자들도 그런 일을 겪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저는, 이주노동자들을, 대한민국이라는 잠수함이 어떤 상태인지, 사람이 숨 쉬고 지낼 수 있는 곳인지 측정하는 토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이 나라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이주노동자들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대우와 고통이 곧 자신들에게까지 올 것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주노동자들과 비교하여 한 줌도 안 되는 혜택을 누리면서 그 혜택이 천년만년 갈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 그래서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 깊이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면, 저와 자원활동가들이 하는 일들이 "참으로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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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

   내가 어떤 자리에 가서 이주노동자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이주노동자가 뭐냐는 물음과 좋은 일 하신다는 덕담이다.
   노동자는 나이, 성별, 국적에 따라 차별받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라 부르는 것이 맞다고 설명해야 할 자리라면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흔히 외국인노동자라 하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라고 답을 한다.
   좋은 일 하신다는 덕담에는 그냥 웃고 말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정말 예외없이 듣는다) 좋은 일이라는 것이 뭘까, 자문을 던지곤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이 누려야 마땅할 권리를, 이게 당신들의 권리라고 알려주고 그 권리를 찾도록 손톱 끝만큼 보탬을 주는 것뿐인데 좋은 일이라는 칭찬까지 들을 자격이 있을까 싶다.


   이미 이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을 벌려는 목적 하나로', '불법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까지 빼앗으면서' 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 여럿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똥통을 만들 때 플라스틱으로 형을 떠서 굳히는 줄만 알았다. 플라스틱으로 총도 만들고 차도 만드는 세상이니 강도가 센 플라스틱이련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회사에 찾아가 임금 체불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그 이야기를 하니 웃는다. 그렇게 만들면 백퍼센트 깨진다면서 특정한 틀에 얇은 필름 수백 장을 붙여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야 압력에 견딜 수 있다는데, 이 일을 사람이 직접 한다고 설명한다. 필름을 붙이고 접착제를 바르고, 또 필름을 붙이는 일을 똥통 안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데, 접착제 냄새가 지독해서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도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어질어질하다는 설명을 한다. 그거 익숙해지는데 육개월, 일년이 걸린단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전국에 있는 정화조 회사에 이 일을 하는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주노동자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이 점이다. 이미 이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
   심야에 물류센타에서 물건을 내리고 올리는 사람들, 허영만의 식객에 나오는대로 순대공장에서 순대 만드는 사람들, 이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이 나라 정부는 미등록을 조장하고 있다
   이른바 합법이라 하는 '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 또는 그보다 약간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이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거론할 필요도 없으려니와 다른 사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같은 나라 동무들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월급이 적다. 단지 등록 신분이라 단속에 노출되지 않는다 뿐이지(단속할 때는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일단 잡아가고 보는 식이지만) 적게 삼십만원 정도 차이나는 처지는 이네들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대체로 삼십만원 정도면 이 나라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본국에서 한 가족이 한 달을 살 수 있다). 노동 강도가 비슷하다면, 처우가 비슷하다면 더 많이 벌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업장을 이탈하여 알음알음으로 돈 더주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제도는 없어졌지만 최초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에 들어올 때, 이네들의 신분은 산업연수생이다. '외국인등록증'에 E-3라고 기재되어 있는 산업연수생은 '현실적으로' 퇴직금이 없다. 대법원에서 산업연수생도 퇴직금 적용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지만, 노동청에 퇴지금 미지급에 대한 진정을 내면 E-3 기간의 퇴직금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나라 정부에서 하라는대로, 이른바 합법적인 산업연수생으로 있으면 퇴직금이 없다는 말이다. 사업장을 이탈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면 그 기간은 퇴직금 적용을 받는다.
   내가 내 입으로 사업장을 나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주동무들이 먼저 말한다. 여기 나가서 다른 곳에 취직하면 퇴직금 받을 수 있는 거냐고.


   이주노동자들은 상습적인 욕설과 폭행에 노출되어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퇴직금 문제만 문제가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나라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일 마치고 술 마신다고, 사장에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상습적인 욕설과 폭행을 당한다.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이 감금되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지들 몇과 함께 갔더니 무슨 부장이라는 사장 아들이 나와 어떤 새끼가 전화했냐고 난리를 친다. 이주노동자들이 감금되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하니 감금은 무슨 감금이냐며 오히려 큰소리다. 지금 그 동무들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방에 잘 있다고, 문을 걸어 잠근 것도 아니고 밖에서 못질을 한 것도 아닌데 무슨 감금이냐며 가서 보란다. 숙소에 가보니 방 안에 이주동무들 셋이 누워있다. 그 부장이 대뜸 이 새끼들 누가 누워있으래, 소리 지르며 눈을 부라린다. 같이 간 동지가 어따대고 이 새끼라고 하냐며 싸움이 시작됐는데, 조금 지난 후 부장 말이 자기는 나오지 마라고만 했다면서 감금이 아니라고 한다.
   사장을 만나서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이게 감금이지 뭐냐, 당장 경찰을 불러 고발하겠다라고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사정을 한다. 자기들도 참을만큼 참았다고, 아주 형편없는 놈들이라고.
   얘기인 즉, 밥을 주면 반찬 투정을 한다는 것이다. 일요일에 술 마시고 병들을 제대로 치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업복을 제때 빨아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릇 고치려 조금 때렸다는 말을 한다.
   조금 때리다니. 그 나라에선 훌륭한 인재라 해서 기술 배우러 온 노동자를, 버릇 고친다고 때리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우리 단체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린 적이 있다.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욕을 들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백퍼센트 있다고 답했고, 한 두 대라도 맞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구십퍼센트 이상이 맞은 적 있다고 답했다. 때리는 도구도 다양해서 막대기, 스패너, 빗자루 등이었으며 심지어 망치로 어깨를 맞은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이주동무들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저 새끼, 이 새끼 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봤다. 그거 나쁜 말이라고, 그러니 쓰지 마라고 했더니 회사에선 자기들에게 항상 이 새끼 저 새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무슨 호칭으로 알고 있는 이주동무도 있었다. 인사하면서 씨발놈 하지 않는 게 다행일까?


   단결, 연대는 원칙이다
   다소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은 항상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힘을 합치면 자본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직군을 나누고 관리자와 현장노동자를 나누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자본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 국적을 가진 노동자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가르친다. 월급이 적은 것도 당연하고 등록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불법이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근로기준법 제5조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나와 있다. 당연히 법만 그렇다.
   민주노총 강령엔 "우리는 전세계 노동자와 연대하여 국제노동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라고 나와 있다. 솔직히 강령만 그렇다고 보일 때가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현재 이 나라의 모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운동의 한 방향이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여성, 장애인, 어린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주노동자도 사회적 약자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주노동자들의 집회에 가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사람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고,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우와 보장을 해주는 것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출발선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노동자의 권리가 뭔지 알려주고 그 권리를 쟁취하도록 연대하며, 이들이 자기네 나라에 돌아갔을 때 그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전파할 수 있다면 "전세계 노동자와 연대"하는 일, "국제노동운동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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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규 형님이 글 하나 쓰라고 해서 쓴 글.
   어디에 올린다고 했는데... 요즘 정신없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정규 형님 블로그

   ※ 우연찮게 알게 됐는데, '정세와 노동'(제22호, 2007년 3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발간)에 실렸다. 내 글이 어디에 실렸는지도 모르니... 이런 한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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