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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6
    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_ 산하(5)
    반차별팀

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_ 산하

     

            

     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산하/ 인권운동 사랑방 반차별팀 자원활동가


 


 

 

● 들어가며

 

-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걸어가는 데 누군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쳤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린년이 어디서 담배를 피고 지랄이야?”

 

-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쉬는 시간,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차가 내 앞에 멈춰서고 갑자기 경찰이 나를 불렀다. “아가씨 몇 년생이에요?” 나는 황당해하며 되물었다. “ 그걸 왜 물으시는 데요?”, 내가 당돌하게 나가자 멋쩍은 듯 대답했다. “아니 그냥 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길래...”. “ 저 88년생 성인인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대차게 나갔다. 경찰이 말했다. “아니 성인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자가 대낮에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좀 보기가 그렇잖아요 그렇지 않나?” 조수석에 앉아있는 동료에게 긍정을 요구하기 까지 한다. “전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그럼 담배를 어디서 펴야 되나요?”하고 말하자 “아니, 그냥 좀 보기가 안 좋아서...” 라고 말끝을 흐린 후에 가버렸다.

 

- 친구와 함께 담배를 피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면서 나에게 뭐라 하신다. “나중에 기형아 태어나려면 어쩌려고 담배를 펴 애 잘못되면 다 여자 탓인데, 애 낳는 몸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건데 그렇게들 담배를 피우나 쯧쯧”

 

 내가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여성)흡연자로써 보낸 지난 일 년 동안의 시간이(정확히 말하자면 흡연여성으로 인해 받은 수많은 차별과,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사회적 규범·인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모두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더 폭력적이거나 더 은밀한 차별과 억압도 많았으나 그 모든 사례를 열거하기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나이가 어린 여자이기 때문에, 그냥 보기가 안 좋으니까, 아이를 낳을 몸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여자는 안 되고 나이가 많은 여자는 되는 이유가 뭘까? 흡연하는 여성의 모습이 길을 가다 차를 세울 만큼 눈엣가시가 되는 이유는?. 남자도 흡연하면 정자가 약해지고 수도 줄어든다는데! 여성 흡연에 대한 억압적 분위기 그리고 여성에게 금연을 요구하는 사회적 담론은 ‘흡연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방식 즉, 여성의 신체가 ‘아기를 낳는 모체’로써 인식된다는 점에서 성차별 적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여성 흡연 현상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과정을 살피고 두 번째로 흡연이 여성에게 사회적 금기로 작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본 후 세 번째로 나의 경험에기반하여 흡연과 젠더관계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내가 바라는 '여성 흡연· 흡연 여성'에 대한 사유를 피력하고자 한다.

 

 

● 여성 흡연 실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 인구는 13억 명으로 1년에 490만명이 담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흡연 인구는 약 1200만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흡연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금연 분위기가 일면서 한국인의 20세 이상 성인 흡연률은 남자의 경우 1980년 79.3%에서 2002년 60.5%로 20여 년 만에 18.8% 감소했으나, 20대 여성 흡연율은 1980년 1.4%에서 2002년 8.1%로 6배가량 크게 늘었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간 여성 흡연율이 증가한 것은 전 세계적 양상인데, 여성 흡연 인구의 증가는 먼저 선진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흡연자의 총수는 2억명 이상이며, 선진국 여성 평균 흡연율은 25% 전후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된 지난 20년 사이에 여성 흡연 인구가 급속히 증가 하였다.

 

 이렇듯 여성 흡연율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이나 제도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 흡연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흡연 여성의 역사

 

 여자가 번듯이 담배를 피워서 말세라면, 말세는 벌써 옛날에 왔다. 명성황후도 애연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 담배는 포르투갈이 일본에 전했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을 통해 조선에 전해졌다.  정조 임금도 즐겨 피운 담배는 양반뿐만 아니라 상민, 천민 그리고 여성과 아이도 즐겼다.- '조선 사람들은 담배를 몹시 많이 피우는데 심지어 네댓 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들 까지도 피울 정도여서, 남녀를 막론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하멜 표류기>-

 

 1910년도 담배광고를 보면 임신여성이 궐련을 피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의 습속>이라는 책자에는 담배를 피우는 도구를 성명하는 이가 남성 아닌 여성이며, 부덕을 정숙히 행할 상류층 부인이다. 이밖에 여러 자료에서도 결코 여성의 흡연이 사회적인 금기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왜, 누가, 여성을 흡연에서 배제하기 시작한 걸까?

