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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불나불

 

     모든 '주의'나 '주장'이 그렇듯 이론적으로는 극단적인 곳까지 가지만 실제로 적용할 때는 필요한대로 다른 '주의'나 '주장'과 섞이곤 합니다.

     혹시 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남자가 입만 열면 남녀평등을 말하고, 주장한다고 합시다. 그 남자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거나 그렇게 만나는 자리도 공식적인, 또는 준공식적인 곳뿐이라면 그 남자가 실제로 남녀평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실천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라면, 저는 그저 이 남자가 남녀평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보다 뭐 그 정도로만 인정합니다. 그의 말을 다 믿지도 않고 모두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를 아주 자주 만나거나(사실 만나는 횟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이의 생활까지 알 수 있다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집니다.

     사실 어떤 남자가 남녀평등에 대해 주장할 때 그 주장이 실제적인지 그저 입만 나불대는 것인지 알아보려면 부부가 같이 있는 것만 보면 됩니다. 단 한 번만 봐도 알 수 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아내가 유모차를 끌고 애를 업고 가는데 그 뒤에서, 또는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유유히 걸어가는 남편. 그가 남녀평등을 말한다면 필경 나불대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나 봅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가 아니고 "받나 보다"라는 투의 표현을 쓴 것은, 실상 저는 그다지 열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제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하는 말이 "열 받았죠?"이고,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요즘 무슨 일이 있길래..."입니다.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그렇지만 상당히 많이는 아니더라도 정수리에서 스팀이 나긴 납니다.

 

     자주 말한대로, 자주 주장한대로 저는 다른 사람이 저와 견해(정치적이든 뭐든)가 다른 것을 진지하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바다게처럼 자기는 자꾸 옆걸음질 하면서 곧장 가고 있다고 '주장'(대체로 이런 것은 주장이라기보다 우기는 것입니다만)한다면 곤란합니다. 더군다나 그가 옆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누누히 지적하고 강조했는데도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정말 곤란합니다.

     더욱 곤란한 경우는, 자기 입으로 옆으로 가는 것은 틀리고 곧장 가는 것이 맞다고 하면서 지금 자기가 옆걸음하는 것을 모를 때입니다.

 

     요즘 제 고민이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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