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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1
    결혼 '못'하는 여자? 결혼 '안'하는 여자!- 영롱(12)
    반차별팀

결혼 '못'하는 여자? 결혼 '안'하는 여자!- 영롱

 

결혼 '못'하는 여자? 결혼 '안'하는 여자!

 

 

지금 몇 시간째, 배우 누군가가 결혼 3년 만에 이혼을 했다는 기사가 계속 포털 메일에 뜨고 있다. 대체, 그게 뭐라고! 또 무엇이 그리 궁금하여, 사람들은 그 배우의 이름을 검색어 1위에 띄우고 있는거지? 결혼이 있다면, 이혼도 있는데 그게 이토록 아직까지 유난스러운 일(포털 메인에 1위까지 올릴만한)이 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는 곧, 이혼한 이에 대해, 여전히 어떤 특별한 시선을 내포하고 있기에.

 

어제는 다가오는 11월에 결혼을 한다는 지인에게 반지를 선물 했다.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무척 예뻐하길래, 그러면 색깔이 다른 새 반지를 선물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반지와 동봉한 간단한 메모에는 “저는 결혼 제도의 불합리성 등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00씨의 결혼은 축하해 드릴게요. 꼭 행복하세요.”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의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을 준 것이 되었다. 비혼주의자가 타인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결혼을 반대하기에 가까운 이들의 결혼식이라도 할지라도 그러한 장소에 결코 가지 않는 식으로 자신의 비혼주의적인 실천을 한다. 하지만 나는, 굳이 결혼식에 대한 초대를 거절하지는 않는다. 비혼주의자인 나는, 타인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만일 누군가가 결혼해서 정말, 가장 행복하다면 나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겠다. 정말 그 사람이 결혼을 함으로 해서 행복하다면, 진심으로 난 그 행복을 빌어줄 수도 있다. 어차피 모든 이는 자신의 행복을 향해 사는거니까. 그러나 그 행복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는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결혼 시장’으로 변질되어가는 결혼의 속물성, 사랑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뭔가 이상한 것, 결혼에서 배제되는 가리어진 존재들, 그 아래에 숨기고 있는 악랄한 여성에 대한 차별(곧, 여성인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뜻하는).

 

동성결혼은 허용하지 않는 이성애중심, 국가중심적 편협함과, 결혼은 남편의 집안으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호주제폐지로 덜해지긴 했더라도, 다만 ‘덜’해진 것이며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통념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등의 가부장성은 한국의 결혼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골격이다. 또한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이러한 한국의 결혼제도와 결혼과 관련된 사회의 담론과 분위기들은 비혼인들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결혼제도가 나의 마음을 일찍이 결혼 밖으로 밀어낸다. 결혼하지 않는 (“이기적인”)이는 아직 ‘성인’이 덜 된 것으로 치부되며, 직장에서도 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된다. 가령 기혼인들에게는 비교적 당연하게 주어지는 휴가와 가족 행사와 관련된 보너스가 미/비혼인 자신에게는 ‘눈치 보이는 것’이 되도록 하는 직장 환경에 대해 비판하는 내 친구의 경우처럼 말이다. 결혼을 안 한 사람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결혼 못하는 여/남자(=뭐가 문제가 있을까?를 촉수를 곤두세워 끝없이 탐색하게 되고)”라는 수식어가 붙고, 특히 여성에게는 그녀의 어떤 부정적인 반응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무조건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이 끝내 따라붙고야 만다. 아니, 결혼 하나 안 한 게(안 하겠다고 마음 먹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죄라고 이렇게까지 난리란 말인가? 그 뿐 아니라, 방송인 허수경 씨가 ‘싱글맘’ 선언을 하였을 때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은 또 어떠했는지 기억 하는지? 그녀는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아이의 장래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큰 짐을 지운 이기적인 처사"라는 비난에 부딪혔다. “아기는 낳고 싶지만 결혼은 쫌....”이라고 말하는 나에 대해 ‘역정의 목소리’를 높이는(주로 "넌 왜 니 생각만 하고 이기적이니, 아이가 당할 고통은..” 운운하는 것이 주내용임) 나의 언니와 엄마가 그 산 증인이시다! 아버지가 있더라도 없는 것보다 못하다거나, 그다지 큰 의미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아버지의 부재’라는 것이 그렇게, 완전 그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할 만큼의 큰 문제란 말인가? 한 아이의 부모 중에 한 명이 없는 경우는 이혼, 죽음 등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늘 한 쪽의(혹은 두 쪽 다) 부모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 부모의 부재는 곧 그 아이의 심각한 결핍을 의미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눈, 전적으로 그게 문제다. 또한 생각해보면, 싱글맘에 대한 시선은 남성이 없이 오로지 여성 혼자라는 생각에만 고정되어 있는 듯한데, 결혼을 하지 않고 함께 살며 결혼 제도 밖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경우나, 저런 경우나 사람들의 그런 비판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 밖에서 생겨난 아이라면, 무조건 이상한 눈길로 보는 것이 흔한 경우니까. 누군가 “당신의 이기심으로(결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여성의 ‘편의성’ 등에 관해) 아이의 미래의 불행을 모른 척 하는군요.”라고 비판한다면, 나는 그것을 ‘불행’으로 만드는 사회에 내 아이와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그의 생전 일기가 공개되었다. 그의 일기에는 현 정권과 그들의 대처방식에 대한 분노, 비판, 경고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 (김대중 정권의 공과 과는 별도로) 그가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 등이 짧은 문장 속에 담겨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내에 대한 관계를 표현한 부분이었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라는, 서거 직전까지도 각별했던 아내를 향한 사랑의 구절들이 그의 일기에는 가득 차있다. 언론들은 연이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기신 그 사랑의 단상에 관하여 보도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언론들의 조악한 플레이를 혐오하는 나에게도 역시 그들의 사랑은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꿈꾸는 삶이 그의 일기에 묘사된 삶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닐 것이라고. 결혼하지 않고 80살이 넘더라도 그 오랜 후의 나의 미래 속에, 다만 바라만 보아도 감사하고, 건강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과 사랑을 했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처럼. 뭐, 갑자기 이런 ‘사랑 타령’은 이 글에서 뜬금없다고? 내가 볼 때 내 주변의 비혼주의자들 중에는 ‘독신’주의자나 사랑과 사람에 대해 거부하는 냉소주의자들보다는 결혼제도의 불합리성에 저항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결혼 속에서는 그들이 행복하게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사랑을 원한다. 나의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위해, 나는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려고 한다. 억압 없고 여성인 나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으로.

 

 

 

written by 영롱 (a.k.a 꿈의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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