 
 조선 사회가 보수적이 성격을 띠게 되는 시기는 남존여비와 같은 가부장적 사고가 짙은 사림계열의 성리학자들이 정계를 장악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형제들이 돌아가며 지내거나 시집간 딸도 모시던 제사를 적장자만이 지내고 상속도 적장자 위주로 이루어 졌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해짐에 따라 여성의 공간은 '집'으로 규정되었으며, 담배에도 예절이 생겼다. - 종은 상전 앞에서, 나이 어린 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아내는 남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또한 신분에 따라 담뱃대의 길이가 달라져 양반은 1m가 넘는 담뱃대를 물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근대 사회에서 왜 여성은 흡연에서 배제되었는가.(사)현대사 연구소> -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이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정숙하지 못하다는 범절이 통용되었고, 상류층의 여성들은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지 않음으로써 남 앞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기생이나 주막부녀들과의 신분적 구별을 두었다. 그러나 예외 적으로 가정의 연장자나 과부처럼 '사연이 있는 여인'들 에게는 담배가 허용 되었다. 여기서 기생에 대한 부정적 관념과 이들이 공개적으로 사용한 담배의 결합에서 오는 이미지는 지금까지 여성 흡연자를 제약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가 이후 '양공주'로 이어지면서 직업적 속성이 기생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담배를 허용하는 관행이 점차 관습법처럼 굳어졌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조선이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 할 것을 촉구한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술과 담배를 축첩이나 노름과 같은 죄악으로 규정하면서, 패가망신의 원이이며 사회적으로 해로운 풍습이며 국가의 재정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담배의 해로움을 밝혀낸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의 요구를 들 수 있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나라의 빚을 갚자는 때에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단연'이었지만 담배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세와 함께 일제 제정의 40%를 차지했다. 식민지 시절 개화를 주장하고 독립을 염원하던, 민족을 앞세운 선각자들은 '힘을 키워 나라를 되찾자'는 구호아래 여성들을 국민의 어머니로 규정한다. 여성들은 민족의 앞날을 책임질 아이를 근대적으로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자유와 저항의 상징


 서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담배가 전래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담배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의 종교서회는 여성에게 지속적인 입술운동을 하면 턱수염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고, 흡연 여성들은 품위가 없는 최하층 여성이거나 창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여성 해방 운동의 물결이 일어났을 때 흡연은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고, 당시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던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로라 몬테즈(Lora Momtez)는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웠다. 영국에서 여성 투표권이 허가된 1920년대 이후 담배 소비는 급속히 성장했고, 미국에서도 여성 투표권이 통과되고 난 후 담배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담배는 숭고하다」를 쓴 리처드 클라인는 "한 사회에서 여성이 어느 정도 흡연권을 누리고 있는가는 보편적 평등의 지표이자 시민 사회 내에서 여성이 전임 회원인가 여부를 가늠 하는 시금석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1980~90년대 패미니스트 사이에서 '담배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그들은 양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담배를 사유하고 소비했다. 그들에게는 여성이 담배 피울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다른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임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담배를 선택했다. 정치적 흡연가가 된 것이다.

 

 여자가 숨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더 이상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주제적인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여자라면 마땅히 베일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녀가 빨아대는 모든 담배 연기는 그녀가 호흡하기로, 그것도 전적으로 그녀 자신의 호흡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리처드 클라인>

 

 

● 나오며 +사족

 

 나는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임을 드러내고자 흡연을 하는 것인가?

 
 내가 당당히(?) 흡연을 하는 것은 굳이 숨길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나의 흡연 행위가 저항 또는 자유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물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강도의 차별을 경험했지만 내가 그 차별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의 상징으로써 흡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일상적인 행위가 누군가에겐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다는 사실이 거북하고. 심한 욕설을 듣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당할 뻔 했던 일련의 경험들이 나를 위축시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담배를 꺼내 물을 때 혹여나 나를 해치거나 쓴 소릴 할 만한 사람이 있지 않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골목길에서 갑자기 아저씨들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얼른 담배를 끄고 모른척하는 내 모습,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정말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시선이 어느덧 내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를 검역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는 발견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히려 ‘자유와 상징’이라는 구호마저 벗어 던지는 그냥 단순하고 명쾌한 그런 사유를 원한다. 별 것 아닌 담배에 여자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왜 담배를 피우니?"하고 물으면, "그냥 , 담배가 좋아서."하고 대답할 수 있는,

어떤 사건도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담배가 여자에게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단지 '기호'에 불과한  그런 담백한 사유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참고 문헌>

- 이윤숙. <담배로부터의 해방과 여성의 해방>. 2003.

- 서명숙.「흡연여성 잔혹사」서울: 웅진닷컴 2004.

- 고한나, <일제시대 여성 흡연에 대한 담론 분석>,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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